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誌 96
# 列國誌 96
** 楚漢誌 18
※ 辛奇와의 再會
韓信은 漢王보다 이틀을 앞서 군사들을 이끌고 出征했으나, 棧道 대신 陳倉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進軍하였다. 陣倉으로 가는 지름길은 험준하기가 그지 없었다.
兩脚山은 골짜기가 너무 깊어, 兵士들이 쉽게 건널 수가 없었다.
樊噲 장군의 선발대가 길을 닦아 놓기는 했지만, 골짜기를 메워놓은 돌들이 급류에 휩쓸려 나가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군사들은 하는 수 없이 절벽과 절벽 사이에 밧줄을 걸어 놓은 다음, 밧줄을 타고 기어서 건너갔다.
(유격훈련 때의 기억이 새롭구나.^^)
그리고 얼마를 더 가니 寒溪灘 이라는 여울이 나왔다. 수년 전 韓信이 重用되지 못한 것에 실망한 끝에 巴蜀을 뜨려다, 簫何에게 붙들려 다시 돌아오게 된 바로 그 寒溪灘에 다시 오게 되었던 것이다.
韓信은 寒溪灘을 보자 감개가 무량하여, 수하 장수 들에게,
"그날 밤 내가 이 여울을 건넜더라면, 丞相에게 붙들리지 않고 고향으로 가 버렸을 것이오."
그러자 장수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그날 밤 大元帥께서 여울을 건너가지 못하신 것은, 하늘이 漢나라를 돕기 위해 그리하셨을 것입니다. 만약 그날 밤 大元帥께서 여울을 건너셨더라면 저희들은 영원히 故鄕에 돌아가지 못하고 異國 巴蜀 땅에서 恨맺힌 孤魂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실을 후세에 널리 알리도록 山 頂上에 기념비를 세우도록 하시지요. "
그리하여 막료들은 산 頂上에 <漢나라 丞相 簫何가 韓信을 맞기 위해 이곳에 이르렀다 (漢國丞相蕭何邀韓信至此) : 한국승상소하요한신지차) 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길은 갈수록 험난하였다.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 버리고 칡넝쿨을 쳐가며 얼마를 더 가니, 娥眉嶺이라는 고개가 나왔다. 지난날 韓信이 혼자서 漢王을 찾아오다가, 辛奇를 만나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새며 결의 結義兄弟를 맺었던 바로 그 아미령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韓信은 또다시 감개가 무량하여, 막료들에게 말했다.
"지난날 나는 漢王을 찾아오다가, 이 娥眉嶺 고개 밑에 있는 <신기>라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결의 형제를 맺은 일이 있었소. 그때 우리는 再會를 약속하고 헤어졌는데, 이제 내가 여기에 왔으니, 그를 꼭 찾아보아야 하겠소."
그러자 大將 노관이 나서며 말한다.
"그 집이 어디쯤 있는지, 제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런 얼마 후에 노관이 돌아오더니,
"신기라는 분이 살고 있던 집은, 지난 여름, 홍수에 떠내려가 지금은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하고 보고하는 것이 아닌가 ?
韓信은 신기의 집이 <홍수에 떠내려 갔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뭐라고? 홍수에 집이 떠내려 갔다면, 사람은 어떻게 되었다고 합디까 ?"
"집은 없어졌지만 사람은 무사하여, 신기라는 분은 지금은 태백령 고개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봐야 하겠소."
韓信은 4~5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태백령 꼭대기로 말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를 올라가고 있는데, 우거진 숲속에서 호랑이 한마리가 나는 듯이 도망쳐오는데, 그 뒤로 한 사람이 활을 겨누고 쫒아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신기가 아닌가 ?
"어? ! 그대는 辛奇大人이 아니오 ?"
韓信은 말을 급히 멈추며 큰소리로 외쳤다.
신기도 韓信을 바로 알아보고,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韓 將軍을 다시 만나뵙게 되어 무한히 기쁘옵니다."
韓信은 말에서 내려, 신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나는 지금 楚나라를 치기 위하여 가는 길이오. 우리가 그때 약속한 대로, 辛公도 나와 함께 戰列에 함께해 주시기 바라오."
신기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러지않아도 楚나라를 치기 위해 棧道를 보수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將軍께서 머지않아 이곳을 지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장군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늙으신 어머님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 오다가, 뜻밖에도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무슨 말씀을 ! 어머님이 강녕하시다니, 우선 어머님께 인사부터 드려야 하겠소. 나와 함께 어머님을 뵈러 갑시다."
