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69)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상>

jahun 2021. 12. 14. 18:43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69)뛰는 놈 위에 나는 놈 <>

 

의원에 있던 손 초시가 피 토하자 부인은 떠나고 달래가 달려오는데
 

손 초시가 사랑방 촛불 아래서 글을 읽고 있을 때 문고리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살며시 문이 열리고, 달래가 박가분 냄새를 풍기며 밤참을 들고 들어왔다. 손 초시가 얼른 주머니에서 엽전을 꺼내 달래 손에 쥐여주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빼는 척 몸을 꼬던 달래가 손 초시 품에 안기자 손 초시의 손이 잽싸게 옷깃을 헤치고 봉긋이 피어오르는 달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달래야!
안채에서 안방마님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찢자 달래는 얼른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치며 사랑방을 나갔다. 달래는 종종걸음으로 안마당을 가로질러 마님, 부르셨습니까하며 시침을 떼고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손 초시는 이를 갈며 달래의 꽃봉오리를 주무르던 손으로 입술을 덮어 그 온기를 느끼다가 청주 한잔을 부어 바짝 말랐던 입을 축였다. 삼년 전 손 초시 부인 소담댁이 친정에 갔다가 데리고 온 달래를 처음 본 손 초시는 자신도 모르게 하초가 뻐근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데다 눈웃음에는 색기(色氣)가 흘러넘치고 수밀도처럼 갈라진 엉덩이 선 아래 몽당치마 밑 맨 종아리는 가을무처럼 싱그러웠다. 손 초시는 틈만 나면 엽전을 쥐여주는 척 달래 손목을 잡아당겨 품에 안고 엉덩이도 두드려보지만 우라질, 거기까지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마누라 소담댁이 훼방을 놓는 것이다.
살림은 바닥나고 과거는 계속 떨어져 파락호 신세가 되려는 판이었다. 천석꾼 노 참봉이 급제할 사위를 볼세라 외동딸을 시집보내며 혼수로 전답 서른마지기를 갖고 와 손 초시는 살아났다. 그것을 생각하면 손 초시는 소담댁을 맨날 업고 다녀도 모자랄 판인데, 못돼먹은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더니 달래의 고쟁이 벗길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손 초시는 피가 쏠리면 안방을 찾아 소담댁과 방사를 치르면서도 달래를 껴안았다는 환각에 빠진다.
어느 날 점심상을 치우는 달래의 뒤태를 보며 손 초시가 침을 흘리고 있는데 삼십리 밖 처갓집에서 머슴이 달려왔다. 소담댁이 눈물을 훔치며 친정어머니 병문안을 가겠다고 서두르기 시작했다. 손 초시가 쾌재를 불렀다. 여보, 친정 좀 다녀오겠습니다.소담댁이 말하자 손초시는걱정 말고 다녀오시오. 장모님 쾌차하실 때까지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런데 소담댁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손 초시 가슴에 꽂혔다.
달래야, 이 보따리 들고 앞장서거라.
저도 가요?달래도 한숨이다.
여보, 조석으로 뒷집 할매가 당신 밥상을 차려드릴 거요.
닷새 만에 친정 갔던 소담댁이 달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손 초시는 없었다. 뒷집 할매 왈, 나는 못 봤는데 손 초시가 온몸에 열이 나고 피를 토해 의원으로 실려갔다네.
깜짝 놀란 소담댁이 종종걸음으로 영생의원을 찾았다. 의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손 초시 생명이 위태롭소. 우리 영생원엔 입원실이 다섯개요. 네개는 여기 있고 나머지 하나는 중한 전염병 환자를 격리해놓는 뒤뜰 구석 별채에 있소.그러면서 영생원 사동들은 그 방에 들어가지를 않소이다라고 일렀다.
소담댁은 별채로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여기저기 향불을 피워 연기가 자욱한 캄캄한 방에 비릿한 피 냄새 탓에 코를 틀어막는데 ~손 초시가 토한 피가 소담댁 얼굴과 저고리를 덮쳤다. 혼비백산 돌아 나온 소담댁이 의원과 마주쳤다. 의원이 부인이 그 방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간병을 하리오?하자, 소담댁이 몸종을 보내겠으니 제발 전염병이라 말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
소담댁이 황급히 떠난 후에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별채로 갔다. 손 초시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의원님, 수고하셨소이다하며 인사했다.
사동은 웃음을 날리며 돼지피를 치웠다. 달래가 영생의원으로 달려와 별채 방문을 열었을 때 금침을 깔아놓고 동방화촉에 손 초시는 약주를 마시고 있었다. 엽전 꾸러미를 받아든 달래는 배시시 웃으며 후후 촛불을 끄고 치마끈을 풀었다. 꿈에도 그리던 달래를 품은 손 초시는 감격에 겨워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별채로 통하는 후문을 걸어 잠그자 별채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이 됐다. 달래의 감창소리가 자지러져도 거리낄 게 없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