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82
** 楚漢誌 4
※楚懷王(義帝)의 弑害
項羽는 하루라도 빨리 도읍을 彭城으로 옮기고 싶었다. 마침 范增이 팽성에 가 있었으므로, 항우는 범증에게 季布를 보내,
"義帝를 빨리 다른 곳으로 보내도록 하라 ! "는 命을 내렸다.
范增이 항우의 뜻을 義帝에게 傳하니, 義帝가 개탄하면서 말한다.
"나는 이 나라의 帝王이오. 帝王이 命을 내리면 신하는 그 명을 받아 아랫사람들에게 전달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오. 항우는 그 옛날 나를 帝王으로 내세우는 德분에, 諸侯들도 항우에게 협력하여 秦나라를 滅할 수 있었던 것이오. 나는 項羽와 劉邦이 出陳할 때, '咸陽에 먼저 入城하는 사람을 關中王에 임명하겠노라'는 언약을 했었소.
그런데 項羽는 그 언약을 무시하고 劉邦으로부터 關中王의 자리를 빼앗더니 이제는 나까지 멀리 정배를 보내고자하니, 세상에 이런 不忠이 어디 있단 말이오 ?"
"....."
范增은 얼굴이 화끈거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義帝가 다시 말을 계속한다.
"나의 臣下인 項羽가 이제 와서는 내 위에 올라서고자 이같은 짓을 부리니, 이것을 어찌 臣下의 도리라고 할 수 있겠소?! 그대는 項羽의 亞父가 아니오 ? 항우에게 잘못이 있으면 죽음을 각오하고 諫言을 해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나를 겁박하고 있으니, 그대는 양심도 없는 사람이오 ?"
義帝의 공박이 준엄하기 그지없어, 范增은 바닥에 엎드려 아뢴다.
"臣도 覇王에게 여러 차례 諫言을 올렸사오나, 覇王이 끝내 듣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季布 장군까지 보내와 <불원간 도읍을 彭城으로 옮길 것이니, 陛下를 빨리 다른 곳으로 모시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臣으로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사와, 오직 폐하의 처분만 바랄 뿐이옵니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
무릇 大臣이라는 者는 마땅히 臣의 道理에 따라 임금을 섬겨야 하는 법이오. 그대가 項羽에게 아부하는 小人輩가 아니라면, 어찌 감히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이오?."
范增은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려 아무말도 못 한채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그런 후, 계포를 항우에게 돌려보내며 그간의 경과를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項羽는 계포로부터 상세한 보고를 받자마자, 주먹을 치며 大怒했다.
"義帝라는 者는 본래 무명 수자(無名竪子 : 별 볼일 없는 사람)였던 인물을 우리 家門에서 내세워 옹립한 것인데, 그者가 이제 와서는 도리어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니, 그냥 둘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者는 나보다 劉邦을 먼저 생각하고 있으니, 계포 장군 ! 이 者를 어찌 하면 좋겠소 ?"
하고 물어본다.
계포는 항우에게 맹목적으로 충성 하는 극렬 盲動 分子인지라, 그는 즉석에서 대답한다.
"義帝가 劉邦과 짜고 大王을 害치려 한다면, 두 말할 것도없이 義帝를 제거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후일에는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項羽는 계포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將軍의 의견에 나도 동감이오.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있소."
"그까짓 義帝하나 없애 버리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온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
"義帝는 名色은 당당한 帝王이오. 따라서 帝王을 죽여 버리면 나는 逆臣으로 몰려 천하의 비난을 사게 될 것이니, 그 점이 두렵다는 말이오."
계포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한다.
"大王 전하 ! 그런 점은 조금도 염려 마시옵소서. 다만 대왕께서는 義帝에게 '郴州로 遷都하시라'고 정중한 表文 한 장만 올리시면, 만사는 감쪽같이 해결할 방도가 있사옵니다."
"表文을 올리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단 말이오 ?"
"제가 구체적인 방도를 말씀 올리겠습니다. 九江王 英布와 衡山王 오예, 臨江王 공오 等을 郴州로 오는 산중에 대기시켜 두었다가, 그들로 하여금 義帝를 죽여버리게 하면, 대왕께서는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으시고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項羽는 그 계략을 듣고 무릎을 쳤다.
"장군의 계략은 참으로 명안이오. 그러면 그 방법을 쓰도록 합시다."
항우는 그날로 英布, 오예, 공오에게 내밀히 연락하여 彭城에서 郴州로 가는 산간 길목에 군사들을 은밀히 매복시켜 놓게 하였다.
그리고난 後, 義帝에게 다음과 같이 정중한 表文을 올렸다.
楚覇王 臣 項羽는 義帝 폐하께 글월을 올리옵니다.
臣 項羽는 勅命을 받들어 秦나라를 정벌한 뒤, 國法에 의하여 秦의 三世皇帝 '자영'을 처단하고 천하를 정복하였사오니, 이제 義帝께서는 천하의 帝王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彭城은 군사적 요충이기는 하오나, 폐하께서 거처하실 안락한 곳은 못 되옵니다. 하오니 폐하께서는 郴州로 옮기시고, 그 대신 臣이 彭城으로 이동함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郴州는 호남의 名郡으로, 산수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洞庭湖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폐하께옵서 지내시는데 이 이상 좋은 곳이 없사옵니다.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郴州로 속히 옮겨 오시도록 하시옵소서.
表文에 담겨 있는 文句만은 정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義帝는 項羽의 表文을 받자, 좌우의 重臣들을 둘러보며,
"항우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 郴州로 빨리 옮기라고 재촉하고 있으니 이는 臣下로서 도리에 벗어난 일이오. 그러나 項羽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필경 무슨 일을 당할 지도 모르니, 이제 곧 郴州로 떠나야 할 것같소."
