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17
** 呂不韋와 노애의 몰락
奴僕을 千名씩이나 거느리고 太后 朱姬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둘과 온갖 영화를 누리고 있는
노애는 시간이 갈수록 엉뚱한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기회를 보아 秦王을 죽이거나 쫒아내고 자신의 아들을 그 자리에 올려 앉히고자하는 野心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아들을 둘이나 두었으니, 이제는 秦王을 쫒아내고, 우리 아이를 王으로 세워야할 게 아닌가 ?"
노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노골적으로 나오게 되자 朱姬는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그건 절대로 안 돼요. 그 애(秦王)가 얼마나 무서운 아이인데, 그런 말을 함부로 합니까 ? 그렇지 않아도 우리들의 비밀이 탄로라도 나는 날이면, 그 날로 우리들 목이 날아갈 줄 아세요."
"당신은 무슨 못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그 애 목에는 칼이 안 들어가는 줄 아오? 그 애 하나만 없애 버리면, 秦나라는 우리들의 나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
朱姬는 몸이 떨려서,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의 입장은 난처하였다.
노애와 그 사이에 낳은 두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秦王도 자기 뱃속에서 나온 친자식이 아닌가? 따라서 노애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여불위의 몸에서 태어난 장자를 죽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秦王 9년 이른 봄 어느 날,
노애는 미녀들을 거느리고 주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太后殿 시녀인 계씨 부인(季氏夫人)이 술 심부름을 하던 중, 실수로 노애의 옷에 술을 엎질렀다.
그러자 노애는 벌컥 화를 내며, 벼락 같은 소리를 질렀다.
"네 이년! 용포(龍袍)에 술을 엎지르는 년이 어디있느냐 !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이년을 당장 궁중에서 쫒아내라 ! "
(龍袍라! ~
지가 秦王이라도 된 듯한 말인데...)
계씨 부인은 그 자리에서 궁중에서 쫒겨나게 되었다.
조그마한 실수로 宮을 쫒겨나게된 그녀는 노애에게 앙심을 품을밖에 없었다.
(내시로 가장하고 대왕을 속여가며 태후와 관계하는 주제에, 감히 나를 쫒아낸다고?! ..)
계씨 부인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 여자가 恨을 품으면 5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사실을 노애는 몰랐을까 열락에 취하여 잊었을까?..
(독자 제위께서도 女人이 恨을 품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시기요. 제주의 '고유정'이를 생각해보시길! 어휴!! 무시라^^)
그런데 저녁쯤 되자 들려오는 말에 노애가 계씨(季氏)부인을 참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게 아닌가 !?
계씨 부인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밤을 도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도망을 가려고 길을 나서니, 갈 곳은 무려 1,500里나 떨어진 함양뿐이었다.
季氏 부인은 이를 악물고 태산 준령을 넘고 넘어서 두 달 여 만에 함양에 도착한다. 그리고 궁궐로 직행하여
대사(大使 : 王의 비서실장 格의 벼슬. 조선시대의 도승지.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 조고(趙高)를 만난다.
趙高는 계씨 부인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대는 태후마마를 모시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이런 모습으로 옹성에서 돌아왔는가 ?"
계씨 부인은 울면서 대답했다.
"저는 추잡스러운 노애의 손에 죽지 않으려고, 야반에 도망을 쳐서 山 넘고 물 건너 돌아왔사옵니다."
"노애가 추잡스럽다니, 그게 무슨소린가 ? 노애는 내시가 분명한데, 내시가 어떻게 추잡스럽단
말인가?"
季氏 부인은 , 그동안 있어 왔던 노애와 태후와의 관계를 낱낱이 告해 바쳤다.
趙高는 너무도 뜻밖의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 사실을 즉시 秦王에게 아뢴다.
秦王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生母인 太后가 관련된 일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애는 內侍가 분명한데,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나? 자세한 내막은 내가 옹성(壅城)에 직접 내려가서 처분할 것이니 길 떠날 채비를 차리도록 하라. 그리고 내가 옹성에 다녀올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이 일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이리하여 진왕은 지방 순시를 명목으로 옹성으로 떠나는데 趙高도 王을 수행하였음은 물론이다.
한편, 노애는 秦王이 지방을 순시하는중에 壅城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하늘이 내게 준 찬스다"
이 기회에 秦王을 없애버리고, 자신의 아들을 王으로 세울 野心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노애는 가짜 옥새(玉璽)를 만들어서 가까운 고을에 주둔하고 있는 근위 부대(近衛部隊)와 근위 기마대(近衛驥馬隊)에 는 긴급 군령을 王命(秦나라 왕)으로 내렸다.
