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110
** 楚漢誌 32
※ 義帝의 國葬, 劉邦의 傲慢
漢王이 대군을 거느리고 河南城에 이르니, 城主 申陽이 많은 백성들과 함께 멀리까지 마중을 나왔다.
申陽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곳에는 '董公三老'라고 불리우는 세 분의 賢老가 계시온데 그분들이 대왕 전하를 꼭 배알하고자 하옵니다."
"董公 三老 ?... 그분들은 어떤 분 들이오 ?"
"지난날 항우가 義帝를 弑害하여 屍身을 강물에 던져 버렸을 때, 항우의 패역 행위에 義憤을 느껴 義帝의 屍身을 자기 들이 직접 건져 정중하게 장사를 지내드린 이곳의 어르신 들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오!, 그런 분 들이라면 과인이 속히 만나고 싶으니, 수레를 보내 정중히 모셔오도록 하오."
이윽고 세 사람의 노인들이 漢王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가 80 고개를 넘어 神仙처럼 보이는 白髮의 노인들이었다.
한왕은 몸소 머리를 숙여 장읍(長揖)하면서,
"귀하신 어른 들을 진작 찾아 뵙지못해 송구합니다."
세 노인은 漢王에게 鞠躬拜禮(국궁배례)를 하며 아뢴다.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楚覇王 項羽를 치신다기에, 저희들 세 늙은이가 대왕 전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찾아 왔사옵니다."
"고마운신 말씀이십니다. 어떤 말씀이라도 진지하게 경청하겠습니다."
漢王이 세 노인을 당상으로 정중히 모시니, 그들은 다시 한 번 鞠躬拜禮를 하면서,
"자고로 順天者는 興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고 하였습니다.
項羽는 殘忍 無道하여, 義帝를 시해하고 帝位를 빼앗았으니, 어찌 그를 천하의 도둑이라 아니 할 수 있사옵니까?
仁者는 蠻勇을 휘두르지 않고, 義者는 脘力을 쓰지 않는 법이옵니다.
그러므로 뚜렸한 명분 없이 군사를 일으키면 설사 전쟁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법이온데 대왕께서는 어인 일로 그러한 명분도 내세우지 아니하시고 楚를 치려 하시니, 어찌 천하의 民心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사오리까 ? 저희 세 사람은 그 점이 염려되어 대왕 전하를 찾아 뵙게 된 것이옵니다."
董公三老의 충고는 놀랄 만큼 따끔하였다.
한왕은 노인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머리를 숙이며,
"고마우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면 어떠한 명분을 내세워야할 지, 가르침을 주소서."
그러자 한 노인이 대답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出征에 앞서 義帝의 發喪을 만 천하에 선포하셔야 하옵니다."
"義帝의 發喪 .... ? "
한왕은 노인들의 말을 되받아 묻자, 그 노인은,
"잔학 무도한 항우의 손에 시해된 義帝의 屍身은 저희들 세 사람이 강에서 건져내 장사를 정중하게 지내드리기는 하였습니다마는. 저희들이 지내드린 葬事는 어디까지나 私的인 것일뿐, 만 백성이 哀哭하는 國葬은 아니었사옵니다.
義帝는 마땅히 國葬으로 치뤄야 옳을 것이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楚를 치기에 앞서, 먼저 義帝의 國葬부터 치루셔야 할 것이옵니다.
漢王은 그 말을 듣고,
"참으로 좋은 말씀 해주셨습니다. 이 기회에 義帝의 國葬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漢王의 대답을 듣자 노인들은 감격해 하며 다시 아뢴다.
"大王께서 義帝의 國葬을 치루고 난 뒤, 楚를 치게 되면, 그때에는 楚나라를 치는 명분이 뚜렷해질 것이옵니다. 명분이 이와같이 뚜렷해지면, 어느 侯伯이 대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겠사옵니까 ?"
漢王은 <董公三老>의 충고가 한없이 고마웠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세 분 어르신의 가르침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에 義帝의 國葬을 반드시 거행토록 하겠습니다.
세 노인은 하고 싶은 말을 다 드렸다고 생각했는지 御殿에서 물러가고자 다시 한 번 큰절을 올린後, 표표히 떠나갔다.
漢王은 그 노인들을 곁에 두고자 하였으나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보내드리고, 곧 洛陽으로 가 韓信을 만난다.
韓信은 <董公 三老>의 이야기를 듣더니,
"項羽를 정벌할 대의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대왕께서 손수, 義帝의 國葬을 널리 선포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漢王은 義帝를 장사지내는 격문을 손수 기초하였는데,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 해가 하나 이듯 땅에는 반드시 帝王이 한 분만 계시는 법이다. 일찍이 義帝께서 帝位에 오르시자, 만천하의 王者들과 각지의 侯伯들이 한결같이 의제를 오직 한 분 帝王으로 받들어 모심으로써, 천하는 태평 성대를 이루었다. 그런데 楚將 項羽는 자신의 驍勇을 믿고 大逆無道하게도 義帝를 弑害하고 帝位를 찬탈했으니, 이는 하늘도 용서치 않으려니와 臣下의 도리로써도 있을 수 없는 역적 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본인은 義帝의 屍身을 수습하여 정중히 國葬을 치룬 후에 大逆魁首 項羽를 懲罰함으로써 天倫을 바로 잡고자 한다. 이에 나는 관중을 평정한 바 있어 이제부터는 破楚大長征의 길에 오르려 하는 바이니, 만천하의 王侯 들은 이 聖業에 적극 협력해 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漢王 劉邦 ]
이 무렵 楚나라의 상태를 살펴 보면,
항우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긴 뒤, 학정에 학정을 거듭함으로써 민심은 자꾸만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그것은 다른 諸侯들과 王族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항우로부터 차츰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항우의 죄상을 성토하는 한왕의 격문이 나온 것도 바로 그 무렵이어서, 그 격문의 파급 효과는 놀랄만큼 컸다.
