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41)땅딸보와 꺽다리(하)

jahun 2022. 2. 24. 18:36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41)땅딸보와 꺽다리()

변 노인과 오만 데 구경 마친 조 대인 

집에 오니 떠났던 딸 돌아와 있는데

 

방어 뱃살 회 한점에 청주 한잔. 지금이 제철인데 말이야. 변 노인 당신은 무슨 회를 좋아해?
회가 무엇이여? 바다를 본 적도 없어.
푸하하하하조 대인의 올챙이배가 푹 꺼질 듯이 웃음보가 터졌다. 허구한 날 같은 방에서 마주 보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 하다보니 입맛 다시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튿날, 조 대인네 집사가 달려와 부음을 전했다. 조 대인의 숙부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막내 숙부님은 나하고 친구처럼 살아왔는데. 아이고, 아이고∼.
조 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황 의원에게 고했다. 숙부님은 자식이 없어 제가 상주가 돼야 하는데 소생은 큰일 치른 적이 없어. 변 노인이 도와주겠다 합니다요.
황 의원이 선뜻 허락했다. 변 노인, 조 대인이 술을 못 마시도록 꼭 붙어 감시하시오.
이튿날 점심나절, 조 대인과 변 노인은 진보약수터 주막집에서 녹두백숙에 청주 잔을 기울이며 킬킬거리다가 나와서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딸그락딸그락 황장재를 넘었다. 이튿날 저녁나절, 두 노인네는 바닷가에 다다랐다.
저게 바다라는 거야.
생전 처음 바다를 본 변 노인은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원이 없네.감격에 겨워 백사장에 발이 붙어버렸다. 조 대인이 변 노인의 팔을 당겨 바닷가 횟집으로 들어갔다. 청주 한잔 마시고 방어 뱃살 회 한점을 입에 넣은 조 대인은 눈을 감고 자지러졌다. 바닷고기라고는 간고등어 구워 먹은 적밖에 없는 변 노인은 방어회를 처음 입에 넣자 씹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부어라 마셔라 알딸딸해진 두 노인네는 주막집으로 들어가 뜨끈뜨끈한 특방을 잡았다.
변 노인이 벽에 기대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 대인, 돈 많이 썼지? 돌아가면.
시끄러워이 영감탱이야! 돈 걱정하지 말랬잖아!
버럭 화를 내던 조 대인이 히히 웃으며 그렇다면 당신도 돈을 써하더니 전대 하나를 변 노인에게 건넸다. 이 돈은 저승에서 갚으시오.
조 대인이 금방 코를 골자 변 노인은 살짝 문을 열고 나가 바닷가 모래밭에 퍼질러 앉아 달빛에 반짝이는 파도를 보며 입원과 동시에 끊었던 연초를 깊이 빨아들였다.
이튿날은 대게를 실컷 먹었다. 우 서방,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세.마부가 이끄는 대로 두노인을 태운 마차는 만추의 낙엽을 맞고 킬킬 웃음을 날리며 쉼 없이 굴러 백암으로 갔다. 온천을 하고 송이산적을 먹고 강릉으로 갔다가 조 대인도 첫걸음인 금강산으로 갔다. 사인교 두대를 빌려 금강산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기생집에 가 진탕 술을 마셨다.
황 의원 골방에서 십년을 더 살면 뭣 하나. 이렇게 일년 사는 게 낫지. 안 그래?
조 대인이 술잔을 들자 변 노인이 술잔을 쨍그랑 부딪쳤다. 내친김에 한양으로 가 남대문 경복궁 오만 군데를 다 돌고 안동으로 돌아오니, 석달이 지나 고래등 같은 조 대인의 기와집이 눈을 덮어쓰고 있었다.
게 있느냐대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렸다.
!조 대인의 심장이 터질 듯했다.
하늘아으흐흐흑.
아부지, 보고 싶었어요.5년 만에 다시 만난 부녀는 얼싸안고 울었다. 대청에 올라 조 대인이 정좌하자 덩치가 산만 한 하늘의 신랑이 한쪽 다리를 절며 다가와 큰절을 올렸다. 조 대인의 가슴이 찢어졌다. 6년 전 조 대인이 하인들을 시켜 딸과 만나는 씨름꾼 건달을 잡아와 곳간에 묶어놓고 몽둥이찜질을 한 탓에 무릎이 부서진 걸 조 대인은 알고 있었다.
작년에 산에 약초 캐러 갔다가 굴러떨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사위가 둘러댔다.
손자 둘이 조 대인에게 큰절을 올리자 양팔에 두 손자를 꼭 껴안고 내 새끼내 새끼하며 또 눈물을 쏟았다.
그날 밤 늦도록 두 노인과 조 대인의 사위가 사랑방에서 술을 마셨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고?조 대인의 물음에 사위가 말했다. 충청도 황간에서 가을이면 감을 사다가 곶감을 만들어 김천 장에 내다 팔고 겨울이면 가마니 짜고.
조 대인이 또 물었다. 진즉에 돌아오지 않고 왜 이제야 돌아왔는고?
사위는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은 돌아올 생각을 못했는데 웬 보부상이 찾아와 조 대인이 애타게 기다린다며 딸과 사위를 설득했던 것이다. 그 보부상은 바로 변 노인의 맏아들이었다. 변 노인의 명을 받고 몇달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조 대인이 변 노인의 두손을 움켜잡았다.
이튿날, 변 노인이 예천 집으로 떠날 때 마차를 대령하고 나서 조 대인과 변 노인이 받아라” “못 받겠다서로 싸우다가 결국 변 노인이 졌다. 안동과 예천 사이 풍산 들의 논 서른세마지기! 두둑한 논 문서를 품에 안고 예천 집으로 돌아가는 변 노인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이듬해, 변 노인의 부고를 받았지만 병석의 조 대인에게 전하지 않았다. 석달 후 조 대인도 평온한 얼굴로 변 노인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