秦王이 옹성에 도착하기만 하면 는 대의 명분을 내세우고, 근위 부대로 하여금 왕의 숙소인 기년궁(紀年宮)을 급습하게 하여, 秦王을 단숨에 제거해 버릴 계획이었던 것이다.
노애의 심복 부하들은 그러한 반역 행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애가,
"만약 이번 일이 뜻대로 되어 나의 세상이 되기만 하면, 그대들에게는 정국 공신(靖國功臣)의 칭호를 부여함과 동시에 식읍(食邑)을 하사하여 子子 孫孫 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할 것이니, 그대들은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해 목표 달성에 추호도 차질이 없도록 하라 ! " 는 특별 지시를 내리는지라, 그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역모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秦王은 이처럼 무서운 역모가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옹성에 도착하자, 곧 숙소인 기년궁으로 향했다.
그날 밤은 기년궁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에 태후궁으로 생모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秦王이 행차할 때는, 趙高는 항상 왕의 행차보다 수백 보쯤 앞서 가며, 왕의 행차에 위험요소가 있는지 살펴 보며,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그 누구라도 가차 없이 처치하였다. 이처럼 趙高는 秦王에게는 다시 없는 심복이었다.
이날도 王의 행차가 기년궁으로 향하자 조고가 一團의 護衛軍을 거느리고 앞질러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는데, 난데 없는 기마병 하나가 앞쪽에서 이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냐! 게 섰거라 ! "
조고는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칼을 뽑아 들고 당장이라도 목을 칠 듯이 달려나갔다.
그런데 마주 달려오던 기마병이 趙高를 보고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 말을 멈춰서며,
"아니, 아저씨가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
그제서야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 청년은 이웃 고을의 근위 대장으로 있는 조고의 조카인 희광(熙光)이가 아닌가 ?
"너 희광이 아니냐 ? 네가 여기 웬일이냐 ? "
"저는 王命을 받아, 근위 부대를 인솔하고 조금 전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王命에 의해 출동을 했으니까, 아저씨는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이 아닙니까 ?"
"뭐라고 .... ? 왕명에 의해 근위 부대를 인솔해 왔다고 ? "
조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언가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도 모르는 王命을 누가 너에게 내렸단 말이냐 ?"
"왕명이 내려진 것을 아저씨가 모르신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니옵니까 ?"
희광은 고개를 갸웃해 보이면서,
"그렇다면, 제가 군령장(軍令狀)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번 살펴 보시지요."
하며 주머니에서 군령장을 꺼내 보였다.
마침 그때 秦王의 행차가 가까이 다가왔다.
"자세한 얘기는 大王을 기년궁으로 모신 연후에 나누기로 하고, 너도 나를 따라오너라."
趙高는 大王을 기년궁으로 모시고 나서, 희광과 단둘이 다시 만났다.
그리고 군령장을 자세히 살펴 보니, 거기에는 분명히 大王의 옥새가 버젓히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옥새가 가짜라는 것을 조고는 한번에 알아 보았다.
"이 군령장에 찍힌 옥새는 틀림 없는 가짜다 ! 그렇다면 누가 역모를 하려고 꾸민 일인데, 이런 엄청난
짓을 할 사람은 노애가 아니고서는 없을 것이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군령장은 옹성 성주 노애로 부터 받았습니다."
趙高는 즉시 사람을 놓아, 노애의 동태를 은밀히 정탐해 오게 하였다.
얼마후 돌아 온 정탐꾼은,
"노애는 오늘 밤 축시(丑時)를 기해 기년궁을 급습하여 대왕을 살해하고, 자기 아들을 왕으로 옹립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무어라! ? 大王을 살해하고, 자기 아들을 王으로 옹립하려 한다고 ?"
조고는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추스린 다음 말을 이었다.
"네가 그런 음모가 있는 줄 어찌 알아냈느냐 ?"
"태후마마를 호위하는 군사중에 제 친구가 한 사람 있사온데, 음모의 내막은 그 친구로부터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태후마마도 이 사건에 연류된 것이냐 ?"
"태후마마는 처음부터 이런 음모에 반대하고 계셨기 때문에, 오늘 밤의 계획은 전혀 모르고 계신다고
합니다."
"잘 알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거라."
노애의 반역이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자, 조고는 즉시 秦王에게 모든 것을 고해 바쳤다.
秦王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노애 일당을 지금 당장 체포하여 거열형(車裂刑 : 사지를 넉 대의 수레에 묶어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이는 극형)에 처하라 ! "
하고 命했다.
그러나 趙高는 침착하게 왕에게 품했다.
