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관우에게 적토마를 선물한 다음날 저녁, 장료가 관우를 찾아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주안상을 마주 놓고 술 한잔을 하기에 이르렀다.
장료가 안주를 들다 말고, 저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관우 ! 그 적토마는 승상이 아들 조차, 주기도 아까워했는데, 자네를 주셨어, 또 그 자리에 있었던 장군들도 부러워하고 질투도 났지, 십 수년 간 승상을 따르며 죽을 고비를 넘긴 장군들도, 당신 같은 은총을 받지 못했네 !"
그러자 관우는 송구스런 얼굴을 보이며 대꾸한다.
"승상의 은혜에 송구할 뿐이네."
"헌데 자네는 뭐랬나 ? 형님 소식이 들리면 하루만에 갈 수 있어 ? 그 소리를 듣고 승상 속이 얼마나 상했겠나 ? 그때문에 쓰러지기 까지 했었네 !"
"응 ? 그랬었나 ? ..."
"당시 몇몇 장군이 자네를 죽이려고 했었네, 그런데 승상이 뭐라 했는지 아나 ?"
관우는 장료의 말중에 <자네를 죽이려 했었네>의 대목에 이르자, 놀라는 눈으로 장료를 바라보았다.
장료의 말이 이어진다.
"승상은, 관우와 적이 될지언정, 죽이긴 아깝느니 !....하고 말했단 말일세, 그로 인해 장군들이 어쩔 수가 없었지."
관우가 그 말을 듣고 근엄한 얼굴로,
"음 !...그런 일이 있었다구 ? ... 그렇다면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회를 보아, 승상의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장료가 술 한잔을 급히 들이키고 묻는다.
"운장 !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오."
"말하시오."
"만약 유비가 죽었다면, 승상을 섬기겠는가 ?"
그러자 관우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앉아 있더니 문득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내실을 서성이며, 벽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장료를 향해 돌아서며 대답한다.
"만일 형님이 돌아가셨다면, 나 역시 저승에 가서 형님을 뵙겠소."
"으음 !..."
장료는 관우의 대답을 듣자,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쳐다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
한편, 기주의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유비는 자신의 처지에 막막한 기분이 들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때 미축이 들어와 말을 건넨다.
"주공 ! 차 드세요."
그러자 유비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관우 장비 소식은 있느냐 ?"
하고, 마음속에 걱정을 끄집어 내어 물었다. 그러자 미축이,
"사방에 수소문 해봤으나, 아직 들어온 소식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얕은 한숨을 쉬며,
"자룡은 ?"
하고, 물었으나, 미축은 그 역시도,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는 자조섞인 어조로,
"형제는 흩어지고, 두 아내의 행방도 모르고, 또 이제는 남의 집 살이 까지... 오래 할 짓이 아니네."
하,고 맥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미축이 인상을 찡그리며,
"주공 ! 원소가 내쫒으려고 합니까 ?"
하고, 염려를 담아 물었다. 그러자 유비는 미축에게 다가가며,
"그런 것은 아니지만...원소와 가까이 하다 보니 그는 큰 인물은 아니라 여겨지네, 네 개 주를 점령하고 천하 최대의 병사를 가졌지만, 우유부단한 탓에 출병한 지 반년이 넘도록 나서지도 않고, 조조와는 전쟁도 화친도 않고 있으니, 어찌 대업을 이루겠나 ?"
하고, 자신이 원소와 가까이 하면서 느낀 바를 솔직히 말하였다.
그 순간, 누군가 밖에서 유비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현덕 !"
하고, 유비를 부르며 나타난 사람은 원소의 책사 허유였다.
"어 ? 계셨구려 ?"
내실로 들어서며, 유비를 발견한 허유가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유비도 예를 표하며,
"허 형! 마중 못해 송구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무슨 말씀을 ! 그냥 한가하여 차 한잔 하러 왔네. 좋은 차가 있거든 한 잔 나눠주시오."
허유가 이렇게 말하자 유비는 미방을 돌아보며,
"미방, 차 내거라."
하고, 명하였다.
"네."
미방이 차를 가지러 나가자 유비는 허유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곧이어 미방이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신 허유는 ,
"사실은 의논 드릴 일이 있어 일부러 온 것이오."
하고, 솔직하게 찾아온 이유를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말씀하시지요."
하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현덕 ! 주공께서 역적 토벌의 격문을 낸 지 반년이 되었소. 이 일은 세상이 다 알고 있지만, 지금껏 전쟁은 아무런 진전이 없소. 우리나 조조군이나 시종일관 얽히고 섥힌 상태라, 지금처럼 계속하여 끌었다가는 조만간 현덕과 나까지 졸게 생겼소."
