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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誌 19

jahun 2021. 4. 25. 20:41

# 列國誌 19

** 韓과 趙나라의 멸망.

노애의 역모 사건이 마무리 되자, 秦王은 승상 이사를 불러 물었다.
"그동안 內政이 어수선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던 과인의 구상이 지연되었소. 이제 다시 그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까 하는데, 어느 나라부터 치는 것이 좋을지, 경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소."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전에도 아뢴 바와 같이, 국력이 가장 약한 韓나라를 먼저 쳐서, 승리를 하게 되면 군사들의 사기도 드높일 수 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秦王은 이사의 말을 옳게 여겨 왕전(王剪), 환기(桓奇), 양단화(楊端和)의 세 장수에게 각각 군사 10 만 씩을 내주며, 韓나라를 치라는 命을 내렸다.
秦이 韓을 치러 出兵했다는 소식을 듣자, 韓王은 秦과 인접해 있는 9개 城을 무조건 내주겠다는 아래와 같은 和親書를 보내왔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든 韓은 秦나라와 싸울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秦 大王 전하. 본인은 전하께서 우리나라의 獨立權 만 인정해주시면, 전하의 번신(藩臣)으로서 신하의 의무를 다할 것이오니, 인접한 9개 城을 받으시고 진격을 멈추어 주실 것을 대왕전에 엎드려 간곡히 청원하나이다.>
이른바 형식적인 國權만 인정해 주면 속국(屬國)이 되어도 좋다는 사연이었다.
진왕은 화친서를 받아 보고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으하하, 韓王이란 자는 참으로 어리석기 짝없는 자로구나. 번신(藩臣)에게 어찌 國權이 용납될 수
있다는 말인가 ? "
그러나 정작 韓나라 使臣을 접견해서는, 극진히 환대하면서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韓王께서 우리와 화친하고자 하시겠다니, 매우 고맙고도 현명하신 일이오. 우리가 근일에 답사(答使)를 보낼 터인즉, 韓王께서 기꺼이 맞아 주시도록 傳해주시오."
秦王은 韓나라 사신을 돌려보낸 후, 내사(內史) 진승(秦勝)을 불러 명했다.
"韓나라는 싸우지 않고도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그대는 군사 5 萬을 이끌고 한나라로 들어가는 즉시 韓王을 체포하여 과인에게 보내시오. 그리고 韓나라 영토를 <영천군(穎川郡)>으로 개명하여, 그대를 郡守로 임명하노니, 잘 다스리도록 하시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秦王이었다.
(* 여기에서 말하는 郡守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단체장인 郡守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음을 아시기요^^)
한편, 韓王은 和親使가 돌아와,
"秦王은 대왕의 화친서를 받아 보시고, 매우 만족스러워하셨습니다. 일간 答使를 보낸다 하오니
기꺼이 환대해 주시옵소서."
하고 告하니 어리석은 韓王,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한다.
"아!, 오늘 밤 부터는 다리를 쭈욱 뻗고 잘 수가 있겠구나."
그로부터 며칠 후, 秦勝이 5 萬의 군사를 거느리고 찾아왔으나, 한왕은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그를 맞이했다.
진승은 한왕을 만나기가 무섭게 체포하여 왕족들과 그의 가솔(家率)들을 함양으로 보내 놓고,
자신은 영천군의 군수가 되었다.
이리하여 韓나라는 나라를 일으킨지 10代 164년 만에 이렇게 멸망하고마니, 이것은 自力으로 국가를 지키려는 안보 태세가 결여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韓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자, 秦王은 축하연을 베푸는 자리에서 군신들에게 묻는다.
"韓을 정복했으니, 이제는 나머지 다섯 나라 중, 어느 나라부터 치는 것이 좋겠소? "
승상 이사가 대답한다.
"趙는 일찍이 先王께서 볼모로 잡혀 가 계셨던 원수의 나라이옵니다. 하오니 이번에는 趙를 쳐서
원수를 갚으심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옳은 말씀이오. 그러면 이번에는 어느 장수가 趙를 치겠소 ?"
그러자 대장군 왕전(王剪)이 아뢴다.
"臣이 비록 나이는 먹었사오나, 御命을 내려 주시면 일거에 趙를 정벌하고, 趙王의 수급(首級)을 御殿에 바치겠사옵니다."
