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조선왕조실록 1》 태조실록

jahun 2025. 2. 25. 20:17
《조선왕조실록 1》 태조실록
 
 
 
《조선왕조실록 1》
태조실록

고려 후기인 1250년경,
전라도 전주에서 이안사라는
스무 살 남짓 먹은 사람이
고을의 관기를 건드린 죄로
수령으로부터 물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안사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삼척까지 도망을 가
그곳에 짐을 부리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번 수령이
삼척 수령으로 발령을 받아
오는 바람에 다시 식솔들을
거느리고 짐을 싸서 멀리
도망을 간 곳이 동북면
이었습니다.

이때 이안사를 따라 나선 이가
170여 가구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안사는 대단한 리더십을
가진 자로 동북면에 정착해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여
1천여 호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 때 세계를 제패한 몽고군이
이안사에게 투항하여 복속될
것을 요구하자,

이안사는 고려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본 후 몽고에
투항하여 원제국의 관리가
되었습니다.

이안사는 이때부터 더욱 실력
을 쌓아 동북면의 실력자로
크게 성장을 하였으니,
이 자가 바로 이성계의 고조
할아버지입니다.

이로부터 100여년 후,
영원할 것 같은 몽고제국이
쇠약해지고 대륙전역에
주원장 등이 일으킨 난의
불길이 엄청나게 타오르자
동북면의 실력자인 이안사의
증손이자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은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은
원나라가 머지않아
망한다는데 가문의 명운을
걸기로 하고,

몽고제국의 관리를 때려 치워
버리고 고려 공민왕에게
스스로 복속하여 고려 국적을
회복하였고, 고려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고려군이 쇠약
해지는 몽고군을 칠 때 동북면
내부에서 내응해 줄 것을
명하였으며,

결국 공민왕의 동북면 회복
작전에 이자춘은 큰 공을 세워
동북면의 유일한 패권자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담에 이어서~~

♡이안사 도피 경위에 대한 추가 이야기

■이씨 가문 본래 본거지, 전주이며
전주 호족 출신으로 몽골 대항가로 개인 가신단과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음.

20대 초반 시절 이안사의 여자를 전주 고을 별감이 건드림. 이안사 격노하여 다투다 싸움박질,
별감은 상사인 고을 현감에게 고자질함.
현감은 안렴사(현재의 도지사급)에게 고발.
그러나 이안사의 사병단의 규모가 있어 안렴사는 조정에 구원병을 요청.
조정은 미적댐.

조정이 꾸물거리는 사이, 이안사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가신단을 이끌고 강원도 삼척으로 도망.

■이안사 집단, 토벌을 피해 전주에서 강원도 삼척으로 피신함.
이때 전주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안사를 따라 삼척으로 따라간 가구가 무려 170가(家).
170가(家)는 이후에 이씨 가문이 사방 팔방으로 쫒기는 와중에 끝까지 함께하는 충성심 있는 가신단이었음.

이안사 집단은 삼척에 자리 잡으면서 농사를 지으며 세력을 키워감.
겨우 겨우 세력이 자리 잡나 싶었는데, 새로운 안렴사(현재 도지사급)이 이 지방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음.
근데 그 안렴사가 바로, 전주 시절 여자 때문에 치고 박고 했던 바로 그 별감!

이안사가 안렴사가 군을 이끌고 자신을 토벌하려고 하면 대적하기 힘들것으로 판단.
북방 의주로 이동함.
이때 170가(家) 역시 모든 기반을 버리고 이안사를 따라 의주로 함께 감.


■운명의 장난처럼,
별감이 도지사로 부임하자 삼척에서 북방 의주로 다시 피신.

이안사는 조정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의주로 가 세력을 키우기 시작함.
기병 전력을 양성하고 사병을 강화하기 시작.
고려 조정은 이안사에 대해 사실상 통제를 포기하고,
이렇게 된 이상 몽골 제국을 방어하라고 의주 병마사에 임명함. (말 뿐인 직책)

당시 이안사 세력은 주변에서 전력을 꽤 높게 평가받고 있었는 듯함.
그를 눈여겨 보던 몽골제국의 장군 산길(散吉)이
이안사에게 귀순할 것을 2 차례에 걸쳐 권유함.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
이안사 사병들이 세력을 불렸다 하나, 몽골제국과 붙으면 박살나는게 당연지사.
고민하던 이안사는 몽골제국에 귀순.

정치적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이안사는 자신 집안 여자를 산길과 혼인 시켜 인맥을 만듬.
의주에 있으면 고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자신은 더욱 북방으로 이동해. 개원로 남경 알동(현재 길림성 훈춘시)에 정착함.
[출처] 조선왕조실록 1|작성자 DJ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