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90
** 楚漢誌 12
※ 簫何의 機智
다음날 아침,
만조 백관들은 御前朝會가 끝나자, 刑曺大夫가 漢王에게 아뢴다.
"樊噲 장군을 하옥시켜 두고 있사온데, 그를 어떻게 처리하실 것이온지, 宣旨를 내려 주시옵소서.
漢王은 그 질문을 받자 매우 착찹하였다. 法대로 하면 번쾌는 斬刑에 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樊噲는 지금까지 생사 고락을 같이해 온 開國 功臣이 아닌가 ? 게다가 項羽의 '鴻門宴 연회' 때는 꼼짝없이 죽게 된 자기를 求해 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同壻之間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국법을 어긴 죄인을 사사로운 情때문에 용서하자니 국가 紀綱이 무너질 것이 고 ...
漢王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마음을 굳게 먹고 이렇게 분부했다.
"樊噲는 국법을 무시하고 막말을 떠벌린 重罪人이오. 그가 비록 나와는 동서지간이지만, 마땅히 斬刑에 처하여 軍의 기강을 세워야 할 것이오. 당장 朝門으로 끌어내, 衆人環視下(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에 斬刑에 처하도록 하시오."
그러자 丞相 簫何가 漢王의 고민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大王 전하 ! 번쾌의 罪는 斬刑에 처하고 남음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樊噲는 지금까지 많은 功을 세운 開國功臣이옵니다. 더욱이 大元帥를 새로 임명하신 경사스러운 때에, 개국 공신을 斬刑에 처하시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일이옵니다. 하오니 樊噲에 대한 문제는 臣에게 맏겨 주시옵소서. 그러면 臣이 公議를 거쳐 공평하게 처리하겠나이다."
"樊噲를 처벌하지 않으면 國法과 紀綱도 문란해질뿐 아니라, 새로 임명한 大元帥의 威令도 우습게 될텐데, 丞相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시겠다는 말씀이오 ?"
簫何가 다시,
"大王께오서는 엄중하신 詔書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면 臣 等은 그 조서에 따라 최선책을 강구하겠사옵니다."
"丞相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러면 조서를 내리기로 하겠소. 丞相은 과인의 뜻을 잘 받들어, 추호라도 유감이 없도록 해 주기 바라오."
漢王은 丞相이 뜻하는 바를 잘 알고 있음으로, 속으로는 치밀한 簫何의 보필을 무척 고맙게 여기며, 곧 尙書를 불러 명한다.
"大夫들의 公議에 의하여 樊噲를 엄중 처벌함으로써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도록, 승상 에게 조서를 내리시오. 조서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엄정해야 하오."
漢王이 승상 簫何에게 내린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과인은 丞相과 張良 선생의 천거로 韓信 장군을 大元帥로 맞이했는데, 그것은 韓信 장군이야말로 楚를 정벌할 수 있는 天下의 智略家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소. 그리하여 禮를 갖추어 韓信 장군을 맞이해 온 것인데, 번쾌는 자신의 작은 공로만 믿고 人臣之禮를 망각하고 儀式 절차를 문란케 하였으니, 국가의 기강을 어떻게 유지해갈 수 있겠소?
이에 樊噲의 罪는 마땅히 斬刑에 처해야 마땅하니, 丞相은 公議를 거쳐 죄인을 엄정하고도 공평하게 단죄해 주기 바라오.>
簫何는 漢王의 조서를 받자, 조서의 내용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널리 퍼뜨려 놓았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조서의 내용을 獄中에 있는 번쾌에게도 알리기 위함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그 소문은 사흘이 채 못 되어 樊噲의 귀에도 들어갔다.
樊噲는 詔書의 내용을 전해 듣고 크게 놀랐다.
(張良 선생과 簫何 丞相이 다같이 韓信을 大元帥로 천거했을 정도로, 그렇게도 韓信이 비범한 인물이었더란 말인가 ?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殿下 앞에서 행패를 부렸으니, 참으로 큰 실수를 하였구나 ! )
樊噲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대장 周勃을 비밀리에 불러 부탁을 한다.
