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황무지

jahun 2024. 4. 3. 22:15

황무지

 

                     - TS 엘리어트

 

 

1. 죽은 자의 매장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런데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슈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다.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 했다.

나는 러시아인이 아닌,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이다.

어려서 사촌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다.

그는 말했다.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다.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으로 간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나오는가?

사람들이여, 너는 말하기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여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른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恐怖)를 보여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분다.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년전 당신이 나에게 처음으로 히야신스를 주었지.

다들 나를 히야신스 아가씨라 불렀다."

-하지만 히야신스 정원에서 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게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보여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숙을 들여다 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를 한 벌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군.

(,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네.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 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보이는군!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해.

수많은 삶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주어라.

요즈음은 조심해야 한다.

 

현실감이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마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 보면서

언덕을 너머 킹 윌리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로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 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페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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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는...

 

1부 죽은 자의 매장 “the Burial of the Dead”

2부 체스 한판 “a Game of Chess"

3부 불의 설교 “the Fire Sermon”

4부 익사 “Death by Water”

5부 우레가 한 말 “What the Thunder Said”

 

이렇게 모두 5 434행으로 이루어진 엘리어트의 난해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그중 앞 구절만 옮겨 놓은 것이다.

 

위의 마지막 부분은

보드레르의 <의 꽃> 서시 "독자에게"의 마지막 행을

엘리어트가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조각가 정정식/ J.S.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