그러자 秦王이 크게 기뻐하며, 왕전을 정조 원수(征趙元帥)로 임명하며,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오 ?"
하고 물었다.
"10 萬 명만 주시면, 50 萬명 이라고 선전하여 기필코 승전보를 올리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10萬 병사를 내줄테니, 필요하면 얼마든지 더 요청하시오."
왕전은 10 萬 군사를 50 萬 명이라고 소문을 내면서, 조나라의 國都 한단성 부근에 陣을 치고
북을 울리며 기세를 크게 과시해 보였다.
趙王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 하며 긴급 중신 회의를 소집한다.
"秦의 장수 왕전이 50 萬 대군을 이끌고 한단성 밖에 진을 치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
승상 이목(李牧)이 머리를 조아리며 안뢴다.
"대왕께서는 齊, 楚, 魏나라에 지원을 요청하는 사신을 급히 보내셔야 하옵니다. 그리하여
연합군을 구성하여 싸우면, 진군을 능히 격퇴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태부(太夫) 곽계(郭啓)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큰소리로 반박하고 나섰다.
"적군이 지금 당장 코 앞에 와있는데, 어느 세월에 사람을 보내 지원군을 요청한다는 말씀입니까?
오늘 같은 비상 시국에 이러한 대책을 세우다가는 나라의 멸망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목은 자기의 의견이 王의 면전에서 정면으로 반박 당하자 크게 怒하여 곽계(郭啓)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불 같은 호통을 쳤다."
"네 이놈 ! 발칙스러워도 분수가 있지. 어전에서 어찌 감히 <나라가 亡한다>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고 있느냐 ! 대왕 전하 ! 저 곽계란 놈은 역신(逆臣)이 분명하오니, 저놈을 당장 단죄해 주시옵소서."
사태가 이렇게 험악해지고 보니, 곽계도 잠자코 있지를 않았다.
"누가 누구더러 逆臣이란 말씀이오? 敵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는 이 마당에 나가 싸울 생각은 아니 하고,
남의 힘이나 빌려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람이 충신이라면, 이런 썩어빠진 충신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오 ?"
이렇게 强敵 秦軍을 눈앞에 두고, 趙나라 朝廷에서는 중신들 간에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趙王은 중신들의 언쟁을 듣고, 한숨을 쉬며 탄식을 한다.
"아아, 平原君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가 죽고 나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구나 ! 국론이 이렇게 분열되어 있으니, 이 나라를 과연 누가 지켜 줄 것인가 ! "
그것은 사실이었다. 평원군은 식객을 3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가 승상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는 , 秦나라도 趙나라를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백성들이 평원군을 존경하며 똘똘 뭉쳐 있어서, 그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원군이 1년 전에 죽고, 이목(李牧)이 丞相의 자리에 오르자 국가의 기강이 급격히 해이해지게 되었다. 이목은 國利民福 은 생각조차 않고, 오로지 개인의 영달에만 급급해 왔던고로, 백성들이 그를 따를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올바른 지도자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알 수가 있는 일이다.
趙王은 긴 한숨을 쉬며 승상 이목에게 물었다.
"우리가 요청하면 楚나 魏나라가 지원군을 쉽게 보내 줄 것 같기는 하오 ?"
"물론입니다. 우리가 요청하면, 그들이 지원군을 보내 줄 것은 틀림 없는 일이옵니다."
그러나 太夫 곽계는 그 말에도 반대를 하고 나섰다.
"대왕 전하 ! 소신은 승상의 그 말씀도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평원군께서 승상으로 계셨다면, 위(魏)의
신릉군(信陵君)이나 초(楚)의 춘신군(春申君) 같은 분들과 의기 상투(義氣相投) 하는 바가 있어서
지원군을 보내 주실 것이옵니다. 그러나 평원군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들이 누구를 믿고
지원군을 보내 줄 것 이옵니까 ?"
그야말로 이목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러자 이목은 전신을 후들후들 떨며,
곽계를 향하여 또다시 호통을 쳐댔다.
"네 이놈 ! 네놈이 나를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御殿에서 어찌 이런 모욕적인 말을 함부로 씨부려
대느냐 .. !
