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조선왕조실록(7)

jahun 2025. 2. 23. 17:11

조선왕조실록(7)

개국 - 5 - 위화도회군과 최영의 죽음.

최영은 이성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동정벌 구상을 밀고 나갔고 최영을 총사령관 그 밑에 부사령관으로 이성계와 조민수를 임명한 후 총동원령을 내려 군사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최영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총사령관인 자신이 개경에 남은 채 고려의 모든 군사를 요동정벌 반대 의사를 명백히 밝힌 이성계에게 내어 준 것입니다. 설마 쿠데타를 일으키랴 했을까요? 암튼 위화도에 이른 이성계는 예측대로 장마철이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으면서 거듭하여 4불 가론을 앞세워 회군을 허락해 줄 것을 개경에 요청하였으나 최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위화도에서의 회군 ~생사를 건 이성계의 도박~ 그 마음은 어땠을까? 우왕이 원나라를 멸망시킨 강대국 명나라 주원장을 손 좀 따끔히 보라고 시켰으나 이성계가 4불 가론을 핑계 삼아 꼬리 내리는 건 당연지사 패전의 책임을 물어 부하들까지 참수당할 거고 최영은 자연스럽게 정적을 정리할 수 있는 상황, 이성계는 이래죽나 저래죽나~ 에라~ 차라리 이참에 역성혁명의 시점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날, 거듭된 회군 요청과 거부를 명분 삼아 이성계는 드디어 전군을 거느리고 마치 개선장군 같은 기세로 개경으로 회군을 시작하였고 이즈음 볼모로 있던 이성계의 가족은 소리 없이 이성계의 군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회군이 사전에 계획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상 고려의 전 군을 거느리고 입성한 이성계는 가볍게 고려 조정을 접수한 후 최영을 죽이고 실권을 잡았고 이 와중에 우왕은 이성계를 기습 제거하려다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성계 일파는 이어서 우왕과 그 아들인 창왕을 한 번에 엮는 우왕 부자 내란 음모 사건을 만들어 우왕과 창왕을 한 번에 정리한 후, 45세의 울보 정창군을 왕으로 세우니 이 자가 사실상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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