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천마을에 가다 팔우요산회 2019.3.20
아파야 청춘’이라는 ‘꼰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사고 쳐야 청춘’ ‘못 먹어도 고’라며 한 번 아니, 두 번 세 번 꿈을 향해 날아보라고 이 시대 청춘을 다독거린 드라마 ‘쌈, 마이웨이’. 2017년 KBS에서 방영된 ‘쌈, 마이웨이’는 대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비교적 작은 규모 드라마였지만 마지막 회 13%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료했다. 꿈 앞에 좌절하고 결혼 앞에 망설이는 이 시대 대다수 청춘의 자화상이 투영된 고동만(박서준 분) 최애라(김지원 분) 김주만(안재홍 분) 백설희(송하윤 분)의 캐릭터와 그들의 알콩달콩 로맨스가 공감을 이끌었다.
네 주인공이 사는 동네는 서울의 한 ‘산동네’로 설정됐다. 산동네라지만 궁상맞기보단 낭만이 가득했다. 주인공들이 사는 ‘남일빌라’ 옥상에 집주인 몰래 만든 ‘남일바’가 핵심이었다. 그들의 아지트 남일바는 평상 하나가 전부였지만 천금을 줘도 사지 못할 야경 속에서 ‘떡맥’(떡볶이에 맥주)을 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남일빌라 외부는 서울에서 촬영됐지만, 남일바는 부산에서 촬영됐다. 바로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호천마을’이다.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호천마을 한 주택 옥상에서 남일바 신을 찍었다. 전부터 야경 촬영 명소로 사진가들에게 알음알음 소문나 있던 호천마을은 ‘쌈, 마이웨이’의 남일바 촬영지로 입소문이 더 났다.
호천마을은 호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동구 안창마을과 바로 이웃하고 있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산세가 험하고 산림이 울창했다고 한다. 호랑이가 출몰하는 골짜기(범내골 혹은 호계)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호천마을’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조용한 동네였던 호천마을은 멋진 전망과 예스러움으로 최근 ‘쌈, 마이웨이’를 비롯해 ‘라이프 온 마스’ ‘제3의 매력’ ‘그냥 사랑하는 사이’ 등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범이 출몰하던 동네에 걸어 올라가기란 만만치 않다. 작은 동네라 공영주차장 시설이 부족해 ‘합법 주차’는 거의 불가능하다. 87번 버스를 타고 마을까지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길 건너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87번 버스를 타면 일곱 정거장 만에 호천마을에 도착한다.
호천마을 정거장에 내리면 왼쪽으로 ‘호천문화플랫폼’이 보인다. 공영주차장 옥상에 설치된 작은 공간인데 지역 수공예 작가들이 만든 제품을 전시·판매하고 마을주민 대상 문화교육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호천문화플랫폼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는데 이곳이 특별하다. 드라마 속 고동만의 코치인 황장호 관장과 애라 엄마 황복희가 술잔을 나누는 장면을 찍었고, 지금은 남일바를 그대로 재현한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실제 남일바 촬영지가 개인 소유 주택의 옥상이다 보니 관광객을 무한대로 받을 수 없어 부산시와 부산진구가 촬영지와 멀지 않은 곳에 남일바를 다시 만들었다.
남일바 재현장에는 ‘남일바’가 쓰인 네온사인과 평상, 병으로 만든 장식물, ‘쌈, 마이웨이’ 주인공들의 사진과 사인이 있어 ‘인증샷’ 배경으로 훌륭하다. 남일바 재현장 말고도 ‘쌈, 마이웨이’ 글자로 만든 조각물과 고동만 최애라의 모형이 인증샷 배경으로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홍희진(21) 박혜진(21) 씨는 “‘쌈, 마이웨이’ 드라마를 좋아했는데 호천마을 야경을 찍은 블로그 글을 보고 꼭 한번 오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호천문화플랫폼을 내려와 호랑이를 주제로 한 아기자기한 그림이 자리잡은 벽화거리를 지나면 실제 남일바 촬영 주택이 나온다. 평상과 소주병으로 만든 장식물이 남아 있다. 야경은 주로 내려다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옥상은 야경에 포근하게 둘러싸인 형상이라 그 독특함이 더욱 인기를 끈 것 같았다. 이곳은 주민이 거주하는 집이라 밤 9시 이후에는 출입할 수 없다.
남일바 실제 촬영지 바로 옆에 호천생활문화센터가 있다. 드라마 속에서 고동만이 최애라에게 반지를 선물한 곳이다. 센터 내부에 카페 ‘끄티’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수십 가지 커피 종류가 있고, 커피 내리기 체험도 할 수 있다. 통유리로 보이는 시원한 전망도 매력 포인트다. 센터 옥상에서 보는 전망도 남일바 실제 촬영지 못지않다.
호천문화플랫폼 가까이 있는 ‘180계단’도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아랫마을에서 윗마을을 단숨에 오르내릴 수 있는 180개 계단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가파르다. 조심해서 내려가면서 옛 정취가 남은 나만의 포토존을 찾아보자. 실제로 180계단 사이로 난 골목의 분홍빛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던 중국인 관광객 후앙메이롱(30) 씨와 차이지아니(30) 씨는 “‘웨이보’에 올라온 호천마을 소개 글을 보고 찾아왔다. ‘쌈, 마이웨이’ 드라마를 무척 좋아한다. 멋진 여행지”라며 즐거워했다. 부산진구 관광위생과 고이현 주무관은 “호천마을에 한국의 젊은 관광객은 물론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관광객까지 많이 찾아 오고 있다. 앞으로 주민과 함께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즐길 거리를 더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제신문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