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44) 위기에 처한 허유
한편 그 시간, 조조군에 대패하고 관도 한쪽으로 밀려난 원소군 진영에서는 적정을 살피기 위해 책사 허유가 야음을 틈타 몇몇 장수와 병사를 거느리고 몸소 전선으로 나왔다.
그리하여 최전방 경계 장수에게 보고를 받는다.
"선생, 조조군은 삼중 방어막을 치고 있습니다. 첫번째 부대는 진영 십여리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병사들을 나누어 경계하고 있으며, 백여명의 순찰병들이 한 시각마다 순회 하고, 곳곳에 보초병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허유는 예상보다 삼엄한 조조군의 경계상태를 전해듣고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어둠속을 주시하고 있던 바로 그때, 보고를 했던 장수가 어둠속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나직하게 말한다.
"저기 보십시오, 기병 하나가 나오는군요."
허유가 장수가 가르키는 곳으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조조군 진영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조용히 나오는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분명히 구원병을 부르러 가는 터, 저자를 뒤쫒아 활을 쏜 뒤, 품을 뒤져봐라 !"
허유가 이렇게 명하자 장수는 호위 병사에게,
"저놈을 어서 추격해라."
하고, 짧고 강하게 명령했다. 그러자 곧바로 기병 네다섯이 뒤를 쫒았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활을 쏘아 홀로 말을 달리던 조조군의 병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뒤이어 그 자의 품을 뒤져 한 장의 편지를 찾아내어, 허유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편지를 내밀며,
"선생 ! 말씀하신 대로 그 자는 품에 서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허유가 봉투를 끌러 달빛에 편지를 읽어보곤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군 ! 조조, 이번에는 살아나기 어려울게다 !"
허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말을 돌려 본영으로 급히 돌아갔다.
한편 그 시간, 원소는 곽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주공, 기주 유주에서 구원병이 도착했습니다. 청주에서 보냈다는 십만 군량도 내일이면 도착할 겝니다. 이리 되면 마병 팔만과 보병 이십오만, 수군 십만 등 우리 군사는 총 사십만이 넘고, 군량도 백일치나 확보 됩니다."
"그래 ? 첫 전투에서 일부 병력의 손실은 있었지만, 병사를 충원하고도 군량까지 넉넉하군.그렇다면 다시 조조군을 공격할 수 있도록 삼군을 열흘 내에 정비토록 하라. 내 이번에는 기필코 조조를 없애고야 말겠다 !"
원소는 충원되는 병력과 조달되는 군량 사정을 보고받자, 새로운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그러자 곽도가 새로운 건으로 입을 연다.
"주공, 사소한 일이 하나 있사온데, 혹여 노하지 마시길..."
곽도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면서 원소의 눈치를 살폈다.
"말하라."
원소는 덤덤한 표정으로 곽도에게 명했다. 곽도가 허리를 구부리며 입을 연다.
"업군 태수의 밀보인데, 태수가 보내는 군량 오만석 중에 허유의 아들이 삼만석을 착복한 탓으로 나머지 군량 조달에는 시간이 걸리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원소는 곽도를 힐끗 올려다 보며,
"그게 어찌 사소한 일인가 ? 적군을 눈앞에 두고 군량에 목숨이 걸렸거늘.. 자식놈의 군량 착복 사실을 허유도 알고있나 ? "
"아들이 자백하기를 허유도 그 내용을 대략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 삼만 군량으로 아비의 저택을 고쳤다고 하니...."
원소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프리며 고개를 흔든다.
"허유가 날 배반했군. 그러나 지금은 조조와 전쟁중이니 이 일은 잠시 불문에 붙이고, 전쟁을 끝낸 뒤에 엄중히 조사하겠노라."
"예, 그리하심이 좋겠나이다."
곽도가 허리를 숙이며 주군의 명을 받아들였다.
그때, 최전방 적정을 살펴보러 갔던 허유가 종종 걸음으로 들어오며 들뜬 소리로 말했다.
"주공 ! 주공 !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조가 패할 조짐을 알아냈습니다 !"
그러나 원소의 표정은 시덥지 않은 소리를 들은 얼굴이었다. 그러자 의외라는 표정의 허유가 원소와 함께 있는 곽도를 발견하고,
"응 ? 곽도도 있었군."
