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93
** 楚漢誌 15
※漸進打破 戰略
그로부터 10여 일 後,
韓信은 出征 준비를 치밀히 진행시켜 가면서, 하루는 번쾌를 불러 命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大王을 모시고 咸陽으로 진격할 계획인데
咸陽으로 가는 길이 큰 문제요.
일찍이 張良 선생께서 咸陽으로 가는 棧道를 모두 태워 버렸기 때문인데, 따라서 棧道를 보수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하오.
내가 將軍에게 군사 一萬 명을 줄 것이니 주발, 진무 等, 두 장군과 함께 한 달 안에 棧道를 복구하도록 하시오. 만약 기일을 지키지 못할 경우, 법에 따라 엄히 책임을 물을 것이오."
번쾌는 너무도 엄청난 軍令을 받고 氣가 막혔다. 10 萬 명이 1년 정도 걸려야 해낼 수 있는 大 공사를, 단 一萬名의 兵力으로 어떻게 한 달 안에 끝낸단 말인가!? ...
번쾌는 생각하다 못해, 즉석에서 이의를 제기하였다.
"元帥님의 명령을 거역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咸陽으로 가는 길은 천하의 險路인데다, 거리도 千里가 넘습니다. 그것을 무슨 재주로 단 一萬 名의 병사를 가지고 한 달 안에 복구하라는 말씀입니까 ? 元帥께서 제가 마땅치 않으시거든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주 소서."
韓信은 무슨 생각을 해서인지 큰 소리로 웃으며,
"軍令을 받고 어려움을 핑게로 임무를 회피하려 하는 것은 不忠에 해당하오. 장군의 忠心은 잘 알고 있으니, 안 될때 안 되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보시오."
번쾌는 더 이상 말대꾸를 했다가는 殷蓋처럼 軍法에 회부될 것 같아서 마지못해 一萬의 군사를 거느리고 棧道 복구의 길에 올랐다.
한편,
韓信은 그날부터 兵士들을 직접 진두 지휘하면서, 마지막 高强度 군사 훈련을 계속하였다.
평소에 훈련을 빡세게 시켜온지라 兵士들은 軍呼에 따라 정확하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깃발을 좌로 흔들면 나는 듯이 왼편으로 달려가고, 깃발을 오른쪽으로 흔들면 쏜살샅이 오른쪽으로 공격하고, 앞으로 흔들면 정면으로 달려 나가며 공격 대형을 취하고, 징 소리와 함께 뒤로 흔들면 일보 후퇴하는데, 數 千 數 萬의 兵士들이 一絲不亂하게 하나같이 움직였다.
네 개의 부대를 하나로 통합하면 순식간에 長巳陣으로 바뀌고, 하나의 장사진을 네 개로 분산하면, 즉시 四門의 軍陳이 전개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전진과 후퇴, 분열과 통합 等, 복잡한 군사 행동이 깃발과 軍呼에 따라, 軍 전체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듯 하였다.
韓信은 군사들의 훈련 광경을 흡족하게 지켜보며, 하루는 漢王에게 이렇게 稟하였다.
"大王 殿下 ! 擧兵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을 모두 마쳤사옵니다. 臣으로서는 잘 되었다고 자부하 오나, 大王의 御意는 어떠실지, 親히 査閱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漢王은 웃으면서
"將軍이 군사들 훈련시키는 광경을 여러 번 보아왔는데, 새삼스럽게 査閱式까지 가질 필요는 없지 않겠소?."
그러자 옆에 배석해 있던 丞相 簫何가 漢王에게,
"大王 殿下 !
出陳을 앞두고 있으니, 大王께서 마지막으로 사열 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래야 大王께서도 더 확실한 믿음으로 出陣하시게 될 것이옵고, 兵士들 또한 龍顔을 직접 뵙게 됨으로써 軍의 士氣가 더욱 왕성해질 것이옵니다."
"丞相의 말씀을 들어 보니 그렇기도 하구려. 그러면 내일 아침 묘시(卯時 : 오전 6시 경)에 연병장으로 나가도록 하겠소."
다음날 아침, 漢王이 모든 文官들을 거느리고 연병장으로 행차하는데,
韓信은 全軍의 지휘관을 이끌고 일찍이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漢王이 사열대에 높이 올라서자, 軍樂이 울려퍼지며 사열식이 시작되었다.
이날은 韓信 자신이 직접 진두에 나서 數萬의 軍士들을 지휘하는데, 모든 부대가 하나같이 질서 정연하고, 前進과 後退가 민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면서도 陳形을 변화무쌍하게
펼치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긴 시간에 걸친 사열식이 끝나자, 漢王은 지극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韓信을 가까이 불러 치하의 말을 한다.
