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 列國誌 124

jahun 2021. 8. 1. 22:14

 

# 列國誌 124

** 楚漢誌 46

※李左車의 智略

趙나라로 진군해 온 韓信은 정경城 30 里 밖에 陣을 치고, 張耳를 불러 상의한다.
"지금 정경성을 지키고 있는 廣武君 李左車는 智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 들었소.
그러니 유능한 첩자를 보내, 적의 虛와 實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소. 경솔하게 움직였다가 보급로를 차단 당하게 되면 큰 일이 되니 하는 말이오."
張耳가 대답한다.
"지금 趙王을 가까이서 보필하고 있는 사람은 成安君 陳餘입니다. 진여는 병법에 능숙하다고는 하나, 융통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陣餘와 李左車는 사이가 좋지 않아, 진여는 이좌거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정경성으로 과감히 치고 들어가도 무방할 듯 합니다."
그러나 韓信은 고개를 흔들며,
"싸우기도 전에 勝敗를 속단하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오. 敵의 虛와 實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공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니 우선 첩자를 보내 정경성의 상황을 알아보도록 해야하오."
이리하여,
韓信은 10여 명의 첩자를 장삿꾼으로 꾸며 상당한 자금을 주어 정경성으로 들여보냈다.
장사꾼으로 변장한 첩자들은 정경성 으로 들어가 일부는 酒幕에서 술을 마시며 술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民心을 탐지했고, 일부는 물건을 사면서 사람이 많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때 趙王은 漢나라가 곧 쳐들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2 萬의 군사들을 비상 대기 시켜놓고, 陣餘와 함께 순시차 나와 李左車에게 묻는다.
"漢나라가 쳐들어 온다고 하는데, 大夫라면 어떤 방비책을 세우겠소 ?"
이좌거가 대답한다.
"韓信은 魏나라를 평정하고 代州의 夏悅을 정복한 여세를 몰아 우리까지 넘보고 있사온데, 그 기세가 매우 사납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정에 밝은 張耳까지 같이하고 있어서 武力으로 맞서는 것은 위험이 따를 것이옵니다. 그러나 저들은 軍糧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千 里 밖에서 수송해 와야하기 때문에 軍糧 사정은 매우 열악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유능한 장수로 하여금 3만 정도의 군사를 이끌고 敵의 後方으로 돌아가 漢軍의 보급로를 차단하면, 저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철군할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趙王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李左車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장군 陣餘가 즉석에서 반대하고 나섰다.
"大夫의 계략은 일종의 詐術입니다. 전쟁은 義를 앞세워 당당하게 싸워야지, 무엇 때문에 잔꾀를 부린단 말입니까 ?
韓信이 10 萬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하는데, 그것은 과장된 숫자이옵고, 실상은 4~5 천 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니 당당하게 정면으로 싸워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사옵니다. 저들은 이미 천 리 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軍 전체가 피로에 쌓여 있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비겁하게 정면승부를 회피합니까 ?"
李左車가 지적한 대로, 韓信은 군량 보급망이 길어져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이좌거의 계략대로 漢軍의 보급로가 趙軍에 의해 끊어진다면 한신은 꼼짝못하고 철수해 버렸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韓信에게 運이 따랐던지, 陣餘는 李左車의 작전 계획을 무시해 버리고,
"敵의 병력은 불과 몇 천 명에 지나지 않으니 전면 공격으로 敵을 일거에 때려부숴야 합니다."
하고 총공격론을 다시 주장한다.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자, 이제는 趙王 자신이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趙王은 한동안 심사 숙고하다가 결단을 내린다.
"敵의 보급로를 차단하자는 李 장군의 계획은 너무 소극적이오.
陣餘 장군의 의견대로 정면 공격으로 정정 당당하게 승리를 거두도록 합시다."
李左車는 趙王의 말을 듣고,
(趙나라는 이제 꼼짝없이 망하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韓信은 첩자들의 보고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알고 크게 안도하였다.
그리하여 장수들을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은 軍令을 내렸다.
"敵將 陣餘는 우리 병력이 4~5 천 정도로 알고 정면공격을 감행해 오기로 했다고하니,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면만강(綿蔓江)을 등지고 背水陳을 치고 있다가 적이 오는 대로 격파할 것이니, 周拔 장군은 精兵 2 千을 이끌고 산속에 매복해 있다가 저들이 일선으로 달려 나오면, 그 기회에 정경성을 점령하고, 우리의 붉은 깃발을 성루에 걸어 놓고 성을 굳게 지키도록 하시오."
韓信이 <背水陣>을 치겠다는 말을 듣고 모든 장수들은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강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것은, 만일의 경우에 후퇴할 길이 없으므로 병법상으로는 가장 기피하는 布陳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장수 하나가,
"하필이면 背水의 陣을 치려고 하시옵니까 ?"
하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자 韓信은,
"내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배수 진을 치기로 하였으니, 諸將들은 여러 말들 말고 내 명령대로 하시오."
