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177
** 漢高祖 列傳 9
※ 은퇴를 고수하는 張良
張良은 韓王 희신이 북방 오랑캐(匈奴族)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희신을 漢帝에게 천거한 사람이 바로 張良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희신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나를 보아서도 그럴 수가 있는가?! ...)
자신이 천거한 韓信이 反逆罪로 체포되어 왔다가 王爵은 박탈되고 가까스로 일단은 咸陽에 유폐된거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같은 사건이 터지자
張良은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도 커서, 며칠 동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그냥 있을 수 만은 없는지라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입궐하여 席藁待罪(석고대죄) 한다.
"폐하 !
희신이 오랑캐 두목인 묵특과 결탁하여 反亂을 일으켰다니, 臣,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희신을 韓王으로 천거한 사람은 바로 臣이었사오니, 신에게 嚴罰을 내려 주소서."
유방이 웃으며 말한다.
선생이 희신을 믿고 천거한 것 뿐인데, 선생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나쁘다면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희신이 나쁠 뿐이니, 선생은 너무 쾌념치 마소서."
그러나 張良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폐하께서는 오직 臣을 믿으시고 희신을 韓王으로 封해 주셨던 것이오니, 臣에게 어찌 罪가 없다고 할 수 있사옵니까?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臣에게 반드시 重罰을 내려 주시옵소서"
유방은 그 말을 듣고 더욱 크게 웃으며 말한다.
"선생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처럼 준엄하시니, 진실로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朕이 천하를 통일한 것이 누구 덕택인데 감히 선생에게 罰을 내린단 말입니까? 희신의 문제는 朕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선생은 너무 걱정하지 마소서."
張良은 유방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聖恩이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그러나 臣이 重罪를 犯한 것은 분명하온바 그 罰로 모든 公職에서 사퇴하고자 하오니 부디 용납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유방은 張良의 그러한 심정을 알고 재차 만류한다.
"오늘날까지 선생은 오로지 나를 위해 중책을 맡아주신 것이지, 權勢나 榮華가 탐이 나 公職을 맡아 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공직을 사퇴하시는 것이 마음에 편하시다면, 선생께서 편하신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나라에 중대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변함없이 도와주소서. 이것만은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리하여 張良은 그날부로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한가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자연을 벗하며 생각해 보니, 人生이 도무지 허무하게 느껴졌다.
(富貴와 功名이 무엇이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爲해 그렇게도 악착스럽게 싸우는 것일까 ?)
장량은 혼자서 숲속을 거닐며 지나간 몇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을 회고해 본다.
돌이켜 보니 지난 몇 해 동안은 그야말로 파란 만장했던 세월이었다.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쟁취하려고 피 튀기는 싸움을 수백 번이나 반복해 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六國의 王들도 저마다 각축을 벌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돌이켜 볼 때, 그들이 그처럼 악착같이 싸워서 얻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
유방과 항우가 최후까지 남아 싸우다가, 결국 항우는 죽고 유방만이 남았다. 천하를 통일했다는 점에서 유방은 최후의 승리자인지 모른다.
그러나 천하를 얻은 유방도 후계자에게 걸림돌이 될까봐 천하통일의 특급 功臣인 韓信까지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가?
몇 년이 지나면 유방도 항우와 마찬가지로 죽게 될 것이 아닌가 ?
아!
蝸角之爭 (와각지쟁 : 달팽에 뿔 위에서 다투는 것과 같은 허망한 싸움)이라더니, 세상만사가 너무도 허무하구나 !
장량은 문득 그 옛날, '赤松子'라는 仙人이 떠올랐다.
赤松子는 富貴와 榮華를 뜬구름같이 여기면서, 깊은 산중에서 오로지 道를 닦는 것을 樂으로 삼아왔었다.
그러기에 장량 자신도 이제나마 赤宋子를 본받아 여생을 修道하며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張良은 유방의 부름을 받고 오랜만에 入闕하였다.
張良을 반갑게 맞은 유방이 장량에게,
"천하를 통일하는 데 있어서 선생의 功勞는 누구보다도 지대하셨기에, 선생을 오시도록 하였습니다. 선생께 王爵을 드리고자 하는데, 선생은 어느 나라를 원하시는지 솔직히 말씀해 주소서."
이에 張良이 머리를 조아리며,
"모든 것이 하늘의 도우심 때문이었지, 결코 臣의 功勞가 아니었사옵니다. 더구나 臣은 요즈음, 世上 萬事가 물거품 같이 여겨져 오직 옛날의 '赤松子'와 같이 여생을 悠悠自適하며 보내고 싶은 생각뿐이옵니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心身이 점점 쇠약해짐에 따라 王爵에는 전혀 생각이 없사오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옵소서."
유방이 아무리 王爵을 권해도 장량은 끝내 고사한다.
그 裏面에는 후계자를 위하여 韓信을 제거하려는 유방의 속좁은 인간성을 보고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장량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 사정을 아는 맏아들 '張벽강'이 아버지를 원망한다.
