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387)

jahun 2022. 11. 7. 18:34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387)

공명의 여섯 번째 기산 출정

공명은 목문도에서의 승리를 뒤로하고, 이엄(李嚴)이 보낸 편지 내용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한중(漢中)으로 철수하였다. 위나라와 오나라가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이엄의 말의 사실이라면, 공명의 계획에 큰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공명이 여기 저기에서 정보를 모으려는 그때, 성도(成都)에서 상서 비위(尙書 費褘)가 공명을 찾아왔다. 공명이 기산으로 출정하면서 궁중의 일을 맡겼던 비위가 갑자기 찾아오자 공명은 자신이 위오동맹의 진상을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무슨 급박한 일이 생겼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대가 무슨 일로 찾아왔소?"

공명이 묻자, 비위는,

"폐하께서 저를 승상께 보내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승상이 군사를 한중으로 돌리신 연유를 궁금해하고 계십니다."

하고, 한중을 찾은 목적을 말한다.

공명은 '아직 폐하께 위오동맹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하고 생각하며,

"요 근래 들어 군량 보급이 신통치 않을 뿐더러, 형주 태수 이엄의 말에 의하면 우리와 동맹을 맺었던 오가 위와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이 돈다기에 사실을 알아보려고 기산에서 철수했소. 오가 위와 동맹을 맺었다면 틀림없이 우리의 국경을 침범할 기회를 노릴 것 아니오?"

하고, 말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공명의 말을 듣고 비위는 어리둥절함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상한 일입니다. 얼마 전 이엄이 폐하께 자기는 기산으로 군량을 보내려고 모두 준비해 놓았는데 승상이 아무 이유도 없이 회군을 하셔서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보고를 올렸는데... 폐하께서는 이 보고를 들으시고는 승상께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비위의 말에 공명 또한 의아했다.

"뭐? 이엄이 폐하께 그리 보고했단 말이오? 위오동맹을 나에게 말해 준 것이 바로 이엄인데... 진상을 알아봐야겠소."

"추측하건데... 이엄이 군량 마련이 여의치 않자 그 책임을 승상께 전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명의 말을 듣자마자 비위는 공명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설마... 그랬을리가 있겠소?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친다는 것이...... 아닐 것이오..."

공명은 이엄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속히 사실 관계를 알아보아야겠다 싶어, 성도로 돌아와 급히 이엄을 불렀다.

"지금 상황이 어찌 된 것이오? 설명해보시오."

공명은 진상을 알지 못하면서 사람을 의심부터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엄에게 차분하게 묻는다.

이엄은 공명의 물음에 재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떼서 말하기를,

"저... 군량을 제 때 마련하지 못하여 승상과 폐하께 거짓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공명은 설마했던 생각이 진실로 확인 되자 크게 노한다.

"이 놈이! 네 놈이 네 한 몸 살자고 나랏일을 망쳤다! 감히 위오동맹을 거들먹거려? 당장 이 놈을 데려가 목을 베라!"

공명의 지시를 옆에서 듣고 있던 비위가,

"승상, 이엄은 선제(先帝: 유비)가 탁고(託孤)하신 분이잖습니까. 선제를 생각하시어 너그러이 용서하심이 어떠시겠습니까?"

하고, 공명에게 말한다.

선제의 부탁이었다는 비위의 말에 공명은 순간 움찔한다. 생각해보니 그러하였다. 나라의 흥망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에 이엄의 죄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을만큼 큰 것이었지만 공명은 차마 제 명으로 이엄을 처형할 수는 없었다.

"흠... 그렇다면 이엄에 관한 문제는 그대에게 부탁하겠소."

결국 공명은 고민 끝에 비위에게 일처리를 맡겼다.

공명이 한중으로 돌아온 까닭을 알게 되었으니 비위는 그동안의 사정을 표문으로 적어 후주에게 올렸다.

비위의 표문을 읽은 후주 또한 공명과 마찬가지로 화가 나서는,

"이엄 그 자를 당장 끌어다 머리를 베어라!"

하고, 명을 내린다.

후주 곁에 있던 참군 장완(參軍 蔣琬)이 비위가 공명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후주에게 한다.

"폐하, 이엄은 선제께서 뒷일을 부탁하셨던 신하입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옵소서."