하고, 말하며, 언잖은 표정으로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저 자가 무슨 소릴 했기에, 조조의 패할 조짐을 알리는 데도 주공의 표정이 이럴까 ?...)
원소는 기뻐하기는 커녕, 담담한 어조로 허유에게 묻는다.
"무엇을 보았기에 조조가 패할 조짐이라 하는가 ?"
그러자 허유가 곽도에게 시선을 거두고 원소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오늘 밤 초경에 소신이 조조의 군영을 염탐하러 나갔는데, 경계가 삼엄한 가운데 기병 하나가 불쑥 튀어 나와서 서주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서신 전갈이겠군."
곽도가 이렇게 말하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허유가 하던 말을 멈추고 곽도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곽도를 향하여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서신이라 ? 헌데 곽도 대인, 당신은 한밤 중에 조조가 왜 서신을 보냈다고 생각하오 ?"
하고, 말하고 난 뒤, 원소를 향해 돌아서며 말한다.
"주공 ! 현재 조조군이 우리와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뒤에도 경계를 삼엄하게 유지하면서 야밤에 기병을 보내는 것이 뭔가 미심쩍다 싶어서, 소신이 급히 쫒아가 활을 쏘라 명해, 그 자로 부터 조조의 군령장을 입수했습니다. 주공, 보십시오."
허유는 입수한 서신 봉투를 내밀었다. 원소가 봉투를 열어 편지를 꺼내들자 허유는,
"조조는 군량도 다했고 무기도 부족하여, 급히 서주에 있는 군량과 무기를 관도로 옮겨오라는 명을 하달했습니다. 이로써 현재 조조군의 무기는 물론이고 군량조차도 부족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허니, 주공 ! 조조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군의 기습이며 전쟁의 장기전입니다."
하고, 자신있게 말하였다. 그러자 원소가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허유 !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나 ?"
"주공, 이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사십만 대군을 총 출동시켜 두 갈래로 나눠, 한쪽은 십만 병사로 조조의 관도 진영을 공격하고, 나머지 삼십만 군은 밤을 틈타 허도를 기습하는 겁니다. 그리되면 두 곳 군대중에 한쪽만 성공해도 조조는 패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단언컨데 오늘 밤 공격을 명하신다면 우리 두 군대는 모두 성공합니다."
허유는 자신감에 넘치는 어조로 열변을 토하였다. 그러자 느닷없이 곽도가 가소로운 웃음을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
때마침 원소가 허유에게 대꾸하려다가 말고 곽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곽도는 허유를 향해,
"그것 또한 조조의 계략일 뿐, 주공을 속일 순 없지 ! "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곽도의 말을 듣자 허유는 화를 내며,
"엉 ? 곽도 ! 당신, 지금 제 정신인가 ?"
하고, 따져물었다. 그러자 곽도는 여유를 잃지않고 허유에게 대꾸한다.
"조조는 고의로 당신 보란 듯이 서신을 보내고, 군령장을 빼가게 해서 우리의 기습을 유인한 것이 틀림없소 ! 암, 조조는 그런 계략을 충분이 저지를 만한 인물이지. 왜, 오늘 낮에도 보지 않았는가 ? 궁녀를 동원해서 우리 병사들의 혼을 한번에 빼내는 것을 .. 그러니 그런 가짜 군령장을 이용해서 우리가 심야에 기습을 하도록 유도하고, 조조는 군사들로 하여금 매복을 시켜두었다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할 것이 자명한데, 어찌 어리석게 그런 꾐에 군사를 함부로 움직인단 말이오 !"
그 말을 듣자, 허유는 진작에 곽도를 설득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원소를 바라보며,
"주공, 조조의 군량과 무기는 분명히 부족하니, 지금이 놈을 섬멸할 최적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공격할 시간을 끌게되면 시간은 반드시 조조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허유는 흥분한 어조로 원소를 설득했다. 그러나 곽도가 끼어들며,
"주공 ! 그 군령장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조조는 천자를 미끼로 거짓 화친을 청했고, 우리군의 후방을 기습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주공께 차 한잔을 대접한다는 계략을 꾸민 위인 입니다. 그러니 그깟 군령장 쯤이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소가 군령장을 내려 놓으며,
"그래, 맞네 ! 또 조조의 꾀에 넘어갈 뻔 했어."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허유가 크게 낙담한 얼굴을 하는데 원소의 말이 이어진다.
