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25)비단
中 황제, 비단 팔러가는 대상 보호하려
어린 공주 한 왕국에 시집보내는데…
로마의 귀부인들은 비단옷을 입지 못하면 연회에 나갈 수 없었다. 매끈하고 야들야들한 촉감에 은은한 광택이 물결치는 비단은 머나먼 동방에서 왔다는 신비감까지 더해져 로마 여인들을 미치게 했다. 비단의 원산지는 중국이고, 중국을 벗어나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비단을 생산하지 않았다.
대상(隊商)들은 목숨을 걸고 중국에서 낙타 등에 비단을 싣고 서역으로 떠났다. 목숨만 잃지 않는다면 일확천금을 쥘 수 있는 대상들은 펄펄 끓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다 목말라 죽고, 사시사철 눈과 얼음으로 덮인 파미르고원을 오르다가 천 길 낭떠러지에 미끄러져 죽고, 혹한에 얼어 죽고, 고산병에 주저앉았다. 어디 이뿐인가. 강도들이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기습을 해 목숨도 뺏고 비단도 빼앗았다. 조그만 나라를 지나가도 혹독한 통행세를 바쳐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로마까지 가게 된 비단은 같은 무게의 금값과 같았다. 중국에서 서역으로 가는 통상로를 통해 대상들이 낙타 등에 싣고 가는 최대의 상품은 비단이어서 후대 사람들은 그 길을 실크로드라고 부르게 됐다.
비단은 중국의 국고를 채우는 데 일등공신이지만 언제나 서역으로 가는 길이 문제였다. 도적 떼만 대상들을 약탈하는 게 아니었다. 가는 길목의 소왕국들도 도적 떼 못잖게 대상들을 괴롭혔다.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으로는 톈산산맥이 병풍 치고, 남쪽으로는 쿤룬산맥이 둘러쳐져 사막은 분지가 됐다. 눈을 이고 있는 두 산맥이 계곡으로 눈 녹은 물을 흘려보내면 냇물은 사막 속으로 스며들어 물줄기가 사라지지만, 사막에 닿기 전의 냇물은 초원을 만들고 밭을 만든다. 이곳 오아시스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물의 양에 따라 사람들의 숫자가 달라져 마을이 되기도 하고 왕국이 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낙타 등에 비단을 싣고 서역으로 가는 대상들은 오아시스를 따라 이어진 실크로드를 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아시스 왕국은 대상들에게 막대한 통행세를 부과하고 어떤 때는 아예 비단을 약탈했다. 중국이 군대를 보내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오아시스 왕국을 박살 내지만 군대가 돌아가면 또다시 대상을 괴롭혔다. 군대가 다시 출정하기엔 너무 멀었다. 채찍을 든 중국 황제는 골머리를 앓다가 당근을 주기로 했다. 황제에게는 수많은 후궁 사이에서 낳은 공주가 여럿 있었다. 공주들을 서역의 오아시스 왕국들에 시집보내 왕을 중국 황제의 사위로 삼아 속국으로 만들었다.
예쁘고 어린 공주 하나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호탄왕국으로 시집가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호탄왕국은 쿤룬산맥 아래 가장 큰 오아시스 왕국이었다. 공주는 부왕의 명을 거절할 수 없어 후궁인 제 어미와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무지개 꿈을 키워온 공주가 머나먼 이국땅, 위구르족의 늙은 왕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순진한 어린 공주는 식음을 전폐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소동도 벌였다.
하루하루 오금이 저리는 시간이 지나 마침내 떠나야 할 아침이 밝았다.
“아바마마, 소녀의 절 받으십시오.”
황제는 애절함과 미안함에 고개를 돌려 눈물을 감췄다. 낙타 등에 바리바리 혼수품을 싣고, 중국의 사신들은 말을 타고 눈이 퉁퉁 부은 공주는 마차를 타고 황궁 밖으로 떠나자 연도의 백성도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가다가 날이 저물면 역참에서 자고 날이 새면 서쪽으로 몇날 며칠을 갔는가. 국경검문소 성문이 하늘을 찌르는 둔황에 다다랐다.
“내 나라 땅에서 머무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구나.”
날이 밝았다. 황궁을 향해 절을 하고 역참을 나와 검문소를 통과하려는데 독방으로 안내됐다.
“무엄하구나! 내가 누군지 아느냐?!”
공주가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국경을 통해 서역으로 가는 여자는 없고 검문관은 모두 남자라 검문관의 부인이 들어왔다. 공주는 발가벗겨지고 검문관의 부인은 이 잡듯이 공주의 옷을 샅샅이 뒤졌다. 상자 속 혼수품과 고리짝의 일상용품, 사물은 물론 낙타와 말 안장까지 뜯어 검사했다.
마침내 검문소를 나와 사막길에 올랐다. 혼례 사신 행렬은 펄펄 끓는 사막길을 모래 폭풍을 뚫고 한달도 넘게 달려가 마침내 호탄왕국에 도착했다. 기나긴 여로에 모두 녹초가 돼 방에 들어가 푹푹 쓰러지는데, 방으로 안내된 공주는 문을 잠그고 배시시 웃었다. 머리장식을 모두 뽑고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자 새까만 뽕나무씨가 쏟아졌다. 요강에 앉아 소피를 보고 나자 누에고치가 열두개나 둥둥 떴다. 중국의 비단 생산 독점이 끝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文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26)숯가마 (0) | 2022.02.09 |
---|---|
삼국지(三國志) (112) 원술의 멸망 (0) | 2022.02.08 |
삼국지(三國志) (111) 유비의 서주 출정(徐州 出征) (0) | 2022.02.07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24)빗나간 화살 (0) | 2022.02.07 |
삼국지(三國志) (110) 조조가 말하는 영웅의 조건. (0) | 202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