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24
# 列國誌 24
**王翦의 智略
한편, 楚나라는 왕전이 60 萬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긴장한다.
楚의 大將軍 項燕은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적장 王翦은 우리가 지난번 격파한 李信 따위의 풋나기 장수와는 비교할 수없는 百戰 老將이다. 그는 胸中(가슴 속)에 어떤 戰略을 품고 있는지 모르는 名將이니 함부로 나가 싸우지 말고 城門을 굳게 닫고 일단 수비만 하도록 하라."
이처럼 楚軍도 守備 일변도의 전략으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敵의 의도를 알아보고자 때때로 싸움을 걸어 보기도 하였으나, 秦軍은 일체 應戰하지 않는 것이었다.
王翦은 날마다 장졸들과 숙식을 같이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무엇이든지 배불리 먹어라. 너희들이 잘 먹고 잘 싸워야만 전쟁에서 이길 수있다."
戰場에 나온 최고 사령관이 이렇게 나오니 사병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 입을 모아 양전을 칭송한다.
"장군님의 명령이라면, 신명을 바쳐 싸우겠습니다."
이와같이 왕전의 60 萬 大軍은 楚의 수도인 荊州城 앞에 陣을 쳐 놓기만 하고, 일체 공격할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城안에 갇혀 있다시피 한 楚軍이 답답해하며 스스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楚將 項燕은, 秦軍이 장기전을 펴고 있음을 알고,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王翦이 지략이 풍부한 백전 노장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아무 것도 아니로구나.
60 萬 大軍을 무슨 수단으로 먹여 살리려고 장기전을 편다는 말인가 ? "
그러나 첩자들의 보고를 들어 보니, 왕전은 장기전에 대비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農事를 짓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
더구나,
"秦軍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린 수확이 大豊"이라는 보고가 잇따르자..
사태가 이렇게 되어간다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쪽은 자기편 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楚將 項燕은 석 달이 넘도록 城안에 갇혀있다시피 하면서 기다렸는데 이제는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게되었다.
참다못한 項燕은 副將 마충(馬忠)을 불러 다음과 같은 군령을 내린다.
"敵은 싸울 생각을 않고 농사만 짓고 있다고하니, 이 기회에 우리가 먼저 敵을 공격하여 무찔러버려야 하겠다.
나는 은밀히 군사를 이끌고 적의 後方으로 돌아가 뒤에서부터 공격해 들어갈 것이니, 그대는 前면으로부터 적을 쳐 나오라. 이렇게 전후에서 협공하면 秦軍을 반드시 섬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項燕은 夜陰을 이용해 20만 대군을 이끌고 진군의 후방으로 은밀히 우회하였다.
그러나,
첩보망을 거미줄처럼 쳐 놓고 있는 王翦이 그런 적의 움직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全軍을 비상 소집해 놓고 다음과 같이 독전의 말을 吐했다.
"兵者養之百年用之一 (병자양지백년용지일)이라고, 군사는 하루를 위하여 백년동안 양성해오는 것이다. 敵은 오늘 밤 우리의 前方과 後方에서 동시에 협공해 올 것이다. 전 후방으로부터 일시에 공격을 받게 되면 견딜 수 없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60 萬 대군을 두 부대로 나누어, 내가 한 부대를 이끌고 後方에서 쳐들어올 敵軍을 기습작전으로 공격할 것이니, 다른 한 부대는 성하(城下)에 은밀히 잠복해 있다가 마충이 성문을 열고 나오거든 그 기회에 총공격을 퍼부어 형주성을 일거에 점령하도록 하라.
우리가 개선군으로 고국에 돌아가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반갑게 만나 볼 수 있느냐, 아니면 異國 땅, 楚나라의 황야에 떠도는 고혼(孤魂)으로 헤매야 하느냐는 오로지 오늘 밤 전투의 성패에 달려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같이 死力을 다하여 필승을 기해 주기 바란다."
王翦의 웅변은 피를 吐하 듯 간절하여, 60만 대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하였다.
(흡사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벌인 '7일 전쟁'이 생각나는데 왜그럴까?..
단 7 일만에 '모세 다얀' 장군이 이끄는 이스라엘 軍은 이집트의 전투기와 탱크를 고철덩이로 만들고 全 군사력을 괴사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은 그 전쟁이!..)
왕전이 군사들에게 행동 개시를 命하자, 부장(副將) 몽선(蒙先)은 30만 군사를 이끌고 은밀히 형주성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리고 왕전 자신도 30 萬 군사를 거느리고, 楚軍이 우회해 올 후방으로 이동하였다.
楚將 항연은 그런 줄도 모르고, 적을 뒤에서 공격하기 위하여 야음을 이용, 군사들을 급히 이끌어오고 있었다.
王翦은 楚軍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전격적인 기습작전을 개시한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예기치 못한 秦軍의 습격을 받게된 項燕은 크게 당황하였다.
