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132
** 楚漢誌 54
※ 項羽의 東奔西走
成睾城(성고성)을 떠난 漢王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韓信이 있는 趙나라로 길을 재촉했다.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퇴각하는 행군은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도망가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이었다.
드디어 행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韓信이 주둔하고 있는 城 바로 50 里 앞까지 다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漢王은 그 지점에 군사들을 주둔시킨 후, 數 十騎의 호위병만 거느리고 韓信이 있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韓信과 張耳는 지난 밤, 술에 크게 취하여 아직 일어나지도 않고 있었다.
또한 漢王 劉邦은 陣中을 돌아보다가 韓信의 처소로 들어와서 보니, 그의 책상위에는 <元帥의 印章>이 들어 있는 비단 주머니가 그냥 놓여 있는게 아닌가 ?
(내가 하사한 元帥의 印章을 이처럼 소홀히 하다니 ...?)
漢王은 매우 괘씸하게 여기며 <원수의 인장>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 넣고 나오자, 때마침 잠에서 깨어난 韓信이 황급히 달려나왔다.
한신은 마루위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아뢴다.
"대왕께서 행차하시는 줄 모르옵고, 영접을 나가지 못한 罪를 용서하시옵소서."
漢王은 탄식하며 韓信을 꾸짖는다.
"내 지금 陣中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오. 장군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元帥의 印章은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흘려 있으니 軍紀가 이렇게 문란해져 있을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만약 敵이 나의 사신을 詐稱하고 營內로 들어 왔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 벌어질 뻔 하였소. 이런 정신 상태로 어찌 천하통일의 大業을 완수할 수 있겠소 ?"
漢王의 노여움은 대단했다.
"..... "
韓信은 대답을 못하고 머리만 숙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張耳가 부랴부랴 달려와 마룻바닥에 머리를 조아린다.
漢王은 張耳도 호되게 꾸짖기 시작한다.
"그대는 軍의 副將으로서 군기를 바로잡고 독려할 책임이 있거늘, 내 지금 陣中을 돌아보니 軍紀가 문란하기 이를데 없소. 이는 마땅히 군법 회의에 처해야 될 일이오. 그러나 그대 들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공이 컷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은바 이번의 일에 대해서는 특별히 용서할 것이니, 그리 알고 대오각성하기 바라오."
漢王은 단단히 이르고 本營으로 돌아오는데, 韓信과 張耳는 두 손을 揖하고 계속 따라오는데
漢王은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이윽고 본영에 돌아온 漢王은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폭탄 선언을 한다.
"내 조금 전에 진중을 순찰하다가 <元帥의 印章>을 주워왔건만, 韓信 장군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이러한 사람에게 어찌 元帥의 중책을 맡길 수 있겠소?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여 元帥를 새로 임명하도록 하겠소.!"
漢王의 폭탄 선언에, 張良과 陣平은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張良은 즉석에서 漢王에게 諫한다.
"韓信과 張耳의 직책을 박탈하시는 처사는 옳지 못한 일인줄로 아뢰옵니다. 그들이 책무에 태만했던 것은 사실이오나, 일시적인 과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오니, 대왕께서는 이번 일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옵소서."
"자신이 맡은 막중한 책무를 유기하고 술로 골아떨어진 사람에게 어찌 국가의 중책을 맡길 수 있겠소? 나는 선생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소이다."
漢王의 노여움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에 張良은,
"그 옛날 衛나라에 순변(筍變)이라는 대장이 있었습니다. 衛王은 그가 어느 농가에서 계란 두 알을 빼앗아 먹었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怒하여 순변을 파직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당시의 大學者였던 公子의 孫子인 子思가 衛왕에게 諫하기를, "사람을 쓰는 것은 마치 뛰어난 목수가 木材를 다루는 것과 같아서,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점은 버려야 한다고 일러왔사옵니다.
소중하게 써야 할 장수를 계란 두 개를 빼앗아 먹었다고 파면 시킨다면, 敵國에서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사 옵니까?." 하고 諫했던바, 衛왕은 그제서야 자사의 깊은 뜻을 알아듣고 筍變의 파면을 취소한 古事가 있습니다. 어제의 韓信과 張耳의 경우도 순변의 경우와 무엇이 다르옵니까? 바라옵건데, 대왕께서는 그들의 파직을 너그럽게 취소해 주시옵소서."
漢王은 張良의 諫言을 듣고 나서 두 사람을 용서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일을 거론하며 한왕은 韓信과 張耳에게 따져 물었다.