후주도 아버지의 유언이라는 장완의 말에 이엄의 목을 벨 수는 없었다.

선황제의 유언 덕분에 이엄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후주는 큰 아량을 베풀어 이엄의 목을 베는 대신 관직을 삭탈하여 서인으로 삼고, 재동군(梓潼郡)으로 귀양을 보냈다.

이엄이 큰 죄를 지었으나 귀양을 갔다는 이엄의 소식을 듣고 공명은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결국 선제의 뜻을 생각하며 이엄의 아들 이풍(李寷)을 장사(長史)로 앉혀서 제 아비가 하던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이엄의 거짓 제보로 기산에서 철수하여 성도에 머물렀던 공명은 그 이후로도 3년을 더 성도에서 지냈다.

촉국의 여러 아쉬운 상황들 중 하나가 공명 외에는 이렇다 할 명신(名臣)이 없다는 것과, 후주 유선이 영명하지 못하여 사리판단(事理判斷)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공명이 중원 진출을 위하여 성도를 비운 사이에 내정(內政)이 극심히 문란해져 있었고,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위(魏)와의 싸움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말먹이와 군량, 무기를 마련하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공명이 성도에 머무는 동안 공명이 장수와 군사, 백성을 가릴 것 없이 두루 보살피니 모두가 공명의 은덕을 칭송하였다.

공명은 지금이야 말로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했다.

공명은 비장한 각오로 후주 앞에 선다.

"폐하, 신이 군사를 보살핀지 어느덧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장군들과 군사들이 저를 믿고 잘 따라준 덕에 마초(馬草)와 군량이 풍족해졌고, 무기도 완비되었으며, 인마(人馬)가 웅장해졌습니다. 이 정도 준비라면 가히 위(魏)를 정벌할 수 있겠기에 이번에 다시 기산으로 나아가 간사한 역적을 없애고 중원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는 폐하를 뵙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있습니다."

후주는 공명의 결의에 찬 각오를 끝까지 다 듣고는 특유의 둥글둥글한 말투로 공명을 타이른다.

"상부(相父), 지금 천하는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어 우리와 위, 오가 평화로이 지내고 있는데 왜 굳이 군사를 일으키려 하십니까. 편안히 지내시면 될 것을요."

가만히 미소를 보이며 말하는 후주에게 공명은,

"선제께서는 초야에서 땅을 파 먹고 지내던 저에게 지우지은(知遇之恩)을 베푸셨습니다. 선제께 충심을 다하여 중원을 되찾아 드리고 한실(漢室)을 부흥(復興)시키는 것이 신에게는 생애 하나 뿐인 의무이옵니다."

하고, 간절하게 말한다.

"승상께서는 군사를 일으켜서는 아니되옵니다!"

공명이 말을 마치자마자 곁에 있던 태사 초주(太司 譙周)가 나서서 말한다.

승상에게 반기를 드는 인물이 누구인지 보려는 듯 모든 이의 시선이 초주에게 집중된다.

초주는 침착하게 말을 잇는다.

"신은 사천대(司天臺)를 맡아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승상께서 군사를 일으키시려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어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근자에 남쪽으로부터 수만 마리의 새가 날아와 한수(漢水)에 떨어 죽었는데, 이는 흉조가 분명합니다. 게다가 신이 천문을 본 바로는 규성(奎星)이 태백(太白)으로 침범하여 왕성한 기운이 북쪽에 서려 있습니다. 이는 북쪽에 있는 위에게 운이 닿아 있다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우리에게는 불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사이 밤에 잣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백성이 수두룩합니다. 국가에 이러한 이변이 여럿 있을 때에는 움직임을 가벼이 하시면 안 될 줄로 압니다."

초주의 말에 잠시 술렁임이 지나간다. 하지만 공명의 뜻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선제께서 돌아가실 때 나에게 뒷일을 당부하시는 막중한 말씀을 남기셨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그깟 몇 가지 요사스러운 일을 핑계로 대사를 저버릴 수는 없네. 초주 자네의 충고는 고마우나, 이번이야말로 군사를 일으켜야 하네."

공명은 초주로부터 시선을 거둬 후주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단호한 자세로 후주에게 아뢴다.

"폐하께서는 부디 허락해주시옵소서."