하고 일언지하에 반론을 막아버렸다.
다음날,
趙나라 군사들이 전열을 갖추고 공격해 오기 시작한다.
정찰병을 통해 漢나라 군사들이 背水陣을 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陣餘는 크게 웃으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敵들이 背水陣을 치고 있다니, 韓信이라는 자의 智略이란 것은 지략도 아니다. 우리는 이제 한꺼번에 총공격을 개시하여 漢나라 군사들을 모조리 水葬시켜 버리자."
趙나라 군사들은 북을 두드려 사기를 돋우면서 함성을 지르며 노도처럼 쳐들어오기 시작한다.
趙나라 군사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韓信은 曺參, 번쾌, 근흠 등을 불러 긴급 군령을 내렸다.
"적들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소. 그런데 우리는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설 수 없도록 背水의 陣을 치고 있으니, 모든 장수들은 병사들을 결사적으로 독전하여 적을 남김 없이 쳐부수도록 하시오. 敵의 기세가 대단하니, 만약 한 걸음이라도 후퇴하는 자는 즉석에서 목을 베어 버리시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韓信의 군사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兩 軍 사이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趙나라 군사들은 적의 병력이 4~5천 명밖에 안 되는 줄 알고 무작정 달려들기 시작했는데, 막상 싸움을 시작하고 보니, 漢나라의 군사들이 계속 몰려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
兵力의 數에서 밀리기 시작한 趙나라 군사들은 크게 당황하여 자신들의 本營인 정경성으로 급히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城門 앞에 이르고 보니, 城門은 굳게 닫혀 있고, 城樓에는 漢나라의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게 아닌가 ?
"아니! 어느 틈에 적에게 우리 城까지 빼앗겨 버렸단 말인가 ?"
군사들은 도망갈 곳이 없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하였다.
최고 지휘관 陣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벌떼처럼 몰려오는 漢나라 군사들을 향해 좌충 우돌 고군 분투를 하고 있는데, 홀연히 나타난 灌瓔 장군이 말을 달려오더니 陣餘를 단칼에 베어 버리자 趙나라 군사들은 더 크게 동요한다. 이에 허둥대던 趙王도 생포되고마니, 趙나라는 싸움다운 싸움 한 번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완패하고 만다.
韓信이 정경성에 입성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나자, 여러 장수 들이 韓信에게 입을 모아 물었다.
"자고로 背水陳은 병법에서 가장 기피하는 陣法이온데, 元帥께서는 어인 일로 배수의 진을 치셨습니까 ?"
韓信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한다.
"兵法에는 陷之死地 而後生 (함지사지이후생) 이라는 말이 있소. 背水陣을 치는 것이 우리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소?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불리할 줄 알면서도 배수의 진을 쳐야 할 때가 있는 것이오.
어제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소."
"부득이한 경우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우리가 이번 전투에는 전투 경험이 없는 新兵 들이 많이 있었소. 그런 탓에 정작 싸움이 벌어지게 되어 자칫 불리하다 싶으면 新兵들은 대개 도망치는 것을 먼저 생각하오. 그러기에 그들이 도망칠 수 없도록 背水의 陣을 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한 것이오. 우리가 이런 계획으로 이번 전투에서 이겼으니, 앞으로 우리 병사들은 오늘의 경험을 통하여 强軍으로 한 단계 발전할 수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오. 이것이 내가 배수진을 친 가장 큰 이유요."
~살고자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
李舜臣 장군이 吳子兵法의 "必死卽生 幸生卽死"의 兵法을 통달하사 '死卽生 生卽死'란 말로 줄여 背水陣을 침으로써 倭軍을 몰사시킨 일이 있었다. 참으로 韓信 못지않은 우리의 李舜臣 장군이다!)
모든 장수들은 韓信의 임기응변의 능란한 병법 전개에 혀를 차며 감탄하였다.
韓信은 이번 전투에서 趙王을 생포함으로써 趙나라를 완전히 정복한 셈이었다.
그러나 한신에게 걱정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趙나라에는 智略이 뛰어난 大夫 李左車가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이좌거를 생포하기 전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韓信은 다음과 같은 榜文을 널리 써 붙였다.
<누구를 막론하고 李左車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황금 천 냥을 상금으로 준다.>
榜文을 써 붙인지 사흘 만에 李左車는 어느 농부의 손에 붙잡혀 결박을 당한 채 끌려 왔다.
韓信은 즉석에서 결박을 풀어 주고, 이좌거를 상좌로 모셔 물었다.
"제가 이번에는 燕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어떤 작전을 쓰면 좋을지 大夫께서 가르침을 주소서."
李左車는 너무도 과분한 韓信의 예우에 감격해 마지않으며 대답한다.
"자고로 敗軍之將은 兵事를 論하는 법이 아니 라고 들어왔습니다. 나라를 亡쳐 놓은 이 몸이 무슨 얼굴로 兵事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
그러자 韓信은 머리를 숙이며,
"그 옛날 백리해(百里奚)가 虞나라에 있을 때는 나라를 크게 망쳐 놓았으나 그가 秦나라에 가서는 秦나라를 크게 興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 趙나라가 亡한 것은 趙王이 大夫의 탁월한 計略을 듣지 아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趙王이 만약 陣餘의 말 대신 大夫의 말씀을 들었다면 저희들은 결코 쉽게 승리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데, 大夫께서는 燕나라를 평정할 수 있는 지혜를 말씀해 주소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