"將軍이 군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소. 孫子나 吳子도 장군만은 못했을 것이오. 우리 군사들이 더할 나위 없이 막강하게 조련되었으니, 이제 咸陽을 향하여 出陳하도록 합시다."
韓信이 揖(읍)하며,
"臣이 吉日을 택하고자오니, 날짜는 臣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그러면 出陣할 날짜가 결정되는 대로 과인에게 알려 주시오."
漢王이 사열식을 마치고 사열대에서 내려오니, 잔디밭에는 어느새 酒案床이 성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거창하게 차려놓은 음식들을 살펴보니, 그것은 巴蜀에서는 求하기 어려운 산해 山海珍味 들이었다.
(韓信이 나를 위해, 이처럼 求하기 어려운 귀한 음식을 어디서 구해왔을까 ? 이런 음식을 준비한 것만 보아도, 韓信의 忠心을 짐작할 수가 있도다.. ! )
漢王은 감격에 겨워 눈앞에 있는 음식 중, 두세 가지의 음식만 들기로 하고, 韓信을 불러 命한다.
"나는 두세 가지면 足하니, 다른 귀한 음식들은 여러 지휘관 들이 함께 모여 같이 들기로 합시다."
漢王의 지시에, 모든 장수들이 하나같이 감동하며 床 앞으로 모여,
"大王 殿下의 은혜는 河海와 같사옵니다."
하며 감사의 축배를 들었다.
한편,
번쾌는 棧道 복구의 중책을 맡고 주발, 진무 등과 함께 현장에 도착해보니, 산은 높고 가파르며 險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집채만한 바위는 앞을 가로막고, 수목과 넝쿨은 겹겹이 얽혀 있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번쾌는 한숨을 쉬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조차 들었다.
(혹시, 韓信 장군이 楚나라를 정벌할 자신이 없으니까, 시일을 끌기 위해 계획적으로 무모한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닐까 ? 그렇다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닌가 ... ! )
번쾌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발. 진무와 함께 孤雲山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고운산 일대의 山勢가 어찌나 험악한지, 새조차 숲을 날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잔도와 길을 보수하려면 10 萬의 병력을 동원하더라도 최소한 1년은 걸려야 할거요. 그런데 병사 단 1 萬 명으로 한 달 안에 보수하라니, 나는 죽어도 못하겠소."
주발과 진무는 입을 모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온다.
그러나 명령을 직접 받은 번쾌로서는 간단히 단념할 수는 없었다.
"韓信 將軍은 준법 정신이 무척 강한 분이오. 게다가 大王께서도 韓信 장군을 무척 신임하고 계시오. 따라서 우리가 맡은 임무를 시도조차, 해보지않고 포기해 버렸다가는 반드시 엄중한 책임추궁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러니 못 될 때 못 되더라도, 일단은 최선을 다해 봅시다."
번쾌는 주발과 진무를 격려해 가며, 그날부터 병력을 총동원하여 잔도 복구 공사를 시작하였다.
거대한 바위를 밑에서 파헤쳐 언덕아래로 굴리고, 큰 나무는 밑동을 도끼로 찍어내 계곡 아래로 굴려 버리고, 높은 곳의 흙은 깎아 내려 낮은 곳을 메우고, 이쪽 벼랑과 저쪽 벼랑사이에는 棧道를 새로 걸쳐 놓았다. 이처럼 험난한 작업을 온종일 계속하자니, 바위에 치고, 나무에 깔리고, 벼랑에 떨어져 죽는 희생자가 날마다 속출하였다.
"張良이란 者가 棧道를 태워 버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게 아닌가 ?
그놈이 왜 그따위 짓을 해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나?!."
"누가 아니라나?, 그 새끼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張良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리네. 그런 놈이 軍師는 무슨 빌어먹을 軍師란 말인가 ! "
兵士들은 너무도 힘이 들자 '張良' 욕하기를 입에 달고 일했다.
잔도 복구 공사가 10여 일쯤 계속되고 있을 무렵, 大夫 陸賈가 10 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갑자기 공사 현장에 나타났다.
"아니, 大夫께서 이 런 곳에 웬일이십니까 ?"
그러자 陸賈가,
"출동 준비가 다 되었으니, 처음 말한 대로 한 달 안으로 공사를 끝내도록 하라는 大元帥의 명령을 傳하러 왔소이다. 아울러 기일 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할 경우, 장군을 엄중 문책하겠다는 말씀이오."
陸賈의 말을 듣고, 번쾌는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다가 화를 벌컥 내며 항의한다.
