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61)고향
환쟁이가 방바닥에 그림을 펼치자 오대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앞으로는 맑은 내가 흐르고 뒤로는 숲이 울창한 산을 병풍 삼아 청천리(靑川里)엔 쉰여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때때로 새우젓장수와 방물장수 등이 동네를 한바퀴 돌아 나갈 뿐 외지 사람이 발 들여놓는 곳이 아닌데, 이상한 사람이 하루도 아니고 열흘이 넘게 이 외딴 산골에 죽치고 있다. 동구 밖 대처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조그만 주막에 보따리를 풀어놓고 아침나절 청천리로 올라와 맷방석을 깔고 앉았다. 그리고 새하얀 접지를 펼쳐놓고 벼루에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동짓달이라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없고 북풍한설 강바람이 볼때기를 도려내는데도 늘그막한 환쟁이는 소반만 한 접지에 쉼 없이 그림을 그렸다. 냇가를, 뒷산을, 동네 골목을, 팽나무를 그리고, 논둑에 앉아 동네를 그리고, 동네 어귀에 앉아 청천을 그렸다. 세필화라 하루 종일 한장 그리기 바빴다. 동네 사람들이 빙 둘러 구경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질 무렵 그 환쟁이는 두번 다시 청천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보름쯤 지났을까.
마포 나루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서른여섯칸 대궐 같은 집에 그 환쟁이가 대문을 두드리자 행랑아범이 나왔다. “어서 오시오. 나으리께서 목이 빠집니다.” 환쟁이가 사랑방에 들어가자 벌써 들뜬 오대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빨리빨리 펴보게”라고 하자 환쟁이는 죽통에서 두루마리 접지를 꺼내 한장을 방바닥에 폈다.
술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짚은 채 뚫어져라 그림을 내려다보던 오대인의 눈에선 눈물방울이 떨어져 그림을 적셨다. 환쟁이가 얼른 그림을 빼며 “먹이 번집니다요” 하자 목이 멘 오대인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바로 저기 저 얼음판에서 친구들과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리고, 푸하하하! 촐랭이는 모두가 말리는데도 썰매를 타고 저기 저쪽으로 들어가다가 얼음이 꺼져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지, 크크크.” 이 그림 저 그림을 보며 울다가 웃던 오대인은 환쟁이에게 물었다. “주모한테 물어봤는가? 촐랭이 동익이는 어떻게 사는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삼년 전에 몹쓸 병으로 그만….”
오대인은 대성통곡했다. 오대인이 또 한장의 그림을 보다가 킬킬거며 말했다. “여름밤이면 저 바위 뒤에 숨어서 동네 처녀들 멱 감는 거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었지. 저기가 동네 윷판이 벌어지던 곳이네. 호섭이는 말필 쓰는 데 도사였어. 여보게, 윤 화백. 호섭이는 잘 있던가?”
환쟁이가 종이를 꺼내 보며 “예, 얼마 전에 손자를 봤더군요. 대인께서 알아보라고 소인에게 주신 친구명단 스물여덟 중에 이승을 하직한 사람은 촐랭이를 포함해 여섯이었습니다. 덕배, 상기….”
오대인은 소반에 술을 따라 올리고 고향을 향해 두번 큰절을 하더니 머리를 방바닥에 박은 채 한없이 흐느꼈다.
청천리에서 내를 따라 삼십여리 내려가면 크고 작은 마을을 지나 관아가 자리 잡은 대처가 나온다. 관아 동천에서 사또가 처음 보는 노승과 마주 앉아 오랜 시간 밀담을 나눈 뒤 서로 맞절을 하고 헤어지며 사또가 스님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되도록 대사께서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보름 후 어느 날, 노승이 마포 나루터 언덕 위 오대인집 사랑방에서 오대인과 곡차를 마시며“껄껄껄. 오대인은 국사범이라 모든 걸 감안해도 삼년은 옥살이해야 한대요”라고 했다. 그러자 오대인은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했다. “단 삼년이라고요? 해야지요! 십년이라도 해야지요!”
오대인은 젊은 시절 천하에 이름을 떨친 신출귀몰한 도둑이었다. 인근 열두고을, 악랄하게 축재를 한 졸부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탐관오리들은 오대인에게 털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매관매직이 판치던 시절, 이 고을 저 고을 사또가 한양의 세도가에게 보내던 뇌물을 하도 많이 털어 얼토당토않게 국사범으로 몰려 방방곡곡에 방이 붙었었다. ‘천풍’이라 불리던 그 큰 도둑은 손을 씻고, 새까맣게 얼굴을 태우고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돈을 주고 호적을 사서 오대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포 나루터에서 청나라에 홍삼을 수출하고 경면주사를 수입해 어마어마한 거상이 됐다.
산천이 두번이나 변한다는 이십년 하고도 네해! 오대인은 고향 청천리로 돌아왔다. 온 동네 사람들이 둘러싼 동네 어귀에서 오대인은 땅바닥에 이마를 박고 흐느꼈다. 동헌에 다다르자 사또가 마당까지 내려와 두 손을 잡았다. 오대인은 고을의 숙원사업인 세군데에 돌다리를 놓으라고 거금을 내놓았다. 설이 닷새 남았다. 청천리 가가호호에 세찬으로 쌀 한가마와 쇠고기 다섯근씩 돌리고 죽은 친구 여섯묘소를 돌며 절을 하고 두둑하게 조의금을 전했다. 설과 보름을 고향 사람들과 지내고 제 발로 관아로 들어가 옥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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