그러자 신기는 손을 내저으며,
"將軍님은 지금 천하의 重責을 맡고 계시는 大元帥이시옵니다. 이처럼 貴한 분을 어찌 누추한 저희 집에 모시겠습니까!?"
韓信은 그 말을 듣자, 정색을 하며 신기를 나무랐다.
"우리 두 사람은 兄弟之間인데, 辛公은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내가 大元帥가 아니라 大王이라 하더라도 어머님을 반드시 찾아뵈어야겠으니, 여러 말 말고 나를 당장 宅으로 인도해 주시오."
韓信은 신기를 앞세우고 그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고개를 넘어 험한 산길을 5 里쯤 가니, 산골짜기에 움막같은 草家가 서너 채 보였다.
신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집의 사립문을 밀치며,
"여기가 저희 집이옵니다."
하는 것이었다.
韓信은 움막 같은 집 안으로 들어가, 신기의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며,
"어머니께서 저를 알아보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수 년 전에 어머님께 많은 신세를 지고 떠났던 韓信이옵니다."
80이 다 된 老婆는 韓信의 손을 情겹게 잡으며,
"오!, 내가 아무리 늙었다고 韓 將軍을 어찌 몰라보겠소?. 그렇지않아도 漢王께서 項羽를 친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韓 將軍이 다시 한 번 찾아 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오."
노파는 그렇게 말 하고, 이번에는 아들을 쳐다보며,
"얘야! 너는 지난날 韓 將軍과 結儀 兄弟를 맺을 때, 만약 韓 장군이 楚나라로 쳐들어가게 되면, 너도 韓 장군을 따라 나서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지 않으냐!?
'男兒一言은 重千金'이니라.
韓 장군이 오셨으니, 이제 너도 武裝을 갖추고 韓 將軍을 따라가야 할 게 아니냐 ?"
하고 지시하듯 아들의 의사를 묻는다.
신기는 늙으신 어머니를 산속에 홀로 두고 싸움터에 나갈 수가 없었던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장군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간절합니다만 ....."
하며 어머니를 쳐다 보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러자 노파는 아들의 생각을 알아채고, 얼굴에 怒氣를 띠며 호되게 나무란다.
"너는 무슨 못난 소리를 하는게냐. 짐작컨데 너는 늙은 에미 때문에 싸움터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는 모양인데, 에미를 보살핀다고 大丈夫 끼리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道理가 아니다. 또 네가 없다고 굶어 죽을 에미가 아니다. 여러말 말고 지금 당장 韓 장군을 따라 나서도록 하여라. 모든 世上事에는 기회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신기는 어머니 앞에 머리를 깊이 숙였다.
"하오나, 늙으신 어머님을 이 깊은 山 中에 홀로 계시게 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기에 ...."
신기가 거기까지 말하자, 노파는 별안간 벼락 같은 호통을 친다.
"못난 소리 그만 하거라. 에미의 심정을 그토록 몰라 준다면, 그게 어디 내 자식이냐? 사내 大丈夫의 약속을 지키라고 그토록 일렀건만 ..."
신기는 그제서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韓信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한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저도 오늘부터 싸움터로 데리고 나가 주시옵소서. 저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옵니다."
韓信은 두 母子의 대화를 듣고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다. 그렇다고 늙은 어머니를 버려둔 채, 아들만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善後策을 골똘히 강구해 보다가,
"제가 어머님께 부탁 말씀이 하나 있사옵니다."
"將軍께서 나 같은 늙은이에게 무슨 부탁이 있다는 말씀이오 ?"
"어머님의 말씀대로, 아드님은 제가 싸움터로 데리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대신 제가 丞相府에 특별히 부탁해 놓을 테니, 어머니께서는 南鄭으로 옮겨 지내도록 하소서. 남정에만 가시면 丞相府에서 어머님을 잘 돌봐 드릴 것이옵니다."
노파는 그 말을 듣고 펄쩍 뛸 듯이 놀란다.
"將軍은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고 계시오? 내가 무슨 功勞가 있다고, 나라의 살림살이로 돌봐 준다는 말씀이오 ?"
"어머님께서 功이 있어서 돌봐 드린다는 것이 아니옵고, 아드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드님을 데려가기 위하여 어머님의 살림을 돌봐 드리려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노파는 고개를 젖는다.
"나는 아들을 팔아먹도록 못난 늙은이가 아니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내 아들이나 데려다가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하게 해주시오."
"어머님의 심정은 저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제 입장으로서는 어머님을 홀로 두고 아드님만 데려갈 수는 없사옵니다. 아드님도 어머님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만 전쟁터에서 마음놓고 싸울 것이니, 제 부탁을 꼭 들어주셔야만 합니다."