이토록 간절한 청에 후주는 출정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명은 성도를 떠나기에 앞서, 소열황제(昭烈皇帝: 유비)의 사당에 정중히 제사를 지냈다.

"어느덧 다섯 차례나 기산으로 나갔으나 신이 부족하여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습니다. 맹세코 제가 목숨을 걸고 선황의 유지(遺旨)를 받들겠습니다."

공명은 제단 앞에 엎드려 절하고 눈물로 고하였다.

공명이 여섯 번째로 기산 출정에 나선다.

다시 기산으로 향하는 공명을 배웅하기 위해 후주가 친히 바깥까지 배웅을 나왔다.

“상부, 이제 연세가 많으시어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시니 부디 몸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후주는 공명의 안위를 걱정하는 말을 한다.

“황공하옵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여 돌아오겠습니다. 천자께서는 더 나오지 마시고 이제는 들어가십시오.”

공명은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 나오는 후주를 만류한다.

하지만 후주는 공명의 만류에도 들어가지 않고 공명의 눈을 애잔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짐은 천자이면서 상부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가시는 길을 제가 직접 배웅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눈빛을 가진 후주의 눈을 바라보며 공명은 더 이상 후주를 말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틈에 벌써 백발이 다 된 머리로 또 다시 기산으로 향하는 마차에 천천히 오른다.

공명을 태우고 떠나는 마차 뒤에서 후주는 마차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고는,

“상부도 많이 늙으셨구나... 상부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하고, 혼잣말을 하며 마차 뒤에 대고 고개를 숙여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공명의 여섯 번째 기산 출정은 엄숙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때는 건흥(建興) 13년, 위(魏)의 연호로는 청룡(靑龍) 2년 2월이었다.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388)

다시 맞붙은 공명과 중달

한중으로 돌아온 공명이 장군들을 불러 모아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려고 할 때였다.

공명 앞으로 급보가 날아들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관흥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이럴 수가 있나...! 그 충의로운 사람에게 하늘은 모질기도 하시지... 관흥에게 목숨을 길게 주지 않으셨구나...!"

공명은 한(漢)의 부흥을 위해 함께 애썼던 관운장의 아들 관흥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크게 슬퍼하였다.

공명이 관흥을 잃은 슬픔을 간신히 수습하고 출정길에 올랐다.

공명은 모두 삼십사만의 군사를 다섯 길로 나누어 기산으로 진군하도록 하였다. 선봉은 강유와 위연으로, 그 둘은 바로 기산으로 향했고, 이회는 군량을 가지고 사곡(斜谷)으로 가는 길 어귀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공명이 다시 기산으로 향한다는 소식은 위주(魏主: 조예)에게도 알려졌다. 소식을 듣자마자 조예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마의를 불렀다.

"얼마간 잠잠하더니 제갈양이 다시 기산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오. 어찌하면 좋겠소?"

걱정스러운 조예의 물음에 사마의는,

"폐하,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신이 지난 밤 천문을 보았더니, 중원에는 왕성한 기운이 가득하고 규성(奎星)이 태백(太白)을 범했으니, 이는 서천(西川)에는 불리하다는 뜻이옵니다. 그런데 제갈양은 건방지게도 제 재주만 믿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려 하고 있으니 스스로 패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요. 신이 폐하의 큰 복을 등에 업고 제갈양을 물리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자신만만하게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좋소. 그대가 제갈양을 상대해 보시오."

조예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마의는,

"제가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 넷이 있습니다."

하고, 조예에게 청을 한다.

"그들이 누구요?"

"죽은 하후연(夏侯淵)의 네 아들입니다. 맏아들은 패(覇), 둘째아들은 위(威), 셋째아들은 혜(惠), 넷째아들은 화(和)입니다. 첫째 하후패와 둘째 하후위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솜씨가 빼어나고, 셋째 하후혜와 넷째 하후화는 병법에 조예가 깊습니다. 이들은 부친이 한중에서 촉병에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촉에 원한이 깊습니다. 제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틀림없이 이를 악물고 싸울 것입니다. 하후패와 하후위를 선봉으로 삼고, 하후혜와 하후화를 행군사마(行軍司馬)로 삼았으면 합니다."

사마의의 말에 조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사마의에게 묻는다.

