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 列國誌 80

jahun 2021. 6. 14. 21:47

 

# 列國誌 80

** 楚漢誌 2

* 上疏文

張良은 韓王의 國葬을 치루고 한 달쯤 지난 뒤, 項佰을 찾아왔다.
項佰은 張良을 반갑게 맞으며 묻는다.
"선생은 앞으로 거취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張良은 삶을 초월한 듯한 얼굴로 대답한다.
"國王을 돌아가시게 만든 罪人이 어디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하니 이제는 世上事를 뒤로하고 天下를 周遊하면서 여생을 마칠 생각이오."
張良이 이렇게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된 것은 절친한 項佰이지만, 자신이 갖게된 항우에 대한 徹天之恨의 복수심을 말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項佰은 項羽의 叔父이자 楚나라의 尙書令이라는 고위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속 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었으리라..
項佰은 張良이 벼슬길로 나갈 뜻이 없음을 알고 은근히 안심하면서,
"그렇다면 당분간 우리 집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지요."
하고 말했다.
다행히 項佰의 서재에는 수많은 서적이 쌓여있었다.
張良은 그 중에 <上疏文集> 이라는 책을 읽다가 어느 날 놀라운 名文 한 편을 발견하였다. 그 문장은 어떤 사람이 項羽에게 올린 상소문이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天下之道에 대해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무릇 올바른 治道란, 세력을 존중하는데 있지 아니하고 천하의 機微(낌새 : 어떠한 일을 알아차릴 수있는 눈치)를 명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천하의 機微란, 强弱과 虛實에 도통하고, 利害와 得失의 실체를 터득함을 말하는 것이옵니다. 만약 천하의 기미에 通하지 못하면, 그 勢가 제아무리 막강하여도 그것은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敗亡하게 되는 법이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君勢(支持率)를 너무 과신하지 마시옵고, 천하의 기미를 명철하게 살리도록 하시옵소서. 거듭 말씀드리기는 일시적인 得勢만으로 天下의 人心을 얻으시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옵니다....>
(흡사 지금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질타하는 것 같아 놀라움을 금치못한다)
張良은 그 上疏文을 읽어 보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다.
그 상소문이야 말로 천하의 治道에 도통한 賢士의 문장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項羽에게 이런 상소문을 올린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
張良으로서는 상소문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사람이야 말로 大元帥 깜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날 밤 張良은 項佰에게 넌즈시 물어 보았다.
"이 上疏文은 천하의 명문인데, 이것은 누가 쓴 것이오 ?"
그러자 항백이,
"이 상소문은 韓信이라는 장수가 項王에게 올린 상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항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왔지만, 이처럼 經綸이 높은 상소문은 저도 처음 보았습니다."
張良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 점은 나 역시 동감입니다. 그렇다면 韓信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
"한신은 본시 회음(淮陰) 출신으로 집도 가난하거니와, 지체가 무척이나 卑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丞相 范增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大將으로 등용하도록 여러 차례 稟告하였으나, 項王은 그 말을 듣지 않으시고 아직도 <집극랑 : 현재 우리 軍 편제상으로 보면 대위급> 이라는 하급 武官 벼슬 자리에 두고 있습 니다."
"項王이 이 上疏文을 읽어 보고도 韓信을 등용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
"예, 項王은 이 상소문을 읽어 보고 한신을 등용하기는 커녕 오히려 <젊은 놈이 방자하다>고 大怒하시며 <엄중 처벌하겠다>는 것을, 제가 중간에서 가까스로 무마했습니다."
"음 ! 그런 일이 있었나요 ? 그 韓信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몇 살이나 된 사람이오 ? "
"이제 겨우 30을 넘어선 武將입니다."
"그렇군요. 젊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매우 예리합니다."
張良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속마음으로는,
(韓信이 이처럼 비범한 인물이라면, 한 번쯤 그를 만나보아야겠다.)
고 작심하고, 비밀리에 그를 찾아보기 위해, 다음날 아침 여장을 꾸리고 항백에게,
"이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으니, 나도 이제는 길을 떠나야겠소이다."
項佰은 張良을 만류하며 말한다.
"선생은 저의 집에 좀더 계시지않고, 어디로 가시고자 하십니까 ?"
"내가 將軍 宅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 남에 눈에 띄게 되면 피차 간에 利롭지 못할 것 이니, 이제는 깊은 산으로나 들어가 버리려는 것이오."
