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水鍾寺(수종사) / 李明漢(이명환)

jahun 2019. 2. 10. 12:21







水鍾寺(수종사) / 李明漢(이명환)

 

暮倚高樓第一層(모의고루제일층) - 저물녘 높은 다락 제일층에 기대이니 

石壇秋葉露華凝(석단추엽로화응) - 석단의 가을 잎에 이슬 꽃이 엉겼네


群山袞袞蟠三縣(군산곤곤반삼현) - 뭇산들 울멍줄멍 세 고을에 서려 있고 

大水滔滔謁二陵(대수도도알이릉) - 큰 강물 도도히 이릉에 문안한다


烟際喚船沽酒客(연제환선고주객) - 안개 속에 배 부름은 술 사려는 나그네요 

月邊飛錫渡江僧(월변비석도강승) - 달 아래 석장 날림 강 건너는 스님일세


酣來暫借蒲團睡(감래잠차포단수) - 술 얼큰해 포단을 잠깐 빌려 잠을 자니 

古壁薄花照佛燈(고벽박화조불등) - 옛 벽의 엷은 꽃이 불등에 비치누나

倚 의지할 의, 壇 제터 단, 凝 엉길 응, 羣 무리 군, 袞 곤룡포 곤, 蟠 서릴 반,  滔 물 넘치 도, 謁 아뢸 알, 烟 연기 연, 沽 팔 고, 酣 즐길 감, 暫 잠깐 잠, 借 빌릴 차,

蒲 부들 포

水鍾寺

                                          -李明漢


暮倚高樓第一層 [모의고루제일층]저녁 무렵 높은 누각 제일 높은 층에 기대보니

石壇秋葉露華凝 [석단추엽로화응]주춧돌가 가을잎엔 이슬이 맺혀있네

羣山袞袞蟠三縣 [군산곤곤반삼현]산들은 끝없이 이어져 세고을을 두르고 있고

大水滔滔謁二陵 [대수도도알이릉]큰 강은 두 언덕을 보며 도도히 흐르네

烟際喚船沽酒客 [연제환선고주객]나그네 안개 낀 강가에서 배를 불러 술을 사고

月邊飛錫渡江僧 [월변비석도강승]스님 달빛 아래 석장을 휘저으며 강을 건너네

酣來暫借蒲團睡 [감래잠차포단수]술에 취해 포단에서 잠시 잠을 자려 하는데

古壁蓮花照佛燈 [고벽연화조불등] 오래된 벽의 연꽃이 불등에 비치네


袞袞:① 많다 ② 권세가 대단한 모양 ③ 수두룩하다 ④ 끝이 없다

:서릴 반 / ① 서리다 ② 쌓다 ③ 두르다 ④ 모이다 

蒲團:부들로 짜서 만든 둥근 방석

佛燈:[불교] 부처 앞에 바치는 등불


李明漢 (천장(天章), 백주(白洲))


1595(선조 28)∼1645(인조 23).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문신. |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자는 천장(天章), 호는 백주(白洲)이다. 증 영의정 순장(順長)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삼등현령(三登縣令) 계(0x9940)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정구(廷龜)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권극지(權克智)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1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전적·공조좌랑에 이르렀다. 앞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병조좌랑·교리 등을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에 제수되었다. 이어 이조좌랑이 되어 어사로 관동(關東)에 나가 서리들의 정치와 백성들의 폐해를 살폈다. 다시 옥당(玉堂)에서 근무하다가 이조로 옮겨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사가독서(賜暇讀書 :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를 했다. 이곳에서 승문원제술관(承文院製述官)·한학교수(漢學敎授)·교리·사국수찬(史局修撰) 등을 겸대하다가 이조정랑이 되었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공주로 모시고 가서 이식(李植)과 함께 팔도에 보내는 교서를 지었다. 이어 응교·사간에 승진된 뒤 검상(檢詳)·사인(舍人)·집의·이조참의로 승진했다. 다시 사가독서를 허락받고 호당에 들어갔고 승문원부제조가 되었다.


그 뒤 병조참의·우승지·형조참의·좌승지·남양부사·대사간·대사성·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639년(인조 17) 도승지 등을 거쳐 1641년 한성부우윤·대사헌이 되었다.

이 해 도승지로서 홍문관·예문관의 양관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643년 이경여(李敬輿)·신익성(申翊聖) 등과 함께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瀋陽)에 잡혀가 억류되었다.

이듬 해 세자이사(世子貳師)가 되어 심양에 가서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1645년에 명나라와 밀통한 자문(咨文)을 썼다 하여 다시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풀려나와 예조판서가 되었다.

아버지 정구, 아들 일상(一相)과 더불어 3대가 대제학을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병자호란 때 심양까지 잡혀갔던 의분을 노래한 시조 6수가 전한다. 저서로 ≪백주집≫ 20권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송자대전(宋子大全)』
  • 『백헌집(白軒集)』
  • 『청음집(淸陰集)』
  • 『백강집(白江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