"나는 韓信이라는 사람이 張良 선생과 簫何 丞相이 천거하신 줄도 모르고, 大王 앞에서 우리들의 생각을 吐露했던 것이오. 그러나 그로 인해 나는 斬刑을 免하기가 어렵게 되었소. 하지만 나는 나의 잘못을 충분히 깨달았으니, 장군은 내가 斬刑을 免할 수 있는 좋은 방도를 좀 강구해 주시기 바라오."
주발은 樊噲의 부탁을 받고, 곧 丞相府로 簫何를 찾아가 진정서를 올린다.
"樊噲 장군은 개국 공신 입니다. 그가 순간적으로 罪를 犯한 것은 사실이오나, 지금은 본인도 크게 反省하고 있사오니, 丞相께오서는 大王 전하께 仰度하시와 특별히 赦免을 해 주시도록 힘써 주시면 고맙겠나이다."
簫何가 대답한다.
"大王께서는 진작부터 破楚大元帥(楚를 격파할 大元帥)가 될 만한 人材를 求하고 계셨으므로 張良 선생의 천거로 韓信 장군같이 탁월한 인물을 얻게 된 것은 국가의 大 경사라고 생각하오. 이로써 우리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 것이오. 그런데 樊噲 장군은 그런 내막도 모르고 무엄하게도 大王앞에서 행패를 부렸으니, 대왕께서 大怒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오. 그렇지만 樊噲 장군은 개국 공신이므로, 그 점을 감안하여 특별 사면을 내려 주시도록, 내가 대왕전에 上疏文을 올려 보기로 하겠소. 그러니 제하 장군들도 언행에 각별히 주의해 주시기 바라오."
簫何는 국가의 元老인 廣野君 여이기 노인 等과 상의하여 漢王에게 다음과 같은 上訴文을 올리게된다.
...
<大 漢國 丞相 臣 簫何는, 삼가 大王殿에 上訴文을 올리나이다.>
臣은 國家의 元老들과 함께 번쾌의 범죄 사실에 대해 公議에 부친 결과, 樊噲가 御殿에서 행패를 부리며 妄言을 한 罪는 마땅히 斬刑에 처해야 옳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나이다.
그러나 樊噲는 豊沛에서부터 大王 전하를 일관되게 보필해 온 開國 功臣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鴻門宴 宴會'때는 목숨을 걸고 대왕 전하를 求해 낸 국가의 元勳이기도 하옵니다. 臣 等은 그와 같은 功 들을 감안하시어, 이번만은 특별 赦免을 내려 주시고, 차후에 이와 같은 죄를 또다시 犯했을 경우에는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사옵니다. 重臣들의 公議가 이와 같사오니, 대왕 전하께서는 중신들의 충심을 참작하시와, 삼가 聖裁(王의 재가)를 내려 주시기 바라나이다.
漢王은 그 上訴文을 받아 보고 곧 簫何를 불러 분부한다.
"樊噲가 자신의 공로를 믿고 國法을 유린한 罪는 마땅히 斬刑에 처해야 옳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重臣들이 公議로써 특별 사면을 請해 왔으니, 이번만은 중신들의 뜻을 받아들여 특별히 용서하기로 하겠소. 그러나 금후에도 만약 신임 大元帥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과인에 대한 불복종으로 간주하고 단호히 처단하겠소. 그 점 거듭 명심하게 해주기 바라오."
漢王의 特赦令이 내려지자, 樊噲는 즉시 석방되었다.
獄中에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는 樊噲는, 獄門을 나서기가 무섭게 韓信을 찾아가 叩頭謝罪 (고두사죄 : 엎드려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바닥에 찧으며 용서를 비는 사죄)하며 말한다.
"小將 樊噲, 장군의 英名하심을 몰라뵙고, 난동의 重罪를 犯했음을 거듭 용서하소서. 차후에는 身命을 다해 大元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맹세합니다."