전하! 저놈을 당장 끌어내어 처단하셔야 하옵니다! "
그러나 곽계는 추호도 굽힘없이,
"이 몸은 이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나라를 위한 말씀이라면 무엇을 가리리오?"
"이놈이.. ! 아직도 아가리를 닥치지 못 하겠느냐.. ! 저놈을 당장.. ! "
一國의 帝王 앞에서 감히 있을 수 없는 극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최고 통치자의
무능에서 비롯된 분란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趙王은 두사람의 논쟁을 말리기라도 하는 듯, 두 손으로 허공을 짓눌러 보이며 말했다.
"나라를 위한 논쟁이니 고맙기는 하지만, 너무 흥분하지 말고 조용히들 상의합시다. 국론이 이렇게 분분해 가지고서야 目前의 국난을 어찌 타개해 나갈 수 있겠소?. 남에게 지원군을 請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 같으니, 郭 太夫의 말씀대로 우리 힘으로 타개할 방도를 찾는 것이 우선 해야할 일이 될 것 같소."
승상 이목이 다시 말한다.
"우리만의 힘으로 秦軍을 막아내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깨뜨리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옵니다.
더구나 敵將 왕전(王剪)은 천하의 명장이온데, 우리의 힘으로 그를 어찌 막아낼 수 있으오리까. 아무리 급해도 이웃나라의 힘을 빌려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럴까요 ?"
최후의 영단을 신속히 내려야 할 趙王 스스로가 줏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였다.
곽계는 결단력 없는 왕의 태도를 보고 너무도 한심스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이목에게,
"여보시오, 승상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주신다고 하였소. 싸워 보지도 않고 앉아서 망하자는 말씀을 어떻게 하시오 ? 당신 같은 패배주의자가 국록을 먹어 가며 국사를 좌지우지해왔으니, 이 나라가 이지경이 된 것이오. 새도 죽을 때에는 <짹> 소리를 지른다고 하는데, 2백 년 사직이 망해가는 이 판국에 어찌 남의 힘에 의지하여 싸움을 피하자는 말이오 ?"
조왕은 그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곽계에게 묻는다.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 싸우면 승산은 있겠소 ?"
"국운이 경각에 달려 있는 이 판국에, 어찌 승부를 예상하며 싸울 것입니까. 질 때 지더라도 싸울 수 있는데까지 싸워야 할 것이옵니다. 이대로 앉아서 망한다면 천추(千秋)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조속히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고 왕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이런 말을 덛붙였다.
"오늘 밤 야음을 기해 기습을 감행하면 승리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옵니다."
곽계는 秦과 싸워 보았자 승리할 가망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가 亡해가는 판국에, 어찌 싸워 보지도 않고 亡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있다는 것인가 ? 그러기에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기를 주장했을 뿐이었다.
趙王은 그제서야 용기를 얻었는지,
"그러면 싸우기로 할 터이니, 경이 앞장을 서 주시오."
하고 命한다.
곽계는 御殿을 물러나오면서 또 한 번 탄식을 한다.
("勇將 밑에 弱卒 없다고 했는데, 일국의 統治者가 저렇게 우유부단해 가지고서야, 어찌 국가를 경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 아아, 趙나라는 이제 망하게 되는구나 ..... )

태부 곽계는 왕명을 받기가 무섭게 모든 군사를 2대로 나눠 가지고, 그날 밤 삼경(三更)에 적진을 기습하기로 한다. 승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 비장한 출정이었다.
한편, 秦將 왕전은 그날 밤 초저녁에 중군(中軍)에 정좌하고 앉아서 점을 쳐 보니, 놀랍게도 삼형풍(三刑風)의 점괘(占卦)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 이것은 <적에게 야간 기습을 당하게 되리라>는 점괘라..
왕전은 그와같은 점괘가 나오자, 모든 장수들에게 긴급 소집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급히 소집된 장수들에게 작전 명령을 내렸다.