張良은 어쩔 수없이 거짓으로 꾸며댄 後, 項佰과 작별하고 항백의 집을 나왔다.
그는 헤어진 도포를 걸치고, 머리에는 땟물이 꾀죄죄 흐르는 방갓(方笠)을 쓰고, 어깨에는 알밤(栗)이 가득 들어있는 자루를 둘러메고,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이름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道士 행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張良은 이런 꼴로 거리를 누비고 다니면서도 아이들을 만나기만 하면 자루 속에 들어있는 밤을 나누어주곤 하였다. 아이들은 밤을 얻어먹는 재미에 장량이 나타나기만 하면 금새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張良은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는 아이 하나를 눈여겨 보아 두었다가, 어느 날 그 아이와 단 둘이 남게 되자, 아이에게 밤을 듬뿍 집어주며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하였다.
"내가 너에게 재미있는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고 싶은데, 어떠냐 ? 만약 네가 노래를 배우겠다고 하면 네게 밤을 얼마든지 주겠다."
"밤을 얼마든지 주신다면 노래를 배우지요."
"그러면 내가 노래를 가르쳐 줄 테니, 잘 듣고 따라 불러 보거라."
그리고 장량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다.
'담장 저편에 방울 소리 울리니
소리는 들려도 사람은 보이지 않네
몸이 귀하게 되어도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서 밤길을 가는 것과 같이 허무한 일이로다'
소년이 노래를 제대로 부르게 되자, 장량은 그 소년에게 다시 이런 부탁을 하였다.
"너는 이 노래를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어서, 모든 아이들이 너 처럼 잘 부르게 하여라.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노래를 누구한테서 배웠냐고 묻거든, 꿈에 어떤 백발 노인이 나타나 가르쳐 주었다고 대답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
소년이 의아하게 여기며 반문한다.
"아저씨가 가르쳐 주었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안 돼요 ?"
"그렇게 말했다가는, 너는 천지 신명께 무서운 벌을 받아 죽게 된다. 알았느냐?."
"알겠어요. 그러면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할께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장량이 농사꾼으로 변장을 하고 거리에 나와 보니, 아이들은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張良이 아이에게 가르쳐 준 노래를 신바람나게 따라 불러 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張良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느날, 項羽가 민정을 살피려고 微服으로 갈아입고 潛行을 나왔다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매우 놀라게 되었다. 그 이유는 노래말의 내용이 楚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있는 자신을 야유하는 노래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 어떤 놈이 나를 야유하려고 저런 노래를 퍼뜨리고 있단 말인고 ?)
항우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 물어 보았다.
"애들아 ! 이런 노래를 누가 가르쳐 주더냐 ?"
그러자 한 아이가 항우 앞으로 나서며 대답한다.
"이 노래는 사람한테서 배운 노래가 아니에요.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가르쳐 주신 노랜걸요."
"뭐라고 ? 꿈에 나타난 백발 노인으로부터 배운 노래라고 ?"
항우는 크게 놀라며, 불현듯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꿈에 백발 노인이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면, 그것은 나더러 고향인 彭城으로 돌아 가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겠는가 ? 그렇다면 나는 빨리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이 좋겠구나.)
항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궐로 돌아온 후, 문무 백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말한다.
"요즘 저자 거리에는 나에 대한 괴이한 노래가 널리 퍼지고 있는데, 卿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있소 ?"
문무 백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한다.
"지금 저자 거리에 무슨 노래가 퍼져 돌아가고 있는지, 저희들은 잘 모르옵니다."
"모른다니 ? 그 노래는 하늘이 나에게 내려 보내신 계시가 담긴 것인데, 그 노래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 오 ?"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이옵니까 ?"
"이런, 답답한지고 ! "
항우는 혀를 차며 아이들에게서 들은 노래의 歌詞를 만조 백관들에게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리고, "<몸이 귀하게 되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음은 비단옷을 입고서 밤길을 가는 것과 같이 허무한 일이로다>라고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내가 關中王이 되어서도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을 나무라는 내용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팽성은 나의 출생지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楚나라의 도읍이오. 그러니 나는 길일을 택하여 도읍을 팽성으로 옮겨 가기로 하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간의 대부(諫議大夫) 韓生이 나서며 아뢴다.
