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52)글공부와 원수진 놈<하>
장사에 눈 뜬 ‘풍이’,
들병이 아지매의 한탄을 듣다 문득 묘안이 떠오르는데…
그날도 풍이는 서당이 끝나자마자 나루터로 달려갔다. 나루터 주막 주위를 맴도는 술병 든 동매 아지매와 마주치자 풍이가 넉살 좋게 말했다. “이모, 오늘 시집가는 날이요? 얼굴이 달덩이 같구먼요.” 들병이 아지매가 씩 웃었다. 나룻배에서 내린 손님 중에 벌써부터 불콰하게 한잔 걸친 남정네가 버드나무에 기대선 들병이에게 수작을 걸었다. 둘이서 킬킬거리더니 솔숲 아지매 본부로 향했다. 아지매가 앞장서고 술 취한 남정네가 뒤따랐다.
풍이는 뒷산을 내려오다가 들병이 동매 아지매에게 주려고 감을 하나 따서 아지매 본부로 갔다. ‘헉헉’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생전 처음 희한한 모습을 본 것이다. 두세살 많은 동네 형들로부터 얘기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풍이는 수없이 그 모습을 훔쳐보게 됐다. 어떤 날은 들병이가 남자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그 짓을 하다가 풍이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엉겨 붙기 전에 술을 한잔 마신 남정네가 말했다. “오늘 가진 돈이 10전밖에 없는데 남은 10전은 치부책에 외상 달아놓으면 안될까?” 결국 그렇게 됐다. 풍이가 놀란 것은 그 값이 불과 20전밖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서당에서 벼루·먹·붓을 사다주고 12냥이나 남겼는데, 몸을 바치고도 20냥이 아니라 20전이라!
하루는 들병이 아지매가 톱과 낫을 들고 뒷산으로 가 나뭇가지를 베기에 풍이가 이유를 물었다. “입동이 다가오니 추워서 안되겠어. 바람이라도 막게 움막을 지어야 할까 봐.” 풍이 눈에도 들병이 신세가 처량해 보였다. 열세살밖에 안됐지만 그래도 남자라고 풍이의 톱질과 낫질이 나았다. 나뭇가지로 골격을 만들고 칡넝쿨로 묶은 후 솔가지를 베어와 그 위를 덮으니 눈이 와도 끄떡없어졌다.
짧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는데 들병이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풍이가 나를 위해 집 한채를 지어줬는데 나는 무엇으로 보답하지? 너 고추가 익었어? 한번 줄까?” 사실 풍이 고추는 빳빳해졌지만 고개를 흔들며 “구경만 시켜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동매 아지매가 “실컷 구경해라” 하며 누워서 치마를 올리고 다리를 벌렸다. 솔잎 사이로 한가닥 햇살이 들어와 들병이의 그것을 비추자 새까만 거웃이 황금처럼 반짝였다.
“이모, 잠은 어디서 자요?” “어둠살이 내리면 주막으로 가 술상도 차려주고 설거지도 해주고 손님이 남긴 밥 한술 챙겨 먹고 안방 윗목에서 새우잠을 자지.” 주막은 큰 객방 하나에 이 사람 저 사람 함께 자서 들병이가 돈벌이할 틈은 없고, 꽤 괜찮은 해웃값을 내고 객고를 풀려는 손님은 주모 차지다. 움막 속에 풍이를 앉혀놓고 호리병에 남은 술을 다 떠 마시더니 들병이는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엉엉 울었다.
나루터와 주막 주위에서 들병이가 사라지고 풍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달쯤 지나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동짓달, 풍이가 주막에 나타나 객방에 군불 때는 걸 도와주더니 객방으로 들어갔다. “먼 길 오시느라 다리 아프시죠.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 10전만 받습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홍삼장수가 풍이를 불렀다. “여기 오너라.” “대인, 여기 근육이 뭉쳤네요.” 풍이가 다리를 한참 동안 주무르다 말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홍삼장수 귀에다 뭐라고 수군댔다. 그러자 홍삼장수 권 대인이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더니 벌떡 일어나 옷을 입었다.
홍삼장수는 풍이를 따라 뒷산 오솔길로 들어섰다. “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거의 다 왔어요. 받아보면 알잖아요. 지압 전문가는 의원과 한가지예요. 안마하고는 달라요.” 나루터에서 한식경쯤 되는 곳에 노스님이 돌아가시고 잡초가 우거진 빈 암자가 있었다. 그동안 풍이와 들병이가 그곳을 쓸고 닦고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넣어 놨다. 풍이 말대로 암자에는 지압 전문가인 여승이 고깔을 푹 눌러 쓰고 있었다. 여승이 뜨끈한 녹차를 내왔다.
적막강산 산속 암자에 홍삼장수는 벌거벗은 채 배를 깔고 누웠고 지압 여승은 종아리부터 허벅지를 거쳐 둔부까지 야들야들한 두손으로 지압을 했다. “대인, 돌아누우세요.” 벌써 돌덩어리가 된 양물은 천장을 뚫을 기세다. 홍삼장수의 통사정에 여승은 양물을 지압했고 결국은 절구를 찧고 말았다. 들병이가 그 짓 해서 받은 해웃값의 스무배를 받았다.
그해 겨울이 지났을 때 여승과 풍이가 수입금을 반씩 나눴더니 소 한마리씩 살 돈이었다. 풍이는 결국 고향을 등지고 나갔다가 스무살이 됐을 때 거상이 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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