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73
** 項羽의 錦衣還鄕
項羽는 <楚覇王>에 즉위하고 난 後부터는 范增을 기피하고 주로 張良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王都를 咸陽이 아닌 다른 곳으로 定하고 싶었다.
遷都 문제에 대하여 范增이 의견을 냈다.
"王都는 반드시 要害地로 定해야 합니다. 이곳 咸陽은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外侵의 우려가 적은 유서 깊은 도읍지로 땅 또한 비옥하여 物産이 풍부하옵니다.
또, 타 지역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백성들의 부역과 國力의 소모도 클 것이니 재고하심이 좋을줄 아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나는 咸陽을 王都로 정할 생각은 없소."
"그러면 생각해 두신 다른 곳이라도 있사옵니까 ?"
"나는 郴州(침주)를 王都로 정할 생각이오."
너무도 뜻밖의 대답에 모든 중신들이 놀랐다. <郴州>라는 곳은 , 咸陽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僻地였기 때문이었다.
(*郴州 : 현재 중국의 湖南省과 廣東省 사이에 있는 도시)
范增도 깜작 놀라며 되묻는다.
"郴州는 너무나도 낙후된 벽지입니다. 어찌하여 그런 곳을 王都로 삼으려고 하시옵니까 ?"
항우가 대답한다.
"咸陽은 秦나라 땅이지만 郴州는 楚나라 땅이오. 楚覇王인 내가 楚나라 땅을 버리고 어찌 秦나라 땅에 도읍을 정하겠소 ?"
범증은 그 대답을 듣고, 항우의 옹졸한 생각에 아연 실색하였다.
그러나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 諫한다.
"물론, 咸陽은 옛날에는 秦나라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점령하신 지금에는 함양은 어엿한 楚나라 땅이옵니다. 그러하니 咸陽을 도읍지로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사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몸이 귀하게 되어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마치 錦衣夜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이처럼 귀한 몸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어느 누가 나를 알아주겠소? 그런 이유로 나는 錦衣還鄕하고자 침주에 도읍을 定하려는 것이오."
范增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통탄해 마지 않았다.
(아! 이 사람은 大秦帝國을 滅하고서도 눈에 보이는 게 오직 楚나라뿐이구나. 이런 사람을 主公으로 받들고 천하를 도모해 보려는 내가 어리석은게 아닌가?! ...)
그렇다고 이제 와서 項羽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은가?
范增은 울분을 삼키며 항우에게 다시 물었다.
"郴州를 도읍지로 결정하시는데 있어, 대왕께서는 혹시 張良의 의견을 들어 보신 일은 없으십니까 ?"
范增이 느닺없이 張良의 애기를 물어 본 것은 혹시나 장량이 배후에서 항우를 부추켰나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에 項羽는,
"子房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도 역시 침주를 새로운 도읍지로 정하는데 찬성합디다."
"예 ? 그 사람이 무슨 이유로? ... "
"사람은 누구나 귀해지면 <錦衣還鄕하려는 본능>이 있는 법이니, 새 나라의 도읍지로서는 침주가 좋겠다는 거였소."
范增은 그 대답을 듣고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張良이 뒤에 숨어서 項羽를 亡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范增은 정색을 하고 다시 말한다.
"大王 殿下 !
張良이라는 자는 劉邦을 위해 대왕을 亡하도록 꾸미고 있는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者를 살려 두면 커다란 禍를 입게 되실 것이니, 국가의 百年 大計를 위해 그 者를 죽여 버리셔야만 하옵니다."
范增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項羽는 크게 怒하며 范增을 호되게 꾸짖는다.
"軍師는 어찌하여 사사 건건 子房을 헐뜯기만 하오. 내가 子房을 가까이한다고 妬忌 하시는 게요 .... ? 쯔쯧!...여자도 아닌 사내 대장부가 투기를 해서는 못쓰는 법이오."
范增은 項羽의 말을 듣고 너무도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문채 項羽의 앞을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리하여,
項羽는 도읍을 郴州로 옮겨 오자, 대왕으로서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모든 장수들에게 論功行賞을 크게 베풀기로 하였는데 그렇게 하려면 일시에 많은 재물이 필요하였다.
楚覇王 項羽는 范增을 불러 상의한다.
"모든 신하와 장수들에게 論功行賞을 하려면 막대한 財物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 재물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겠소 ?"
범증이 대답한다.
"함양에 있는 秦나라 창고에는 많은 금은 보화가 있을 것이오니, 사람을 보내 가져오면 되겠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함양으로 사람을 보내 금은 보화를 모조리 郴州로 가져 오라고 命했다.
그러나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와 항우에게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함양에 가 보았사오나, 秦나라의 창고는 모두가 텅텅 비어 있었사옵니다."
실상인즉, 전쟁에 승리하고 나자 項羽의 부하들은 秦나라 창고로 다투어 달려가 보물들을 모두 다 훔쳐갔건만 項羽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에 項羽는 크게 놀라며 范增을 불러 묻는다.
