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43) 전풍의 절명
허유는 사사건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전풍이 원소의 곁에서 보필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리하여 곽도가 명을 받고 전풍을 데리러 기주로 출발하자, 원소에게 고한다.
"주공, 전풍을 석방하는 것은 괜찮을 듯 하오나, 중용하시는 것 까지는 고려하셔야 하옵니다."
그러자 두 사람간의 반목을 알고 있는 원소가 정색을 하며 묻는다.
"어째서인가 ?"
"주공께서는 모르시지만, 조금 전에 기주 수장의 보고에 따르면, 관도대전 패배 소식이 기주에 들어가자 모든 문무대신과 백성들이 슬퍼하였으나, 유독 한 사람, 오직 소인배 전풍만은 감옥에서 큰소리로 웃으며 헛소리를 지껄였다고 합니다."
"뭐라 했다더냐 ?"
원소는 힐난하듯이 반문했다. 그러자 허유가 일순 입을 닫고 두 손을 올리며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차마 입에 담기가 어려워서..."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원소가 눈을 치켜뜨며,
"말하라 !"
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말을 듣고 허유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면서,
"주공 ...전풍이 하늘을 향해 소리치길 <주공은 졸장부에 고집불통으로 지략도 없이, 자신의 선경지명을 안 들어서 패할 수 밖에 없었다 !>"
하고, 없는 사실을 고해바쳤다. 그러자 고개를 흔들며 듣던 원소가 불같이 화를 내며 탁자를 걷어찼다.
"괘씸한 놈 ! 감히 날 무시하고 그 따위로 지껄였단 말이지 !"
그리고 원소는 즉석에서 수하 장수를 불렀다.
"여봐라 !"
"네 !"
장수 하나가 들어와 예를 표한다.
"부르셨습니까 ?"
원소가 내실에 보관중인 자신의 검을 가르키며 말한다.
"지금 당장 내 검을 가지고 기주 감옥으로 달려가, 전풍을 참하라 !"
하고, 무시무시한 명을 내렸다. 그러자 장수는 명을 접수하고,
"네, 주공 !"
하고, 대답하며, 원소의 검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장공자 원담과 이공자 원희가 들어와 보고한다.
"아버님, 패잔병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으며, 병사들을 모두 정비하면 40만 쯤 됩니다. 이번 전투에서 주로 군수와 전차를 많이 잃었습니다."
뒤를 이어 원희가 고한다.
"아직도 남은 병마가 조조군의 두배는 넘으니 재 전투가 가능합니다. 심기일전을 편다면 아직도 우리의 병력이 더 우세합니다."
"하오 (좋다) !"
원소는 조금 전까지 침울했던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침착하고 자신있는 어조로 명한다.
"이번 전투를 교훈삼아 조조군을 멸하자 ! 명하노라 ! 삼군은 닷새 내 정비하고 재전투를 준비하라 !"
"옛 !"
...
한편, 어둠이 내린 기주의 감옥에 갇혀있는 전풍에게 옥졸 사령이 다가와 예를 표하며 말을 건넸다.
"대인 ! 정말 쪽집게 같으세요."
"뭐가 ?"
"조조는 용병술이 뛰어나 우리가 패한다고 하셨죠.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주공께서 관도에서 대패하셨답니다."
그러자 전풍은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며,
"내 말이 틀리기를 바랬건만...불행하게도 적중하고 말았구먼..."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옥졸 사령이,
"며칠 안에 주공께서 대인을 다시 부르시겠죠."
하고, 희망 담은 소리를 했다. 그러자 전풍이 옥졸 사령을 한번 힐끗 쳐다 보곤 고개를 흔들며,
"자네는 주공을 잘 모르네, 주공께선 의심이 많고 변덕이 심해, 우리가 대승을 거둔다면 주공께선 기쁜 나머지 옛일을 잊고 나를 석방하겠지만, 불행히도 주공께서 대패하셨으니, 몹시 분통해 하실 게야, 그러니... 내 명도 다해 가는 일이 벌어진 게지..."
전풍은 쓸쓸한 심정으로 가라앉은 소리로 말하였다.
바로 그때, 원소의 명을 받고 기주로 달려온 장수가 원소의 보검을 두 손으로 받들고 다가온다.
그리고 옥중의 전풍에게,
"주공의 명이오. 군주 모독죄는 용서치 못한다. 자결하라 !"
장수는 전풍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면서 참담한 어조로 말했다.
전풍도 참담한 어조로 장수에게 물었다.
"그런 명령을 내리도록 부추긴 자가 허유인가 곽도인가 ?"
그러나 장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겠구먼..."
