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75
** 論功行賞
秦始皇陵을 파헤쳐 그 안의 副葬品을 꺼낸 것은 항우의 큰 잘못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死者의 안식처로 지은 地下 阿房宮까지 불질러 태워버린 행위는 民心이 離反되기에 충분하였다. 백성들은,
"項羽는 秦始皇보다도 더 무서운 暴君이다 ! "
라는 말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더욱이 項羽가 楚覇王으로 등극하고 난 뒤에도 生과 死를 같이 넘나든 장수 들에게 論功行賞을 베풀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불만 또한 컸다.
范增은 그러한 불만 등을 알고 항우에게 諫한다.
"秦나라를 滅한 지도 상당한 시일이 흘렀사온데, 아직도 논공 행상을 하지 않으셔서 모두들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데, 大王께서는 그들을 侯伯에 封하시옵고 食邑을 下賜하사 각각 임지로 가서 나라의 변방을 튼튼히 지키게 하옵소서."
項羽는 范增의 충언을 옳게 여겨,
"옳은 말씀이오. 그러면 논공 행상을 하도록 합시다. 그런데 정작 논공 행상을 베푸는데 걸리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沛公 劉邦은 어떻게 處遇했으면 좋겠소 ? "
項羽는 <關中王>의 자리를 劉邦으로부터 빼앗아 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劉邦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范增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劉邦을 漢王으로 封하여 巴蜀으로 보내심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劉邦을 巴蜀으로? "
"예, 劉邦을 지금처럼 覇上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하면, 군사를 모아 장차 어떤 짓을 할지 모르옵니다. 그러나 <漢王>이라는 명목으로 멀리 巴蜀으로 쫒아버리면, 감히 다른 짓을 할 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巴蜀으로 보내면 딴 짓은 못 할 것 같소이까 ?"
"물론입니다. 파촉은 워낙 첩첩 산중의 산간벽지라, 그곳은 사람도 적고 物産도 빈약하여 大軍을 양성하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군사가 없는데 어떻게 모반을 도모할 수 있사오리까? 하오니, 劉邦을 漢王에 封하여 巴蜀으로 보내 버리기만 하면 그는 어쩔 수없이 거기서 늙어 죽고야 말 것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참으로 기똥찬 계책이오. 劉邦만 힘을 쓰지 못하게 해놓으면, 천하는 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날게 아니겠소 ?"
"그러하옵니다, 大王殿下 ! 하오니 논공행상이라는 명목으로 劉邦을 하루속히 파촉으로 쫒아 버리도록 하시옵소서."
項羽는 范增의 말을 듣고, 劉邦을 비롯한 모든 장수들에게 <論功 行賞을 거행할 것이니, 郴州(침주)로 모이라>는 命을 내렸다.
劉邦은 項羽의 호출장을 받아 보고 고심하였다. 부른다고 바로 달려가자니 위신이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항우의 명령을 묵살하자니 後患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에 劉邦은 重臣 회의를 열었다.
"項羽가 내게서 關中王 자리를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논공 행상을 한다고 호출장을 보내 왔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 "
簫何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지금 우리의 형편에 項羽의 命을 묵살해 버리면 필시 보복이 따를 것이오니 장래를 생각하시어 가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경솔하게 달려갔다가 ,만약 만인이 보는 앞에서 모욕이라도 당하게 되면,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하겠소 ?"
소하가 다시 아뢴다.
"천만 다행히 張良 선생이 지금 項羽의 幕下에 머물고 계시오니, 침주에 도착하시는 대로, 모든 일을 張良 선생과 상의하시면 되실 것이옵니다."
"오! 정말 그렇구려, 그러면 郴州로 가겠소이다."
劉邦이 項羽를 찾아가니, 項羽는 龍床에서 내려다 보며, 劉邦을 완전히 수하 장수 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논공 행상의 자리에서는 項羽는 龍床에 앉아 있는데, 劉邦은 다른 장수들과 함께 段下에서 무릅을 꿇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 자리에는 張良도 項羽의 등 뒤에 시립해 있었다. 張良은 段下에서 무릅꿇고 앉아 있는 劉邦과 시선이 마주치자, 남 모르게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며 반가운 눈인사를 한다.