"지난날 하후무(夏侯楙)가 군사전략을 잘못 써서 인마(人馬)만 허다하게 잃고, 그 자신은 면목이 없어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하후 가문 사람들을 믿어도 되는 것이오?"

"제가 말씀드린 네 사람은 하후무와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사마의는 빙그레 웃으며 여유있는 태도로 조예를 안심시킨다.

"알겠소. 내 그대를 대도독으로 삼고 모든 장수들의 임명권을 줄테니 잘 싸워 보시오. 내 경을 깊이 믿고 있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사마의가 출정하는 날이 되었다.

조예는 사마의에게 손수 조서를 내려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경이 위수(渭水)에 이르거든 성벽을 높이 쌓은 후 굳게 지키기만 하고 함부로 나서서 싸우지 말라. 촉군은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거짓으로 물러나는 체하며 우리 군을 유인하려 할 것이니, 그대는 신중히 생각하고 함부로 뒤쫓지 않길 바란다. 그들의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물러가려 할 때 그 틈을 노려 공격하면 큰 어려움 없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 군마(軍馬)도 피로가 덜할테니 이보다 좋은 계책은 없을 것이다.

사마의는 위와 같은 조예의 조서를 받고 그날로 낙양을 떠났다.

장안에 이르러 각처의 군사를 불러 모으니 사십만 대군이었다. 사마의는 이들을 데리고 위수에 당도하여 영채를 세웠다. 

그리고 사십만 대군 중 오만의 군사를 공병대(工兵隊)로 삼아 그들로 하여금 위수 상류에 아홉 개의 부교(浮橋)를 놓도록 하였다. 

그런 뒤 선봉장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강을 건너가 서쪽 강안에 영채를 짓고 진을 치게 하였다. 

게다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하여 후방에는 성을 새로 쌓아 올렸다.

방어에 치중했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공명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기산에 다섯 개의 진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사곡(斜谷)과 검각(劍閣) 사이에 열네 개의 진영을 구축하고 그곳에 군마를 주둔하게 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어느날 정탐을 나갔던 병사가 돌아와 급하게 알린다.

"손례와 곽회가 농서(隴西)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북원(北原)에 영채를 차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명은 재빨리 전략을 떠올린다. 그리고 장수들을 모두 소집하여 계획을 상세히 설명한다.

"위군이 북원에 진을 쳤다고 한다. 우리에게 농도(隴道)를 끊길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 된 일이다. 우리는 북원을 칠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우리가 공격하는 곳은 본진인 위수가 될 것이다. 먼저 뗏목 백여 채를 만들어 그것들을 엮고 그 위에 건초를 얹어라. 내가 한밤중에 북원을 공격하면 사마의는 위수를 비우고 북원을 구하러 나올 것이다. 저들이 물러나는 기미가 보이면 후군이 먼저 강을 건너고 뗏목을 풀어서 강물에 흘러가게 하고 뗏목 위 건초에 불을 놓아라. 강위에 놓은 위군의 부교가 모두 탈 것이다. 그런 뒤에 후군은 당황하고 있는 위병의 뒤를 치면 된다. 우리가 이렇게 하여 위수 남쪽을 얻고나면 앞으로 진군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공명의 계획대로 촉의 장수들은 일을 시작했다.

정탐병은 촉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촉병들이 뗏목을 만들고 부지런히 싸우러 갈 채비를 하는 것을 위의 정탐병이 유심히 보고 그대로 사마의에게 알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마의는 선봉장 하후패, 하후위 형제를 불러 비밀스럽게 명을 내린다.

하후패와 하후위가 명을 받고 물러가자 다음에는 곽회, 손례, 악침, 장호를 불러 그들에게도 비밀스러운 명령을 내린다.

이날, 본진을 떠난 촉군은 위수를 건너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다.

위연과 마대가 북원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황혼 무렵이었다.

위연과 마대가 나타나자 북원에 영채를 차리고 있던 손례는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전쟁에 잔뼈가 굵은 위연은 손례에게 뭔가 계략이 있음을 금방 눈치챘다. 

'이것은 함정이다! 돌아가야 한다!'

위연이 급히 돌아가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 왼쪽에서는 사마의의 군사가, 오른쪽에서는 곽회의 군사가 쏟아져 나온다. 위연과 마대의 군사는 죽을 힘을 다해 맞선다. 하지만 적의 위력은 너무나 강하다. 위병이 휘두른 창에 찔린 촉병의 비명 소리가 가득했다.

