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173
** 漢高祖 列傳 5
※ 危機의 韓信
어느 날 유방이 중신들과 政事를 의논하고 있는데, 侍從이 급히 오더니,
"楚나라의 농부 한 사람이 폐하께 아뢸 말씀이 있다고 찾아 왔사옵니다."
하고 알리는 것이었다.
劉邦은 <楚나라에서 온 사람> 이라는 소리에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을 당장 불러들여라"
하고 즉석에서 命한다.
楚나라에서 왔다는 농부는 바닥에 엎드려 유방에게 고한다.
"새로 부임해 온 楚王 韓信은 죽은 항우의 심복 將帥였던 종리매를 숨겨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에게서는 많은 농지를 빼앗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필시 반란을 도모하려는 것이 분명하오니, 폐하께서는 그를 신속히 다스려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출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중신들에게 묻는다.
"韓信이 일찍이 齊王으로 있을 때에 수상한 행동을 하기에 그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楚王으로 보냈더니, 이번에는 鐘離昧와 결탁하여 반란을 도모하고 있는 모양이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
重臣들이 크게 분노하며 품한다.
"그렇다면 큰일이 아니옵니까 ? 당장 군사를 보내어 철저하게 응징을 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진평이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韓信은 項羽에 비길 장수가 아니옵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보내 武力으로 그를 제압하시려다가는 큰일나시옵니다. 楚나라 땅은 워낙 산악이 험악하기 때문에 군사를 1~20 萬쯤 보내 보았자 아무런 효과 도 없을 뿐만 아니오라, 지금 당장 우리에게는 韓信의 智略을 능가하는 將帥도 없사옵니다."
유방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말씀이오 ?"
"한신과 무력으로 싸워서는 안 될 것이오니, 계략으로 그를 생포하셔야 하옵니다. 臣에게 좋은 계략이 있사옵니다."
"무슨 계략인지 어서 말씀해 보시오."
陣平이 다시 아뢴다.
"예전, 秦皇帝 때는 각 지방의 민정을 살피기 위해, 四 계절에 걸쳐 지방을 巡幸하는 관례가 있었사옵니다. 봄에는 東쪽 지방을, 여름에는 南쪽 지방을, 가을에는 西쪽 지방을, 겨울에는 北쪽 지방을 순행했던 것이옵니다.
그런 전례를 되살리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번에는 雲夢地方으로 순행을 하신다는 詔勅(조칙)을 내리시옵소서.
그러다가 만약 폐하를 영접하지 않는 侯伯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를 잡아 목을 베어 버리도록 하시옵소서. 그러면 한신은 그 사실을 알고 폐하를 반드시 영접하러 나올 것이옵니다. 그 기회에 力士들로 하여금 한신을 생포해 버리면 되실 것이옵니다."
陣平의 計略은 절묘하기 짝이 없었다.
유방은 크게 기뻐하며 곧 詔勅을 내리고 운몽 지방으로 순행 길에 올랐다.
유방이 문무 백관을 거느리고 함양을 떠나 陳蔡라는 곳에 도착하자, 英布와 彭越등을 비롯하여 인근 각 고을의 侯佰들이 모두 영접을 나왔다.
그보다 앞서 한신은 황제가 운몽 지방에 행차를 한다는 통보를 받고 긴급 참모 회의를 열었다.
"지난 번에 왔던 隋何 大夫의 말을 들어 보면, 폐하께서는 내가 종리매를 숨겨 두고 있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신다고 하오. 그러므로 이번에 영접을 나갈 때는 종리매의 수급을 반드시 가지고 가야 무사하겠는데, 친구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하는 말이오. 그러나 황제는 나의 마음을 떠보시려고 순행이란 명목으로 일부러 이곳으로 오시는 것이 분명하니,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려."
"..... "
참모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 부답이었다. 아무런 묘책이 없었던 것이다.
한신은 하도 답답해서 종리매를 직접 불러 솔직하게 말했다.
"황제께서 이번에 이곳으로 순행을 오시는 것은 내 마음을 떠보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 분명하오. 그대를 숨겨 둔 사실이 발각되면 나도 죽고 그대도 죽게 될 것이오. 그러니까 그대는 친구를 위해 희생해주면 좋겠소."
종리매가 대답한다.
"대왕은 어찌하여 잘못된 생각만 하고 계시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나를 죽이고 나면 대왕도 반드시 죽일 것이오. 내가 왜 친구인 대왕에게 허튼소리를 하겠소 ?"
"내가 비록 漢帝의 손에 죽게 되더라도, 나에게 두 마음이 없다는 사실은 보여드려야 할 게 아니오 ?"