"대왕 전하 !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옵고, 어떤 자가 조작한 노래일 것이옵니다. 이왕 遷都를 하시려면 팽성으로 가실 것이 아니라, 咸陽으로 옮기도록 하시옵소서. 함양으로 말할 것같으면, 동쪽으로는 黃河와 函谷關이 있고, 서쪽에는 大龍關과 山蘭關이 있으며, 남쪽에는 終南山과 武關이 있고, 북쪽에는 涇渭水(경위수)와 潼關(동관)이 있어, 군사적으로도 난공 불락의 요새이옵니다. 게다가 三山八水의 어간에는 沃野가 천리까지 전개되어 있어서, 함양이야 말로 천부(天府)의 도읍지이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함양을 버리시고, 하필이면 팽성으로 천도를 하시려고 하옵니까 ?"
韓生의 進言은 실로 타당한 것이었다. 咸陽이야 말로 한 나라의 도읍지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코웃음을 치면서, 한생에게 반박한다.
"함양으로 말할 것 같으면 , 시황제가 도읍했다가 망친 곳이오. 남이 망한 곳에 내가 왜 도읍을 하겠소 ? 내가 팽성으로 천도하려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소."
"그 이유는 어떤 것이옵니까 ?"
"첫째로, 나는 征途에 오른 지 3년이 넘도록 아직 고향에 한 번도 돌아가 보지 못햇으니 그것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로, 함양에는 산이 많아 자연 전망이 나쁘니 그것이 둘째 이유이고.
셋째로, 하늘은 나에게 楚나라로 돌아가라는 계시의 노래를 내려 주셨으니, 이것이 팽성으로 遷都하려는 세 번째 이유요."
韓生은 그 말을 듣고 다시 諫한다.
"태양이 중천에 높이 솟아 있어야만 따듯함을 골고루 베풀어 줄 수 있듯이, 帝王은 중앙에 군림해야만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고향에 돌아가시는 것만을 영화로 생각하시옵니까 ? 彭城으로의 천도에 대한 점은 다시 한 번 고려해 보시옵소서."
그러나 項羽는 조소를 지으며 다시 반박한다.
"천하 만민 모두가 내 것이니, 내가 어느 곳에 도읍을 하거나 마찬가지가 아니오 ? 그러니 내가 가고 싶은 팽성으로 천도하려는 것이오."
한생이 또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지난 번에 范增 丞相이 팽성으로 떠나실 때,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아무데도 이동하지 말라는 부탁이 있었던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대왕께서는 승상과의 언약을 벌써 잊어버리셨사옵니까 ?"
그러자 항우는 별안간 怒氣탱천하여 한생에게 호통을 친다.
"천하의 대왕인 내가, 范增과의 약속을 꼭 지켜야 할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 나의 행동을 구속할 자는 아무도 없으니, 卿은 잔말 말고 썩 물러나시오 ! "
諫議 大夫 韓生은 마지못해 御殿을 물러나오며, 홧김에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세상사람들이 <楚나라 놈들은 갓을 쓴 원숭이 같은 놈들>이라고 놀리더니, 과연 그 말이 옳구나 ! "
항우는 그 말을 어렴풋이 듣고 크게 화를 내며, 옆에 있는 진평에게 묻는다.
"한생이 지금 밖으로 나가면서 내게 욕을 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였소 ?"
그러자 陣平은 항우의 질문에 사실대로 고한다.
"간의 대부는 지금 밖으로 나가면서, 대왕 전하를 가리켜 <갓을 쓴 원숭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퍼부은 것으로 들렸사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옥좌에서 벌떡 일어서며, 벼락 같은 호통을 쳤다.
"한생이란 놈이 대왕인 나를 이처럼 모욕할 수가 있느냐 ... ! 여봐라 ! 집극랑 한신은 어디 있느냐. 저 한생이란 놈을 지금 즉시 거리로 끌어 내, 펄펄 끓는 기름솥에 삶아 죽이도록 하라 ! "
韓信이 項羽의 명을 받고, 한생을 죽이려고 네거리로 끌고 나오니, 구경꾼들이 시방에서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그 구경꾼들 중에는 張良도 농사꾼으로 변장하고 숨어 있었다.
네거리 한복판에 커다란 가마솥이 걸리고, 장작불이 지펴지고 ,기름이 지글지글 끓기 시작하자, 악에 받친 韓生이 군중들을 향하여 일장 연설을 吐한다.