맞서는 것보다 얼른 그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위연과 마대는 겨우겨우 살아나왔다. 함께 갔던 군사들은 대부분이 창에 찔려 죽거나 물에 빠져 죽고 살아남은 자는 절반도 못 되었다.

오의와 오반은 건초를 실은 뗏목을 이끌고 위수로 내려오고 있었다. 건초에 불을 질러서 위가 애써 구축해놓은 부교를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뗏목이 부교에 미처 도달하기도 전에 악침과 장호가 강을 가로질러 매어 놓은 동아줄에 뗏목이 한데 묶여 버렸다. 촉병이 뗏목의 흐름이 멈춘 것에 당황하는 사이, 강기슭에 숨어 있던 악침과 장호의 궁노수들이 속속 등장하여 화살을 빗발처럼 퍼부었다.

뗏목은 그저 부교에 불을 지를 용도였기 때문에 아무런 방어 장치가 없었다. 뗏목을 끌던 촉병들은 화살을 맞고 죽거나 물에 빠져 죽는 자가 태반이었다.

그 와중에 병사들을 이끌던 오반이 화살을 맞고 강물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 강으로 몸을 던져 헤엄쳐 나온 병사 몇 만이 살아남았다.

촉이 끌고 갔던 뗏목은 고스란히 위병의 차지가 되었다.

그 무렵 왕평과 장의는 북원의 소식을 모른 채 위의 본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위군의 영채가 바로 코앞인데 어째 위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적진이 고요한 것이 이상하다 하며 왕평이 장의에게,

"우리 군의 소식을 알 수가 없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곳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사마의가 미리 알고 대비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소.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작전을 망칠 수도 있으니 부교에 불이 붙는 것이 보이거든 그때 적진에 들이닥칩시다."

하고, 말하였다.

왕평과 장의가 군사들의 진군을 멈추고 대기하는데 급사 하나가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승상께서 급히 회군하라 전하셨습니다!"

"회군?"

갑작스러운 소식에 왕평과 장의는 입을 모아 까닭을 물었다.

"북원에 갔던 군사와 뗏목을 몰고 갔던 군사 모두 위군에게 대패했다고 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긴급한 사태에 왕평과 장의는 군사를 급히 돌리려고 하였다.

그때 갑자기 지금까지 갈대가 바람에 서로 부딪는 소리만 가득하던 갈밭에서 위군들이 튀어나와 일제히 촉군에게 덤벼들었다. 위군이 놓은 불길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위군의 기세는 그 불길보다 더 거셌다.

왕평과 장의는 군사들을 이끌어 한바탕 싸움을 벌였지만 위군의 기세에 눌린 촉병들은 위군의 창에 스러져갔다.

두 장수가 간신히 적들의 포위를 벗어났을 때에는 이미 촉병의 반 이상이 부상을 입거나 죽음을 면치 못한 상태였다.

공명은 기산으로 돌아와 살아남은 군사들을 수습했다. 헤아려보니 이번 싸움에서 잃은 군사는 일만이 넘었다.

공명에게 이렇게도 비참한 패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생애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여섯 번째 기산 출정을 나섰던 것이기에 마음의 괴로움은 계속해서 커져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큰 패배 이후 공명은 군사들을 다독이며 군사들의 시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시름 또한 걷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느날, 양의(楊儀)가 공명을 찾아왔다. 양의는 공명의 기분이 어떤지 살피고, 듣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는 조용히 말을 꺼낸다.

"승상, 요 근래에 위연이 승상의 뒷공론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일 같아 말씀드립니다."

공명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 나도 알고 있다. 위연의 불평은 근간(近間)의 일이 아니지."

하고, 말한다.

"그걸 알고 계시면서 왜 가만히 두십니까? 승상께서는 군율에 엄격하지 않으십니까."

공명은 뒷짐을 지고 먼 곳을 응시하며 서성이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고,

"인재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지. 위연만큼 용감하고 쓸만한 장수가 없어. 위연의 태도와 행실을 알면서도 내가 그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지."

하고, 한탄하듯 말한다.

"......"

