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書藝 /江雪 - 柳宗元
강설(江雪)...유종원(柳宗元)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첩첩 산중에 새조차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 (만경인종멸) 아득한 길에는 인적도 끊겼는데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위 도롱이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눈발 속에 홀로 드리운 낚싯대
중국 당(唐)나라 시인 유종원의 대표적인 산수시다. 헌종(재위 805~820) 즉위 후 왕숙문(王叔文)과 함께 한 영정(永貞) 연간의 개혁이 실패하고, 유종원이 후난성(湖南省)의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되었던 시기에 씌어진 작품이다.
속세를 초월한 듯 대자연에 은거한 고기잡이 늙은이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 관조적으로 노래하고, 정치적 실의와 고독감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시의 형식은 오언절구(五言絶句)로 분류되는 정형시로 기승전결의 전4구로 이루어졌다. 제1,2,4구의 마지막 글자 '絶(절)·滅(멸)·雪(설)'이 압운을 나타내는 운자(韻字)다.
시의 제재는 눈 내리는 강의 풍경이며, 주제는 대자연 속에 묻혀 사는 은자(隱者)의 모습이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산수경치의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지며, 객관적 세계를 담담하게 그려내 적막한 시적 분위기와 시인의 고독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 점을 들 수 있다.
기구와 승구에 대구법이 사용되었다.
제1,2구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萬徑人踪滅(만경인종멸)"은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모든 길엔 사람 자취가 끊어졌다는 뜻으로, 눈 오는 날의 산과 들의 정적감을 그리고 있다.
'천산(千山)'과 '만경(萬徑)'은 제3,4구의 '고주(孤舟)'와 '독조(獨釣)'의 정황을 살리는 효과적인 배경으로 작용한다. 제3,4구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은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가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한다는 뜻이다.
노인의 모습은 제1,2구에 묘사된 대자연에 대비되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여기서 '사립옹(蓑笠翁)'은 중앙정계에서 좌천된 작가의 처지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종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산수시를 잘 지어 도연명(陶淵明)에 비견되며, 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과 함께 당시(唐詩)의 자연파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 내리는 강 위에 배를 띄워 낚시를 드리운 어옹의 모습을 노래해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 역시 정신적 좌절과 울분을 인내하면서 대자연 속에 시정신을 개화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 시에 묘사된 정경은 중국 남송의 화가 마원(馬遠)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를 비롯해 화제(畵題)로 자주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