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127
# 列國誌 127
** 楚漢誌 49
※反間之計 2
<范增, 가다>
"項羽와 范增 사이를 어떻게 갈라 놓겠다는 말씀이오 ?"
"張良 선생과 저에게 절묘한 계략이 있사오니, 그 점은 염려치 마시옵고 저희들에게 맡겨주시옵소서."
옆에 앉아 있던 張良은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한편 항우는 영양성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隋何가 다녀간 뒤 사흘 째 되는 날, 사신을 보내왔는데, 그는 虞子期였다.
변설가나 모사를 보내기 보다 將帥인 우자기를 보내 漢나라의 軍勢를 살펴보려는 항우의 의도가 깔려있는 사신이었다.
우자기는 중책을 안고 漢王을 만나고자 영양성에 도착하였는데, 張良과 陣平등이 몸소 마중 나와 융숭하게 접대하면서,
"대왕께서는 어제 過飮하신 관계로 아직 잠자리에 계시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하며 虞子期를 극히 호화로운 客舍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점심상이 나오는데, 음식은 山海珍味가 床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가득 차려진 성찬이었고, 음식을 담은 그릇도 모두가 금배 옥완(金杯玉碗) 이었다.
張良과 陣平은 虞子期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융숭하게 恭待하면서,
"范增 丞相께서는 無恙하시옵니까 ? 범증 승상께서 오늘은 어인 일로 武將이신 장군을 보내셨습니까 ?"
하고 의도적으로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우자기는 張良과 陣平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고 속으로 크게 놀랐다. 자기는 楚覇王이 보낸 사신인데, 장량과 진평은 자신을 범증이 보낸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우자기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范增은 소문처럼 아무도 모르게 이들과 내통을... ? )
그러한 의심을 품으며, 자기 자신의 직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범증 丞相이 보낸 사람이 아니고, 項王 폐하께서 보내신 特命使臣(오늘날의 大統領 特命 全權大使 格)입니다."
장량과 진평은 그 소리를 듣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貴公은 범증 승상이 보낸 분이 아니고, 項王이 보낸 사람이란 말이오 ?"
그리고 바로 시종을 부르더니,
"이 분은 范增 軍師가 보낸 분이 아니고 項王이 보낸 사신이라고 하니, 바깥 사랑으로 모셔라."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
우자기는 하는 수 없이 바깥 사랑으로 따라나왔다.
바깥사랑은 이 前의 房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초라하고 食 자재 도구 等도 형편없었다. 게다가 자신을 바깥 사랑으로 보낸 張良과 陣平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음 .... 이제 보니 范增과 漢王 간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구나 ! )
우자기는 이를 갈며 분개하였다.
마침 그때 隋何가 찾아오더니 말한다.
"대왕께서 이제야 기침하셨소이다. 나와 함께 입궐하여 대왕을 알현하기로 합시다."
虞子期는 隋何를 따라 입궐하여 接見室로 들어왔다.
접견실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정돈되지 않은 서류 들도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漢王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하는 우자기를 의자에 모셔놓고 난 다음,
"대왕께서는 지금 세수를 하고 계시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내가 대왕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하고 방에서 나가 버린다.
우자기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책상위에 쌓여있는 서책과 서류들을 훔쳐보았다.
그중에는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書翰이 한 통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하 중략) 項羽는지금 彭城을 비워 놓은 채 영양성을 취하고자 원정 길에 올랐는데, 兵力은 10 萬 정도입니다. 그러나 항우는 天命을 거역하였으니 머지않아 漢軍에 의해 滅亡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왕께서는 일체 대응하지 마시고, 韓信 장군을 급히 부르시옵소서. 老臣과 鐘離昧 장군은 이곳에서 끝까지 대왕을 도와 드릴 것이옵니다.
참, 지난 번에 보내주신 貴한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대왕께서 통일 聖業을 완수하시거든 이 老臣을 고향의 侯佰으로나 封해 주시기를 부탁드리옵니다.
虞子期는 그 편지의 주인공이 범증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항간에 떠돌아 다니는 소문도 소문 이려니와, 張良과 陣平이 자신을 대하던 태도의 변화 等을 볼 때, 范增이 漢王과 내통하고 있다는 심증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범증, 이 늙은이가 이렇게 음흉한 者라면 절대로...)
이렇게 생각한 우자기는 범증을 단죄할 물적 증거로 삼기 위해 문제의 편지를 가슴속에 집어넣었다.
이윽고 隋何가 漢王을 모시고 들어왔다.
漢王은 修人事가 끝나자 우자기에게,
"그 옛날 項王과 내가 義帝의 命을 받고 秦나라로 쳐들어갈 때, 義帝께서는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을 <關中王>으로 封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소.
그런데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은 나였지만, 項王은 關中王의 자리를 빼았고, 나를 巴蜀으로 쫒아버렸소. 그리하여 나는 부모와 고향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여 부득이 군사를 일으키게 된 것이오. 그리고 이제, 關中을 점령함으로써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므로, 서로 간에 和親을 도모하려는 것이오. 公은 이러한 나의 뜻을 項王에게 그대로 전해 주시오."
우자기가 대답한다.
"項王 폐하께서도 대왕의 뜻을 충분히 짐작하시고 저를 사신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바라옵건데 대왕께서는 사흘 안에 반드시 항왕 폐하를 찾아 오셔서 그 뜻을 직접 말씀해 주시옵소서."