허유는 있는 실정 그대로를 솔직하게 털어놓자, 유비는 가당치 않다는 미소를 띠며,
"그러게요, 지금처럼 군사가 밥이나 축내고 진격도 퇴각도 않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하고, 자신도 솔직한 심중을 드러냈다. 그러자 허유는,
"그래서 내일 주공께 간하려 하오. 허도를 공격해 조조와 결전을 벌이자고 말이오."
유비는 허유의 말을 듣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좋소, 허 형 ! 조조군에 괴질이 돌아 감염자도 많고, 군마도 많이 쓰러졌다고 하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요."
"그게 사실이오 ?"
허유는 처음 듣는 소리라서 유비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의지를 펼쳐보인다.
"현덕 ! 내일 나와 함께 주공께 결전을 주장합시다 !"
그러자 유비는,
"나도 그러고 싶소이다. 허나, 내가 지금 얹혀 지내는 신세라, 원공께 이러쿵 저러쿵 논 할 입장이 아닙니다. 원공께서 괜찮다고 하신들, 대신들과 장군들이 용납하겠소 ?"
하고, 말하니, 허유는 단박에 손짓까지 해보이며,
"에잇 ! 그건 생각해 두었소. 내일 논의하는 자리에서 내가 먼저 주공께 간하겠소. 그러면 결과야 어찌되었든 주공께서 현덕의 생각을 물을거요. 그러면 현덕 ! 방금 한 말 한 마디도 빠짐없이 주공께 아뢰주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 될 것이오."
하고,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유비가,
"원공이 내게 묻게 되겠소 ? 나는 일개 손님인데 ?"
하고, 물었다. 그러자 허유가,
"하하하하 ! 바로 손님이라 묻는 거요 ! 손님이란 제 3자가 아니겠소 ? 이런 일은 당사자보다 남이 더 잘아는 법이라오. 안 그렇소 ? 하하하하 !"
하고, 크게 웃으며 장담하는 것이었다. 유비가 웃으며 대답한다.
"정말 존경스럽소 ! 내 그리하리다."
...
다음날 아침, 유비를 비롯해 만조 백관들이 모인 조회(朝會)에서 허유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주공 ! 만물이 소생하고 꽃피는 봄입니다. 얼었던 강물과 눈도 녹았으며, 우리 군대는 양식도 넉넉하고 병사들 사기도 나무랄 데 없이 충천하오나, 조조의 군대는 괴질이 돌아 병사들은 피폐하고 군마(軍馬)는 (우한 폐렴으로) 연일 죽어나간다고 하옵니다. 그리하여 군심이 동요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출병할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되옵니다. 속히 안량 문추 장군에게 명하시어 허도를 치도록 명하시옵소서."
하고, 아뢰니 원소는 커다란 눈알을 꿈쩍거리며 듣더니,
"그러잖아도 두 장군이 서신을 보내왔네, 전쟁을 더 끌어버리면, 군기가 느슨해지고 무기도 녹스니,
속히 진퇴의 여부를 결정해 달라는 요청이어서 고려하는 중이니..."
원소는 평소의 성격대로 진퇴 여부의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말 끝을 흐렸다. 그러자 허유가 허리를 굽히며 다시 아뢴다.
"주공 ! 안량과 문추의 뜻도 그러하오니, 이는 소신의 뜻과도 완전히 일치하옵니다.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시고 공격을 명하시옵소서."
그래도 원소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런 연후에 원소는 무슨 결심이 섰는지, 들고있던 보고서로 탁자를 <탁탁> 치며,
"안량 문추에게 허창을 공격하라 명하라 !"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허유가 미소를 띠며 허리를 펴면서 원소를 기쁜 얼굴로 쳐다보았다.
"며칠 후 내 친히 출병하겠다."
원소의 말이 이어졌다.
"영명하시옵니다 ! 주공 !"
원소로부터 만족스런 대답을 받은 허유는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였다. 그리고,
"즉시 군령장을 작성하여 안량과 문추 두 장군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허유가 물러가자 원소는 문무백관들에게 명한다.
"며칠 후에 출병할 것이니 각자는 맡은 바를 속히 준비하라."
"예 !"
문무백관들은 대답과 동시에 출병 준비를 하기 위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런 말도 없이 조회를 지켜보던 유비는 문무백관들 모두가 자리를 뜬 뒤에 제일 마지막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원소가 그를 불러세운다. 그리고,
"현덕 ! 날씨도 풀리고 꽃도 곱던데, 나와 함께 후원으로 꽃구경이나 가세, 전쟁이 시작되면 이럴 겨를도 없을 것이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그리합지요."
두 사람이 후원으로 가기위해 내전을 나서려는데 모사(謀士) 전풍이 달려오며,
"주공 ! 조조군에 공격명령을 내리셨습니까 ?"
하고, 급히 묻는 것이아닌가 ? 그러자 원소는 ,
"방금 내렸네. 왜 ?"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전풍이 눈을 크게 뜨며,
"주공 ! 허유가 틀렸습니다. 몇 달 전 조조가 서주를 공격했을 땐, 분명 허도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였습죠. 그러나 서주는 함락되었고 유비군은 몰살되어..."
