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삼국지(三國志) (21) 충신 장균(張鈞)의 절명(絶命)

jahun 2021. 11. 12. 05:29

삼국지(三國志) (21) 충신 장균(張鈞)의 절명(絶命)

 

주전으로부터 황건적 잔당들의 완전 소탕 보고를 받은 낙양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가 이레밤낮을 두고 계속되었다.

성안에서는 연신 폭죽이 터지고, 불꽃이 피어올랐으며, 형형색색의 등불이 밤거리를 호화롭게 장식했다. 술과 음악과 웃음소리가 낙양 성안에 넘쳐흘렀다.

 

싸움에서 승리한 장군들과 병사들이 낙양성에 속속 도착하여 백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황보숭 장군, 동탁 장군, 주전 장군, 조조를 비롯한 그 밖의 부장(副將)과 병사들 까지 조정과 백성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지만, 유비,관우, 장비는 승리의 축제에 끼지 못했다.

 

"형님, 성안은 축제로 신나는 모양입니다."

장비는 성 밖에 만든 임시군막 앞에서서, 성안 하늘위로 연달이 터지는 축하의 폭죽을 바라보며, 유비에게 말했다.

"그래, 모든 백성들이 모처럼 찾아 온 평화를 기뻐하고 있는 게지."

"그런데 왜 우리는 저 축제에 끼지 못하는거죠 ?"

"우리는 의용군이기 때문에 부를때까지 성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곧 좋은 소식이 있겠지."

"....."

 

유비가 성문밖 외각 경비를 맡은지도 여러 날이 지났지만, 황건적 토벌에 참여했던 관군에게는 제각기 직책의 승차(陞差)와 영전이 있었으나, 유비를 비롯한 관우,장비 등에 대해서는 조정에서 이렇다할 보상이나 영전에 관심이 없었다.

유비를 위시하여 관우 장비는 지극히 못마땅하였다. 더구나 성미가 급한 장비는 오늘이라도 당장 낙양을 떠나 버리자고 화를 내었으나, 유비는 그래도 참고, 하찮은 성문 외각 경비의 직책이나마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덧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왔다. 이제는 오백여 명의 부하 병사에게 겨울옷을 따듯하게 갈아입혀야 할 계절이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날마다 연락만을 베풀뿐, 성밖지기 병사들에게는 겨울옷을 갈아 입힐 것은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유비는 생각다 못해 거기장군 주전을 찾아가 자신들의 형편을 말했다.

"응 ! 내가 알아서 적당히 처리할 테니, 나가서 기다리게...."

 

유비는 주전 장군의 그와 같은 대답을 듣고 성문 밖으로 나오는 도중, 문득 세도 좋은 행차를 만났다.

"여보게.... 거기 가는 사람은 유비가 아니던가 ?"

수레 위에서 큰소리로 묻는 소리가 들려와 유비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살펴보니,

수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낭중 장균(郎中 張鈞)이었다. 장균은 지금 궁중으로 들어가는 길로써, 휘하에 수행원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앗 ! 누구신가 했더니 장균 각하 아니시옵니까 ?"

유비는 부리나케 달려가 수레위에 장균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장균은 일찍이 황제의 칙사로써 스승인 노식 장군과 함께 있을 때 일선을 시찰 나왔다가 유비군의 전공을 크게 칭찬한 일이 있었던 것이었다.

 

"오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자네를 만나 보아 반갑기 짝이없네그려. 그런데 여기는 웬일인가 ?

그리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장균의 물음에 유비는 지금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리고 고락을 같이해 오는 수하 병사들이 지금은 추위에 떨고 있는 사실도 말해 주었다.

 

장균은 들을수록 놀란다.

"허어... ! 황건적 소탕에 전공이 커다란 자네와 수하 병사들을 그렇게나 푸대접하는 줄은 몰랐네. 손견 같은 사람도 별군사마(別軍司馬)라는 벼슬을 내렸는데, 자네에게는 아무런 벼슬도 주지 않았다니 말도 되지 않은 소리네 ! "

"저는 저 자신의 벼슬보다도, 부하 병사들을 옷이나마 따뜻하게 입혀 주었으면 하옵니다."

"음... 고마운 생각이네. 조정에서 자네같은 사람을 몰라 보고 있으니 이 나라의 장래가 매우 걱정스럽네. 아무튼 내가 지금 궁중에 들어가 황제 폐하께 그 말씀을 아뢰기로 할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게."

 

충신 장균은 그러잖아도 조정의 간신배인 환관 십상시(宦官 十商侍)들을 없애 버리라고 상주하기 위해 궁중으로 들어가던 길인지라, 유비를 진심으로 측은하게 여겼다.

그로부터 잠시 후에 장균은 어전으로 나와 황제 영제(靈帝)를 알현하였다.

황제의 옆에는 간신배 환관들이 사뭇 충신인 양 양 손을 읍하고 도열해 있었다.

 

장균은 황제 앞에 부복하고 이렇게 아뢰었다.

