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113
** 楚漢誌 35
※ 劉邦의 大敗 2
그리하여 대장 丁公과 雍齒가 다시 3 千 병력을 거느리고 漢王을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漢王은 그런 줄도 모르고 "불알이 종소리가 나도록"(옛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 도망치고 있는데, 얼마를 가다 보니, 楚將 丁公이 어느 새 뒤를 바짝 쫒아오는 것이 아닌가 ?
이제는 피할래야 피할 길이 없었다.
漢王은 도망치기를 단념하고 뒤로 돌아서서 丁公을 마주 보며 이런 말을 건네보았다.
"장군, 내 말좀 들어 보시오. 옛날부터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반드시 도와 준다>고 하였소. 장군이 만약 나를 그냥 놓아주기만 하면, 후일에 이 은혜를 반드시 갚을 것이오. 그러나 장군이 극악 무도한 항우를 돕기 위해 나를 죽이고자 한다면, 나는 여기서 장군의 손에 곱게 죽을 것이오."
漢王으로서는 이판사판이라 궁여지책으로 해본 소리였다.
그러나 丁公은 그 말을 듣더니 별안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天下의 英雄인 漢王을 내 손으로 죽이거나 생포할 생각은 없소이다. 눈을 감아 줄 테니 빨리 도망가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漢王이 크게 안도하며 말을 급히 몰아 다시 도망가기 시작하니, 丁公은 천천히 뒤를 쫒아오며 허공에다 연속으로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잠시 후에 옹치 장군이 달려와서,
"漢王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장군은 보셨지요 ?"
하고 묻자 丁公이 대답한다.
'漢王을 쫒아가며 화살을 연방 쏘아댔지만, 그 者가 어찌나 빨리 달아나는지 결국은 놓쳐 버리고 말았소이다."
그러자 옹치가 화를 내며,
"에이, 여보시오. 한왕을 발견했다가 놓쳐버렸다는 게 말이 되오 ?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니 함께 추격합시다."
한왕은 정신없이 말을 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敵은 또다시 맹렬하게 추격을 해오는게 아닌가?
그런데 추격해 오는 敵將은 丁公이 아니고 이번에는 다른사람이었다.
한왕은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음을 깨닫자, 말을 버리고 길가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 숨어 버렸다.
적병들은 그런 줄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漢王은 우물 속에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날이 어두워진 뒤에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바람이 차고 배가 고파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숨을 곳을 찾아야만 하겠기에 캄캄한 산속을 헤매다 한참을 가다 보니, 저 멀리에 등불을 켜 놓은 오두막이 한 채 보였다.
"주인장 계십니까?"
한왕이 덮어놓고 그 집으로 들어가 주인을 부르니,
"뉘시오 ?"
하고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80 안팍의 노인이었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고자 찾아 왔사옵니다."
하고 한왕이 공손히 말하였다.
그러자 노인은 밖으로 나오며,
"어서 들어오시지요. 길이 늦으셨군요."
하며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왕이 입고 있는 黃金戰袍를 보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놀라며,
"손님은 어디서 오시는 王公이시옵기에, 이렇듯 길이 늦으셨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漢王은 노인의 태도와 언동이 믿을만 하다고 생각되어,
"사실은, 나는 漢王 劉邦이올시다. 彭城전투에서 항우에게 大敗하여 여기까지 피신을 오게 된 것입니다."
하고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더니,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仁德이 높으신 大王의 용안을 이렇게 지척에서 뵈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一勝一敗는 兵家之常事라 하옵는데, 귀하신 몸으로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초가 얼마나 크셨사옵니까 ?"
그리고 부엌으로 내려가 저녁상을 정성껏 차려 오는 것이었다.
漢王은 저녁을 들며 주인에게 물었다.
"노인장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
노인이 대답한다.
"저는 척씨(戚氏) 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마을에는 6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사온데, 모두가 戚氏 인 관계로,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척가장(戚家庄)이라 부르옵니다."
"혼자 사시는 것을 보니 아드님이 없으신 모양이군요."
"아들은 없사옵고, 올해 과년한 딸이 하나 있을 뿐이옵니다. 지금 뒷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곧 불러내 대왕전에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인 노인이 무남 독녀를 불러 漢王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그 얼굴과 몸매가 참으로 고왔다.
"허어 ...
노인장의 따님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구려."
漢王 劉邦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을 들며,
"이 산중에 許負라는 名觀相家가 있사온데, 그분의 말에 의하면, 이 아이는 장차 크게 될 아이라고 하옵니다. 천만 다행으로 대왕께서 오늘 소생의 집에 납시었사온데, 이 일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듯 하옵니다. 대왕께서는 하늘이 주신 인연으로 아시옵고, 오늘 밤 이 아이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漢王 劉邦은 워낙 色을 밝히는 자로,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기시작하였다.
