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88)새우젓장수와 방물장수
함께 장사 다니는 하 영감·민 총각
어느 날 하 영감이 일을 관두는데…
주막집 봉놋방에 외장꾼들이 쪼그리고 앉아 노름판을 벌였다. 방물장수 민 총각이 판돈이 바닥나 살며시 제 방으로 들어가 새우젓장수 하 영감에게 “영감님, 백냥만 빌려주세요” 하자 하 영감이 민 총각 귀싸대기를 후려치며 “노름판에 처박아 넣으려고 산 넘고 물 건너 뼈 빠지게 장사했어?” 하고 꾸짖었다. 방물장수 민 총각은 아무 소리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벽을 보고 모로 누웠다. 이튿날 아침, 두사람은 마주 앉아 국밥을 먹고 주막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제부터인가 새우젓장수 하 영감과 방물장수 민 총각이 부자지간처럼 붙어 다녔다. 물살이 센 개울을 건널 때면 두사람은 짐을 서로 바꾸어 민 총각이 무거운 새우젓 지게를 지고 하 영감이 가벼운 방물 고리짝을 지고 물을 건넜다. 고개를 넘을 때도 민 총각이 새우젓 지게를 지겠다 하면 하 영감은 힘에 부쳐 숨이 끊어질 듯해도 단호히 거절했다.
어느 날 단양 나루터 주막에서 하 영감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새우젓장수 그만두려네.” 요즘 하 영감의 심기가 몹시 언짢다는 건 민 총각도 알고 있었다. 단양에 하 영감이 거래하는 집과 경쟁하는 집에서 우 생원을 내세워 새우젓장수에게 반값에 팔도록 했다. 자연히 하 영감 새우젓은 팔리지 않을 뿐 아니라 외상값도 온전히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하 영감이 새우젓장수를 접고 고향 도담으로 돌아갈 때 어깨가 축 처져서 떠나가는 하 영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민 총각은 고갯마루 소나무에 머리를 박고 어깨를 들썩였다. 하 영감을 떠나보내고 홀로 장삿길에 나서니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허전해서 저녁마다 술독에 빠졌다.
어느 날 밤 탁배기 한호리병을 저녁 삼아 자작주를 하고 있었다. “주모, 여기 너비아니 한근에 청주 한병, 민 총각과 겸상시켜주시오.” 뒤돌아보니 우람한 덩치의 우 생원이 싱긋이 웃고 있었다. 민 총각은 우 생원을 본체만체 마지막 탁배기잔을 단숨에 마시고 짠지를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객방으로 들어가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우 생원이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동생~ 보시게. 나도 사귀어보면 나쁜 사람이 아니여. 내가 오늘 밤 술 한잔 살껴.” 벽을 보고 누웠던 민 총각이 골똘히 생각한 후 발딱 일어나 우 생원 손에 이끌려 평상으로 가 청주에 너비아니 안주로 대작하며 조금 전까지 원수 보듯 하더니 “행님 먼저, 동생 먼저”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새우젓장수 우 생원과 방물장수 민 총각은 장삿길에도 붙어 다녀 외장꾼들은 민 총각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민들병이라 불렀다.
우 생원은 새우젓장사를 독점하자 값을 세배로 올렸다. 툭하면 새우젓통에 소금물을 부었다. 어느 날 고갯길을 오르던 우 생원이 물었다. “동생~ 요즘 내 무릎이 시큰거려 죽겠네. 내 새우젓 지게 좀 대신 지고 가면 안될까?” 짐을 바꾸자 우 생원이 웃으며 “방물고리짝을 지고는 백리도 단숨에 가겠네” 하자 우 생원의 새우젓 지게를 지고 숨을 헐떡거리며 고갯마루에 오른 민 총각이 “이건 장사가 아니라 골병들기요. 나는 억만금을 번다 해도 새우젓장사는 못하겠소”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우 생원이 말했다. “나도 얼떨결에 새우젓장수가 되었지만, 생각이 많네. 얼마 전에는 글쎄 영춘 주막집 주모와 눈을 다 맞춰놨는데 새우젓 냄새가 난다고 퇴짜를 놓지 뭔가.” 민 총각이 무릎을 치며 킬킬 웃었다. “제가 요즘 돈벌이 주품목이 뭔지 아세요? 목신(木腎)이에요, 목신. 이윤을 세배나 남긴다구요. 향나무로 정교하게 깎은 목신을 보면 여인네들이 미쳐요, 미쳐. 과부고 유부녀고 찌든 집 아낙네고 대갓집 마나님이고 쌍놈 마누라고 양반집 부인이고 목신만 보면 빚을 내서라도 사고요.”
우 생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목신이라도 실물보다야 좋겠어요? 그때 손목을 잡아당기면 백이면 백, 모두 딸려와 내 품에 안기지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달이 점점 차오르는 어느 날 밤,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빨며 달을 쳐다보고 있던 하 영감이 일어서서 마당을 가로질렀다. 사립문 밖에 민 총각이 서 있었다. 하 영감이 물었다. “어쩐 일이여? 장사는 어쩌고?” 민 총각이 싱글벙글 웃으며 “방물장사를 우 생원에게 떠넘겼어요.” “우 생원이 방물장수?” “지금은 단양 관아에 갇혀 있어요. 단양 최 진사네 안방마님에게 희한한 물건을 팔러 가서 끌어안으려다가 집안이 발칵 뒤집혀 작두에 양물이 잘려나가고 결국 옥에 갇혔어요.” 추석이 지나고 영감님은 새우젓 지게를 지고 민 총각은 방물 고리짝을 지고 영춘 골짜기를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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