"오늘 밤, 적은 기습해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8 萬 군사를 2 萬 명씩 4 隊로 나눠 가지고, 2 隊는 한단성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敵이 성을 나오거든 그 사이에 성안으로 쳐들어가 城을 점령하고 趙王을 생포하라. 그리고 2 隊는 본진을 비워두고 그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적이 기습 해오면 포성(砲聲)을 신호로 일제히 들고 일어나 일거에 적을 쓸어 버려라. 나는 2 萬 군사를 거느리고 후방을 지키고 있다가, 도망쳐오는 적을 모조리 없앨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곽계가 군사를 몰고 적진으로 달려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대기하고있던 秦軍은 城안으로 밀물처럼 쳐들어가 한단성을 단숨에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 대궐로 진입하여 趙王을 간단히 생포해버린다.
곽계는 한단성이 함락된 줄도 모르고 군사들을 독려하여 어둠을 뚫고 적진으로 돌진해갔다.
그러나 막상 적진 속으로 돌진해 가 보니, 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게 아닌가?.
"앗차 ! 속았구나. 빨리 回軍하여 城을 지켜야 한다."
크게 당황한 곽계가 군사를 이끌고 本城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돌연 어둠 속에서 일발의 포성이 울리더니, 秦軍이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을 울리며 전후 좌우에서 노도와 같이 습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
곽계는 장검을 높이 치켜 들고 선두로 달려나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싸움은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싸움이다. 모든 장졸은 죽을 각오로 적을 무찔러라 ! "
그리고 자기 자신부터 장검을 휘두르며 적진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나 장졸들은 겁에 질려 곽계를 따라오기는 커녕 도망칠 곳을 찾기에 우왕좌왕 하는 것이었다. 곽계는 적진 속에서 장검을 정신없이 휘둘러대고 있는데, 그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심복 부하 열 명만이 곽계와 함께 싸우며, 곽계에게 큰소리로 간한다.
"장군님 ! 장졸들은 모두 도망을 가고 싸우는 사람은 우리들 뿐이옵니다. 승리할 가망이 없으니, 우리도 후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그러나 곽계는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장검을 휘두르며, 심복 부하들에게 대답한다.
"나는 죽으려고 싸우는 것이지,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亡하는 판국에 내가 무슨 낯으로 살기를 바라겠느냐?! 너희들만이라도 지금 당장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라. 나의 마지막 명령이다."
그러나 곽계의 심복 부하들은 한 명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함께 싸우다가, 마침내 곽계와 함께 장렬히 戰死하였다.
이리하여 趙나라는 開國한 지 11代 182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趙나라를 완전히 점령하였다는 승전 보를 받은 秦王 정(政)은 크게 기뻐하며, 곧 승상 이사와 大使 趙高를 대동하고 한단성에 정식으로 입성한다.
이때 왕전은 秦王의 행차를 맞아, 趙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땅에 엎드려 秦王을 영접하게 하였던바 땅에 엎드린 백성의 행렬이 무려 3百 里에 달했다고한다.
趙나라 백성들은 어제까지도 당당한 독립 국가의 백성이었지만, 나라를 잃음과 동시에, 진나라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으니, 國家 存立의 소중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秦王은 한단성에 入城하자, 일찍이 先王(장양왕)이 볼모로 잡혀 와 있었을 때, 先王을 핍박했던 무리와 그들의 三族을 모조리 색출하여 토갱(土坑) 속에 생매장 시켜버렸다.
이때 죽은 사람이 3 萬 여 명에 이르렀다고한다.
그러나 趙나라의 태부 곽계는, 나라를 지키려고 최후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戰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秦王은 크게 감동되었다.
"趙나라는 亡했으나 곽계만은 만고의 충신이라 그를 엄숙하게 장사지내주고 별도로 사당을 지어 모든 백성들의 귀감이 되게 하라."
는 特命을 내린다.
그런 후에, 秦王은 승상 이사에게 물었다.
"趙나라는 평정했 으나 아직도 네 나라가 남았는데 이제 어느 나라부터 치는 것이 좋겠소?"
이사가 대답한다.
"다음은 魏와 燕의 순서로 평정하시면 좋지않을까 하옵니다. 다만 그에 앞서서 먼저 제정해야 할 법령이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슨 법령이오 ? "
"남아 있는 국가를 평정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하므로 우리 관할하에 있는 모든 성인 남자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軍役을 지우게 하는 徵兵制를 실시하여야 하옵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그 법령을 곧 제정하도록 하시오."
이리하여 徵兵 制를 실시하게 되니,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징병 제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