漢王이 다시 말한다.
"참모들과 상의하여 사흘 후에 項王을 만나러 갈 테니, 公은 먼저 돌아가 그 뜻을 전해주시오."
우자기는 돌아오기가 무섭게 項羽에게 문제의 편지를 내 보이며,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음은 이 편지로 의심할 여지가 없게되었사옵니다."
하고 張良과 陣平에게 당한 일까지 소상히 보고하였다.
항우는 그 書札을 읽어 보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범증이란 늙은이가 이럴수가!..
범증을 당장 불러내 이실 직고하도록 사정없이 고문하라 ! "
하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졸지에 범증이 御殿으로 끌려나왔고, 본인을 모함하는 편지의 내용을 추궁당하자 사태의 전말을 알아차리고, 바닥에 엎드려 눈물로 아뢴다.
"평생을 두고 심혈을 기울여 폐하를 보필해 온 이 몸이 어찌 두 마음을 품을 수 있겠사옵니까? 이 편지는 張良과 陣平이 臣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한 모략이오니, 폐하께오서는 속지 마시옵소서."
그러나 그런 말로 의심이 풀릴 항우가 아니었다.
"쓸데없는 변명은 그만 늘어 놓아라. 우자기 장군이 영양성에서 이 편지를 직접 훔쳐왔는데, 이것을 어찌 張良과 陣平의 모략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
항우는 워낙 의심이 많은 성품이라 아무리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범증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폐하께서 의심 하신다면 굳이 더 이상 변명은 아니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臣의 공로가 적지 않았사오니, 여생을 고향에서 보낼 수 있도록 관대한 처분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 老臣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아무리 포악한 항우였지만 70 고령의 범증이 눈물로 호소하는 것을 보고있자니, 일말의 측은지심이 없을 수 없었다. 더구나 범증은 老軀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해 온 충신이 아니었던가 ?
항우는 범증을 오랫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그대의 마지막 소원이 그러하다면, 여생을 고향에서 보낼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해 주겠소."
하고 관대한 처분을 내려 주었다.
이리하여 범증은 군사들의 감시 하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고 고향에 돌아오기는 하였으나, 모든게 편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설상 가상으로 背瘡(등창)이 나서 온 몸이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등창이 열흘 쯤 계속 되자, 온 몸이 못 견디게 따갑고 쑤셔와서 잠을 이룰 수 없음은 물론, 세상 만사가 모두 헛 것으로만 보이는 것이었다.
범증은 참다 못해 아들을 불렀다.
"여기서 동쪽으로 3 百 里쯤 떨어진 곳에 있는 臥牛山에 가보면, 토굴 속에 楊眞人이라는 백발 노인이 계실 것이다. 그 어른은 나에게 道를 깨우쳐 주신 은사일 뿐 아니라, 어떤 病도 고칠 수있는 천하의 名醫이시기도 하다. 너는 지금 곧 그 어른을 찾아가서 내가 등창으로 고생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약을 좀 구해오도록 하거라."
범증의 아들은 부친의 말을 듣고 와우산으로 <楊眞人>을 찾아갔다.
과연 와우산 속의 어떤 토굴에 100세가 족히 넘어 보이는 백발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범증의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고, 부친이 등창으로 극심한 고생중인 증상을 자세히 말한 後,
"家親의 등창이 속히 쾌유되도록 약을 지어 주옵소서."
하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러자 백발의 양진인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범증을 위해 藥을 지어 줄 수 없다. 그 옛날 범증이 나에게 道를 배운 것은 사실이나, 범증은 내가 가르친 正道 보다 密謀와 奇計를 좋아하는 성품이었기에, 범증이 하산할 때, 나는 <부디 明君을 택하여 正道의 길을 가라>고 신신 당부를 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증은 항우 같은 暗君을 섬기다가 결국에는 몸까지 망치게 되었으니, 내 어찌 그런 자의 병을 고쳐 줄 수가 있겠느냐 ? 범증이 지금 등창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하늘이 내리신 天罰로 알라고 傳하여라."
양진인 노인이 그렇게 나오니 범증의 아들은 더 이상 말을 해 볼 수가 없었다.
하릴없이 그는 집으로 돌아와 楊眞人 노인의 말을 사실대로 傳하니, 범증은 충격이 컸던지 너무도 슬퍼하다가
"악 ! "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려져 죽고 말았다.
때는 大漢 4년 4월, 范增의 나이 71세였다.
이로써 파란 만장한 漢과 楚의 투쟁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큰 별이 지고 말았으니,
항우는 그 소식을 듣자 목놓아 울었고, 漢王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게 사람을 잘 만났어야지, 그리고 그 만남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으면 곧바로 궤도수정을 했어야지..
하긴,
封建 王朝 時代의 최고의 덕목이,
"忠臣은 不事二君이오 熱女는 不更二夫"라 했으니,~
이를 어기면 毁節(훼절)이 되어 어찌할 수 없었겠지만 韓信이나 陣平을 보고 그때라도 따라했어야지..
하기야 劉邦 밑에는 張良과 簫何가 있었으니 가고싶어도 갈 수가 없었겠지만..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는 말의 숨은 뜻을 헤아려, 독자 제위께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시기요.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