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
공자, 법치보단 ‘덕치’ 강조
복종 강요 않고 존중할 때 백성이 법·도덕 스스로 지켜
오늘날 정치권에 시사점 던져
위정자, 국민 고통 깊이 공감을
공자의 핵심철학은 인(仁)이다. 인을 통해 개인의 수양을 완성하고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의 실천덕목은 충(忠)과 서(恕)라고 공자는 가르친다. 충(忠)은 마음(心)을 중심(中)에 굳게 세우는 것으로, 수양의 자세다. 서(恕)는 마음(心)을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게 하는 것(如)으로, 사랑과 배려로 타인과 관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충과 서의 정신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관계를 바르게 한다면 이상적인 세상이 될 수 있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그것을 위한 수단은 바로 정치(政治)였다. 무지한 백성은 인의 개념을 알 수 없고 당연히 실천도 할 수 없기에, 백성을 바르게 이끌어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철학사상을 모은 책 <논어>에는 정치에 관한 글들이 많다. 먼저 ‘위정’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모든 별들이 그를 받들며 따르는 것과 같다.”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법이나 형벌이 아닌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켜 따르게 하는 것이다. 법으로 규제하면 백성은 마지못해 따르지만, 마음을 감화시키면 자발적으로 따르게 된다. 공자는 역시 ‘위정’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백성을 정치로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형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는 것은 백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을 통해 자존감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바로 서면 단지 형벌을 피했다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도덕을 지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그다음, 제자 자로가 정치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먼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몸소 열심히 일하라. 게을리함이 없어야 한다.”
주자는 이 말을 두고 이렇게 풀이했다. “백성이 할 일을 몸소 앞장서서 해보고, 백성의 일을 몸소 열심히 해보라.” 백성이 하는 일을 반드시 직접 경험하고 열심히 해보라는 것이다. 정치인이 백성의 일과 동떨어져 있으면 백성의 고단함도, 곤란도 알 길이 없다.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 탁상공론과도 같은 정책을 남발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고사는 정치의 핵심을 말해준다. ‘안연’에 실린 고사로 그 당시 실권자였던 계강자가 정치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가르쳤다.
“정치란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께서 바르게 이끌어주신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은 일을 하겠습니까?”
그 원문 ‘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정자정야 자솔이정 숙감부정)’도 잘 알려진 글이다. 정치의 핵심은 올바른 도리가 지켜지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바로 위정자의 올바름이다. 위정자가 아무리 정의를 외쳐도 스스로 바르지 않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공자는 이렇게 비유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기 마련입니다.” 풀은 바람이 불어야 누울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백성도 풀과 같은 존재라 위에서 행하는 대로 따를 뿐이다. 위정자가 바른 이치를 행하면 백성은 보고 배워 바르게 행한다. 하지만 위정자가 거짓과 위선을 행한다면 백성도 역시 그대로 행한다.
오늘날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먼저 국민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어야 바른 정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국민이 겪는 고통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공허한 정책을 남발하게 되고, 국민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 뿐이다.
위정자라면 정의로워야 한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말을 뒤집고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면 정의와는 거리가 먼 불의한 사람일 뿐이다. 공자는 이런 정치인을 두고 이렇게 한탄했다. “좁쌀과도 같은 인간은 말할 가치도 없다.” 제자 자공이 정치인을 묻자 대답했던 말이다. 오늘날도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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