전풍은 쓴 입맛을 다시며 옥졸 사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보게."
"네."
"지필묵 좀 가져다 주게. 주공께 유서를 남기려니..."
"네..."
옥졸 사령은 이미 상황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눈치챘다. 그리하여 전풍이 말하는 대로 지필묵을 가져왔다. 그리고 전풍은 이내, 붓을 들어 주공 원소에게 마지막 고언을 차분하게 써내려갔다.
이윽고 붓을 멈춘 전풍이 원소의 보검을 들고 찾아온 장수에게 부탁조로 말한다.
"장군, 나는 어차피 주공의 명에 의해 죽어야할 몸이나 감옥보다는 별 아래서 죽게해 주시오. 마지막 천기를 보고싶구려."
"그리하시오."
장수는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전풍은 옥을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밤하늘의 별들은 오늘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처럼 하늘 가득히 총총히 박혀있었다.
전풍이 앞장서 걸어가며 하늘 이쪽 저쪽, 구석구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하늘이 조조를 돕고있구나."
하고, 한탄어린 소리를 내뱉었다.
"???..."
그의 뒤를 따르던 장수와 옥졸 사령은 전풍이 무엇을 보고 그렇게 한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검을 주시오."
전풍은 원소의 보검을 건네받자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하늘을 향해 우러러 절규한다.
"하늘이 원망스럽소 !... 원망스러워 !"
그리고 그는 그 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한편 이날 밤, 원소의 대군 8만을 궤멸시키고 많은 군수품을 노획한 조조군은 대대적인 전승 축하연을 베풀었다. 그러나 조조는 자신의 군막에서 이날 정오에 원소와 벌였던 공방을 되씹어 보고 있었다.
조인이 기쁜 얼굴로 들어와 아뢴다.
"주공, 원소는 관도 외곽으로 후퇴하여 진영을 구축했으며, 이번 전투로 기세가 크게 꺽여서 쉽사리 덤벼오지는 못할 겁니다."
조조는 침상에 몸을 기댄 채로 누워서 손바닥으로 머리를 괴고 담담함 어조로 묻는다.
"우리군 손실은 얼마더냐 ?"
조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칠천이 전사했고, 부상병은 이만에 이릅니다."
"음 ... 원소군이 팔만을 잃었으니, 숫자로만 보면 우리가 대승을 거두었군. 내가 전쟁터에 뛰어든 이후,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처음이다."
조조가 이렇게 오늘의 전공(戰攻)을 치하하자, 조인의 얼굴에는 금방 화색이 돌며,
"장군들도 크게 기뻐합니다. 이런 기세라면 조만간 기주로의 진격도 장담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기뻐하지 않고 다시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만약 적군이 지금 습격해 온다면 어쩔 텐가 ?"
"네 ?"
조인은 느닷없는 조조의 질문에 어리둥절하며 대답할 바를 몰랐다.
"원소가 습격을요 ?"
"만약이라잖나."
조조는 감은 눈을 치켜 떠 보이며 조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조인은 대답할 바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조가 전승 축하연으로 떠들석한 병사들의 소리를 가르키며 말한다.
"이제 원소와의 싸움이 겨우 시작되었는데, 그까짓 한번의 전투를 이겼다고, 다들 취한 꼴을 좀 보게. 지금 원소가 습격해오면 우린 낮의 전투에서 이긴 것 이상으로 대패하고 말아, 그렇지 않겠어 ?"
"아 !..."
조인이 비로서 조조의 말 뜻을 알아 채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조조의 말이 이어진다.
"적군은 안 왔지만, 중군의 주장이라면 그런 습격도 염두에 둬야지..."
"알겠습니다 ! 즉시 정창병을 풀어 야간 경계를 강화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다른 걱정거리를 말한다.
"우리가 원소에게 대승을 거두긴 했으나, 아직도 군사수에서 원소군이 우리보다 많기 때문에 우리의 열세는 변함이 없으니,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더구나 원소군이 청주, 유주, 병주 등에서 계속해 군량과 병마를 보내올 것인데, 그때 원소가 정신을 차리고 전력을 재정비해서 우리를 공격해 온다면 우리는 크게 어려울 것이야. 그리고 조인아 ... 우리는 지금 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느냐 ?"
조인이 눈이 동그래지며 묻는다.
"승상 ! 아까 연회에서 말씀하시기로, 백일치 군량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거짓말이야, 병사들 사기를 꺾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말한 것이지, 실은 열흘 치 뿐이지."
"그렇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
조인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내저으며 입을 닫았다. 그리고 이내,
"그렇다면 이쯤에서 철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철수하더라도 원소군은 감지덕지하여 뒤를 추격하지는 못할 것이니..."