老婆는 그제서야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내 문제로 그렇게 걱정이 되신다면 내가 남정으로 옮겨 갈테니, 저 애는 꼭 데리고 가 주시오."
그리고 이번에는 아들에게 말한다.
"얘야 ! 將軍의 말씀대로 나는 남정으로 옮겨갈 테니, 너는 이제부터 韓 將軍을 도와 큰 功을 세우도록 하여라. 너도 잘 알고 있다시피, 우리 家門은 뼈대가 있는 집안이다. 어떤 경우에도 조상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거듭 명심하여라."
신기는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며 이렇게 하직을 고한다.
"불초 자식 신기, 이제부터 出陣하여, 어머님의 가르침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韓信은 軍政司를 불러 신기 어머니의 문제를 상세하게 지시한 뒤에, 신기와 함께 本營으로 돌아와 신기에게 軍令을 내린다.
"先鋒 大將 樊噲가 지금 大散關을 기습하려고, 태백령에 새로운 길을 만들며 前進중이오. 그러나 樊噲 장군은 이곳 지리가 어두워 고생이 많을 테니, 그대가 지금 그리로 달려가 樊噲 장군을 도와주도록 하오. 이틀 후면 大散關을 기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勝算이 없다고 판단되거든, 내가 갈 때까지 전투 태세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으라고만 하시오."
신기가 軍令을 받들고 樊噲에게 달려가자, 韓信은 후속부대장 夏侯嬰 을 불러 별도의 軍令을 내린다.
"將軍은 지금부터 군사를 이끌고 선봉 부대의 뒤를 바짝 따라붙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樊噲의 부대가 大散關에 기습을 감행할 때는 직접 가담하지 말고, 뒤에 숨어서 大勢만 관망하시오. 모르면 모르되 樊噲 장군은 혼자서도 大散關을 어렵지 않게 함락시킬 것이오. 대산관을 함락한 후에는 章悍의 본거지인 폐구(廢丘)를 공략해야 하는데, 그때는 將軍이 先鋒將이 되고, 樊噲는 후속 부대가 되도록
하시오."
夏侯嬰이 軍令을 받고 출동하고 나자, 韓信은 副官을 불러 물어 본다.
"大王께서 지금 어디쯤 오고 계시는지, 알아 보았느냐 ?"
부관이 대답한다.
"연락병이 알려 온 바에 따르면, 대왕께서는 寒溪灘을 건너오고 계시는 중이라고 합니다."
"알았다. 그러면 우리도 안심하고 전진하자."
깊은 산속을 얼마쯤 전진하다 보니, 세 갈래 길이 나왔다.
韓信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곳에서 말을 멈추고 막료 將帥들을 둘러보며,
"지난날 나는 巴蜀으로 들어오다가 길을 잃어서, 여기서 나무꾼에게 길을 물어 본 일이 있었소. 나무꾼은 친절하게도 길을 잘 가르쳐 주었소. 그런데 楚나라 군사들이 나를 추격해 오고 있던 상황이라, 나는 길을 다 묻고 나서는, 그가 楚軍 兵士들에게 나의 행방을 알려줄 것을 염려하여,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베어 땅 속에 묻어 버렸소. 지금 이곳에 다시 오게 되니, 그 사람의 怨慟한 넋을 풀어 주지 않고는 그냥 갈 수가 없구려. 그 사람 시신을 파내어 정중하게 장사를 지내 주고 墓碑도 세워 주고 싶으니, 여러분은 나를 이해해 주기 바라오."
韓信의 얘기를 들은 장수들은 한결같이 감동하였다. 비록 부득이한 사정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는 했지만,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大元帥의 義理와 처사에 모두가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수들이 솔선하여 나무꾼의 시체를 파내 장사를 지내고 묘비를 세워 놓으니, 韓信은 그 묘비에 다음과 같은 碑文을 손수 써 넣었다.
[破楚大元帥 韓信은 義士 樵夫<나뭇꾼>의 영전에 삼가 아뢰옵니다. 貴公은 難世에 태어나 생활이 어려운 관계로 樵夫로서 생활을 꾸려 나가던 선량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貴公에게 길을 묻고 나서 楚軍에게 나의 행방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罪없는 貴公의 목숨을 해쳤으니, 이는 두고두고 良心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에 늦게나마 장사를 정중히 지내 드리오니, 九泉에서라도 貴公은 나의 잘못된 죄과를 너그럽게 용서하소서."]
이렇게 韓信이 碑文을 작성하자, 그것을 본 모든 군사들이 한결같이 감동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