공명의 말에 공감하는 양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실로 상황이 그랬다. 수십 년 간 역적 토벌을 위해 촉이 위와 싸우는 동안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에 두고 용맹하게 싸우던 많은 장수들은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나이를 먹어 노환으로 세상을 뜨기도 했고, 전장에서 싸우다 적에게 희생되기도 했다. 이제 공명의 수하에 남은 용장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위연이 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용장이다보니, 공명은 위연이 군기를 문란하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재 기근이 중원 정벌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공명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가운데 성도로부터 비위가 찾아왔다.

마침 중요한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공명은 그 일을 해줄 만한 사람이 나타나자 반가이 맞이한다.

비위와 인사를 하자마자 공명은,

"그대에게 부탁이 있소. 동오의 손권에게 서신을 한 통 보내고 싶은데 동오로 가서 서신을 전달해 줄 수 있겠소?"

하고, 묻는다.

후주의 명령으로 기산의 분위기를 살피러 왔던 비위는 동오에 서신을 전달하고자하는 공명의 의중을 금방 파악하고,

"승상의 명을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한다. 

공명은 동오에 전달할 서신을 써서 비위에게 건낸다.

"이 편지로 손권의 마음이 움직였으면 좋겠군. 그대가 노력해주길 바라오."

공명이 쓴 서신을 들고 비위는 동오로 떠났다.

공명은 서신을 들고 동오로 향하는 비위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사마의에게 모든 것을 간파(看破) 당했던 직전의 전투를 꼽씹었다.

그리고 부디 자신과 손권의 뜻이 같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389)

촉과 오의 동맹지의

비위는 공명이 작성한 서신을 들고 건업(建業)으로 달려가 손권 앞에 섰다.

손권은 비위가 공손히 전달하는 공명의 서신을 펼쳐 본다.

한실(漢室)이 불행하여 나라의 기강을 잃고 역적 조조(曺操)가 제위(帝位)를 찬탈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열황제(昭烈皇帝: 유비)로부터 중임(重任)을 받아 한실의 부흥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대군이 기산에 모여 있습니다. 역적의 무리들을 위수에서 무찌르고자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동맹의 의미를 떠올리시어 폐하의 장수들에게 북정(北征)을 명하소서. 함께 중원을 취한 연후에 천하를 동분(同分)하면 그 아니 좋은 일이겠습니까? 글로 말을 다 할 수 없으니 그저 폐하께서 본인의 뜻을 깊이 굽어 살펴주시길 바라나이다.

공명이 손권에게 보낸 편지는 함께 위를 치자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다 읽은 손권의 만면(滿面)에는 웃음이 떠오른다.

그리고 편지를 전달하러 온 비위에게,

"짐인들 어찌 촉(蜀), 위(魏)의 전국에 무심할 수 있겠소. 오래 전부터 군사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공명과 회합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저 군사를 기르며 때만 기다리고 있었소. 이제 이렇게 제갈 승상의 편지가 왔으니 적당한 때가 온 것 같소. 짐이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위를 치도록 하겠소."

하고, 시원스럽게 말한다.

비위는 크게 기뻐하며 손권에게 말한다.

"감사하옵니다. 언제 어떻게 진군하실지 계획을 말씀해 주시면 그대로 승상께 전달하겠사옵니다."

"짐이 곧 대군을 이끌고 거소문(居巢門)으로 나아가서 신성(新城)을 먼저 취하겠소. 또, 육손과 제갈근에게는 강하(江夏)와 면구(沔口)를 깨치고 양양(襄陽)을 취하도록 하겠소. 그리고 손소(孫昭)와 장승(張承)에게는 광릉(廣陵)으로 출격하게 하여 회양(淮陽)을 점령하도록 하겠소. 세 곳을 합치면 모두 삼십만 대군이오. 머뭇거릴 것 없이 곧 출격하리다."

마치 공명의 제안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손권은 비위에게 금방 상세한 계획을 말해준다.

"폐하의 정성이 그러하시니 머지않아 중원은 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비위는 엎드려 절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손권은 잔치를 열어 비위를 대접했다.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손권이 비위에게,

"승상은 주로 어느 장군을 선봉으로 쓰시오?"

하고, 묻는다.

"위연입니다."

비위의 답을 듣고 손권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 비위에게 말을 한다.

