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88)새우젓장수와 방물장수

jahun 2022. 1. 1. 20:42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88)새우젓장수와 방물장수

함께 장사 다니는 하 영감·민 총각

어느 날 하 영감이 일을 관두는데
 
주막집 봉놋방에 외장꾼들이 쪼그리고 앉아 노름판을 벌였다. 방물장수 민 총각이 판돈이 바닥나 살며시 제 방으로 들어가 새우젓장수 하 영감에게 영감님, 백냥만 빌려주세요하자 하 영감이 민 총각 귀싸대기를 후려치며 노름판에 처박아 넣으려고 산 넘고 물 건너 뼈 빠지게 장사했어?하고 꾸짖었다. 방물장수 민 총각은 아무 소리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벽을 보고 모로 누웠다. 이튿날 아침, 두사람은 마주 앉아 국밥을 먹고 주막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제부터인가 새우젓장수 하 영감과 방물장수 민 총각이 부자지간처럼 붙어 다녔다. 물살이 센 개울을 건널 때면 두사람은 짐을 서로 바꾸어 민 총각이 무거운 새우젓 지게를 지고 하 영감이 가벼운 방물 고리짝을 지고 물을 건넜다. 고개를 넘을 때도 민 총각이 새우젓 지게를 지겠다 하면 하 영감은 힘에 부쳐 숨이 끊어질 듯해도 단호히 거절했다.
어느 날 단양 나루터 주막에서 하 영감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새우젓장수 그만두려네.요즘 하 영감의 심기가 몹시 언짢다는 건 민 총각도 알고 있었다. 단양에 하 영감이 거래하는 집과 경쟁하는 집에서 우 생원을 내세워 새우젓장수에게 반값에 팔도록 했다. 자연히 하 영감 새우젓은 팔리지 않을 뿐 아니라 외상값도 온전히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하 영감이 새우젓장수를 접고 고향 도담으로 돌아갈 때 어깨가 축 처져서 떠나가는 하 영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민 총각은 고갯마루 소나무에 머리를 박고 어깨를 들썩였다. 하 영감을 떠나보내고 홀로 장삿길에 나서니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허전해서 저녁마다 술독에 빠졌다.
어느 날 밤 탁배기 한호리병을 저녁 삼아 자작주를 하고 있었다. 주모, 여기 너비아니 한근에 청주 한병, 민 총각과 겸상시켜주시오.뒤돌아보니 우람한 덩치의 우 생원이 싱긋이 웃고 있었다. 민 총각은 우 생원을 본체만체 마지막 탁배기잔을 단숨에 마시고 짠지를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객방으로 들어가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우 생원이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동생~ 보시게. 나도 사귀어보면 나쁜 사람이 아니여. 내가 오늘 밤 술 한잔 살껴.벽을 보고 누웠던 민 총각이 골똘히 생각한 후 발딱 일어나 우 생원 손에 이끌려 평상으로 가 청주에 너비아니 안주로 대작하며 조금 전까지 원수 보듯 하더니 행님 먼저, 동생 먼저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새우젓장수 우 생원과 방물장수 민 총각은 장삿길에도 붙어 다녀 외장꾼들은 민 총각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민들병이라 불렀다.
우 생원은 새우젓장사를 독점하자 값을 세배로 올렸다. 툭하면 새우젓통에 소금물을 부었다. 어느 날 고갯길을 오르던 우 생원이 물었다. 동생~ 요즘 내 무릎이 시큰거려 죽겠네. 내 새우젓 지게 좀 대신 지고 가면 안될까?짐을 바꾸자 우 생원이 웃으며 방물고리짝을 지고는 백리도 단숨에 가겠네하자 우 생원의 새우젓 지게를 지고 숨을 헐떡거리며 고갯마루에 오른 민 총각이 이건 장사가 아니라 골병들기요. 나는 억만금을 번다 해도 새우젓장사는 못하겠소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우 생원이 말했다. 나도 얼떨결에 새우젓장수가 되었지만, 생각이 많네. 얼마 전에는 글쎄 영춘 주막집 주모와 눈을 다 맞춰놨는데 새우젓 냄새가 난다고 퇴짜를 놓지 뭔가.민 총각이 무릎을 치며 킬킬 웃었다. 제가 요즘 돈벌이 주품목이 뭔지 아세요? 목신(木腎)이에요, 목신. 이윤을 세배나 남긴다구요. 향나무로 정교하게 깎은 목신을 보면 여인네들이 미쳐요, 미쳐. 과부고 유부녀고 찌든 집 아낙네고 대갓집 마나님이고 쌍놈 마누라고 양반집 부인이고 목신만 보면 빚을 내서라도 사고요.
우 생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목신이라도 실물보다야 좋겠어요? 그때 손목을 잡아당기면 백이면 백, 모두 딸려와 내 품에 안기지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달이 점점 차오르는 어느 날 밤,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빨며 달을 쳐다보고 있던 하 영감이 일어서서 마당을 가로질렀다. 사립문 밖에 민 총각이 서 있었다. 하 영감이 물었다. 어쩐 일이여? 장사는 어쩌고?민 총각이 싱글벙글 웃으며 방물장사를 우 생원에게 떠넘겼어요.” “우 생원이 방물장수?” “지금은 단양 관아에 갇혀 있어요. 단양 최 진사네 안방마님에게 희한한 물건을 팔러 가서 끌어안으려다가 집안이 발칵 뒤집혀 작두에 양물이 잘려나가고 결국 옥에 갇혔어요.추석이 지나고 영감님은 새우젓 지게를 지고 민 총각은 방물 고리짝을 지고 영춘 골짜기를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