"황제 폐하 ! 황감한 말씀이오나, 오늘은 비밀히 아뢰올 말씀이 있사오니, 측근을 잠시 물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십상시들은 그 소리를 듣자, 장균을 놀라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장균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굳게 쥐어보이는 자도 있었다.

 

"그대들은 잠시 물러가 있도록 하라 ! "

황제는 십상시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십상시들은 어쩔 수없이 어전에서 물러나가고, 황제는 장균을 굽어보며 물었다.

"장 낭중 ! 오늘은 무슨 말을 긴히 하려고 그러시오 ?"

장균은 어전에 두 번 절하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소신 장균은 국가의 장래를 걱정한 나머지 오늘은 감히 폐하의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아뢰고자 하옵니다."

"무슨 애긴지 어서 말해 보오."

"지금의 정치는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슬프게 만드는 정치이옵니다. 천하가 어지러운 것은 백성들의 잘못이 아니라 관원이 부패하였기 때문이옵니다. 수습되기는 하였으나 황건적의 난도 모두 정치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불만이 그 원인이옵니다. 정치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을 씻어내지 않는 한, 제2, 제3의 황건적들의 창궐(猖獗)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고개를 기울이며 듣던 영제가 묻는다.

"백성들의 불만을 씻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

"십상시를 조정에서 척결하여야 하옵니다."

"뭐라고요 ?"

황제는 십상시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샐쭉해졌다. 

장균은 황제가 십상시들을 철썩같이 믿고 의지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충신인 그로서는 환관들의 간악함을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십상시들이 어쨌단 말이오 ?"

"총명하신 황제 폐하께옵서 이미 알고 계신 줄로 믿사옵니다만, 지금 십상시들이 나라에 미치는 해독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들은 폐하가 어리시다는 것을 이용하여 온갖 악정을 저질러 왔사옵니다. 전일에 황건적의 역모가 준동한 것도 그 원인을 밝히면 십상시들이 관직을 함부로 팔아 먹은 소치였사옵고, 그들과 친한 자는 죄가 있어도 높이쓰고, 그들의 눈밖에 나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무고한 죄를 씌워 억울한 처벌을 했기 때문이었사옵니다. 이래서야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겠사옵니까 ? 예를 들면 성밖에 있는 유비가 그렇습니다."

 

"유비 ? "

"그러하옵니다. 그는 이번 황건적 토벌에 자신이 스스로 양성한 오백 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악전 고투속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관군과 함께 황건적과 싸워 왔었고, 그들의 마지막 잔당을 소탕하는데도  크게 공을 세웠사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성밖에서 기약 없이 분부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옵니다."

"그게 사실이오 ?"

"사실이옵니다. 유비 뿐만이 아니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모르옵니다. 이런 공평무사 (公平無私)하지 못한 매관매직(賣官賣職)이 계속 되어 능력없는 자들이 권세를 휘두르게 된다면 백성들의 불평 불만이 쌓이고 쌓여, 또다시 반란이 일어나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오 ?"

나이 어린 황제인 영제(靈帝)는 십상시에만 의존한 정치를 해 와서인지 매사에 결단력이 부족하였다.

장균은 거침없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황건적들이 소탕된 지금, 십상시들의 못된 짓거리를 금하게 하여 폐하가 계시는 이 궁전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옵니다."

 

진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충언(忠言)이었다.

영제는 그 소리를 듣자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경은 어찌하여 내가 가까이 데리고 있는 환관들을 이처럼 못마땅하게 여기시오 ?"

"소신은 사원(私怨)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옵니다. 지난번 황비 섬멸의 논공행상에 있어서도 엄연한 전공을 무시하고 십상시들은 오로지 자기들과의 친,부로 은상(恩賞)을 베풀었사오니,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있겠사옵니까. 지금 십상시들에 대한 원한은 천하 만민의 골수에 맺혀 있사옵니다."

 

십상시란 장양(張讓) 조충(趙忠), 단규(段珪),하운 등등의 열 명들의 환관들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이가 어리고 어리석은 영제는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일개 시종에 불과한 그자들에게 참의(參議)라는 벼슬을 주어 국정에 관여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정사가 날이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십상시들이 천하 만민의 원한을 사고 있다니, 그렇다면 경은 과인더러 그들의 목이라도 베어 버리라는 말이오 ?"

영제의 어성에는 분노가 넘쳐 있었다.

"황송하오나 폐하께서는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그 일을 단행하셔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래야만 민심이 수습되어 국가 재흥의 길이 열릴 줄로 아뢰옵니다."

 

장균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와 동시에, 별안간 용상 뒤에 쳐 있는 장막이 활짝 열리더니, 열 명의 십상시들이 손에 손에 칼을 들고 뛰쳐 나오며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 장균아 ! 듣자하니,무엇이 어째 ? 네놈이 우리들의 목을 베기 전에 우리가 네놈의 목부터 자르고 볼 것이다 ! "

하며 무엄하게도 어전에서 장균의 목을 후려갈겼다. 그리하여 충신 장균은 어전에서 십상시들의 칼에 무참하게도 원한의 고혼이 되고 말았으니, 도대체 나라가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