이윽고 軍政司가 項羽의 命에 따라, 다음과 같은 논공행상에 관한 전교를 읽어 내려갔다.
1.劉邦 장군을 漢王에 封하노니, 南鄭에 도읍하여 巴蜀 41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2.章悍장군을 甕王(옹왕)에 봉하노니, 폐구(廢丘)에 도읍하여 秦領 38 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3.司馬欣 장군을 塞王에 봉하노니, 역양에 도읍하여 秦領 11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4.동예 장군을 적왕(翟王)에 봉하노니, 高奴에 도읍하여 西秦 38 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5. 英布 장군을 九江王에 봉하노니, 六合에 도읍하여 北秦 45 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이상과 같은 논공 행상을 낭독하고 난 뒤,
1.范增 軍師를 丞相에 제수하여 <亞父>로 존칭하고,
2.項伯 장군을 尙書令에 제수하여 대왕을 측근에서 보필케 하고,
3.종리매(鐘離昧)장군을 右司馬로, 季布장군을 左司馬로 삼아, 大王의 경호를
책임지도록 한다.
논공 행상에서 劉邦은 완전히 부하 취급을 당하는 바람에 모욕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명색은 비록 <漢王>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살지 못할 깊은 산중으로 정배를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關中王의 자리를 빼앗더니, 나를 이렇게 對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리 참을성이 많다해도, 이것만은 묵과할 수 없다 ! )
이같은 생각이 든 劉邦이 항의를 하려고 얼굴을 들어 항우를 정면으로 쏘아보며,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자 그 순간, 항우의 뒤에 배석해 앉아 있던 張良이 손을 들어 劉邦의 행동을 제지하는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항의를 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劉邦은 그래도 참을 수가 없는지, 몸을 움직여 일어서려 하였다.
그러자 張良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項羽에게,
"大王 殿下 ! 논공 행상을 끝내셨으니, 이제는 제후들과 축배를 함께 드시도록 하소서."
劉邦에게 항의할 기회를 주지 않고자, 張良이 순간적으로 꾀를 냈던 것이다.
이윽고 축하연이 성대하게 열리고
큰 賞을 제수받은 장수들은 저마다 크게 기뻐하며 술잔을 들고 크게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劉邦은 술 마실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이에 張良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속삭이듯 말한다.
"아무리 불쾌하시더라도, 오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마시옵소서. 축하연이 끝나거든, 이번에는 저도 沛公을 모시고 覇上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劉邦은 그 소리에 그 큰 귀가 활짝 움직였다.
"선생이 나와 함께 覇上으로 돌아가 주신다면, 그처럼 기쁜 일이 없겠소이다. 그러나 項羽가 선생을 돌려보내려 하겠습니까 ?"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張良은 항우 옆으로 다가가,
"秦나라를 平定하는 大業을 이미 이루셨으니, 저는 오늘로서 沛公과 함께 일단 覇上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못마땅한 듯,
"아니, 나는 子房에게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 달라고 했는데, 子房은 나보다 沛公을 더 도와주고 싶어서 내 곁을 떠나겠다는 말씀이오 ?"
하며 노골적으로 나무란다.
그러자 張良은,
"大王께서는 오해를 하고계시옵니다. 저는 沛公을 돕기 위해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 아니옵고, 저의 고국인 韓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옵니다. 韓王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 주실 때, 秦나라가 平定이 되거든 그날로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嚴命이 계셨던 것이옵니다. 하여,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기에, 일단 覇上에 들러 짐을 꾸린 후 즉시 본국으로 돌아 갈 생각입니다."
項羽는 그제서야 표정이 누구러지며,
"본국으로 가시겠다니 어쩔 수 없구려."
하고 劉邦과 함께 돌아가기를 허락해 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