鐘離昧는 그 소리를 듣자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던지 하늘을 바라보고 한바탕 웃고나더니 韓信을 향하여,
"이 비겁한 놈아 ! 너는 수십 년 동안 친구와의 의리는 심중에도 없고 오직 네 자신의 安危와 영달만을 위하여 친구를 배신한단 말이냐 ? 너같은 놈을 친구라고 믿었던 내가 너무도 어리석었다."
종리매는 한신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나더니, 그자리에서 자신의 칼을 뽑아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러 自決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후,
한신은 종리매의 수급을 가지고 劉邦을 찾아가 바치며 稟한다.
"臣이 그동안 보살펴주던 종리매의 수급을 이제야 베어 왔사옵니다."
劉邦은 鐘離昧의 수급을 확인하고 나더니, 갑자기 怒氣를 띄며 韓信을 질책한다.
"그대는 鐘離昧를 오랫동안 숨겨 두고 있다가, 내가 이곳에 오니까 이제서야 마지못해 그의 수급을 가져 왔다. 그렇다면 그대는 필시 나에게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봐라 !
이 자를 당장 포박하라 ! "
한신은 아차! 하는 순간에 결박을 당하고말았다. 모든 것이 陣平의 계략대로 된 것이었다.
한신은 결박을 당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臣이 무슨 罪가 있다고 이러시옵니까 ?"
유방은 결박당한 한신을 굽어보며 큰소리로 꾸짖는다.
"무슨 罪로 결박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대의 양심에 물어 보면 될 게 아니냐 ?"
한신이 대답한다.
"폐하께서는 開國功臣인 小臣을 무슨 까닭으로 포박하시는지, 臣은 알 길이 없사옵니다."
"그대의 罪를 모르겠다고 ... ? 그렇다면 내가 자세하게 일러 주리라. 그대는 楚王으로 부임하자마자 농민들로부터 땅을 무단으로 빼앗아 부모의 산소를 요란하게 꾸며 놓음으로써 원망을 높게 샀으니 그 罪가 하나요. 이제부터는 군사가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농민의 田地를 징발하여 군사 훈련장으로 써 가면서 많은 군사들을 길러오고 있으니 그 罪가 둘이요.
鐘離昧가 그토록 朕이 찾던 敵將인 줄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숨겨 두고 있었으니 그 죄가 셋이다. 이렇게 그대가 반란읅 일으키려던 계획이 이미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포박을 받아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
유방의 꾸지람은 추상 같았다.
한신은 포박을 당한 채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그 세 가지 일에 대해 臣의 해명을 들어 주시옵소서. 첫째는 부모님의 산소에 관한 일이온데, 臣은 어렸을 때 너무도 가난하여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모실 땅이 한 평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의 집 산에 부모님 시신을 假葬해 두었던 것이옵니다. 그러다가 楚王이 되고서야 비로소 정식으로 산소를 조성하여 모시게 된 것이온데, 백성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저를 모함한 모양입니다.
변명을 듣고 보니 그것만은 이유가 그럴듯하였다.
"음 ! "
유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는다.
"그 문제는 그렇다치고, 농토를 징발하여 군사를 훈련한 까닭은 무엇인가 ?"
한신이 다시 대답한다.
"페하께서 천하를 통일하셨사오나, 楚나라에는 아직도 項羽의 殘黨들이 가는 곳마다 들끓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도 부득이 군사를 양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폐하를 보필하기 위한 일이었지, 결코 반란을 도모하려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리고 鐘離昧에 관한 일은, 그와 저는 오랜동안의 친구지간 이옵니다. 종리매는 죽여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기에 그를 살려 두었다가 적당한 기회에 폐하께 稟告하여 귀하게 써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간악한 무리들의 讒訴(참소)를 들으시고 臣을 의심하신다고 들었기에 부득이 저의 진심을 보여 드리기 위해 그의 목을 베어 가지고 온 것이옵니다. 하오니 그것이 어찌 죄가 되옵니까 ? 폐하께서는 이상과 같은 사실을 부디 살펴주시옵기를 통촉하나이다."
듣고 보니 모두가 그럴듯하였으나
유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날의 여러가지 의혹들이 아직도 마음에 맺혀 있었던 것이다.
유방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한신을 다시 꾸짖는다.
"그대의 죄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 뿐이 아니다. 지난 날 그대가 齊나라를 치러 갔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라. 그대가 제나라를 신속히 토벌하지 못하기에, 나는 여이기 노인을 보내어 제나라를 말로써 귀순시켜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齊王이 되고 싶은 욕심에서 군사를 몰고 들어가 齊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해 버리는 바람에, 여이기 노인이 齊王의 손에 烹殺을 당하지 않았느냐 ?
어디 그뿐이냐? 내가 成皐城에서 項羽에게 포위 당해 있을 때, 그대는 나를 구출하 러 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楚王으로 책봉된 데 불만을 품고 모반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이러한 일련의 모든 일을 종합해 보건데, 어찌 罪가 없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