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77) 바람둥이와 소매치기 (상)

jahun 2021. 12. 22. 18:56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77) 바람둥이와 소매치기 ()

 

챗거리 장날, 엿을 훔치던 개똥이엿장수 박가에게 딱 걸리는데

챗거리 장날, 장터는 시끌벅적했다. 이 장사꾼 저 장사꾼마다 좌판을 펼쳐놓고 목청 높여 호객을 했다. 엿 사려~ 울릉도 호박엿에 그리고.철그렁철그렁 가위 소리만 요란한 엿장수는 초짜배기임에 틀림없었다. 엿장수 몰골은 꾀죄죄하기 마련인데 챗거리 장터에 처음 나타난 이 엿장수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큰 덩치에 허우대가 멀쩡했다. 소피를 보러 가던 엿장수가 돌아서서 후다닥 열두어살 먹은 머슴애 멱살을 낚아채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귀싸대기를 갈기며 말했다. 네놈이 내 엿 훔쳐먹는 게 처음이 아니지!
어린놈이 두 손을 싹싹 빌며 잘못했심더, 아재요. 잘못했심더라며 반 울음을 터뜨렸다. 코피가 흘렀다. 엿장수가 엿 도둑 머슴애를 데리고 개울로 내려가 얼굴을 씻어준 후 개울가의 쑥을 비벼 콧구멍에 박아줬다. 아이를 데리고 올라온 엿장수가 미안하다. 코피까지 나게 할 일은 아닌데 말이여하더니 깨엿·강엿(검은엿)·호박엿을 아이 손에 쥐어주며 묵어라권했다. 하지만 엿을 받아든 그 아이는 먹지 않고 품속에 넣었다.
왜 안 먹는 기여?엿장수가 묻자, 아이는 우리 어메(어머니) 갖다 드리려고요했다. 엿장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음 장날 개똥이라 불리는 그 아이가 삼베 보자기에 삶은 감자 다섯개를 싸와 엿장수에게 건넸다. 바로 그때 왈패들이 몰려와 엿판을 발로 차 엎어버리고 거적때기는 말아서 불태워버렸다.
다음 장날에도 자릿세 안 내면 네놈을 저 도랑에 처박을껴!왈패들이 분탕질을 치고 떠나간 후 엿장수는 개울을 내려다보며 쭈그려 앉아 죄 없는 연초만 태우는데 개똥이가 흩어진 엿을 주워 담았다. 다음 장날 또 왈패들이 몰려와 엿판을 발로 걷어찼다. 그때 벌떡 일어난 엿장수가 아이고, 이 주먹이 운다면서 부르르 몸을 떨며 우마(牛馬) 고삐 묶는 기둥을 주먹으로 치자 기둥이 우지끈두동강 나버렸다. 둘러선 구경꾼들 입에서 우와~하는 탄성이 터지고 바짓가랑이를 부욱 찢어 피가 흐르는 주먹을 감자, 눈이 왕방울만 해진 왈패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걸음아 나 살려라도망쳐버렸다.
여러개 박혀 있는 우마 고삐 묶는 기둥은 씨름꾼 허벅지 둘레만 해서 주먹 한방에 두동강 난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다. 순라꾼한테 들키면 큰일 난다며 개똥이는 두동강 난 고삐 기둥을 들어다 주막집 아궁이에 처넣어 태워버렸다.
챗거리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엿장수는 원래 평양 건달로, 주먹 한방으로 씨름 천하장사를 때려죽이고 칠년을 옥살이하고 나와 두번 다시 주먹을 쓰지 않겠다며 엿장수로 마음을 다잡고 있는 중이라고! 왈패들 등쌀에 시달리던 챗거리 장사꾼들이 저녁나절만 되면 엿장수를 모시고 술을 사겠다고 소매를 당겨 사지가 찢어질 판이다. 엿장수는 어리둥절해서 개똥이 눈치만 봤다.
엿장수 박가는 고향이 서산고을로 알아주는 바람둥이였다. 신수가 훤하고 언변이 능해 작업을 걸었다 하면 안 넘어가는 여자가 없었고 밤일도 변강쇠 뺨을 쳐 여자들이 꼬리를 쳤다. 사또의 첩을 건드렸다가 들통이 나 도망을 쳐서 안동고을 챗거리에서 엿장수로 숨어 있던 참이다. 주먹 한방에 우마 고삐 묶는 기둥을 두동강 내고 살인으로 칠년 옥살이를 했다는 소문은 모두가 개똥이 꾀주머니에서 나왔다. 개똥이네 헛간기둥이 나무 벌레로 중간 속이 다 썩어 마침 기둥을 바꾸려던 참이었다. 개똥이는 장날 전날 밤, 썩은 헛간 기둥을 장터로 가져가 우마 고삐 묶는 기둥을 파서 뽑아내고 그 자리에 그걸 세워뒀던 것이다.
일약 챗거리의 영웅이 된 엿장수 박가가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술을 얻어 마시다 사실이 들통날세라 개똥이는 엄명을 내렸다. 술만 얻어 마시고 입은 벙어리가 되라고! 호걸이 입까지 무거우니 신비감마저 더해졌고 왈패들은 챗거리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꾀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개똥이는 챗거리 장터의 소매치기였다. 개똥이가 유복자로 태어났으니 아직도 서른한살밖에 안된 어미는 산비탈 밭뙈기에서 호미질하며 아들 하나 믿고 살아가는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소매치기가 된 것이다. 서른세살 바람둥이와 열세살 소매치기는 스무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붙어 다니는 아삼륙이 됐다.
박가는 엿판을 때려 부숴버렸고 개똥이는 더는 소매치기를 하지 않았다. 박가와 개똥이는 장사에 눈을 떴다. 챗거리 장터에는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안동 간고등어의 터전이다. 동해안에서 잡은 고등어를 영덕에서 꼭두새벽에 우마에 싣고 황장재를 넘어와 진보를 거쳐 챗거리에 닿으면 꼬박 하루가 걸려 해가 떨어진다. 안동까지 가려면 고등어가 상해 이곳에서 내장을 따내고 소금간을 하는 것이다. 박가와 개똥이가 간고등어 장사에 뛰어들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