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49)[절름발이]

jahun 2023. 7. 20. 08:40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49)

[절름발이]

안동에 사는 2대 독자 이초시는 딸만 여섯이다.​

이초시는 술만 마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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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라도 좋으니 아들 하나 얻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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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탄식하기 일쑤였다. 부인은 허구한 날 정화수 떠 놓고 삼신할미에게 빌고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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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부인의 배가 불러 오더니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초시가 하도 ‘절름발이’ 소리를 읊은 게 겁이 나서 갓난아이 다리를 보니 사이에 고추를 달고 두다리가 힘차게 버둥댔다.​

3대 독자를 업이라 이름 짓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업이는 장마철 호박순처럼 쑥쑥 자라 서당에 가더니 글이 일취월장, 훈장님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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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 열다섯이 되자 빨리 자손을 보려고 장가를 보냈다. 권진사네 둘째 딸과 혼인을 맺었다. 혼례식 날은 안동이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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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도 허여멀건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했지만, 족두리 쓴 신부는 절세의 미인이라 모든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첫날밤, 후원 별당에 신방을 차리고 합환주를 마신 후 촛불을 끄자 신랑은 18살 신부의 옷고름을 풀었다. 신부의 속살은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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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황홀경에 빠져 잠 한숨 자지 않고 세번이나 합궁을 했다. 신랑 신부는 원앙 한쌍처럼 낮이나 밤이나 떨어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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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랑 업이는 서당 가는 것도 잊어버렸다. 둘은 궁합이 맞아 신부도 이젠 죽은 듯이 몸을 맡기는 게 아니라 제법 엉덩이까지 돌리며 한낮의 합환도 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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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이 못 이룬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랐는데 여색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것이다. 어느 날 이초시는 아들 업이를 불러 앉혀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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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올가을에 과거를 봐야 한다. 사흘 후에 한양으로 올라가거라. 팔판동 외조부댁에 가서 공부에 전념하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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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랑 업이는 별당으로 가 새신부를 끌어안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사흘 후 업이는 단봇짐을 싸 등에 지고서 하직 인사를 하고는 한양길에 올랐다. 새신부는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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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보름이 지나지 않아 몸종 삼월이가 경천동지할 얘기를 안방마님에게 귀띔했다. 안방마님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랑방으로 가 이초시에게 벌벌 떨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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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 말이 매일 밤 삼경에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한 작자가 담을 넘어와 별당으로 들어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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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장맛비가 주르르 쏟아지는 삼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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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하는 비명과 이초시의 몽둥이 찜질 소리가 빗소리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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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복면을 한 새신부의 샛서방은 담을 넘어오다 잠복한 이초시에게 초주검이 되도록 맞아 피투성이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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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으로 질질 끌고 와 복면을 벗기니 이초시의 아들 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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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으로 올라가던 업이는 문경새재에서 발길을 돌려 안동으로 돌아와 학가산 아래 암자에 머물며 밤마다 복면을 하고 자기 집 담을 넘어 새색시에게 왔던 것이다.​

업이는 이초시의 몽둥이 찜질에 오른쪽 무릎이 부서져 절름발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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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초시가 바란대로 절름발이 아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