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 列國誌 160

jahun 2021. 9. 3. 05:12

 

# 列國誌 160

** 楚漢誌 82

※ 韓信의 作戰計劃

韓信이 九利山 작전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이끌고 온 兵力도 많지만, 세력이 약해진 항우를 격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한신은 장중으로 돌아오자마자 밤을 새워가며 체계적이고 치밀한 作戰 計劃을 수립하였다.
布陳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한신은 구리산 계곡에서는 지형의 특성을 살린 周易陳法을 쓰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밤을 세워 작전겨획을 세운 韓信은 다음날 아침, 張良과 陣平을 비롯한 모든 신료와 장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소에서 비장하게 말한다.
"大王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 우리들은 지난 5년 동안 수 많은 전투를 계속해 왔소. 때로는 이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고배를 마신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소. 이렇게 항우를 상대로 싸우기가 무려 70 여 회, 항우의 세력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弱化되어 있소. 그러므로 이번 大戰이야말로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승리를 거두게 되면, 이번 싸움에 나선 모든 장수들은 모두가 列侯에 冊封되어 子孫 萬代까지 영화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니, 모든 將帥들은 심혈을 기울여 이번 전투에 임해 주기 바라오."
모든 장수들은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면 列侯에 冊封한다>는 말을 듣고 저마다 異口 同聲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元帥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저희들은 물ㆍ불을 가리지 않고 싸워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이같은 장수들의 맹세를 듣자, 韓信이 즉각 軍令을 내린다.
"이번 싸움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周易陣法'의 '十面埋伏陳'을 펼치도록 하겠소. 8 명의 장군들에게 각각 副將16명과 정병 4萬 5 千씩을 줄 테니, 구리산의 각각 정해진 곳으로 즉시 달려가 매복하고 있다가 楚軍이 몰려 오면, 결정적인 순간에 기습작전으로 그들을 쳐부수도록 하시오.
첫째, 王陵 장군은 구리산 계곡의 서북쪽에 매복한다.
둘째, 盧관 장군은 구리산계곡 북쪽에 매복한다.
셋째, 曺參 장군은 구리산 동북쪽에 매복한다.
넷째, 彭越 장군은 구리산 동남쪽에 매복한다.
다섯째, 英布 장군은 구리산 동쪽에 매복한다.
여섯째, 周勃 장군은 구리산 남쪽에 매복한다.
일곱째, 張耳 장군은 구리산 서남쪽에 매복한다.
여덟째, 장다 장군은 구리산 서쪽에 매복한다.
이렇게 친 八掛陳에, 夏侯嬰 장군은 10만 군사를 이끌고 대왕 전하의 뒤를 따른다.
張良과 陣平 선생께서는 防護使로써 각각 10만 군사와 함께 대왕 전하를 측근에서 호위하소서.
이상과 같은 명령에 諸將들은 바로 군사를 배당 받아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
大元帥 韓信의 명령은 간단 명료하고 거침이 없었다. 장수들은 명령에 따라 군사를 분류하고 조직을 점검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신의 계획대로 항우와 일선에서 처음으로 맞서게 될 漢王 劉邦이 먼저 출발하자, 孔熙와 陣賀가 군사 2 萬 씩을 이끌고 좌우 선발대로 漢王의 앞에서 進軍을 시작하고, 呂馬通과 呂황은 군사 2 萬 씩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근흠과 陣武는 10 萬의 군사를 각각 左右로 나누어 張良과 陣平을 비롯한 중앙의 漢王을 겹겹히 둘러싸고, 그 뒤를 따라 夏侯嬰이 進軍을 시작하니 그 行列의 威容은 문자 그대로 천하 장관이었다.
漢王 劉邦이 3 千 騎만을 측근에 거느리고, 구리산에 가까운 계명산에 도착하여 陣을 치자, 韓信은 수행하던 장수들에게 새로운 군령을 내린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되면 유고, 박소, 손가희, 고기, 장창, 척사 장군은 각각 군사 1천 명을 이끌고 楚軍의 後方을 크게 교란시도록 하라.
그러면 彭城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 나와 그대들을 격퇴 하고자 할 것이니, 그 때를 이용하여 진희, 유가, 부필, 오예 等 네 장수는 각각 精兵 5 千씩을 거느리고 徐州를 돌아 彭城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城門이 열리고 楚軍이 나오면 그 행렬이 끝날 때, 城 안으로 밀물처럼 쳐 들어가 城을 점령함과 동시에 항우의 일가족을 모조리 生捕하고, 城樓에 붉은 깃발을 높이 올리도록 하라. 城을 점령한 뒤,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 점을 각별히 명심하라 ! "
한신은 또 다른 부대에 다음과 같은 군령을 내린다.