"秦나라 창고에는 금은 보화라곤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보이질 않터라던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范增에게는 금은 보화가 없어진 일 따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금은 보화를 산더미처럼 가지고 있은들, 劉邦에게 천하를 빼앗겨 버리는 날이면 보물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범증은 이 기회에 보물이 없어진 죄를 劉邦에게 뒤집어 씌워 그를 죽여버릴 계획을 또다시 세우고
항우에게 말한다.
"秦나라의 보물들이 모두 없어졌다면, 그것은 沛公이 가져 갔음이 분명합니다. 沛公이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그 보물에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는 沛公을 불러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시도록 하시옵소서."
"음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 沛公을 곧 오도록 하오. 만약 沛公이 나도 모르게 보물을 지맘대로 처분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項羽는 크게 怒하며 劉邦에게 호출장을 보냈다.
張良이 그 사실을 알고 비밀리에 사람을 먼저 보내 劉邦에게 알렸다.
"項王이 沛公을 부른 것은 秦나라 창고에 있던 보물들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沛公은 호출장을 받으시는 대로 項王을 찾아오시옵소서. 그래서 보물에 대하여 묻거든 그 일은 張良이 잘 알고 있다고만 대답하시옵소서. 그러면 제가 모든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방은 장량의 사전 통고를 받고, 호출장을 받는 즉시 마음놓고 項羽를 찾아왔다.
項羽는 劉邦을 만나자 대뜸 큰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咸陽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내가 아니고 沛公이었소. 秦나라 창고에 가득 차 있던 金銀寶貨가 모두 없어졌다고 하는데, 沛公은 그 물건들을 어디다 갖다 두었소 ? 만약 그 물건들의 소재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는 沛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劉邦은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저는 軍務가 多忙했던 관계로, 보물 따위는 張良에게 점검해 보도록 일렀습니다. 마침 張良이 이곳에 체류하고 있으니, 그를 불러 물어 보도록 하시옵소서."
이에 項羽는 그 말을 듣고 즉석에서 張良을 불러 따져 묻는다.
"子房은 秦나라 보물의 소재를 잘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지금까지 그 일에 대해서는 나에게 일언 반구의 말도 없었소 ?"
그러자 張良이 대답한다.
"秦나라 보물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물어 보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는 아무 말씀도 여쭙지 않고 있었던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보물들이 어디 있는지 어서 말해 보오."
張良은 秦나라 보물들에 관해 설명한다.
"秦나라에서는 일찍이 孝王과 昭王 때부터 보물을 모으기 시작하여, 始皇帝 시대에 와서는 그 것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驪山에 자기 자신의 거대한 帝陵을 축조하는데 많은 재화를 소비하였고, 그가 죽은 뒤에는 나머지 보물들을 모두 副葬品으로 무덤 속에 넣어 버렸습니다."
項羽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하였다.
"아니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 엄청난 보물들을 송두리째 무덤 속에 넣어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 아니오. 상당수 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텐데 그것은 어디에 있단 말이오 ?"
張良이 다시 대답한다.
"대왕께서 물으신 대로 시황제의 부장품을 파묻고 나서도 보물들이 상당히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二世 皇帝의 생활이 워낙 사치스럽기 그지 없어서 그 역시 그 많은 보물들을 모두 탕진해 버렸고, 그가 죽은 뒤에도 많은 보물들을 역시 부장품으로 무덤 속에 넣었다고 합니다. 두 차례나 그런 일을 행하고 난 마당에, 지금 무슨 보물이 남아 있겠사옵니까?"
"그러면 지금 남아 있는 보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오 ?"
"地上에 남아 있는 보물은 거의 없사옵니다. 그러나 무덤 속에는 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므로 만약 대왕께서 보물이 꼭 필요하시다면 무덤을 파보도록 하시옵소서. 그러면 그 안의 모든 보물을 고스란히 손에 넣으실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項羽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서 范增을 불러 말한다.
"秦나라의 보물들이 모두 始皇帝의 무덤 속에 들어 있다고 하니, 무덤을 파헤쳐서 그 보물들을 꺼내 모든 신하 장수들의 論功 行賞때 나누어 주면 어떻겠소 ?"
范增은 그 말을 듣고 대경 실색한다.
"帝王의 능을 파헤친다는 것은 道義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자고로 부장품이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애용하던 물건을 무덤 속에 함께 파묻는 것을 말하는 것이온데, 始皇帝의 무덤 속에 얼마나 많은 보물이 들어 있다고 무덤까지 파헤치려 하시옵니까 ?"
그러자 옆에 있던 張良이 웃으며 范增에게 말한다.
"軍師는 실정을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시황제의 무덤으로 말하면, 둘레가 80 里나 되고 높이가 50尺이 넘는 거대한 무덤입니다. 규모가 어떻게나 큰지 무덤 속에는 珠玉으로 북두칠성과 은하수도 꾸며져 있고, 보석으로 지하 궁전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하오. 그러하니 무덤을 파보기만 하면 온갖 금은 보화가 쏟아져 나올 것이 자명한 일이오."
項羽는 張良의 말을 듣고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范增에게 命한다.
"속히 병사들을 동원하여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들을 꺼내 오도록하시오."
