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수호지 198회

jahun 2023. 6. 30. 17:40

유문충은 개주성을 잃고 성을 나가 우옥린·곽신·성본·상영의 보호를 받으며 달려가다가, 이규와 노지심을 만났다. 이규가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송선봉의 명을 받고 너희 좆같은 놈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이규가 쌍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어 곽신과 상영을 베었다. 유문충은 깜짝 놀라 혼이 달아난 듯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노지심의 선장에 맞아 투구와 머리가 한꺼번에 박살이 났다. 2백여 명의 군사들도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우옥린과 성본만 겨우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 노지심이 말했다.

“저 당나귀 같은 두 놈은 살려두자! 저놈들이 가서 보고하도록 해 주자.”

세 적장의 수급을 자르고 말과 갑옷 등을 노획하여 성으로 돌아갔다.

한편, 송강은 대군을 거느리고 개주성으로 들어가, 명령을 내려 먼저 불부터 끄게 하고 주민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다. 장수들이 모두 와서 공을 바쳤다. 송선봉은 군사들을 시켜 적장의 수급을 각 성문에 내걸게 하고, 날이 밝자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무하였다.

삼군의 인마를 모두 개주성으로 불러들여 주둔하게 하고, 장병들에게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 공적부에 석수·시천·해진·해보의 공을 둘째로 올리게 하였다.

송강은 표문을 써서 개주를 얻었음을 조정에 알리고, 창고에 있는 금은보화를 동경으로 보냈다. 그리고 따로 숙태위에게 서신을 써 보냈다.

때는 섣달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송강은 군무를 처리하느라 사나흘이 지났는데, 홀연 장청이 병이 나아 안도전과 함께 왔다. 송강은 기뻐하며 말했다.

“잘됐네! 내일은 선화 5년 첫날이니, 모두 모이도록 하세.”

다음 날 날이 밝자, 장수들은 모두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송강은 형제들을 인솔하여 대궐을 향해 하례를 올렸다. 다섯 번 절하고 세 번의 고두례(叩頭禮)를 마친 다음, 관복을 벗고 붉은 비단 전포로 갈아입었다.

92명의 두령과 새로 항복한 경공이 나란히 서서 송강에게 절을 올렸다. 송선봉은 연석을 마련하여 새해를 경축하는 연회를 열었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송강에게 잔을 올리고 축수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돈 다음, 송강이 장수들에게 말했다.

“여러 형제들이 노력한 덕분에 세 성을 되찾았소. 또 설날을 맞이하여 이렇게 모두 모여 즐기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오. 다만 공손승·호연작·관승과 수군두령 이준 등 8명, 능천을 지키고 있는 시진과 이응, 고평을 지키고 있는 사진과 목홍, 이렇게 15명 형제가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구려.”

송강은 군중의 두목과 2백여 명의 군역을 불러 각각 따로 상을 내리고, 양고기와 술을 가지고 위주·능천·고평에 있는 두령들에게 갖다 주고 아울러 승첩을 전하게 하였다. 분부가 미처 끝나기 전에 세 곳의 성을 지키고 있는 두령들이 보낸 사자들이 당도하여 말을 전했다.

“선봉의 명을 받들어 성을 지키고 있느라 직접 가서 세배 드리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소식을 들으니, 형제들을 직접 본 것이나 다름없네.”

사자들에게 상을 내리고, 형제들과 마음껏 마시다가 잔뜩 취하여 해산하였다.

다음 날, 송선봉은 동쪽 교외로 봄맞이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날 자정은 입춘 절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날 밤 동북풍이 불면서 짙은 구름이 깔리더니 함박눈이 내렸다. 다음 날 두령들이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지문성(地文星) 소양이 두령들에게 말했다.

“이 눈꽃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꽃잎이 하나인 것은 봉아(蜂兒), 둘인 것은 아모(鵝毛), 셋인 것은 찬삼(攢三), 넷인 것은 취사(聚四), 다섯인 것은 매화(梅花), 여섯인 것은 육출(六出)이라 합니다. 눈은 본래 음기(陰氣)가 응결한 것으로, 육출이 되는 까닭은 음수(陰數)에 응하기 때문입니다. 입춘 이후에는 모두 매화 아래만 내리고 육출은 내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입춘인데 아직 겨울과 봄이 바뀌는 때라서 다섯인 것도 있고 여섯인 것도 있네요.”

그 말을 들은 악화가 처마 밖으로 나가 검은 옷소매에 떨어지는 눈을 받아 자세히 보니 진짜로 눈꽃의 잎이 여섯 개인 것도 있고 다섯 개인 것도 있었다. 악화가 연달아 소리쳤다.

“과연! 과연!”

사람들이 모두 둘러서서 보고 있는데, 이규의 더운 콧김 때문에 눈이 모두 녹아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놀란 송선봉이 다가와서 물었다.

“형제들은 뭣 때문에 그렇게 웃는가?”

사람들이 말했다.

“눈꽃을 보고 있었는데, 흑선풍의 콧김이 모두 녹여 버렸습니다.”

송강도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의춘포에 술자리를 마련해 두라고 분부해 두었소. 형제들은 모두 가서 즐기도록 합시다.”

원래 개주성 동쪽에 의춘포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우향정(雨香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앞에 노송나무·측백나무·소나무·매화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그날 저녁 두령들은 우향정에서 웃고 떠들며 술잔을 나누었다. 노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저물어 등불을 켰다. 송강은 취흥이 올라 지난날의 어려웠던 일을 얘기했다.