"大元帥께서는 해도 너무하시오. 10 萬의 군사로 1년이 걸려도 끝낼까말까 하는 難 工事를 단 1萬 名을 가지고 어떻게 한 달 안에 끝내라는 말씀이오 ? 工事 期日을 연기해주기 전에는 나는 죽어도 못 하겠소. 아무리 대원수의 명령이라도 나로서는 못 하 겠다는 말이오 ! "
번쾌는 악에 받쳐서 陸賈에게 마구 퍼부어 대었다.
그러자 陸賈는 左右의 사람들을 물리더니, 번쾌의 귀에 입을 대고 귀엣말을 나누는 것이었다.
"大元帥께서는 복구 공사가 한 달 안에 불가능한 것을 아시면서도, 敵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장군을 다그치고 계신 것이오. 그러니 장군은 그런 줄 알고, 군사들을 더 많이 보내주기 前에는 복구 공사를 기일 내에는 못 하겠노라고 大王 앞으로 表文을 올리도록 하시오. 大元帥는 그렇게 하기 위해 장군을 일부러 다그치고 있는 것이오. 그리고 난후, 공사 지원군이 도착하거든, 여차 저차 (&₩♧☆÷♤ ~ 소근거리는 소리)하도록 하시오."
번쾌는 그제서야 韓信의 깊은 계략을 알고, 밖으로 나와 군사들에게 외쳤다.
"대원수께서는 복구 공사를 한 달 안에 끝내라는 엄명이지만, 공사가 워낙 難工事라 우리들 만으로는 도저히 임무를 완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大王殿에 긴급히 表文을 올려, 더 많은 지원군을 보내주도록 하겠다."
그러나 陸賈는 그런 말은 못 들은 체하고 군사들에게,
"그대들은 한 달 안에 이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 대원수의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니, 모두들 전력을 기울여 책임을 완수토록 하라 ! "는 새삼스러운 지시를 내리고 본영으로 돌아갔다.
陸賈가 공사 현장을 떠나자, 번쾌는 예정했던 대로 한왕에게 다음과 같은 表文을 올렸다.
"大王 殿下,
臣은 大元帥의 명에 의하여, 棧道復舊工事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공사가 워낙 難 公事인데다 희생자까지 속출하고 있사온데, 오늘은 대원수로부터 기일 안에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참형에 처한다는 엄명까지 받았습니다. 臣은 일찍이 大王을 모시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여된 책임을 그르쳐 본 일이 없사오나, 이번만은 죽음을 免키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大王께서 臣의 처지를 감안하시와 잔도 복구공사를 위한 추가 지원군을 하루 빨리 보내 주시옵소서.
이에 亞將, 이륭을 보내 이 表文(마음에 담고있는 생각을 임금께 적어 올리는 글)을 올리옵니다.
漢王은 번쾌의 표문을 받아 보고 미소를 지었다. 漢信의 계략을 이미 보고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漢王은 韓信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棧道 복구 공사에 병력이 더 필요한 모양이니, 번쾌 장군에게 精兵 千 명을 더 보내주도록 하시오."
모두가 敵을 속이기 위한 計策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번쾌가 천 명의 지원군을 받고 나자, 뒤이어 韓信으로 부터 다음과 같은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장군은 주발.진무 等의 두 막료와 함께 棧道 복구 공사의 명목으로 추가로 보낸 千 名의 精銳 군사를 두 부대로 편성하여 夜陰을 틈타 고운산 준령을 넘어가 楚의 '大散關'을 기습하여 한 번에 점령하도록 하라.>
번쾌는 작전 명령을 받고, 즉시 기습 무대를 편성하여 고운산 준령을 타고 넘어 대산관을 향하여 기습작전을 전개한다.
이러한 사정을 楚나라 군사들은 전혀 모른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무렵,
大散關의 수비의 총책임자는 大將 章平이었다. 장평에게 어느 날 軍師 范增으로 부터 한 장의 경고문이 날아 들었다. 경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으니,
<大散關은 漢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漢王 劉邦은 大虎와 같은 인물이어서, 우리의 虛를 찾아 어디로부터 찔러 올지 모르니, 將軍은 불철 주야 關門 경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 >
章平은 이러한 경고문을 받고, 關門 경비에 철통같은 준비태세를 갖추어 나갔다.
그 무렵 항간에는 ,
<漢王 劉邦은 楚를 치기 위해 韓信을 大元帥로 기용, 咸陽으로 진격할 棧道를 대대적으로 보수하는 중이다>
라는 소문이 널리 떠돌고 있었으므로, 章平은 大散關의 경비에 더욱 신경을 쓰고있던 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