"얼마 前, 내가 榮陽城과 成睾城에서 항우에게 포위되어 苦戰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를 求하러 오지 않았는가 ? "
韓信이 머리를 조아리며,
"그 당시 齊나라와 燕나라는 變化가 극심하여, 도저히 군사들을 뽑아 낼 수가 없었사옵니다. 그동안의 정벌을 허사로 만들 수는 없는데다가, 대왕께서 멀고 먼 영양성에 포위되어 계시다는 말씀을 풍문으로만 들었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없었기 에 부득이 출병하지 못했던 것이옵니다."
漢王은 그 문제에 대한 의혹이 풀렸으나 또 다른 의혹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던지,
"그대는 趙나라를 정복한지 이미 오래되었건만, 아직도 무슨 이유로 齊나라를 그냥 내버려 두고 있소 ?"
하고 따져 물었다.
漢王이 韓信에게 여러가지 의혹을 품게 된 것은, 한신의 힘이 날로 커지는 데 대한 불안감에서 온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劉邦 ~ 지 스스로 韓信이 커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견제심리도 발동하여 韓信을 배제하고 졸장부 魏王 魏豹를 대원수로 임명하여 항우와 맞짱떴다가 大敗하여 56萬의 대군 중 20 여 萬名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지 목숨만 겨우 건져 돌아온 주제에 이런 작은 일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건만 쪼다가 쪼다스러운 짓을 다 하는구나.^^)
韓信은 漢王의 질문을 받고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 군사들은 그동안 여러 나라와 싸우느라고 그 당시에는 몹시 피로해 있었사옵니다. 齊나라는 六國 중에서도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피로한 군대로 강한 나라와 맞붙으면 敗할 것이 분명함으로, 우선 휴식을 취하면서 氣를 북돋운 後, 齊를 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음으로 齊나라를 공략하려는 중에 대왕께서 오셨습니다. 지금부터 齊나라를 평정시켜 六國을 모두 대왕의 封土로 만들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지켜봐 주시옵소서."
漢王 劉邦은 그제서야 의혹이 해소된 듯,
"그렇다면 元帥 職을 그대로 유임시켜 줄 것이니, 六國을 반드시 평정하도록 하시오."
하고 관대한 처분을 내려 주었다.
韓信이 謝恩 肅拜하고 물러가자, 대부 여이기가 한왕에게 稟한다.
"지금 우리에게 항복을 해 오거나 귀순해 온 각 고을의 왕자들을 그 고을의 侯伯으로 封해 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 그렇게 하시면 모두들 대왕의 성덕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복종을 하게 됨은 물론이려니와 장차 우리의 세력 확장에도 큰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한왕은 여이기의 말을 옳게 여겨 六國 侯佰 들의 印章까지 새겨 놓고, 불원간 廣野君 여이기에게 육국을 순방시켜 각국의 왕자들을 그 나라의 후백으로 봉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張良이 그 소식을 듣자마자 대경 실색하며 漢王에게 달려가 품한다.
"누가 그런 천부당만부당한 정책을 건의했는지 모르오나, 그런 어리석은 정책은 써서는 안되는 일이옵니다. 그 옛날 湯王과 武王 시절에는 각국 왕자들의 생사여탈권을 한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어느 한 나라도 확실하게 장악하고있지 못한 우리의 형편으로는 절대로 불가한 처사이옵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도 항우와 정면으로 대결을 하고 있는지라, 우리가 지금 각국의 왕자들을 侯佰으로 封해 버리면, 그들은 우리와 楚나라, 양쪽의 눈치를 보며 처신하려할 것이옵니다."
한왕은 장량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여이기 大夫가 그런 건의를 하기에 나는 六國 侯佰들의 印章까지 새겨 놓았는데,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소이다그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소이다."
그리고는 이미 새겨 놓았던 인장을 모두 깨뜨려 버린다.
여이기 노인은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張良은 그 사실을 알고 어느 날 여이기 노인의 처소로 찾아가 머리를 정중히 숙이며 이렇게 사과하였다.
"小生은 그 정책을 大夫께옵서 건의하신 줄은 모르고, 다만 국가를 위해 냉정하게 비판했던 것이오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옵소서. 무릇 천하를 논할 때에는 시세의 强弱을 보아 판단해야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지금 우리는 楚나라의 영토를 절반 가량 점령하고 있 사오나, 項羽의 세력은 아직도 막강하옵니다. 이런 판국에 어찌 六國의 侯佰을 封할 수 있사오리까 ? 大夫께서는 漢王을 옛날의 湯王처럼 생각하고 계시는 모양이오나, 우리의 힘은 아직 그정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옵니다."
