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108
** 楚漢誌 30
※河內城의 점령
항우의 손에 인질로 잡혀 있던 부모를 무사히 구출해 온 劉邦은, 이제는 한시름 놓고 楚나라를 공략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하여 문무 백관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선언한다.
"우리가 함양에 입성하여 민심을 잘 수습한 덕분에, 이제는 인근 諸侯 들까지 우리에게 충성을 다짐해 오고 있는데, 이것은 여러분 모두의 공로요.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군을 일으켜 楚를 정벌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든지 거기에 대한 좋은 책략이 있으면 서슴치 말고 의견을 말해주기 바라오."
대원수 한신이 제일 먼저 말한다.
"지금 대왕 전하의 위세는 천하에 떨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東쪽에는 殷나라의 司馬공이 버티고 있사온데, 그는 결코 가볍게 볼 자가 아니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臣이 天文을 보오니, 지금은 楚나라를 정벌할 시기가 아닌 듯 하옵니다. 하오니, 우리는 당분간 隱忍自重하면서 각처로부터 세력을 더 규합하고, 한편으로는 養兵과 훈련을 철저히 해 둔다음 내년쯤 군사를 일으켰으면 어떨까 하옵니다."
그러나 漢王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지 위신만 생각하여 X고집을 부림.^^)
"大元帥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오만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도 있지않소?. 지금은 우리 군사들의 사기가 어느 때보다 왕성하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군량과 무기도 과거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음으로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놓치고 싶지 않구려."
그러자 한신이 다시 대답한다.
"대왕께서 꼭 군사를 일으키시려거든 우선 殷王 司馬공을 치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사마공은 예전부터 항우의 휘하로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楚를 치게 되면 우리의 배후를 위태롭게 할 수 있으니 그를 토벌하여 河內를 우리 수중에 넣게 되면, 장차 楚나라를 치는데도 뒷걱정이 없을 것이옵니다."
漢王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만족스러운듯,
"그거 매우 현명한 생각이오. 그러면 금년에는 殷나라만 평정토록 하고, 楚나라는 내년에 치기로 합시다."
그리하여 韓信은 3 萬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河內 정복 길에 올랐다.
司馬공은 본래 항우의 밑에서 자란 장수로, 그가 통치하고 있는 殷나라는 항우로 부터 제수 받은 조그만 小國 이었다.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殷나라 50 里 부근까지 접근하여 陣을 치니,
司馬공은 全軍에 총동원령을 내려 河內城의 경비를 강화하는 동시에 모든 장수들과 함께 긴급 회의를 열었다.
"지금 漢나라의 韓信이 3 萬의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를 쳐들어 오고 있소. 한신은 병법에 도통한 명장이라고 들었는데, 저들에게 대처할 무슨 묘책은 없겠소 ?"
사마공이 매우 걱정스러운 말로 긴급 대책을 논의하자, 謨士 도만달이 대답한다.
"韓信은 보통의 名將이 아니므로 싸워서 이기려고 하다가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오니 우리는 성문을 굳게 닫고 수비만 하면서, 彭城으로 사람을 급파하여 項王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는 것이 상책일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자 대장 孫寅이 도달만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小將은 그와 같은 소극적인 대책에는 찬성할 수가 없사옵니다. 韓信의 군사가 비록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지난 여러번의 전투로 심신이 피로해진 데다가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모두들 지쳐있을 것이니, 우리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쳐부술 수가 있사옵니다. 그런데 싸워 보지도 않고 수비 일변도로 나간다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 ?"
사마공은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孫寅 장군의 의견은 대단히 고무적인 말씀이오. 그러면 손인 장군을 총사령관에 임명할 것이니, 孫 장군은 위형 장군과 함께 군사를 몰고 나가 漢나라 군사들을 격파하시오. 그리고 왕유 장군을 彭城으로 보내 구원병을 속히 파견해주도록 요청하겠소."
이리하여 漢나라 군사와 殷나라 사마공의 군사 사이에 정면대결이 이루어지게 된다.
孫寅이 군사를 몰고 나오자, 韓信은 선두로 말을 달려나오며 손인에게 꾸짖듯이 말했다.
"한나라 군사는 正義의 旗幟를 높이 들고 싸움에 나서는 까닭에, 가는 곳마다 제후들이 귀순해 오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역적의 무리를 돕기 위해 天兵에게 항거하는가?, 지금이라도 항복을 하면 목숨을 살려주겠거니와, 끝까지 반항해 온다면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손인이 大怒하여 장검을 빼어들고 덤벼오며 갖은 욕설을 해댄다.