"위연이라... 내가 보기에 위연은 용력(勇力)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성품이 곧질 못하오. 공명이 없으면 반드시 화근이 될 터인데 공명은 어찌하여 위연을 계속 쓰시는 것이오."

웃으며 말하는 손권에게 비위는 타국의 황제에게 자국의 장수에 대해 본인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겠다 싶어 그저 함께 웃으며,

"폐하의 말씀은 돌아가는 대로 승상께 고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비위는 공명에게로 돌아와 동오에서의 일을 모두 보고하였다.

손권의 출정 결정 소식에 기뻐하던 공명은 위연에 대한 손권의 생각을 떠올리며 비위에게 말한다.

"손권은 과연 총명한 분이오. 마치 위연을 곁에서 지켜 본 것처럼 말씀하시니... 실은 나 역시 위연의 사람됨을 알고 있으나 그 용력이 아까워 쓰고 있었오."

그 말을 듣고 비위는,

"그렇다면 승상께서는 속히 조처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간한다.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비위가 촉오동맹의 결속을 재확인하고 손권과 힘을 모아 위나라를 몰아내기로 하였다는 소식을 들고 성도로 떠난 후, 공명은 장수들을 모아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군사 하나가 달려와 공명에게 아뢴다.

"위나라 장수 하나가 항복을 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공명은 투항한 장수를 불러 들였다.

그리고 투항한 장수에게,

"너는 누구이고, 왜 투항하는 것이냐?"

하고, 묻는다.

투항한 장수는 공명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저는 위의 편장군(偏將軍) 정문(鄭文)이라고 하옵니다. 진랑(秦朗)이라는 자와 함께 군문에 들어와 사마의의 휘하에 있었는데, 사마의가 진랑만 중하게 쓰고 저에게는 푸대접을 하니 분한 마음에 달려 나왔습니다. 평소 승상의 높으신 덕을 들어온지라,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부디 저를 거두어 주시고 제가 승상께 은혜를 갚도록 해주십시오."

공명이 정문이라는 자의 말을 듣고 있는 와중에 다른 군사가 들어오더니,

"승상, 지금 위군 장수 하나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 진채 밖에서 정문을 돌려 달라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하고, 아뢴다.

그 소리를 듣고는 정문이,

"소란을 피운다는 그 자가 아마 진랑일 것입니다. 저를 뒤쫓는 것을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쫓아온 모양입니다."

하고, 냉큼 말한다.

승상은 정문을 지긋이 바라보며 묻는다.

"자네와 진랑의 무예를 견주면 누가 더 위더냐?"

정문은 조아렸던 머리를 살짝 들어 공명의 얼굴을 바라보며,

"진랑 따위는 열 명을 가져다 놔도 두렵지 않습니다. 승상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당장 달려나가 진랑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친다.

이에, 공명은,

"좋다. 진랑의 목을 가져 오면 내가 너를 받아주겠다."

하고, 허락하였다.

공명은 직접 영채 밖으로 나와 정문과 진랑의 결투를 구경하기로 했다.

정문이 말을 타고 달려 나오자, 밖에 있던 진랑이 창을 하늘로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 배반자야! 역적 놈이 감히 내 말을 훔쳐타고 달아난 것이냐? 난 사마 도독의 명으로 네 목을 베러 왔다. 내 말과 함께 네 목도 내 손으로 되찾아 가겠다!"

진랑이 말을 마치자마자 정문은 칼을 뽑아들고 진랑에게 달려든다.

"까불지 말아라!"

정문의 칼과 진랑의 창이 뒤엉킨다.

그 모습을 공명은 흥미롭다는 듯 응시하고 있다.

팽팽한가 싶던 두 장수 사이의 긴장감은 싸움이 붙은지 채 삽합도 못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정문이 잘 벼린 칼날로 진랑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린 것이다. 그 모양을 보고 겁을 집어 먹은 진랑의 군사들은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다.

싱거운 싸움이 끝나자마자 공명은 아무 말 없이 군막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정문이 진랑의 머리를 들고 왔다는 병사의 보고를 듣고, 공명은 정문을 군막 안으로 들게 하였다.

정문은 자랑스럽게 진랑의 머리를 공명의 앞에 내려 놓았다.

공명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어서오게나!"

하고, 승리를 거둔 정문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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