여이기 노인은 張良의 말을 듣고난 後,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했소이다. 나는 오직 대왕을 위해 그런 건의를 했을 뿐 다른 뜻은 없었으니, 선생은 양해해 주소서."
"소생은 선생의 충심을 모르는 바 아니옵니다."
여이기 노인은 그제서야 얼굴에 웃음을 띠며,
"대왕께서는 이번에 항우에게 빼앗긴 榮陽城을 다시 탈환하려고 하시는데, 그 일에 대해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하고 묻는다.
"그 계획은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옵니다. 대부께서는 지금, 저와 함께 입궐하셔서, 그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대왕께 건의 하시면 좋겠사옵니다."
張良은 여이기와 함께 입궐하여 漢王에게 품한다.
"자고로 임금은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들이 먹고 사는 것에 정책의 기본을 두어야 하는 것이온데 항우는 영양성을 점령하고도 창고에 가득한 곡식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 영양성을 탈환하시거든 창고 안의 곡식을 모두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심을 완전히 돌려놓으면 영양성은 영원히 우리의 소유가 되어 버릴 것이옵니다."
한왕은 여이기 노인에게 묻는다.
"張良 선생의 건의를 大夫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
"臣은 張良 선생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하루속히 영양성을 탈환하도록 하시옵소서."
세 사람의 의견이 일치되자 漢王은 韓信을 趙나라에 그대로 있게 하고, 자신이 3軍을 거느리고 영양성 공략의 길에 나선다.
한편, 彭城으로 간 王陵은 팽성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성안으로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애초부터 성을 점령하는 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고, 성안의 민심을 소란하게 만들어 항우를 유인해 오려는데 목적이 있는 공격이었다.
왕릉이 10여 일을 두고 연일 공격을 퍼부으니 성안의 민심은 과연 소란해지기 시작하였다.
항우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불안하였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군사를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외황으로 달려가 彭越을 치고, 다른 한 패는 南溪로 달려가 英布를 치려 했었지만, 자신의 본거지인 彭城이 위헙을 받고 있다고 하자, 계획을 변경하여 彭城으로 급히 달려 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항우를 彭城으로 유인해 오려는 張良의 계획이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
王陵은 항우가 成睾城을 떠나 彭城으로 급히 돌아 온다는 소식을 듣자, 그날 밤으로 군사들을 거두어 榮陽城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항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급히 팽성으로 돌아와 보니, 왕릉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성안은 멀쩡하지 않은가 ?
"왕릉은 간 곳조차 없는데 왜들 야단스럽게 굴었느냐 ?"
항우가 팽성을 지키던 장수들을 나무라니 그들이 입을 모아 대답한다.
"폐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王陵이 겁에 질려 도망을 간 것 같습니다."
마침 그때 飛馬가 달려와서 항우에게 아뢴다.
"적장 彭越이 大梁의 17개 城을 모두 점령하고 지금은 외항에 머물고 있사옵니다."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격노하며 탄식한다.
"내가 외항으로 바로 갔더라면 팽월이란 놈을 단번에 격파해버렸을 것인데, 방향을 바꿔 彭城으로 돌아온 것이 큰 실수였구나 ! "
<나에게는 어찌하여 綺信이나 周苛, 종공 같은 충신이 한 명도 없는 것일까 ?... >
<븅신!
그것을 몰라서 한탄하고 있냐?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의 뜻을 잘 음미해보면 답이 나오지않냐 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외항으로 달려가 彭越을 칠 것이다 ! "
그러자 옆에서 낙담하는 항우를 지켜 보던 項佰과 鐘離昧가 諫한다.
"팽월 따위가 설사 大梁을 점령했기로 무엇이 그리 대단하옵니까? 폐하께서는 오랫만에 彭城에 돌아오셨으니, 잠시 숨을 고르시옵고, 龍狙 장군으로 하여금 팽월을 치게 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머리를 저으며,
"나를 배신한 英布가 劉邦을 도와 여기저기서 亂을 일으키고 있는 데다, 韓信은 지금 齊나라를 공격하고 있어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되었다. 齊王 田廣이 韓信에게 밀려 구원을 요청해 왔으니 龍狙 장군을 齊나라로 보내 齊를 구하도록 하고, 나는 彭越을 때려잡기 위해 내가 직접 출전하겠다."
그리하여, 항우는 3 軍을 이끌고 大梁으로 출병한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그것이 王이란 者가 해야 할 일은 아니련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