"漢王이라는 者는 함양을 점령했으면 그로써 만족할 것이지, 욕심이 지나쳐 너 같은 못난 놈을 여기까지 보내 쳐들어 온단 말이냐? 나는 너 같은 놈은 결코 살려 보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자 번쾌가 눈알을 부라리며 나는 듯이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맡았다.
두 장수가 1:1 접전으로 싸우기를 무려 50여 합, 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자 손인 측에서는 위형이 가세 해오고, 번쾌 측에서는 薛毆(설구)와 陣覇가 가세해와 싸움은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이되었다. 그러나 실은, 번쾌의 실력으로는 손인의 목을 간단히 날려버릴 수가 있었지만, 韓信의 계략에 따라 번쾌는 사마공을 유인해 내기 위해 일부러 싸움을 길게 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략을 알 턱이 없는 사마공은 아군 대장들이 격전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일선으로 달려나왔다.
사마공은 손인과 위형을 도우려고 일선으로 달려나오기는 했으나, 적의 세력이 너무도 강하여 쉽게 승리할 가망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번쾌를 비롯하여 周拔, 陣武, 盧琯 같은 漢나라의 장수들은 사마공을 보자마자 일제히 집중 공격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사마공은 勢 不利를 깨닫고 손인, 위형등과 함께 급히 퇴각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彭城에 또다시 구원병을 요청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殷王 司馬공은 項王 陛下께 글월을 올리옵니다.
漢王 劉邦이 三秦을 평정하고 咸陽을 점령한 뒤에 西魏王과 河南王까지 자기 편으로 귀순시킨 뒤,
이번에는 臣의 영토인 河內까지 손을 뻗어 왔사옵니다.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河內로 말하면 西楚로 들어가는 關門이나 다름없는 요새이옵니다. 만약 河內를 유방에게 빼앗기는 날이면 폐하의 領土의 태반이 유방에게 빼앗겨 버리는 것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齊나라와 梁나라를 공략중이라고 하오나, 河內는 그보다도 더욱 중요하오니 구원병을 속히 보내 주시옵소서. 만약 구원병이 제때 오지 않으면 저희들은 저들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오니, 폐하의 통촉이 있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 무렵 彭城을 떠나 齊나라와 梁나라를 공략중에 있던 항우는 陣中에서 사마공의 서한을 받아 보고 크게 걱정하였다. 漢王 유방이 설마 楚나라의 관문인 河內까지 손을 뻗어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항우는 范增에게 사마공의 서한을 보이며 물었다.
"유방이 河內를 침범해 온 모양인데,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
범증이 대답한다.
"이 문제는 폐하께서 친히 출진하시기 전에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하오니 齊나라와 梁나라를 신속히 평정하신 뒤에 河內로 가시도록 하시옵소서."
"사마공의 서한에 의하면, 河內城이 당장 위급한 모양인데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
"그렇게 생각되시면 먼저 項莊(~鴻門宴 연회때, 범증의 지시로 칼춤을 추다가 劉邦을 죽이려 했으나 9척 거구의 번쾌가 등장함으로써 실패했던 項羽의 사촌 동생) 季布 두 장수를 보내 하내성을 수비만 하도록 하였다가 폐하께서 직접 대군을 이끌고 가셔서 적을 멸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옵니다."
항우는 범증의 말을 옳게 여겨 項莊과 季布에게 군사 3 萬을 주면서,
"그대들은 河內로 급히 달려가 사마공과 함께 河內城을 굳게 지키고만 있어라. 머지않아 내가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漢나라 군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테니, 그때까지는 싸우지 말고 수비만 하고 있으라."
하고 명했다.
*조그만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데도 項羽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萬機親覽 : 만기친람)이 楚나라의 근본적인 약점이자 문제였으나, 항우와 범증은 그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한편,
한신은 하내성을 포위하고 10여 일 동안 공격을 퍼부었으나
그러나 사마공은 죽은 듯이 성안에 隱居한 채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項莊과 季布가 3萬 군사를 이끌고 곧 온다는 기별이 있었으므로,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수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韓信은 장고끝에 장수들을 불러 놓고,
"우리가 성과 없는 공격을 퍼부으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가, 정작 항우가 대군을 몰고 오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될지도 모르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작전 계획을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하겠소. 모든 군사는 이 시간부터 공격을 일체 중지하고, 지금 있는 위치에서 각각 10리씩 후퇴하여, 모두들 깊은 숲속에 죽은 듯이 잠복해 경계를 하면서 , 다음 전투를 위한 준비겸 휴식을 취하고 있으시오. 그 후의 행동에 대해서는 별도로 지시하겠소."
한나라 군사들은 대원수 한신의 명에 따라 공격을 멈추고 각각 10리씩 후퇴하여 깊은 숲속에 죽은 듯이 숨어 있었다.