"아버님은 지금까지 王師로써 누구보다도 큰 功을 세우셨습니다. 그러하오니 王爵을 받으시어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시다가, 그 자리를 저희들에게 물려 주시면 좋지 않겠사옵니까? 그런데 어찌 그 같은 제안을 마다하시고, 돌아오셔서 이런 山中에서 외롭게 지내시려하시옵니까 ? 저희 자식들로서는 아버님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사옵니다."
아들로서 어찌보면 당연한 불평인지 모른다.
張良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아들의 얼굴을 바라 보기만 한다. 이렇게 한참동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장량이 이윽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벽강아 ! 너는 아직 나이가 어려 世上事를 잘 모르는 것 같구나.
이제 아비가 일러 주는 말을 명심하여 듣거라. 富貴와 功名은 세상 사람들이 다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貴해지면 榮華에 눈이 어두워 누구나가 妻妾을 거느리고 환락과 유흥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내면을 깊이 알게 되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없다.
달도 차면 기울고(月滿卽虧 : 월만즉휴), 높은 곳에 오르면 언젠가는 반드시 떨어지게 되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다. 생각해 보거라.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앉으면 그를 중상모략하는 사람이 생겨나서 결국은 자기 몸을 亡치게 될 뿐만이 아니라, 妻子息들 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史實이 얼마든지 있었느니라. 높은 자리는 이처럼 비참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데, 너는 그러한 天理를 왜 깨닫지 못하느냐 ?"
"....."
아들 '벽강'은 머리를 숙인채 말이 없었다.
張良이 다시 말을 계속한다.
"생각하면 부귀와 영화처럼 허망한 것이 없느니라. 나는 지금 이 조용한 산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日月을 즐기고 밤과 낮에는 흘러가는 구름과 江을 벗삼아 사는데,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에 있을 것 같으냐?
때로는 강변을 거닐며 지난 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창가에 앉아 책을 펴, 老子의 玄虛精神 (현허정신)을 배우기도 하니, 이러한 즐거움을 어찌 부귀와 영화에 비기겠느냐? 이 아비가 너희들에게 벼슬을 물려 주어 영화를 누리게 하려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벼슬 자리에는 반드시 음모와 興亡과 번뇌가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이 아비는 차라리 너희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갔으면 싶구나."
아들을 설득하는 쟝량의 말에는 아버지의 情이 절절이 흐르고 있었다.
벽강은 부친의 깊은 사랑을 그제서야 깨닫고 머리를 숙이며,
"아버님의 고매하신 정신을 小子, 이제서야 알게 되었사옵니다. 앞으로는 아버님의 그 정신을 따라 모든 것을 가르침 대로 하겠사옵니다."
"오냐, 고맙다. 아들아 ! 나는 네 말을 들으니 기쁘기 한량없구나. 부디 그렇게 하거라."
장량은 크게 기뻐하며 그날 부터는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숲속의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그 後부터 張良은 마치 날마다 산과 들을 거닐며 神仙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가을날 ...
이날도 장량은 아침부터 숲속을 거닐다가, 문득 옛날의 스승 黃石公이 떠올랐다.
(아! 黃石公 선생 !
내가 오늘날 천하를 통일하는 데 功을 세우고, 여생을 지금처럼 한가롭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그 옛날 <이교> 다리 위에서 黃石公 선생을 만났던 덕택이 아닌가 ?
그 어른께서는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
장량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불현듯 天谷城을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黃石公 선생이 헤어지기 前에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張良은 그날로 天谷城을 향하여 길을 나선다.
天谷城은 옛날과 다름없이 쓸쓸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張良은 거리를 한참 돌아보다가 예전의 '이橋'를 찾았다. 그때 황석공은 그 다리위에 앉아 있다가 장량을 보고, 다리 밑에 떨어진 신발을 세 번씩이나 주워다 달라고 하였다.
張良은 그때마다 선생이 일부러 던진 신발을 공손히 집어다 주었더니 황석공 노인이 크게 감동하여,
"자네는 열심히 공부하면, 장래에는 帝王의 스승이 될 수 있는 相일세. 내가 貴한 冊 세 권을 줄 것이니, 자네는 이 책을 열심히 공부해보게. 그러면 참다운 君主를 만나 이름을 만고에 떨치게 될 걸세."
라고 말하며 장량에게 竹簡書 세 권을 주지 않았던가 ?
그때, 장량은 너무도 感泣하여,
"제가 만약 성공 하여 후일에 선생님을 찾아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
하고 묻자, 황석공은 크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내가 거처하는 곳을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行雲流水, 去住無心이라고나 할까, 雲水僧(구름처럼 물처럼 떠도는 스님)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무슨 일정한 거처가 있겠는가 ? 자네가 나를 굳이 보고 싶다면, 지금부터 13년 後, 天谷城이라는 곳을 찾아가면, 城門 東쪽에 누런 바위가 하나 있을텐데, 그 바위가 바로 나일세."
張良은 그 옛날 황석공 노인이 들려주던 말을 회상하며 '이橋' 부근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황석공 노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 내가 黃石公 노인을 만난 것은 이미 15년 전의 일이 아닌가 ? 그렇다면 이 다리 위에서 선생를 찾으려고 애를 쓸 게 아니라, 天谷城 東門 밖으로 가서 누런 바위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구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