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13)진달래

jahun 2022. 1. 27. 17:53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13)진달래

가정불화에 이승 하직 결심한 점촌댁

신변정리하자 갈등 술술 풀리는데
 
이 빌어먹을 놈.
여섯살 먹은 막내아들이 흙투성이가 돼 집으로 들어오자 점촌댁이 끝이 벌겋게 달아오른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나가 도망치는 막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불똥이 막내의 새집 같은 댕기머리 속에 박혀 연기를 피워 올리자 막내는 , 뜨거워!비명을 지르며 마당에 고꾸라졌다.
막내 위 세살 터울 딸이 집으로 들어오자 점촌댁은 등줄기를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 이 뒈질 년아. 물이라도 좀 길어다 주면 조막손이 된다던?동네방네 마실 다니며 며느리 흉보는 게 일인 시어머니도 때가 되니 뒷짐을 지고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들어와 뒤꼍 우물가로 갔지만, 그저께 벗어놓은 빨랫감이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다.
점촌댁은 동네 골목을 내달려 동구 밖 주막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 박 서방이 주모를 끼고 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점촌댁은 처마 아래 짚신 두짝을 함께 움켜쥐고 술상을 향해 날렸다. 한짝은 주모 면상을 후려치고 다른 한짝은 묵사발에 처박혔다. 주모가 점촌댁 머리채를 잡아 두 여자가 안마당에서 뒹구는데 박 서방은 본체만체 술만 마셨다.
이튿날 아침, 점촌댁은 일어나지도 않아 시어머니가 밥을 차리자 박 서방이 두어숟갈 끼적거리다가 대장간으로 일하러 갔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일어난 점촌댁. 경대 앞에 앉아 지난밤 주모 손톱에 할퀸 얼굴을 보며 이를 갈다가 둘이 머리채를 잡고 뒹굴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술만 마시던 남편을 떠올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이렇게 살아 무얼 하나~.
넋을 놓고 있던 점촌댁이 이십리 산길을 걸어 고초암에 다다랐다.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암자에 노스님이 봄 햇살이 쬐는 툇마루에 앉아 졸고 있었다. 점촌댁이 노스님을 잡고 하소연을 했다. 노스님이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 탁발하러 오며 가며 점촌댁 집을 수없이 들러 집안사정을 훤히 잘 알고 있었다. 점촌댁이 물었다.
스님, 이승을 하직할까 봐요.
한숨을 길게 토한 노스님이 한다는 말씀.
그것도 한 방법이지.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 눈물로 앞을 가려 점촌댁은 몇번이나 돌부리에 차여 넘어졌다. 점촌댁은 제 목숨 제 손으로 끊기로 작정했다. 목을 매는 사람들은 자신과 주변을 깨끗하게 해놓고 떠난다지. 우선 한지를 사 와서 귀신 집처럼 숭숭 구멍 난 문을 깨끗하게 도배하고 방을 깨끗이 정리했다. 마루도 닦고 처마 밑도 청소하고 마당의 개똥도 모아 거름 더미에 파묻고 덜렁거리는 사립문도 고쳤다. 눈물이 앞을 가려 손길을 멈췄다.
막내가 집으로 들어오려다 제 어미를 보고 빚쟁이 만난 듯이 담 뒤로 몸을 숨겼다. 점촌댁은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덕구야, 이리 오너라.
흙담 뒤에 숨어 있던 막내가 깜짝 놀랐다. 허구한 날 빌어먹을 놈이라 악다구니를 쓰더니 오늘은 비단 같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쭈뼛쭈뼛 막내가 나오자 점촌댁이 꼭 껴안고 덕구야, 엄마가 밉지?하자 제 어미 배꼽 쪽에 얼굴을 묻은 덕구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 덕구가 얼굴을 쳐들자 제 어미의 눈물이 덕구 얼굴에 떨어졌다. 
시어머니가 마실 갔다가 집에 돌아왔더니 처박혀 있던 빨래가 깨끗이 빨려 햇살에 나풀거린다.
내일 아침에는 해가 서쪽에서 뜰런가?중얼거리며 어머니가 건넛방으로 가 누웠다. 점촌댁이 어머님, 이거 좀 들어보세요라며 메밀묵 한그릇에 참기름을 듬뿍 친 양념장을 소반에 담아 들고 갔다.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친정어머니가 생전에 딸 사는 모습을 보려고 여기 왔을 때 시어머니가 닭을 잡아라, 묵을 쒀라 그렇게 대접을 잘하고 며느리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했었다. 점촌댁은 그때를 생각하며 또 눈물을 쏟았다. 이승을 하직할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주색잡기로 한평생 속을 썩인 얼어죽을 남편과의 첫날밤, 신혼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철 따라 남편 옷을 챙기고 새로 장만해 차곡차곡 장롱에 챙겨뒀다.
화창한 어느 봄날, 딸애가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와 항아리에 꽂아 안방 경대 위에 올려놓았다. 술을 마시지 않고 너비아니 두근을 사들고 온 남편은 너털웃음을 날리고, 아이들은 제 아버지 무릎에 앉아 조잘거렸다.
그날 밤, 빼치던 점촌댁이 신랑 품에 안겼다.
허허허~.
노스님 웃음소리가 저만치서 들리자 쌀 됫박을 넉넉하게 사립문 앞에 두고 점촌댁은 안방에 숨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