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11)미끼(상)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11)미끼(상)
우 초시네 데릴사위로 들어간 봉태
3년 일했지만 혼례 얘기는 없고…
나이 지긋한 옥졸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며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사람이 이 추운 감방에 갇혀…. 쯧쯧쯧” 한다.
목에 칼을 차고 얼굴을 묻은 채 흐느껴 울던 봉태가 “오늘 밤이 선친의 제삿날인데 절도 올릴 수 없으니…. 흑흑” 했다.
밤은 깊어 삼경이 됐다. 만물이 잠든 적막한 밤에 옥에 갇힌 젊은이 봉태의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울음소리만 옥창살로 빠져나왔다. 봉태가 살인미수라는 어마어마한 죄를 뒤집어쓴 건 말도 안된다는 걸 옥졸도 익히 알고 있었다. 봉태가 창살 사이로 옥졸에게 엽전 한닢을 내밀며 “나으리, 술 한잔만 놓고 절 한번만 올리게 해주시면 이 은혜 죽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한참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옥졸이 옥문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봉태의 목에 찬 무거운 칼을 풀어주며 “닭이 울기 전에 돌아오게.” 봉태는 감격에 겨워 옥졸의 두손을 잡았다. 축지법을 쓰듯이 단숨에 형님댁으로 달려간 봉태는 가까스로 제사를 올리고 대성통곡을 한 후 후다닥 문을 박차고 나가 처마 밑에서 시퍼런 낫을 빼들고 번개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봉태는 주인 나리 우 초시와 그의 새색시가 간통한다는 소문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시아버지 제사에도 오지 않은 걸 보고 그게 사실임을 확신하게 됐다.
봉태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팔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열세살 때 우 초시네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봉태는 또래보다 덩치도 컸고 영리했다. 우 초시의 외동딸 춘조는 봉태보다 한살 아래인 열두살로 나이가 차면 봉태의 색시가 될 참이었다. 봉태는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세월은 어찌 그리도 굼벵이 걸음인가. 삼년이 지나 봉태가 열여섯이 되었을 때, 경칩이 지난 어느 날 우 초시가 불렀다. 은근히 우 초시 입에서 혼례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심부름을 시켰다. 한양으로 올라가 서촌에 사는 우 판관에게 서찰을 전해주라는 것이다. 우 판관은 우 초시의 동생이다. 생전 처음 한양을 가는 봉태는 조금 모아뒀던 돈과 노자를 아껴 춘조의 선물을 살 생각에 가슴이 설??다. 봉태는 열이틀 만에 한양에 다다라 지번을 찾아 서촌 우 판관댁으로 가 서찰을 전했다. 그리 높지 않은 무관, 우 판관이 형의 서찰을 읽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한양은 처음이지? 사흘 동안 장안을 돌아다녀보게. 날이 저물면 우리 집에 들어와 건넛방에서 자고.”
봉태는 입이 찢어졌다. 이튿날부터 봉태는 한강을 구경하고 종로에 가서 춘조 선물로 눈을 질끈 감고 비싼 노리개를 샀다. 꿈 같은 사흘간의 한양 구경을 끝내고 우 판관이 형님에게 전해주라는 서찰과 주머니를 받아들고 밀양으로 향했다.
거의 한달 만에 집에 다다랐을 때는 밤이 늦었다. 사랑방에 들어가 우 초시에게 우 판관이 전해주라는 서찰과 주머니를 내밀었다. 서찰을 읽어보더니 “짠돌이! 쯧쯧쯧.” 우 초시가 혀를 찼다. 봉태는 날이 새면 춘조에게 줄 노리개를 안고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이튿날 아침, 봉태는 제 방문을 잠그고 구곡간장이 찢어지는 듯 짐승처럼 울었다. 봉태가 한양에 갔다 온 사이 우 초시의 외동딸 춘조가 시집을 가버린 것이다.
그때 우 초시가 문을 두드리며 “야, 이놈아! 내 얘기를 들어보고 울든가 해라.” 술상을 놓고 둘이서 마주 앉았다. 술 한잔을 단숨에 마신 우 초시가 “네놈이 지난해 여름밤에 토란밭에 숨어서 뒤뜰 우물가에서 멱 감던 우리 춘조를 훔쳐보다가 춘조 어미한테 들켜서 난리가 났지.” 또 한잔 마시더니 “그 이후로 네놈이 짐승처럼 보인다나. 네놈과 혼례를 올리느니 목을 매겠다 하니 … .” 봉태는 목구멍으로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술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너무 낙담하지 마라. 외가 쪽으로 질녀 되는 아이와 짝을 지어줄 터이다. 미모는 춘조가 반도 못 따라간다.”
봉태는 동구 밖 주막으로 가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다 주먹으로 상을 내리치며 “가시버시 될 색시 멱 감는 거 훔쳐보는 게 무슨 큰 흠이 된다고!”
주막에서 쓰러져 자고 그 이튿날도 술로 끼니를 때우는데 우 초시가 찾아왔다. “야 이놈아, 네 색싯감 인물이나 한번 보고 술독에 빠지든지 통시에 빠지든지 해라.” “다 필요 없어~.” 냅다 지른 봉태의 고함에 처마 밑에서 자던 누렁이가 펄쩍 뛰어내렸다.
사흘 후, 주모 재촉에 봉태가 제 방에 숨겨놓은 돈주머니를 가지러 비틀비틀 집으로 갔다가 깜짝 놀라 발이 얼어붙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