이렇게 秦, 楚 兩國軍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함성과 비명 속에서 창검이 번개처럼 번쩍이고, 피아(彼我)를 구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아우성이 끝없이 교차되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혼전이 이어졌다.
楚將 項燕도 楚나라 제1의 명장인지라, 전격적인 기습에 놀라 당황하면서도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쪽이 先手를 쳐 공격해 오고, 반대쪽은 守勢에 몰린 방어 위주의 반격이라 ,
승패는 이미 '뻔할 뻔字'였다.^^
楚軍이 크게 수세에 몰려 무너지기 시작하자, 마침내 楚將 項燕은 王翦을 상대로 敵將끼리 1 : 1의 싸움으로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項燕은 대장기를 들고있는 王翦을 향하여 말을 달려 나갔다.
10합, 20합, 30합 ~...項燕과 王翦은
불꽃 튀는 창검 대결로 서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가 秦將 왕전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말머리를 돌려 쫒기는체 후퇴하기 시작하는데..
項燕은 승부는 바로 이때다 하고,
"네 놈이 도망을 가면 어디까지 가느냐? ...."며 말에 채찍을 가하여 쫓아가 왕전을 長槍으로 찌르는 순간, 왕전이 날세게 몸을 숙여 옆으로 피하면서 長劍으로 項燕의 가슴을 가르니, 항연은 왕전의 불의의 일격에 피를 쏟으며 말위에서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百戰 老將 王翦의
虛虛實實戰法 (거짓 쫒김)에 속아서 楚의 名將 項燕이 어이없게도 속절없이 순식간에 戰死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자 왕전이 楚 軍을 향하여 크게 외쳤다.
"너희들의 大將軍 項燕은 이미 내 손에 죽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항복하면 죽이지 않을 것이니,
모든 楚軍 將卒들은 무기를 버리고 깨끗이 항복하라."고 외치니, 楚軍 들은 크게 경악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항복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항복이란, 군인으로서 가장 치욕적인 굴복이었기 때문이다.
王翦은 일찍이 敗將들의 그러한 심리를 파악하고 있었음으로,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외친다.
"敗戰의 책임은 오로지 최고 지휘관에게만 있다. 모든 將卒이 함께 질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귀중한 목숨을 헛되이 버리지 말고, 모두들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보존하라.
누구든지 항복하는 자는 곧바로 집으로 돌려 보내, 사랑하는 부모 처자를 만나도록 해주겠다."
왕전의 이같은 제안은 모든 楚軍에게 큰 동요를 일으켰다.
그러자,..
楚軍 장수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한 장수가 창검을 내던지며 말에서 뛰어내려
왕전 앞에 엎드리자 , 그 뒤로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칼과 창을 버리고 왕전 앞에 무릅을 꿇는다.
文字 그대로 말할 필요도 없는 '무조건 항복'이었다.
왕전은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그대들은 전쟁에는 졌으나, 내 어찌 그대들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을 약속대로 곧 고향으로 가게해주겠소."
그러자, 槍劒을 버리고 항복한 楚軍 將卒들은 왕전을 우러러 보며 ,
"저희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신 장군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하며, 땅바닥에 엎드려 왕전을 향하여 연이어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왕전은 후방으로 공격해 오던 楚軍의 뒷수습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형주성으로 달려가니..
형주성에서는 副將 몽선이 이미 城을 장악한 後, 백성들에 대한 선무 공작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었다.
"楚王 부추(負芻)는 어찌 되었는가 ?"
왕전의 질문에 몽선이 대답했다.
"마충의 군사들을 괴멸시키고, 荊州城으로 들어오자마자, 楚王 負芻를 잡아 즉석에서 斬首해 버렸습니다."
"수고했네. 이로써 楚는 완전히 鎭滅되었구나!.. "
이로써, 戰國七雄 중, 강대국으로 자처해 오던 楚나라는 건국한지 41代 892 年 만에 秦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王翦이 마침내 楚를 정복한 後, 楚를 '楚郡'으로 개칭하여, 몽선으로 하여금 '楚郡'을 지키게 한 후, 자신은 나머지 군사들을 거느리고 함양으로 귀환한다.
그리고 秦王에게 승전 보고를 올리며,
"小將이 大王의 命을 받들어 楚를 정벌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대왕께서는 老臣의 소원대로 莊園을 하나 하사해
주시옵소서."
하며 出戰에 앞서 소망했던 소원을 다시 아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의구심을 사지 않기 위한 묘책이었다.
秦王은 王翦의 戰功을 크게 치하하며
"장군이 아니었으면 저 强한 楚를 어찌 이처럼 쉽게 정복할 수가 있었겠소. 장군의 노력으로 天下 統一의 大業이 성큼 눈앞에 다가온 셈이오. 장군의 소원대로 장원을 하사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侯爵으로 封하여 국가 최고의 원로로 대우하겠소이다."
이리하야...,
王翦은 秦王으로부터 어떤 의심이나 견제도 받지 않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 미래를 바라보는 王翦의 처세술은 亂世를 살아가는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