"노애가 축시에 거사하기로 했으니, 자시(子時)에는 일당이 틀림없이 한자리에 모일 것이옵니다. 이때에 놈들을 일망 타진 (一網打盡)하는 것이 상책인 줄로 아뢰옵니다."
말하자면 노애가 거사하기 두 시간 전에 그들의 본거지를 일시에 급습하여, 일당을 한 놈도 남김 없이 쓸어 없애자는 것이었다. 이렇듯 아무리 위급한 때에도, 趙高의 지략은 침착하고 치밀하였다.
(과연 천하에 둘도 없는 비서실장 깜이로다!)
조고의 의견은 즉시 채택되었다.
이날 밤 자시, 趙高는 秦王의 親衛 부대와 조카 희광의 근위 부대를 몸소 이끌고 노애의 본거지를 급습하여,
노애의 심복 부하 20 여 명을 잡아 즉석에서 목을 베었다.
그러나 노애는 음모가 탄로난 낌새를 알아채고 도망가는 바람에, 체포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秦王은 더욱 진노한다.
"노애를 잡아 오는 자에게는 상금 50 萬냥을 주리라."
하는 방문을 널리 써 붙이게 하는 동시에, 태후의 몸에서 태어난 노애의 두 아들과 노애가 거느리고 있던 수 천명의 노복들도 가차없이 몰살시켜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三族이 멸문지화된 숫자만도 무려 5 萬 에 이르렀다.
노애 일당을 일망 타진하고 나서 그 사건의 경과를 면밀하게 조사를 해 보니, 태후에게 노애를 천거한 사람은 , 다름아닌 丞相 呂不韋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뭐야 ? 태후에게 노애를 천거한 사람이 呂 승상이었다구 ? 그런 자가 무슨 승상이며 빌어먹을 仲父란 말이냐? ! "
秦王은 다시 한번 크게 노하며, 태후를 만나 보지도 않고 그 길로 바로 함양으로 돌아와 버렸다.
무자비한 秦王도 차마 생모만은 죽일 수가 없어서 , 그냥 돌아와 버렸던 것이다.
진왕은 함양으로 돌아오자, 여불위를 제외한 모든 중신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말했다.
"승상 여불위가 노애의 반란 사건에 관련되었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따라서 여불위의 관직과 직위를 모두 박탈하고, 그를 참형에 처하시오. 승상 후임에는 객경(客卿) 이사(李斯)를 임명하오."
중신들은 영문을 몰라,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더니, 여불위는 승상의 권세를 누린 지 12년 만에, 뜻밖에도 참형을 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승상으로 임명된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여불위의 죄상에 대한 대왕의 분부는 지당하신 분부이신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先王에 대한 그의 공로는 至大한 바가 있사오니, 減 일등하시와 流配刑에 처하심이 어떠하올지 再考의 은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진왕도 그 말에는 일말의 수긍되는 점이 있어,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붓을 들어 여불위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을 써 주었다.
여불위는 진왕의 친서를 받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아! 이제 다 늙은 몸이 서촉 산중으로 유배를 가서, 무슨 보람으로 여생을 살아가랴. 불경에 因果應報라는 말이 있더니, 나는 내 손으로 뿌린 惡의 씨앗으로 인해, 업보(業報)를 당하는구나.
내 자식에게 이라는 말 한 마디조차 못 해보고, 결국에는 자식의 손에 죽게 되었으니, 정녕 이것이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 "
여불위는 이같은 탄식을 하면서 스스로 毒藥을 마시고 죽으니, 이때 그의 나이 53세이었다.
여불위가 죽은 지 두 달후에, 옹성에 사는 늙은 농부가 여불위의 수급(首級)을 보따리에 싸들고 진왕을 찾아왔다. 여불위가 산중에서 극약을 마시고 자진한 것을 발견하고, 그의 목을 잘라 소금에 절여서 함양까지 장장 1,500리를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불위가 분명하였다. 秦王은 농부에게 상금을 내주며 그를 치하하였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가?...
친 자식에게 애비라는 말 한 마디 못한채 자살하고, 저를 낳아준 아비인지도 모르고 지 애비 목을 따온 자에게 크나큰 상금을 내린 후일의 진시황!...)
이렇게 노애의 사건이 일단락 되자, 老臣 모초(茅焦)가 진왕에게 간한다.
"태후마마를 옹성에 방치해 두심은 효에 어긋나시는 일이옵니다. 이젠 태후를 함양으로 모셔 오심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秦王은 生母인 태후가 원망스럽고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홀로 되다보니, 그런 과오도 범할 수 있었으리라 싶어 그해 가을 태후를 감천궁(甘泉宮)으로 다시 모셔 왔다.
** "심은대로 거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