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51)글공부와 원수진 놈<상>

jahun 2021. 11. 27. 22:28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51)글공부와 원수진 놈<상>

 

공부와는 담을 쌓고 못된 짓은 도맡아 하는 이 진사네 막내아들 ‘풍이’,

어느 날 훈장님 심부름을 하다 장사에 눈을 뜨게 되는데…

 

이 진사는 장터가의 국밥집 주인이다. 상놈들이나 하는 장사, 그것도 온갖 장돌뱅이와 술주정꾼에게 국밥을 팔고 저녁이면 술을 파는 이 지저분한 장사에 양반인 이 진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땀을 흘리는 것이다.
체면이고 가문이고 나발이고 아궁이 속 장작불에 처박아 태운 지 오래. 오장육부는 꺼내서 강물에 던져버렸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문전옥답 다 팔아먹고 마누라가 처가에 가서 보릿자루 이고 올 때까지 공부했건만…. 그놈의 칠전팔기 좋아하네. 여덟번 과거에 미역국을 먹고 책이란 책은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고 고리채 영감에게 돈을 빌려 얼굴에 철판 깔고 국밥집을 차린 것이다.
이 진사는 아들 두 놈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떠맡겼다. 싹수가 보였다. 열여덟살 맏아들 욱이는 벌써 초시에 합격했고, 과거에 합격하리라는 걸 훈장이 보장했다. 한눈팔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는 맏아들에게 마누라가 친정 가서 얻어오는 겉보리로 나물죽을 끓여 먹일 수는 없는 일이다. 욱이 아래 딸아이를 건너서 열세살 막내아들 풍이는 서당에 다니지만 떡잎부터 글러 먹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못된 짓은 도맡아 했다. 콩서리, 수박서리에 닭서리까지 하고 다녔다. 제 아버지 이 진사로부터 매타작을 당하고, 제 형으로부터도 싸리나무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맞아 엉덩이와 장딴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어느 날 훈장님이 풍이에게 붓·벼루·먹을 사오라고 서른여섯냥을 줬다. 학동들 열둘에게서 세냥씩 거둔 돈이다. 원체 훈장님 단골 문방 가게는 서로 잘 알고 거래도 자주 하는 터라 값이 정해져 있었다. 풍이는 돈을 들고 그 집에 가지 않았다. 풍이가 사는 고을은 조그마했지만 20리 밖에는 큰 고을이 있었다. 장터 규모가 비교되지 않았다. 풍이는 20리를 단숨에 걸어가 문방구를 직접 만들어 소매상에게 넘기는 ‘공장 겸 도매상’에 들러 훈장님이 사오라는 걸 모두 사고도 열두냥을 남겼다. 어린 풍이가 장사에 눈을 뜬 것이다.
풍이는 시간만 나면 나루터를 찾았다. 이 진사가 국밥집엔 아예 발도 못 들이게 해서 장터 쪽은 가지 않고 나루터로 달려갔다. 나룻배가 오가며 온갖 장사꾼이 갖은 물산들을 쏟아냈고, 어떨 때는 포졸이 오랏줄로 도둑을 묶어 배에서 내리기도 했다. 여우와 사슴을 메고 내리는 포수도 있었다.
풍이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루터 주막집 주위를 맴도는 이상한 아지매도 풍이에게는 수수께끼였다. 동매라는 아지매는 얼굴에 분을 진하게 바르고, 육덕진 살이 비집어 나오도록 저고리는 짧았으며, 바짝 졸라맨 치마끈 밑으로는 수밀도 엉덩이를 흔들면서 웃음을 헤프게 흘리고 다니는 것이다. 한손엔 술잔을 들고 다른 한손엔 호리병을 들었다. 그녀는 들병이인 것이다.
꽃이 필 때는 벌과 나비가 찾아들지만 꽃이 질 때는 벌·나비는 고사하고 무당벌레도 고개를 돌린다. 화류계도 다를 바 없다. 꽃다운 이팔청춘에 동기가 돼 웃음을 날릴 때 남정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나비처럼 달려들지만, 세월이 흘러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유방은 늘어지고 엉덩이가 처지면 지는 꽃이 돼 절름발이도 외면한다. 여기저기 불을 밝힌 홍등 아래 까르르 웃음소리 피어나는 일류 기생집에서 밀려난 퇴기는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다가 삼패 기생이 되고, 그 세계에서도 밀려나면 화류계 가장 밑바닥인 들병이가 되는 것이다.
명분은 잔술을 파는 것이지만 실은 몸을 팔고 형편없는 해웃값을 받는다. 주막 주위를 근거지로 삼아야 손님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막의 객방에서 잠을 자는 장돌뱅이, 나그네,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친 동네 머슴, 주머니 얄팍한 홀아비와 총각이 그녀의 고객이다.
주막의 객방은 넓은 방이 하나뿐이라서 이 사람 저 사람이 함께 잔다. 그래서 들병이가 손님과 엉겨붙는 곳은 주로 주막에서 가까운 숲속이다. 들병이 동매 아지매가 손님을 받는 곳은 주막에서 쉰 걸음도 안되는 솔숲 속, 잡목 넝쿨이 벽을 친 곳에 돗자리를 깔아놓은 오목한 곳이다. 산에서 캐다 심어놓은 더덕이 울타리 겸 방향제 역할을 한다.
어느 날 대낮에 풍이가 기절초풍할 모습을 보게 된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