전풍은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측근에 있던 유비를 돌아보며 예를 표했다.
"유황숙, 용서하시요."
그리고 전풍은 다시 원소를 바라보며,
"그때, 조조는 대승을 거두고 허도로 귀환하여 그동안 전쟁으로 지친 병사들을 충분히 쉬게하였으며, 지난 가을 충분한 군량조차 확보한 상태이옵니다. 하오니 지금 우리가 공격해서는 안되며 기회를 보며 시기를 기다려야 하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원소는 인상을 찡그리며,
"조조군에 괴질이 돌아 병사들이 죽어간다던데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전풍 역시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한다.
"주공 ! 조조의 이십만 대군 중, 아픈 놈은 늘 있습죠. 그러나 그것이 결전의 기회가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안량과 문추도 전쟁을 재촉했네."
"장수는 공을 세울 욕심에 그리 주장할 수는 있으나, 주공께서는 상황을 살피고 전체를 보셔야하지, 경솔히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주공의 백성은 조조의 두배가 넘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수는 크게 불어날 것이니, 조조의 토벌도 수월해집니다. 백성이 풍족할 때 계획을 세워, 적을 공격하는 것이 승리의 이치입니다."
전풍의 말을 모두 듣고 난 원소는 우유부단한 그의 성격대로 조조군 공격의 결심이 흔들렸다.
그리하여 전풍에게 명한다.
"그래 ! 당장 안량 문추에게 공격을 멈추라고 해라 !"
"냉큼 전달하겠습니다 !"
전풍은 그가 말한 대로 <냉큼> 명을 전달하기 위해 돌아서 뛰어나갔고, 그 옆에서 이같은 상황의 전개를 모두 듣고, 본 유비는 낙담하는 얼굴이 되었다.
원소가 유비를 돌아보며 말한다.
"현덕, 가지 !"
유비는 말없이 원소의 뒤를 따라 갔다. 그리하여 내전 계단을 중간쯤 내려 갔을 때에 허유가 급히 뛰어들며 아뢴다.
"주공 ! 전풍에게 공격을 멈추라 명하셨습니까 ?"
"그래, 암만해도 전풍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지금은 기회가 아니니 싸우지 말아야지."
원소는 결단력 없고, 우유부단한 본래의 성격대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경멸하는 어조로,
"주공, 어찌 이리 변덕스러우세요 ? 전령 파발도 이미 출발시켰사온데..."
하고, 말하자, 원소는,
"그게 무슨 대수냐 ? 쫒아가 취소하면 될 것을 ..."
하고, 후원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었다. 유비는 굳은 얼굴로 허유를 한번 쳐다보고 원소의 뒤를 따랐다.
자신의 주공 원소가 결단력 없이 이 말에 휘둘리고, 저 말에 솔깃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허유는 씁슬한 입맛을 다시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다.
후원에 도착한 원소는 뒤따르는 유비에게 말했다.
"현덕, 보았는가 ? 하나는 전쟁을 하면 이긴다, 다른 하나는 안 해야 이긴다고 하니, 내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겠나, 그러나 자네는 제 삼자 입장이니,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명쾌한 의견을 낼 수가 있다고 보네, 조조에 대한 지금의 공격이 낫겠나 퇴각이 낫겠나. 자네 생각은 어때 ?"
유비는 그 말을 듣고,
"원공, 손님 신세인 제가 무슨 의견을 드리겠습니까 ?"
하고, 대답하니, 원소가,
"사양 말고 말해보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원소와 함께 몇발짝 같이 걸으며,
"원공의 조조 토벌 격문 발표 후, 천하가 그 높은 뜻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허나 지난 반년 간 전쟁이나 별다른 공격도 없이, 전방에 나가있는 군사들은 밥만 축내고 있으니, 여러가지로 조조에게 유리하고 원공께는 불리하지요. 군사의 숫자나 전략면에서도 조조에 비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퇴각하신다면, 조조는 원공의 군사를 물리쳤다고 승리를 선포할 텐데, 그건 원공의 자존심에도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천자의 명을 받들고 역적을 토벌한다고 하면 천하는, 특히 원공과 조조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제후들은 누구에게 기울겠습니까 ? 지금 조정은 원공이 아닌 조조의 손에 있습니다. 만일 제 군사가 원공의 삼분의 일만 되었더라도 저의 경우라면 벌써 출병 했을 겁니다."
하고, 담담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굳은 얼굴로 되면서,
"전풍이 틀렸군 ! 당장 공격하도록 명해야겠군 !"
하고, 변덕을 부린다. 그러자 유비는 허리를 굽히며,
"원공 ! 대신들과 의논하여 결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결심이 섰네 ! 저들 말을 안 듣겠네 !"
하고, 말하며 유비앞을 휑하니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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