"만 천하의 백성들은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나는 간신배들 처럼 나라를 망친 것도 아니고, 국법을 어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오. 어리석은 항왕이 아이들의 노랫말에 속아서 도읍을 彭城으로 옮기려고 하기에, 咸陽으로 遷都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간언을 올렸다가 죽게된 것이오. 나는 오늘 죽어 없어지겠지만, 여러분들은 두고 보시오. 분명히 말해 두거니와 이렇듯 우매한 項王은 조만간 劉邦의 손에 필연적으로 亡하고 말 것이오."
한생이 예언 같은 말을 외쳐대자, 한신은 꾸짖듯이 나무란다.
"諫議大夫는 아무리 억울하기로서니 말씀을 삼가해 주시오. 만약 그런 惡談이 항왕의 귀에 들어가면, 나까지 화를 입게 되겠소."
그러나 한생은 계속해 외친다.
"나는 나라를 올바르게 인도하려다가 죽기는 하지만, 후일 백성들이 나의 충성을 알게 될 것이며, 황천길에 만날 天帝께서도 나의 충성을 알아주실 것이다."
그러자 한신은 그 말이 아니꼬운 생각이 들어서,
"대부는 간언을 올렸다가 죽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당연한 처벌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한생은 펄쩍 뛰며 한신에게 대든다.
"그대는 내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나를 모욕하는가? 나의 충성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말해 보게 ! "
한신은 의연한 어조로 답한다.
"大夫는 자신의 충성을 너무도 자긍스럽게 여기시니 , 감히 한 말씀 올리겠소이다. 大夫가 諫義의 중책을 맡고 계시는 동안, 죽음으로써 諫言을 올려야 했을 중차대한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았소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줄곧 아무런 말씀도 없다가, 죽게 된 이 마당에 이르러서 忠誠을 내세우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
한생은 그 말을 듣고 더욱 화를 내며 말한다.
"지난날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단 말인가 ?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기탄없이 말해 보게 ! "
韓信은 죽음을 앞둔 사람과 시비를 가리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죽게 된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생은 그런 침묵을 잘못 해석하고, 따지듯이 묻는다.
"내 충성에 잘못이 있었다면 어서 말 해 보라고 했건만, 어째서 말을 못 하는가?
그러면서도 나의 죽음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한신도 계속 침묵만 지킬 수는 없었던지,
"대부께서 그렇게도 자신의 충성을 내세우신다면, 내가 평소에 보아 온 大夫의 언행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겠소이다.
항왕이 젊었을 때 경자관군(卿子冠軍)의 수령이었던 宋義장군을 죽인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로는 그것은 분명한 下剋上이었소이다. 그런데 대부는그 일에 대하여 어찌하여 일언 반구의 간언도 올리지 않았소이까 ? 그나 그뿐 입니까 ? 얼마 전, 항왕이 三世 秦皇 '자영'을 죽일 때도, 秦始皇의 무덤을 파헤쳤을 때도, 대부는 한 말씀의 諫言도 올린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項王이 秦나라 군사 20 萬 명을 생매장할 때도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 遷都 문제로 諫言을 올린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
項王은 丞相의 간언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그러한 항왕에게 諫言을 올린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韓信의 논리적인 말은 大河 長江 처럼 막힘이 없이 유유하였다. 이에 천하의 충신으로 자처하던 한생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韓信은 다시 말한다.
"大夫는 項王을 원망하기보다, 차라리 어린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퍼뜨린 그 사람을 원망하소서. 모르면 모르되, 그런 노래를 지어 퍼뜨린 사람은, 지금 구경꾼 들 속에 숨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진즉부터 군중 속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張良은 韓信의 말에 깜짝 놀라 황급히 다른 사람의 등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韓信이라는 저 친구, 과연 보통 인물이 아니구나 ! 저 사람을 大元帥로 발탁하면....)
하고 혼자 생각하였다.
이렇게 한생이 죽고 나자, 항우는 季布 장군을 彭城으로 보내면서,
"시급히 천도할 계획이니, 丞相(范增)과 상의하여 彭城에 宮闕을 새로 짓도록 하라."
하고 命했다.
이제는 항우에게 遷都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韓信은 항우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大夫 韓生을 죽이기는 했지만 , 項羽는 자신이 모실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굳히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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