韓信은 樊噲의 두 손을 반갑게 잡아 일으키며 말한다.
"公을 세우는 것이 臣下의 본분이라면, 분수를 지키는 것은 신하의 大節이라고 하지요. 장군이 과거에 공훈이 많았기로, 어찌 그것을 믿고 國法을 무시하고 御殿에서 교만을 부리셨소. 大王께서 특별히 은전을 베풀어 重罪를 용서해 주셨으니, 나 역시 기쁘오이다. 그러니 大王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겨서, 今後에는 국가를 위하여 더욱 분발해 주시기 바라오."
韓信은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문득 자세를 바로잡더니 가볍게 나무라듯이 말한다.
"장군은 出獄하는 길로 나를 먼저 찾아오신 모양인데, 大王 殿下를 먼저 찾아 뵙고 謝恩의 말씀을 올리는 것이 臣下의 道理요, 지금이라도 속히 入闕하여, 大王을 배알하도록 하시오."
樊噲는 韓信의 충고를 듣고 나서야 禮訪의 순서가 뒤바뀐 것을 알고 당황해하였다.
그러나 韓信은 그 문제에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말머리를 바꾼다.
"대왕 전하에게 謝恩肅拜가 끝나거든, 퇴궐하는 길에 승상부에 들러, 丞相 閣下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도록 하시오. 장군이 이번에 특별 사면의 恩典을 받게 된 것은, 오로지 丞相께서 애써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하오."
樊噲는 韓信의 깨우쳐 줌을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며, 부랴부랴 입궐하여 漢王을 배알하였다.
漢王은 樊噲를 가까이 불러 손을 다정하게 잡으며 말한다.
"그대는 나와 함께 豊沛에서부터 義兵을 일으켜 많은 功을 세워왔으니, 내 어찌 그대의 공훈을 모르리오. 그러나 君臣之間에는 예절 또한 엄중해야 하는 법이니, 금후에는 그 점을 각별히 유념하기 바라오. 그대도 지혜롭다고는 하지만, 그대의 지혜는 張良 선생에게 미치지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는 점에서는 丞相에게 미치지 못하오. 韓信 장군은 그 두 분이 나에게 추천해 준 天下의 奇材요. 그대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인신지례를 그릇쳤으니, 그 어찌 重한 罪라 아니 할 수 있으리오. 만약 丞相이 그대를 求해 주지 않았다면, 그대는 지금쯤 황천객이 되었을 것이오. 그렇게 되었다면 그대를 아끼는 나의 마음인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소. 丞相은 슬기롭게 그대와 나를 다같이 기쁘게 해주셨으니, 그대는 丞相에게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오."
樊噲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맹세한다.
"臣은 殿下의 말씀을 듣고,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臣의 잘못을 깨달은 이상, 이 몸을 나라에 바쳐 聖恩의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것을 거듭 맹세하옵니다."
漢王도 감격의 눈물을 지으며 말한다.
"내 그대의 깊은 충성을 어찌 모르리오. 丞相府로 찾아가 丞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빨리 올리도록 하시오."
樊噲는 승상부로 달려가 簫下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한다.
"丞相께서 小將을 求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소장은 이미 황천객이 되었을 것이옵니다. 승상의 은혜, 결코 잊지않겠사옵니다."
簫何는 壇 아래로 내려와 樊噲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장군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게요? 이 모든 것은 大王의 깊은 배려임을 아셔야 하오."
그리고 壇上으로 이끌고 올라가 기쁨을 같이하며,
"우리가 천하를 평정하게 되면, 장군은 누구보다도 먼저 일국의 侯佰이 되실 것이니, 이제는 더욱 몸가짐을 가다듬어 충성을 다하셔야 하오."
樊噲는거듭 충성 맹세를 다짐하며, 그 뒤부터는 韓信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게 된다.
("개천에서 龍난다"는 속담을 그대로 보여준 멋진 친구 韓信!^^)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