평소부터 항우의 횡포에 불만을 품어 오던 邊方의 諸侯들은, <大逆 魁首 項羽를 치기 위해 正義의 軍事를 일으키겠다>는 漢王의 격문을 보고 앞다투어 漢王에게 협력하겠다는 뜻을 보내왔다.
그리하여 洛陽에서 義帝의 國葬을 엄숙하게 치르고 났을 때에는, 漢王이 움직일 수 있는 군사가 무려 56 萬 명이나 되었다. 이에 漢王은 용기백배하여 韓信에게,
"董公 三老의 말씀대로 義帝의 國葬을 치루고 나자, 각처 제후들의 협력으로 이렇게 많은 군사들이 합류하게되었소. 이제는 군사력으로도 항우에게 뒤질 것이 없게 되었으니, 조만간 군사를 일으켜 그를 본격적으로 치면 어떻겠소 ?"
이렇게 말하는 漢王의 태도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韓信이 조용히 아뢴다.
"자고로 兵器는 凶器에 속하옵고, 전쟁은 국가의 興亡을 가르는 중대사이옵니다. 그러므로 병력이 많다고 전쟁을 함부로 일으켜서는 아니 되옵니다. 天時와 地理와 時運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반드시 勝算이 있을 때만 일으켜야 하옵니다."
韓信의 말은 張良의 말과 흡사했다. 漢王은 그 말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즉석에서 반문한다.
"장군은 어떤 점이 마땅치 않아 楚를 치는 것을 만류하시오 ?"
韓信이 다시 대답한다.
"臣이 며칠 동안 天文을 살펴 보온즉, 군사를 지금 일으켜서는 대단히 불길할 것 같았습니다.
하오니 당분간은 군사들의 훈련을 계속하면서 軍糧米 等을 충분히 비축해 두었다가, 내년에 본격적으로 쳐들어감이 좋을 듯 하옵니다."
韓信의 의견은 張良의 견해와 일치되는 점이 너무도 많았다. 張良은 咸陽을 떠나기 전에 漢王에게 <지금은 天時가 불리하니 군사를 일으키지 않으심이 좋을 것이옵니다> 라고 분명히 말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漢王 劉邦은 통일 천하를 하루속히 성취하고 싶은 욕심에서 張良의 충고를 무시하 고 기어이 군사를 일으켜 洛陽까지 온 것이었다.
漢王은 자신의 뜻이 韓信에게 제지당하자, 한신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장군이 처음에 포증(褒中)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에는 두 달도 되기 전에 빨리 東征의 길에 오르라고 권고했었소.그때는 전쟁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했던 때였소.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크게 다르오. 우리는 이미 關中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군사도 막강해지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楚나라로 쳐들어가기를 만류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오?"
漢王의 말에는 韓信의 반응이 마뜩치 않게 여기는 기색조차 엿보였다.
韓信은 한왕의 그러한 질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하여 의심을 풀어 주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稟告하였다.
"項王은 지금 齊나라와 梁나라를 공략하고 있사온데, 그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燕나라와 趙나라가 項王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둘의 세력은 지극히 막강합니다. 臣이 짐작하옵건데, 項王은 군사를 양쪽으로 나누어 燕나라와 趙나라도 동시에 공략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때에 가면 楚나라의 군사가 양분되는 관계로 매우 허약해질 것이옵니다. 우리는 그때를 기다려 쳐들어가면 필승을 기할 수가 있사옵니다. 臣이 <즉시 發軍>을 만류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옵니다."
한왕은 그제서야 납득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이번만은 자기의 뜻대로 싸워 보고 싶어서 한신에게,
"楚나라 군사들이 모두 자국을 떠나, 원정중이므로 정작 楚都인 彭城은 텅 비어 있을 것이니, 우리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가면 팽성을 점령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오. 이번에는 나 자신이 몸소 진두에 나서서 그런 계략을 써 보기로 할 테니, 大元帥는 咸陽을 지키고 있다가, 만약 내가 불리하게 되거든 급히 달려와 도와주기나 하시오."
漢王은 前例 없이 한신을 배제하는 태도로 나오는 것이었다.
張良이 그 광경을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간한다.
"대왕께서 직접 진두 지휘를 맡고 나서시는 것은 법도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위험 천만한 일이기도 하옵니다. 그러하니 이번 기회에 彭城을 기어코 공략하시려거든 반드시 韓信 장군을 대동하고 가시도록 하시옵소서."
그러나 한왕은 한번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오랫동안 實戰을 멀리해 왔소이다. 그래서 이번만은 직접 싸워 보고 싶어서 그러니,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 주시오."
漢王의 똥고집이 너무도 확고 부동하므로 張良과 韓信은 더 이상 간언을 올리기가 어려웠다.
한신이 한숨을 쉬며 어전을 물러나오니, 謨士 여이기 노인이 뒤따라 나오며 걱정한다.
"이번 싸움은 대왕께서 직접 지휘를 하시겠다는데, 元帥는 그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
韓信이 대답한다.
"項羽는 천하의 맹장이라 우리 편 장수들은 누구도 그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오."
"원수는 그런 사정을 잘 알고 계시면서 어째서 대왕을 직접 따라 나서지 않으시오 ?"
"지금은 時運이 우리에게 불리한지라 누가 대왕을 모시고 나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왕께서 실패하셨을 때를 대비하여 함양이라도 확실히 지키고 있을 생각입니다."
韓信은 漢王의 敗北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다음 단계의 전략을 강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