그러자 사마공은 적의 공격이 갑자기 중지된 것을 이상하게 여겨 성루에 올라가서 敵陣을 살펴보니, 적의 군사들이 한 명도 없는게 아닌가 ?
사마공은 그 광경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대장들에게 말한다.
"敵들은 項王께서 대군을 몰고 오는 줄 알고 겁에 질려 깨끗이 퇴각해 버린 것이 분명하오. 우리는 이 기회에 적을 추격하여 섬멸시켜 버렸으면 싶은데, 여러 대장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
그러자 謀士 도만달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韓信은 僞計가 누구보다도 능한 장수입니다. 그는 후퇴하는 척 하면서 군사들을 잠복시켜 놓고 있는지 모르니, 우선 첩자들을 보내서 후퇴 여부를 확인한 후에 추격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사마공은 도만달의 말을 옳게 여겨 10여 명의 첩자를 차출하여 적정을 상세하게 살펴보게 하였다.
10여 명의 첩자들은 장사꾼과 농군 차림으로 변복을 하고 일선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하여 얼마를 가다 보니, 행길가에 酒幕에서 10여 명의 漢나라 군사들이 술을 마시며 다음과 같은 소리를 지껄여대고 있었다.
"韓信 장군은 項羽가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문을 듣고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치고 있으니, 이럴 바에는 애시당초 무엇 때문에 우리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더란 말인가?"
"누가 아니라는가? 도망을 가도 우리와 함께 가는게 아니라, 자기는 7~80리나 먼저 도망가면서 우리에게는 뒤늦게야 퇴각 명령을 내리니, 그런 겁쟁이가 어디 있느냔 말일세."
"그러나저러나 우리도 술은 이제 그만 하고 후퇴하는 일행의 뒤나 열심히 따라가세."
하면서 부지런히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저쪽으로 갈길을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韓信이 병사들을 시켜 계획적으로 꾸며 놓은 연극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한신의 술책임을 알 턱 없는 殷나라 첩자들은 漢나라 병사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본영으로 돌아왔다.
첩자들이 본영에 돌아와 사마공에게 급히 아뢴다.
"韓信은 項王이 大軍을 몰고 온다는 소문을 듣고 도망친 것이 분명하옵니다."
"너는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보고를 하느냐?"
첩자들은 주막에서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사마공은,
"하하하, 韓信이라는 자는 듣던 바대로 천하의 겁쟁이가 틀림없구나 ! 그런 못난 者라면 당장 추격을 해서 물고를 내야겠다 ! "
하고 즉시 다음과 같은 추격령을 내렸다.
"손인 장군과 위형 장군은 군사 1萬 씩을 거느리고 韓信을 당장 추격하라. 나는 군사 2萬 5千을 거느리고 뒤따라 갈 것이다." 그리고 도만달은 5천의 군사로 城을 지키고 있으라."
손인과 위형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한신을 맹렬하게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30 여 里를 쫒아가도 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적의 복병이 있을지 모르니, 오늘 밤은 여기서 야영을 하기로 합시다."
손인과 위형은 陣을 새로 치고 野營준비를 서둘렀다.
바로 그날 밤, 군사들이 막 잠들었을 때, 돌연 숲속에서 일발의 砲소리가 나더니, 난데없이 漢나라 군사들이 야영지를 급습해 오는게 아닌가?
손인이 황급히 창을 들고 나오니, 漢나라 장수 周발과 柴武(陣武)가 칼을 휘두르며 孫寅과 위형에게
덤벼오고 있었다. 위형과 손인은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주발과 시무(=陣武)의 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편, 후속 부대로 따라오고 있던 사마공은 선발 부대가 전멸한 줄도 모르고 10여 명의 호위병들과 함께 선봉 부대로 순시를 나오고 있었는데, 돌연 숲속에서 호랑이 같은 거구의 장수 하나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밧줄로 올가미를 걸어 사마공을 단 한 번에 말에서 끌어내린 後, 순식간에 묶어버리는 것이었다.
"꼼짝마라 ! 나는 漢나라 舞陽侯 번쾌 장군이다."
이렇게 순식간에 세 장수를 모두 생포해버리자, 韓信은 번쾌와 함께 河內성으로 달려가 城을 수비하고 있던 도달만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破楚 大元帥 韓信 장군이다. 사마공을 비롯하여 손인과 위형은 이미 나의 손에 생포되었다. 승부는 이미 끝났으니, 도만달 장군은 공연히 싸우려 하지 말고, 순순히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도만달은 한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신이 제마무리 재주가 비상하기로, 단 하룻밤 사이에 사마공과 손인,위형과 같은 세 명의 장수를 어떻게 사로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도만달은 성루에 올라서서 韓信을 바라보며 소리 친다.
