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너무도 슬픈 사실-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박팔양

jahun 2025. 4. 7. 21:00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 박팔양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비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 고 ―

(󰡔학생󰡕, 1930.4)

 

<감상의 길잡이>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시의 제재로 선택되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며, 그 중 진달래꽃은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어서 그 동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주로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는 제재로서 특히 애용되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들 수 있거니와, 위의 박팔양의 작품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달래꽃’을 그 제재로 취급하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처럼 피었다가 지면 열매를 맺는 결실도 없이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일홍’과 같은 화려함이나 ‘국화’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도 없어서 노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서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이다.

그러나 선구자는 불행하다. 자신의 희생이 가져오는 화려한 결실을 직접 맛보지도 못하며 스러진다. 시적 화자는 따라서 그 동안 희생된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운다. 시제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로서 인식하지만, 그것은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서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진달래꽃 자신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결국 시인은 ‘진달래꽃’에 의탁하여 그냥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비판하고, 순간에 스러지더라도 뚜렷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삶은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박팔양이 선택한 삶의 방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