范增은 氣가막혔다. 누구의 무덤을 불론하고 무릇 무덤이란 함부로 파헤쳐서는 안 될 신성한 것이 아닌가? . 하물며 여염집 사람의 무덤도 아닌 帝王의 무덤임에 있어서랴..
물론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면, 그 속에서 엄청난 보물들이 쏟이져 나올 것을 范增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보물에 눈이 어두워 帝王의 무덤을 파헤치면 백성들은 項羽의 몰지각한 행동을 얼마나 저주할 것인가?.
張良은 그러한 결과가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덤을 파헤치라고 項羽를 부추기고 있으니, 그것은 항우를 亡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항우는 張良의 그러한 음모를 전혀 알지 못하고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으니, 范增은 氣가 막힐 노릇이었다.
范增은 한숨을 쉬며 다시 諫한다.
"大王 殿下 ! 秦始皇이 비록 잔인 무도한 임금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무덤은 신성 불가침한, 帝王의 무덤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무덤을 함부로 파헤칠 수는 없사 옵니다. 만약 그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들을 꺼내시면 백성들이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저주할 것이옵니까? 대왕은 이번에 새로 즉위하신 어른이시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仁政을 베풀어 민심을 얻으셔야 하오니, 秦始皇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만은 삼가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일단 결심한 項羽에게 그러한 말이 먹혀 들어갈 리 없었다.
(范增군, 자네 입 아프지도 않니?^^)
項羽가 范增을 나무란다.
"軍師는 내가 단순히 보물이 탐이 나서 무덤을 파헤치려는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나의 뜻을 잘못 알고 하는 말이오. 진시황이란 자는 六國을 정벌하면서 수백만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죽였소. 게다가 소위 焚書坑儒로 천하의 良書를 모두 불태우고 선비들을 모조리 생매장시켜 버렸소. 그래서 나는 비록 秦나라를 滅亡시켰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恨이 가셔지지 않소. 그래서 무덤 속에서 그의 시체를 꺼내어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려는 것이니 여러말 말고 무덤을 파도록 하시오."
말할 것도 없이 '부관참시'는 이를 구실로 秦始皇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꺼내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다시 꺼내 斬한다는 것이 어찌 명분이 서는 일이랴?
범증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아!, 大王이 되어 고작 한다는 일이 帝王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란 말인가?....! )
* 글 말미에 덧붙여.
列國誌(곧 전개될 楚漢誌 포함)를 비롯하여
三國誌 等, 중국의 역사서를 탐독하다보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列國誌에도 섭간(涉間), 소각(蘇角), 맹방(盟防),장평(章平) 等等 ..
中國은 땅도 넓고 사람도 많고 姓氏도 많다.
중국인 姓氏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으니 웃든지 마시든지 하시고 여하튼 참고하시기를.^^
예컨데..
涉間은, 건널
'섭', 사이 "間" ... 개울을 건너다가 다리 위에서 만들어 낳은놈이니 '섭간'이라 하고,
蘇角은, 깨어날 '소' 뿔 '각'... 새벽에 잠을 깨니 거시기가 뿔같이 일어나서 만들어 낳은놈이 '소각'이고,
盟防은, 맹세 '盟' 막을 '防'이니 결혼 약속을 맹세하고 미리 만든 놈이 '맹방'이다.
章平은 (글 '章' 평평 '平'이니, 글방에서 책 읽다가 평평한 방 안에서 만든 놈이 '장평'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일본의 姓氏의 由來를 살펴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다.
그것은,
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이 全國을 통일하자 그 과정에서 남자들이 너무 많이 죽어 인구 수가 줄어든지라 王命으로 모든 成人 女人들은 외출 할 때, 등에 담요 같은 것을 두르고 아랫도리 속옷은 절대로 입지 말고 다니다가 어디서든 남자를 만나게 되어 서로 뜻이 맞으면 그자리에서 언제든지 아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일본 여인들이 입고 다니게 된 기모노는 띠를 풀어 헤치면 그대로 깔개가 되고, 등에 두른 담요는 덮개가 되었다고...
덕분에 戰場에서 살아 돌아온 사내들은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 서로 뜻이 통하게되면 어디서든 그 일을
할수 있게되었다.
그 결과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가 무수히 태어나게 되었는데, 이름을 지으려니 보통 고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애를 만들 때의 장소를 따서 姓氏를 짓게 되었다는데 그 덕에 세계에서 姓氏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는데 일본은 현재 약 10 萬 개의 姓씨가 존재한다고한다.
*木下 (목하: 기노시타) 나무 밑에서 ...
*山本 (산본: 야마모토) 산 속에서 ..
*竹田 (죽전: 다케다) 대나무 밭에서 ...
*村井 (촌정: 무라이) 동네 우물가에서 ...
*山野 (산야: 야마노) 산인지 들판인지 아리송한데, 그것은 두 사내하고 연이어 해서 ...
*川邊 (천변: 가와베) 그 일을 끝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개천이 보여서 ...
*田中 (전중: 다나까) 밭 한가운데서 ...
일본인 들 성씨에 밭 전(田) 자가 많은 것은, 물이 질퍽한 논바닥에서는 아이를 만들 수가 없음으로
주로 밭과 숲에서 아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