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13)진달래
가정불화에 이승 하직 결심한 점촌댁
신변정리하자 갈등 술술 풀리는데 …
“이 빌어먹을 놈.”
여섯살 먹은 막내아들이 흙투성이가 돼 집으로 들어오자 점촌댁이 끝이 벌겋게 달아오른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나가 도망치는 막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불똥이 막내의 새집 같은 댕기머리 속에 박혀 연기를 피워 올리자 막내는 “앗, 뜨거워!” 비명을 지르며 마당에 고꾸라졌다.
막내 위 세살 터울 딸이 집으로 들어오자 점촌댁은 등줄기를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야, 이 뒈질 년아. 물이라도 좀 길어다 주면 조막손이 된다던?” 동네방네 마실 다니며 며느리 흉보는 게 일인 시어머니도 때가 되니 뒷짐을 지고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들어와 뒤꼍 우물가로 갔지만, 그저께 벗어놓은 빨랫감이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다.
점촌댁은 동네 골목을 내달려 동구 밖 주막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 박 서방이 주모를 끼고 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점촌댁은 처마 아래 짚신 두짝을 함께 움켜쥐고 술상을 향해 날렸다. 한짝은 주모 면상을 후려치고 다른 한짝은 묵사발에 처박혔다. 주모가 점촌댁 머리채를 잡아 두 여자가 안마당에서 뒹구는데 박 서방은 본체만체 술만 마셨다.
이튿날 아침, 점촌댁은 일어나지도 않아 시어머니가 밥을 차리자 박 서방이 두어숟갈 끼적거리다가 대장간으로 일하러 갔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일어난 점촌댁. 경대 앞에 앉아 지난밤 주모 손톱에 할퀸 얼굴을 보며 이를 갈다가 둘이 머리채를 잡고 뒹굴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술만 마시던 남편을 떠올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이렇게 살아 무얼 하나~.”
넋을 놓고 있던 점촌댁이 이십리 산길을 걸어 고초암에 다다랐다.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암자에 노스님이 봄 햇살이 쬐는 툇마루에 앉아 졸고 있었다. 점촌댁이 노스님을 잡고 하소연을 했다. 노스님이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 탁발하러 오며 가며 점촌댁 집을 수없이 들러 집안사정을 훤히 잘 알고 있었다. 점촌댁이 물었다.
“스님, 이승을 하직할까 봐요.”
한숨을 길게 토한 노스님이 한다는 말씀.
“그것도 한 방법이지.”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 눈물로 앞을 가려 점촌댁은 몇번이나 돌부리에 차여 넘어졌다. 점촌댁은 제 목숨 제 손으로 끊기로 작정했다. 목을 매는 사람들은 자신과 주변을 깨끗하게 해놓고 떠난다지. 우선 한지를 사 와서 귀신 집처럼 숭숭 구멍 난 문을 깨끗하게 도배하고 방을 깨끗이 정리했다. 마루도 닦고 처마 밑도 청소하고 마당의 개똥도 모아 거름 더미에 파묻고 덜렁거리는 사립문도 고쳤다. 눈물이 앞을 가려 손길을 멈췄다.
막내가 집으로 들어오려다 제 어미를 보고 빚쟁이 만난 듯이 담 뒤로 몸을 숨겼다. 점촌댁은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덕구야, 이리 오너라.”
흙담 뒤에 숨어 있던 막내가 깜짝 놀랐다. 허구한 날 ‘빌어먹을 놈’이라 악다구니를 쓰더니 오늘은 비단 같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쭈뼛쭈뼛 막내가 나오자 점촌댁이 꼭 껴안고 “덕구야, 엄마가 밉지?” 하자 제 어미 배꼽 쪽에 얼굴을 묻은 덕구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한다. 덕구가 얼굴을 쳐들자 제 어미의 눈물이 덕구 얼굴에 떨어졌다.
시어머니가 마실 갔다가 집에 돌아왔더니 처박혀 있던 빨래가 깨끗이 빨려 햇살에 나풀거린다.
“내일 아침에는 해가 서쪽에서 뜰런가?” 중얼거리며 어머니가 건넛방으로 가 누웠다. 점촌댁이 “어머님, 이거 좀 들어보세요”라며 메밀묵 한그릇에 참기름을 듬뿍 친 양념장을 소반에 담아 들고 갔다.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친정어머니가 생전에 딸 사는 모습을 보려고 여기 왔을 때 시어머니가 닭을 잡아라, 묵을 쒀라 그렇게 대접을 잘하고 며느리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했었다. 점촌댁은 그때를 생각하며 또 눈물을 쏟았다. 이승을 하직할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주색잡기로 한평생 속을 썩인 얼어죽을 남편과의 첫날밤, 신혼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철 따라 남편 옷을 챙기고 새로 장만해 차곡차곡 장롱에 챙겨뒀다.
화창한 어느 봄날, 딸애가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와 항아리에 꽂아 안방 경대 위에 올려놓았다. 술을 마시지 않고 너비아니 두근을 사들고 온 남편은 너털웃음을 날리고, 아이들은 제 아버지 무릎에 앉아 조잘거렸다.
그날 밤, 빼치던 점촌댁이 신랑 품에 안겼다.
“허허허~.”
노스님 웃음소리가 저만치서 들리자 쌀 됫박을 넉넉하게 사립문 앞에 두고 점촌댁은 안방에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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