그러나 한왕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금 싸움에 敗하고 피신해가는 길이오. 그런 내가 어찌 젊은 여인의 미래를 약속할 수 있겠소!?"
"하늘이 정해 주신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는 끊지 못하는 법이옵니다. 하오니 이 아이는 오늘 밤 대왕에게 맡기겠사옵니다."
주인 노인이 자신의 딸을 억지로 떠맡기는 바람에 한왕은 마지못하는 척하고 그날 밤 주인집 딸과 깊은 인연을 맺고 말았다. (이 여인이 後에 漢高組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많은 일화를 남긴 <戚부인> 바로 그녀이다.)
다음날 漢王은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떠나고자 하니, 주인 노인이 한왕의 손을 붙잡으며 말한다.
"제가 나이가 많아 대왕을 다시는 뵈옵기 어려울 것 같으니 며칠만 더 묵어 가시옵소서."
한왕이 대답한다.
"내가 싸움에 대패하는 바람에 모든 장수들과 뿔뿔이 흩어져서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못 됩니다. 뒷 수습이 끝나는 대로 사람을 보내 어르신과 따님을 모셔가겠소이다."
노인은 한왕의 사정을 알게 되자 굳이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왕이 戚姬부녀와 작별하고 얼마를 가다 보니, 한떼의 군사들이 급히 달려오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하후영>이었다.
한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아니, 장군은 彭城에서 전사한 줄 알았는데, 여긴 어쩐 일이오 ?"
"그러잖아도 彭城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간신히 탈출하여 낙오된 군사를 수습해서 대왕의 아드님 두 분까지 구출해 가지고 왔사오니 기뻐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하후영은 馬上에서 왕자 형제를 내려 놓는다.
(흡사 三國誌에서 '常山 趙子龍'이 수십 만의 敵陣 속을 헤쳐가며 劉備의 아들을 갑옷 안에 품고 탈출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왕은 어린 아들 형제를 부등켜안고 목놓아 울었다.
"너희들 형제가 살아 돌아와서 기쁘다마는, 너희들의 조부모님과 어머니는 어찌 되었느냐 ?"
이렇듯 탄식을 하는 한왕의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여 일행은 다같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한왕이 하후영과 함께 얼마를 가다 보니, 저 멀리 前方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이쪽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저것은 또 어떤 군사들이냐 ?"
하후영이 유심히 살펴보니, 그들이 휘날리는 깃발은 모두 붉은 깃발로써, 선두의 깃발에는 <破楚 大元帥 韓信>이라는 대원수 旗가 아닌가 ?
하후영이 漢王에게,
"대왕 전하 ! 韓信 장군이 우리를 구하러 오는가 봅니다."
한왕이 크게 기뻐하며 마주 달려 가니, 張良과 陣平이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아뢴다.
"대왕 전하께서 행방 불명이 되셨다기에 전하를 찾기 위하여 달려 오는 길이옵니다."
漢王은 張良을 만나자 눈물을 쏟았다.
"오!, 軍師께서 나를 찾기 위해 몸소 예까지 나와 주셨구려. 韓信 장군은 어디 계시오 ?"
그러자 장량이 대답한다.
"咸陽을 지키는 일도 중요한 일이옵기에, 한신 장군은 함양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고, 臣과 陣平 만이 나왔사옵니다."
"그렇다면 한신 장군의 사령관 旗는 어찌된 일이오 ?"
"楚나라 군사들은 韓信 장군의 깃발만 보아도 겁을 내기에, 임기 웅변으로 한신 장군의 깃발을 들고 왔사옵니다."
張良이 아니고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발한 묘안이었다.
한왕은 장량의 지략에 새삼 감탄하면서 말한다.
"내가 이 꼴이 된 것은 선생의 만류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오. 나의 어리석음을 너그럽게 용서하시오."
"황공하옵게 무슨 말씀을 하시옵니까? 최후에는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오니, 일시적인 실패를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한왕이 다시 말한다.
"내가 魏豹같은 위인을 총사령관으로 발탁한 죄로 이렇게 된 것이라오."
장량이 다시 허리를 굽히며,
"이미 지나간 일은 두 번 다시 거론하지 마시옵소서. 臣에게 깊은 계략이 있사오니, 머지않아 오늘의 원한을 깨끗이 되갚아 줄 날이 있을 것이옵니다."
일행이 길을 재촉하여 榮陽城으로 찾아가니, 성주 韓日休가 성문을 활짝 열어 한왕과 장량을 반갑게 영접한다.
이렇게 한왕을 비롯한 일행들이 피곤한 몸을 영양성에서 며칠을 쉬고 있으니, 그 사이에 번쾌와 주발, 그리고 왕릉을 비롯하여 위표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
한왕은 이로써 예전의 진용을 다시 갖춰가게 되었다.
그리고 漢王은 魏豹의 총사령관 직위를 박탈하고 고향으로 그를 보내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