醉下祝融峯(취하축융봉) [축융봉에서 내려오며] 七言絶句
ㅡ 朱熹(주희)
我來萬里駕長風 (아래만리가장풍) 만 리를 찾아온 축융봉, 바람에 실려 만 리를 갈 듯한데
絶壑層雲許盪胸 (절학층운허탕흉) 깎아 지른 듯한 골짜기와 뭉게구름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濁酒三盃豪氣發 (탁주삼배호기발) 탁주 석 잔을 마셨는데 호탕한 기분이 가슴에 일어나서
朗吟飛下祝融峰 (낭음비하축융봉) 시를 읊조리며 나는 바람을 타고 축융봉을 단숨에 내려왔다.
壑 골 학, 盪 씻을 탕, 朗 밝을 낭, 融 화할 융, 화합하다
*駕長風 '駕'는 마차나 가마에 타는 것. 몸이 바람에 실린 듯 떠 있는 기분. *絶壑 깎아지른 듯한 깊은 골짜기. 絶壁. *層雲 여러 겹 겹친 구름. *許盪胸 '許'는 정도가 높은 것. 이렇게도. '盪'은 감동으로 가슴이 설레는 것. *發 發生함.
[해설] 제목은 '醉하여 祝融峯을 내려오(下)다'. '祝融峯'은 허난 省 衡山(형산)에 있는 일흔두 봉우리 중 최고봉. '祝融'은 중국 고대 신화, 전설에 등장하는 불의 神. 朱熹의 아버지 朱松은 시인이었고, 朱熹도 처음에 조정에 들어간 것은 시인의 자격으로서였다. (김희보)
※朱熹
출생:1130. 10. 18, 중국 푸젠 성[福建省] 우계(尤溪)
사망:1200. 4. 23,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노인(雲谷老人)·둔옹(遯翁). 존칭하여 주자(朱子)라고 한다.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중국 사상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주희는 〈논어〉와 〈맹자〉에 관한 집주(集注)를 저술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나타냈는데, 중국·한국·일본 등의 지식인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주희는 역사에도 깊은 흥미를 보여 사마광의 역사서인 〈자치통감〉의 축약과 재편집을 지휘, 1172년 〈자치통감강목〉을 완성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읽혔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최초로 간행된 중국역사서로서 무아리아크 드 마야가 쓴 〈중국통사〉의 토대가 되었다.
주희는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18세 때 대과에 급제했는데, 당시 그 시험에 급제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세였다. 조정에 대한 주희의 정치적 비판과 이성적인 자세는 수용되지 않더라도 그의 철학체계 만큼은 유일한 관학으로 인정받았는데, 이같은 풍조는 19세기말까지 지속되었다.
'漢詩와 書藝' 카테고리의 다른 글
明心寶鑑 省心篇 3장 (0) | 2019.06.06 |
---|---|
安海州 / 萬海 韓龍雲 (0) | 2019.05.19 |
九月九日憶山東兄弟 / 王維 (0) | 2019.05.19 |
估客行(고객행) - 李白(이백) 詩(시) (0) | 2019.05.13 |
水鍾寺(수종사) / 李明漢(이명환) (0) | 2019.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