"천하의 거짓말쟁이 한신은 듣거라. 그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내가 아니다. 主公께서 지금 그대를 잡으러 나가셨으니, 그대는 사로잡히고 싶지 않거든 지금 빨리 도망치거라."
한신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대의 城主를 생포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냐 ? 그렇다면 실물을 보여 주면 될 게 아니냐 ?"
그리고 옆에 있는 번쾌를 돌아다 보며 말했다.
"세 명의 포로를 모두 이 자리에 데려다가 도만달에게 직접 보여 주도록 하오."
잠시 후, 번쾌가 세 명의 포로를 생선 엮듯 하나의 오랏줄에 묶은채로 끌고 오는데, 횃불에 비춰 보인 그들은 사마공과 손인, 위형이 틀림 없었다.
도만달은 한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자, 즉시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한신 앞에 엎드리며 사정하듯 말한다.
"사태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小將 도달만, 순순히 항복하옵니다. 韓信 장군께오서는 河內城을 즉시 접수하시옵소서. 하오나 바라옵건대, 세 분 어른들의 목숨만은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
한신이 대답하는데,
"나는 하늘의 뜻을 저버린 무리를 평정하러 왔을 뿐이지, 사람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니 안심하시오."
한신은 막료들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와 간단한 入城式을 거행하고, 세 명의 포로들과 도달만을 모두 그 자리에 데려오게 하였다.
세명의 포로와 도달만이 함께 壇下에 꿇어 엎드리자 한신은 번쾌를 돌아보며 명한다.
"저들의 결박을 모두 풀어주고, 사마공 장군은 단상으로 정중하게 모셔 오도록 하오."
막료들이 단하로 내려가 네 사람의 결박을 모두 풀어 주고 사마공을 단상으로 정중하게 모시니, 사마공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韓信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한다.
"저희들은 모두가 亡國之將이라 마땅히 죽음을 당할 몸이온데, 장군께서는 어인 일로 저희들에게 이처럼 관대하게 예우해 주시옵니까?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사옵니다."
그러자 단하에 있던 손인, 위형, 도달만도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어인 일로 이처럼 관대히 대해 주시는지 영문을 모르기는 小將들도 主公과 같사옵니다."
사마공과 손인 등은 한신에게 생포되자 필연코 죽게될 것으로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신은 자기들을 죽이기는 커녕, 깍듯이 禮遇해 주고있는 것이 아닌가 ?
사마공 등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하였다.
한신은 네 사람의 그러한 심리를 빠르게 알아채고 웃으면서 말한다.
"여러분들은 漢王 전하의 고매하신 정치 이념을 잘 모르시는 모양이니, 내가 거기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소이다. 한왕 전하는 본래 仁義의 情이 깊은 분이신 까닭에 正義의 군사로서 不義를 징벌하실 뿐이지,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그런 어른은 아니시오.
일찍이 西 魏王 魏豹와 河南王 申陽을 생포하셨을 때도 그들을 죽이지 않으셨소. 아니,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진심으로 항복해 오자, 오히려 과거보다도 더욱 높은 자리에 올려 주셨소. 그러므로 여러분도 마음을 돌려 漢나라에 충성을 다한다면, 여러분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의 후손들도 자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누릴 것이오. 項羽는 자신의 이익만 알고 부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漢王께서는 부하들을 위해 당신의 희생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분이시오. 그 점이 바로 漢王이 項羽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하오."
사마공은 그 말을 듣고 무한이 감격하며,
"저희들은 漢王께서 그정도로 慈愛로운 어른이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도 오늘부터 漢王 전하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근 제후들도 우리가 설득하여 모두 漢나라에 귀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렇게 사마공을 완전히 설득시키고 나자, 韓信은 漢王의 이름으로 河內城 백성들에게 求恤米를 후하게 베풀었다.
그러니 하내성 백성들은 입을 모아 한왕의 성덕을 칭송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신은 하내성의 민심을 완전히 수숩해 놓고, 그제서야 하내성을 점령한 사실을 한왕에게 소상하게 보고하였다.
한편,
楚軍 대장 項莊과 季布는 項王의 명령에 따라 3萬의 군사를 이끌고 하내성을 향하여 떠났다.
그러나 이들이 하내성으로 오는 도중에 城主 司馬공이 이미 韓信에게 사로잡힌 뒤 귀순하였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河內城이 이미, 韓信에 의해 함락되고 사마공이 漢나라에 귀순하였다면 우리가 하내성으로 가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항장과 계포는 그렇게 판단하고 도중에 아예 回軍 하고 말았으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