“나는 본래 운성현의 작은 벼슬아치로서 큰 죄를 범했는데, 여러 형제들이 창칼의 위험 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를 구해 주었소. 강주에서 대종 형제와 함께 사형장에 끌려갔을 때는 거의 죽은 귀신이 다 되었었소. 그런데 오늘 이렇게 나라의 신하가 되어 나라를 위해 힘을 쓰고 있으니,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꿈만 같소!”

송강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대종과 화영을 비롯하여 어려움을 함께 겪었던 형제들도 그 말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규는 술을 많이 마셔 아주 취해 있었는데, 두령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면서 두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문득 생각했다.

“바깥에는 눈이 아직 그치지 않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자신이 정자 밖으로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정자 밖을 살펴보다가 이상해서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 눈이 안 왔는데, 그냥 안에만 앉아 있었구나! 어디 저쪽으로 한번 가 봐야겠다.”

이규는 의춘포를 떠나 잠깐 사이에 성 밖으로 나왔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아차! 도끼를 깜빡 잊고 안 가져왔구나!”

그리고는 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어보니, 도끼가 꽂혀 있었다. 남북도 분간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앞에 높은 산이 하나 나타났다. 잠깐 사이에 산 앞에 당도했는데, 산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머리에는 접힌 두건을 쓰고 몸에는 담황색 도포를 입었는데, 이규에게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장군께서 산보를 하시려면 이 산을 돌아가 보십시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이규가 말했다.

“형씨! 이 산 이름이 뭡니까?”

“이 산은 천지령(天池嶺)입니다. 장군께서 산보하고 돌아오시면, 여기서 다시 뵙겠습니다.”

이규가 그 사람의 말대로 산을 돌아가 보았더니, 홀연 길옆에 장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장원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이규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10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곤봉과 무기를 들고 집안의 가구와 집기들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덩치 큰 한 사내가 욕을 퍼부었다.

“늙은 소 같은 놈아! 빨리 딸을 내놓아 내 아내로 삼게 해라.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는 말이 한 마디라도 나온다면, 너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장원으로 들어가서 그 말을 들은 이규는 가슴 속에서 불길이 치솟고 입에서 연기가 날 것만 같이 소리쳤다.

“이 좆같은 놈아! 어째서 남의 딸을 강제로 뺏으려 하느냐?”

그 사내가 소리쳤다.

“우리가 저 늙은이에게 딸을 달라고 하는데, 네놈이 왜 간섭이냐!”

이규는 크게 노하여 도끼를 뽑아 들고 휘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끼를 한번 휘둘렀는데 두세 명이 쓰러졌다. 나머지가 달아나자, 이규가 쫓아가면서 도끼를 계속 휘둘러 거의 다 베어 버렸다. 땅바닥에는 시체가 가득해졌고, 단 한 사람만 도망쳤다.

이규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규가 대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가 보니, 백발노인이 노파와 함께 울고 있었다. 노인은 이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아이고! 또 왔네!”

이규가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길을 가다가 억울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들어와 보았습니다. 앞에 있던 좆같은 놈들은 내가 모조리 죽여 버렸으니, 나와서 보십시오.”

노인은 벌벌 떨면서 밖으로 나와 보고서, 이규를 붙잡고 말했다.

“비록 나쁜 놈들을 죽이긴 했지만, 나도 연루되어 관아에 끌려가게 생겼습니다.”

이규가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은 이 시커먼 놈이 누군지 모르시는구먼. 나는 양산박의 흑선풍 이규올시다. 지금 송공명 형님과 함께 조칙을 받들어 전호를 토벌하고 있는데, 성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갑해서 산보를 나왔습니다. 그까짓 좆같은 놈들 몇 천 명을 죽인들 누가 막을 수 있겠소!”

노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장군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셔서 좌정하시지요.”

이규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탁자 위에 술과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노인은 이규를 윗자리에 앉히고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두 손으로 올리면서 말했다.

“장군께서 제 딸을 구해 주셨으니, 이 잔을 받으십시오.”

이규가 잔을 받아 마시자, 노인은 또 한 잔을 권했다. 잇따라 너덧 잔을 마시고 있는데, 좀 전에 울고 있던 노파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나와 두 손을 마주잡고 복을 빌면서 말했다.

“장군께서는 송선봉의 부하이시고 또 이렇게 뛰어나시니, 못 생겼다고 버리지 않으시면 제 딸을 장군의 배필로 드리고 싶습니다.”

이규는 그 말을 듣자,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 더러운 것들아! 내가 너희 딸을 취하려고 저 좆같은 놈들을 죽인 줄 아느냐? 주둥아리 닥쳐라!”

발로 탁자를 차서 엎어 버리고 문 밖으로 나왔다. 그때 한쪽에서 표범처럼 생긴 덩치 큰 사내가 나타나 박도를 들고 이규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야! 시커먼 도적놈아! 달아나지 마라! 우리 형제들을 어째서 모두 죽였느냐? 우리는 저 집의 딸을 원했을 뿐인데, 왜 네가 간섭하느냐?”

이규는 크게 노하여 도끼를 휘두르며 맞서 싸웠다. 20여 합을 싸우다가 사내는 당해내지 못하고, 도끼를 밀쳐내고 박도를 끌면서 나는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