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22)막다른 길(상)
유 대감 맏아들, 장모 회갑연서 죽어
며느리 고통스러운 나날 보내는데…
유 대감의 맏아들이 장모의 회갑연에 갔다가 관 속에 누워 집으로 돌아왔다. 처남들과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 통시에 소피를 보고 와 마루에 오르던 중 뒤로 넘어져 댓돌에 머리를 찧고 속절없이 불귀의 객이 돼버린 것이다. 꽹과리 치고 덩실덩실 춤추던 잔치판이 갑자기 경악과 울음과 공포로 뒤덮인 초상집으로 변했다. 처가가 발칵 뒤집혔다.
이튿날 새벽, 광목으로 덮인 관이 유 대감 집에 들어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눈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의연하던 유 대감이 다리가 떨려 혼자 설 수 없어 둘째아들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안방마님은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아들의 관을 보고 대청에서 기절해 쓰러졌다. 줄초상이 날 뻔했다. 소복을 입고 산발을 한 채 관을 잡고 따라온 며느리는 하도 경황이 없어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문상객도 받지 않고 부랴부랴 삼일장을 치르고 조상이 묻힌 선산 끝자락에 납작한 봉분을 올렸다. 유 대감은 밥상의 수저도 들지 않은 채 술상만 차고앉았고, 안방마님은 시도 때도 없이 대청에 퍼질러 앉아 손바닥으로 쩡쩡 마룻바닥을 치며 “내 아들 살려내라~” 온 동네가 귀를 세우도록 고함을 쳐댔다. 뒤뜰 별당의 청상과부 며느리는 온몸이 불에 타듯이 오그라들었다.
그믐달이 감나무 가지에 걸린 사경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방마님은 우물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죽은 아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 우물이 바로 별당과 토란밭 사이에 있어 청상과부 며느리 귀에는 시어머니의 기원이 친정집에 대한 저승사자의 저주처럼 들렸다. 며느리가 우물가로 나와 시어머니 뒤에 꿇어앉았더니, 주문을 외던 시어머니가 딱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홱 돌려 며느리를 노려보는데 눈에서 불이 출출 떨어지는 듯했다. 아무 말 없이 손짓을 하며 눈앞에서 사라지라 표했다. 며느리는 공포에 질려 걸을 수가 없어 기다시피 별당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 김 대감이 유 대감을 찾아왔다. 한평생 허물없이 붙어다닌 죽마고우이자 사돈인 두사람은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사죄하듯 고개를 숙인 김 대감에게 술잔을 건네며 유 대감이 말했다.
“그게 어째 김 대감의 잘못이오. 우리 아이의 명이 그것뿐인걸.”
바로 그때, 안채 대청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내 아들 살려내라~” 안방마님의 통곡 발악이 시작됐다.
서둘러 김 대감이 떠나간 후 유 대감은 넋을 놓고 벽에 기대어 김 대감과 함께 살아온 한평생을 되돌아봤다. 어릴 적, 김 대감은 강 건넛마을에 살았지만 두사람은 한 서당에 다녔다. 두 학동은 출중해서 훈장님이 항상 “강북에는 버드나무(柳)가 우뚝 섰고 강남엔 금()덩이가 번쩍이네!” 하며 노래 삼아 흥얼거렸다. 김 도령과 유 도령은 언제나 붙어다녀 사람들은 그 둘을 찰떡이라 불렀다. 나란히 초시에 붙고 이어서 급제를 하며 고향을 떠나서도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며 승승장구했다.
어느 날 대작을 하던 두사람이 껄껄 웃으며 손가락을 걸었다. 유 대감은 아들을 두었고 김 대감은 딸을 두었다. 아직 기어다니는 아들딸을 두고 혼약을 맺은 것이다. 그날 이후로 술이 오르면 사석에서 서로 사돈이라 불렀다. 두사람은 참판을 끝으로 궁궐에서 나와 낙향했다. 아들딸이 혼기가 차서 혼례식을 올릴 때는 온 고을이 떠들썩했다. 임금님이 승지를 보내 예물을 하사했고, 고을 사또는 육방관속을 보내 사흘 동안 이어진 잔치를 도왔다. 이런 변고가 각일각 다가오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유 대감과 김 대감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강가의 나루터 주막에서 만나 껄껄 너털웃음을 날렸던 것이다.
유 대감 댁, 김 대감 댁 모두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깊고 푸른 적막 속에 갇혀 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사람은 유 대감의 청상과부 며느리다. 시어머니는 어쩌다 마주쳐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새벽마다 별당 앞 우물가에서 정화수 기원을 올리며 때때로 대청이 부서져라 통곡을 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강 건너 친정으로 갔더니 김 대감이 호통을 쳤다.
“너는 출가외인이다. 유씨 집에 뼈를 묻어야 하느니라. 하룻밤 머물고 얼른 돌아가거라.”
김 대감인들 곱게 기른 자기 딸이 지금 시집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모를 턱이 있으랴! 청상과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람의 눈이 없을 때 지아비와 손을 잡고 걸었던 강가 둑길을 혼자서 걸으며 마지막 삼라만상을 똑똑하게 보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돌부리에 부딪혀 넘어졌다. 그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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