"허유, 계책을 올릴 땐, 숙고부터 하게,"
허유가 그 말을 듣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들어 실망감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주공, 정말 뜻 밖입니다. 곽도의 눈에는 조조의 군영 모두가 함정이고 계략으로만 보이니, 이거야말로
조조에 대한 공포심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그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하고, 곽도를 핑계로 원소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자 원소가 정색을 하며,
"허유 ! 무엄하다."
하고, 짧고 강하게 질책하였다. 허유가 그 말을 듣고 즉시 허리를 굽히며,
"주공, 용서하십시오. 소신 가끔 무엄하오나, 주공께 대한 충심은 변함이 없사옵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 원소의 명을 받고 그의 보검을 가지고 기주의 감옥으로 전풍을 참(斬)하러 갔던 장수가 두 손에 보검과 전풍의 유서를 받쳐들고 들어와 고한다.
"주공 ! 전풍이 스스로 자결했습니다."
원소가 애처러운 소리로 묻는다.
"죽었느냐 ?"
"네, 죽었습니다."
순간 원소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어서 물었다.
"유언을 남겼더냐 ?"
"죽기 직전에 주공께 서신을 남겼습니다."
장수는 죽간(竹簡)을 들어 보였다. 곽도가 총총히 다가가 죽간을 원소의 앞에 바쳤다.
그러자 원소는,
"마음이 심란하니, 자네가 읽게."
하고, 곽도에게 명했다. 곽도가 서신을 열어 전풍의 유언을 읽기 시작하였다.
<주공, 소신의 죽음을 들으실 즈음엔 조조에 대한 공격을 후회하고 계실 겁니다. 소신이 입바른 소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점은 있으나, 그것이 죽을 죄는 아닐진데, 소신에게 죽음을 명하신 배경에는 소인배의 비방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곽도는 여기까지 읽은 뒤에 잠시 말을 멈추고 허유를 건너다 보았다. 그러자 전풍의 남긴 말을 듣는 허유의 얼굴은 온통 찌그러져 있었다. 곽도가 계속해 전풍의 유언장을 읽는다.
<그 소인배는 바로 충심을 가장한 허유로, 그는 조조와는 어릴적 함께 자라온 동무로 옛 정이 두터워 서신을 주고 받는 사이라는 것을 소신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읍죠. 그러니 주공께서 조조를 이기면 그는 주공께 충성을 다할 것이고, 만약 주공께서 조조에게 패하신다면, 그는 보나마나 조조에게 투항할 것입니다. 이제 소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공의 명을 죽음으로 따르는 충심을 보이오니, 주공의 주변을 잘 살피시어 충심을 가장한 간신을 물리치시도록 하옵소서. 전풍. >
"허 !~ 이런 !..."
허유는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정말 기막히게도, 전풍은 죽으면서도, 제 가슴에 비수를 꽂는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원소는 쌀쌀한 표정이 되면서,
"허유, 어릴 적 조조와 동무였나 ?"
하고, 물었다. 그러자 허유가,
"네, 아뢰옵니다. 제 고향과 조조의 고향은 지척인 관계로 어릴 적 조조와 함께 수학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공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후, 조조와는 뜻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조와 서신을 주고 받은 것은 사실이냐 ?"
"아뇨, 아뇨..."
허유는 손을 들어 보이며 부인하였다. 그러면서
"주공, 절대 아닙니다."
하고, 재차 부인하였다.
"이는 분명 전풍의 모함입니다. 주공, 헤아려 주십시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원소는 허유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원소는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유 ! 수 차례 비방으로 전풍을 죽음으로 내몰았겠다 ! 내, 잠시 그 목숨을 살려두겠다만, 조조를 멸하고 난 뒤 엄중히 처벌하겠다 ! 꼴도 보기 싫으니 물러가 !"
원소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허유에게 거친소리를 내뱉었다.
낙담한 허유가 마지 못해 예를 표하고, 원소의 앞을 물러나 자신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방금 전에 자신의 주공 앞에서 벌어졌던 일을 곱씹어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쫄장부야, 쫄장부 ! 지략도 없는 쫄장부, 이렇게 있다간 나도 머지않아 전풍의 뒤를 밟게 되겠구먼 !
하 ~ 기가막히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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