"灌嬰 장군은 대왕께서 항우와 싸움을 시작하거든 즉시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맡으라. 그리하여 항우와 20 여 합쯤, 접전을 벌이다가, 회해 계곡으로 쫒겨 오도록 하라. 그러면 항우는 맹렬히 추격해 올 것이니, 그 때에 楊喜, 楊武, 양익, 여승 等은 각각 5 千 의 군사를 이끌고 烏江 강변에 매복해 있다가 추격해 오는 항우를 공격하여 즉시 생포하도록 하라. 項羽는 천하 무쌍의 무용을 자랑하는 인물이므로 웬만해서는 생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각별히 유념하여 각자 임지로 출발하도록 하라 !"
대원수 한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은 장수들은 각각 임지로 자기가 몰고온 병사들을 이끌고 떠나는데, 王陵을 비롯한 몇몇 將帥들이 한신을 찾아와 묻는다.
"元帥께서 小將에게 구리산 북쪽에 매복해 있으라고 명령하셨사오나, 구리산은 워낙 넓고 광활하여 그 북쪽은 여기서 2백 리나 떨어져 있사옵니다. 그 사이에는 楚軍이 가는 곳마다 陣을 치고 있어서, 어느 길로 가야 적의 눈을 피하여 매복할 수가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韓信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將帥는 戰場의 地理에 정통해야 하는 법이오. 다른 사람도 아닌 王陵 장군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王陵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 沛縣 지방의 지리를 익히지 못하였사옵니다."
한신이 웃으며 대답한다.
"兵法에 아무리 통달하였다고 해도 作戰 지역의 地理를 몰라서는 결코 이길 수가 없는 법이오. 구리산은 徐州에서 10 里쯤 떨어진 곳인데, 계곡이 깊고 많아서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최적의 좋은 산이오. 項羽가 李左車 大夫에 속아 沛縣까지 군사를 몰고 오기는 하였으나, 구리산 계곡이 워낙 깊고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쯤은 군사를 몰고 온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오. 따라서 항우는 한 번 싸워 보아 이기지 못하면 彭城으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오.
하여, 나는 항우의 근거지를 빼앗기 위해 陣熙, 오예 等 네 장수로 하여금 항우가 없는 틈을 타서 彭城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소. 항우는 한 번 싸워 敗하게 되면 근거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江東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래서 강동으로 가는 길목인 烏江에는 楊武, 여승 等 네 장수를 잠복시켜 놓았소. 결국 항우는 烏江을 건너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손에 생포되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王陵 장군은 신속히 임지에 도착해 매복해 있어야 하오. 장군이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가려면 固陵 북쪽으로 黃河를 따라가다가, 귀덕군을 지나 우성현으로 가면 구리산 북쪽에 무사히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오."
王陵은 韓信의 戰略과 作戰地域 地理의 정통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원수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길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다시 말한다.
"九利山은 九의산이라고도 부르오. 그곳에는 네 개의 산이 있는데, 東北 쪽에 있는 산이 계명산이고, 서쪽에 있는 산은 초왕산, 그 뒤에 있는 산이 성녀산이오. 그 주위는 무려 2백여 리나 되오. 항우가 일단 彭城으로 쫒겨갔다가, 城樓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면, 城을 탈환할 생각을 버리고 반드시 王陵 장군이 매복해 있는 북쪽으로 도망쳐 올 것이니 그때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면, 제아무리 항우라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오. 그리 알고 장군은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시오."
大元帥 韓信의 귀신같이 치밀한 작전 계획을 듣고, 지켜보던 漢王을 비롯한 모든 장수들은 혀를 내두르며 임지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좌중에서 장수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볼멘 소리로 크게 외치는데 또 한사람의 장수도 따라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元帥께서는 저와 무슨 감정이 있으시다고 小將은 아무데도 써주지 않으십니까 ?"
그 목소리가 너무도 크고 거칠어 모두가 그 쪽을 바라보니, 대원수 한신에게 정면으로 항의하고 나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9尺 거구의 舞陽侯 樊噲(번쾌)와 신기 장군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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