하고, 단적으로 건의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다시 눈을 감고 말한다.
"난들 철수하기 싫겠냐만, 모처럼의 승기를 접고 지금 물러서기는 너무 아까워서 그러지..."
"네... 그렇긴 합니다."
조인도 군량의 걱정만 없다면 이번 승기를 끝까지 가져가서 원소군을 궤멸시키고 싶었다.
조조가 이어서 말한다.
"순욱이 곁에 없어서 원통하군, 그가 있었다면 무슨 방도를 찾았을 것인데."
"승상 ! 그렇다면 지금 당장 순 선생께 서신을 써 주십시오. 급히 허도로 연락병을 보내겠습니다."
...
한편 허도의 순욱은 조조의 서신 받아 보고, 조조의 큰아들 조비를 찾아갔다.
"공자 ! 이것 좀 보시오. 승상께서 진퇴를 물어오셨는데..."
순욱이 조조의 서신을 내밀며 이어서 말했다.
"승상께서 서신에 군량 고갈을 목전에 둔 상황이라 장기전이 어렵다 하시면서, 이런 사실을 원소가 알면 장기전에 돌입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필패를 면키 어렵다 하시면서, 지금 물러서긴 너무 아깝다 하셨소."
그러자 부친의 서신을 모두 읽어 본 조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순선생 ! 서신에는 진퇴의 득실을 모두 언급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
하고, 묻는다. 그러자 순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한다.
"승상께서 당신이 결정해도 될 사안을 내게 물어 오신 까닭을 아시겠소 ?"
"아뇨 ? ...왜 그러셨을까요 ?"
약관(弱冠: 스무살 전후의 젊은 나이)의 조비로서는 지천명(知天命: 오십세 전후의 늙은 나이)의 삶을 살아가는 부친 조조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조비의 대꾸를 듣자 순욱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자, 들어보시오. 승상께서는 지금 물러나고 싶어 하시오. 다만 그렇게 결정하기엔 지금의 기회가 아깝기 때문에 주저하고 계신거지...그래서 내가 물러서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 주기를 바라시는 거요. 그렇게 되어 철군을 한다면 병졸들에게도 <순욱이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하고 당신의 철군 계획은 이 순욱의 계획에 의한 것이기에 철군의 책임에서 벗어나실 수가 있는 것이오."
"아 !...."
조비는 순욱의 말을 듣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순욱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과연 아버님은 총명하신 어른이오...그리고 그런 아버님의 뜻을 알고 계시는 선생님도 ..."
그러자 순욱이 고개를 숙이고 조비를 올려다보며 입을 연다.
"승상의 총명함은 천하 제일이 아니고, 천하의 두번째요."
순욱은 손가락 두 개를 펴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조비는 눈을 깜빡이며,
"그..그럼, 천하 제일은 누굽니까 ?"
순욱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건 좀 더 기다려 보면 됩니다."
...
얼마 후, 조조가 받은 순욱의 답신은 아래와 같았다.
<승상 ! 지금 철수해서는 안됩니다. 원소는 대패를 했다지만 네개 주에 이르는 부유한 땅을 가졌고, 많은 백성들로 하여금 무한한 양식을 길러내며, 많은 병마조차 생산하고 있으니, 시간은 원소에게 유리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 상황은 승상께 유리하니, 이번 기회에 원소를 궤멸해야 하는 적기 입니다. 하오니, 조만간 기회를 잡아 재 전투를 하셔야 합니다. 허나,지금 이 순간 우리의 두려운 것은 군량 부족이 아니라, 승상 마음의 병이지요. 첫 전투에서 대승하셨으나 우려는 더해가고 패배도 좌절도 두려운 겁니다. 당면한 군량의 부족은 이렇게 이렇게 하소서....>
조조가 순욱의 답신을 읽어보고 옆에 있는 조인에게 결심 하듯이 말한다.
"이런 신하가 있는데 나 조조가 원소를 두려워하겠는가 !"
그러나 항상 눈치가 조금 모자라는 조인이 두 손을 맞잡아 올려 보이며 묻는다.
"승상 ! 그러면 철수합니까 ?"
그러자 조조가 매서운 눈으로 조인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철수한다는 놈은 참하라 ! 삼군에 명하라. 무기와 군수를 정비하고 전투 준비를 하라고 !"
"알겠습니다 ! 그런데 승상, 군량은... 어쩝니까 ?"
조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아무런 일도 아닌 듯이 태평하게 대답한다.
"서주에 수 만 군량이 있으니, 속히 전갈하여 조달하도록 하라."
"네, 승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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