"....."
左右의 重臣들은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 무슨 禍를 당하게 될지 몰라, 모두 허리만 굽신거릴 뿐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며칠 후 義帝가 彭城을 떠나려 하자, 백성들이 길가에 엎드려 울면서 호소한다.
"저희들은 폐하의 聖德으로 그동안 편히 살 수 있었사옵니다. 그런데 폐하께옵서 돌연 郴州로 가신다고 하니, 언제 다시 돌아오시게 되시옵니까?"
義帝는 목이 메어 대답을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백성들과의 이별이 서로 간에 이렇게 슬펐던 것이다. 그리하여 팽성을 떠난 義帝 일행이 이윽고 大江에 이르러 배에 올랐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며 물살이 거칠어지자 돛대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배를 강가에 매어 놓고 그날 밤은 民家에서 자게 되었는데, 의제는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게된다.
義帝가 꿈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은은한 노래소리가 들려오더니, 홀연 어린 童子 둘과 仙女 하나가 나타나더니 義帝에게 큰 절을 올리며 아뢴다.
"폐하 ! 저희들은 天帝의 命을 받들어, 폐하를 모시러 왔사옵니다. 지금 龍宮에서 천제께서 만조 백관들과 함께 폐하를 기다리고 계시오니, 저희들과 함께 용궁으로 臨御해주시옵소서."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義帝는 의아스러워 묻는다.
"龍宮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닌데, 어찌하여 나보고 용궁으로 가자고 하느냐 ?"
그러자 동자가 대답한다.
"폐하는 帝王의 德을 갖추고 계신 훌륭한 어른이오나, 지금은 赤帝가 득세하여 날뛰고 있으므로, 帝位를 그 者에게 물려주시고 龍宮으로 오시라는 천제의 분부가 계셨사옵니다."
"뭐라 ? 帝位를 赤帝에게 물려주고 龍宮으로 오라고 .... ?"
義帝는 깜짝 놀라 배에서 뛰어내리려 다가, 깨어 보니 꿈이었다.
義帝는 꿈이 하도 이상하여 측근에게 꿈 이야기를 말하니,
"폐하 ! 그 꿈은 매우 불길한 꿈이옵니다. 이대로 행차하시면 무슨 변을 당하실지 모르오니, 彭城으로 還御하심이 좋을 줄 아뢰옵니다."
하고 팽성으로 되돌아가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義帝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떠난 이상, 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天壽라면 人力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郴州로 가도록 하겠다."며 郴州 行을 강행할 뜻을 분명히 하였다.
다음날, 일찍 배에 오른 義帝는 郴州를 향하여 떠난다.
그리하여 大江을 절반쯤 건넜을까? 江 건너 산속에 숨어있던 英布, 오예, 공오 등이 세 척의 배에 군사들을 대동하고 다가오더니,
"저희들은 項王의 命에 의하여, 폐하를 마중나온 군사들이옵니다. 폐하가 義帝가 틀림없으시다면, 玉符 와 金冊 (금책 : 왕실에서 책봉때, 金편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을 증표로 보여 주시옵소서."
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게 아닌가?
義帝는 배를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니, "마중을 나왔다"고 했지만, 그들의 태도에는 殺氣가 서려있었다.
義帝는 위험을 직감하였으나 帝王의 위엄을 지키고자 의연한 자세로 그들을 꾸짖었다.
"너희들이 나를 마중나온 것이라면, 帝王인 나에게 證表를 보여 달라니 이 무슨 無禮한 짓이냐?
세 명의 장수가 江 한 복판까지 많은 군사들을 싣고 온 것은 또 무슨 까닭이냐"?
義帝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英布, 오예, 공오 등은 병사들과 함께 배에 오르더니, 불문곡직하고 義帝에게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찌르고 베고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義帝는 온 몸이 걸레처럼 되어 갑판에서 물 속으로 던져지기 직전,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었다.
"천하의 역적 이놈 항우는 듣거라. 나는 이제 죽지만 수중 원혼이 되어 네 놈에게 반드시 되갚아줄 것이다."
義帝는 그 한마디를 남긴채, 처참하게도 水中孤魂이 되고말았다.
한편, 義帝를 환영하기 위해 강가로 몰려나와 있던 백성들은 義帝가 英布 等의 손에 끔찍하게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저마다 비명을 질렀다.
80세 漁夫인 董公 노인은, 義帝가 英布의 손에 살해되는 광경을 목도하고, 눈물을 뿌리며 사람들에게 절규한다.
"義帝께서 逆徒들의 손에 弑害되셨다. 우리가 屍身이라도 찾아 장사지내드려야 하지 않겠소?
오늘 밤 여러분 들 모두 강으로 나와 義帝의 屍身을 찾도록합시다."
그날 밤, 백성들은 義帝의 屍身을 찾고자 저마다 손에 손에 횃불을 들고 강변으로 나왔다.
그들은 여러 척의 배로 나누어 타고 수중 탐색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屍身을 발견한다.
義帝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龍布와 龍을 조각한 玉環 (玉으로 만든 반지)을 팔목에 차고있는 것으로 보아, 義帝의 屍身임을 알 수가 있었다.
백성들은 義帝의 屍身을 뭍으로 모셔 올린 後, 비밀리에 장사를 지내며, 하늘을 향하여 맹세한다.
"우리는 언젠가 漢王 劉邦을 모셔다가 大王으로 삼고, 반드시 천하의 逆敵 項羽를 능지처참하여 義帝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