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書藝

早發白帝(조발백제城)

jahun 2020. 10. 11. 11:17

李白의 詩

 

早發白帝城(조발백제성) - 이른 아침 백제성을 떠나다

 

朝辭白帝彩雲間 (조사백제채운간) 아침 백제성의 아롱진 구름 사이를 떠나

千里江陵一日還 (천리강릉일일환) 천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 (양안원성제부주) 양 기슭에선 원숭이 울음 그치지 않는데

輕舟已過萬重山 (경주이과만중산) 가벼운 배는 벌써 만 겹의 산중을지났다네

 

▒ 早發白帝城(조발백제성) : 아침 일찍 백제성을 떠나며, 이백이 유배되어 야랑(夜郞)이라는 곳으로 가는 도중에 백제성(白帝城)에 이르러 사면(赦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강릉(江陵)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시이다. 백제성은 사천성 봉절현(奉節縣) 기주(夔州)의 동쪽에 있는 백제산(白帝山) 위에 있는 산성이다. 한(漢)나라 말엽에 공손술(公孫述)이 스스로 백제(白帝)라 칭하여 쌓은 성인데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촉(蜀)의 유비(劉備)가 오(吳)나라를 방비하기 위해 여기에서 지켰다.

白帝 : 白帝城(백제성). 重慶市(중경시)湖北省(호북성) 사이의 巫峽(무협) 부근에 있는 성.1)

彩雲 : 빛깔이나 무늬가 있는 구름.

江陵 : 지금의 호북성 荊州市(형주시).

啼不住 : 원숭이 울음소리가 한 곳에서 계속 들리지 않고 없어져 버림. 배가 빨리 달리는 모양을 강조한 말임.

輕舟 : 가볍고 빠른 작은 배.

 

감상(鑑賞)

이백의 칠언절구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의 호응린(胡應麟)은 이 시를 神品에 속한다고 격찬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침에 白帝城을 뒤로 하고, 날듯이 배를 타고 강릉까지 온 스피이드(speed). 그것은 야랑(夜郞)으로 流配되어가다가, 도중에서 恩赦를 받고 巫山에서 되돌아온 李白의 다구치는 마음의 스피드와 일치한다. 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급류를 타고, 험한 협곡을 내리달리는, 작자의 귀에 들리는 처절하게 끝없이 시끄럽게 우짖는 원숭이 소리는 더욱 어수선한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간이었다. 어느덧 조용한 강릉에 와닿아 정밀(靜謐)한 안정을 되찾은 잔잔한 안도감마저 엿보이는 시다.

또 이 시에는 아름다운 색채와 빛이 번지는 그림이 있고, 心亂하게 우짖는 원숭이 소리가 있고, 다시 千里의 공간을 쏜살같이 내닫는 輕舟, 배가 지나감에 따라 어지럽게 뒤로 물러나는 첩첩이 겹친, 萬山流動이 있다.

李白鬼才.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안정된 시로서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백제성에서 무협을 거쳐 호북성의 강릉까지 뱃길로 천 3백여 리요, 그 중 골짜기 길이가 7백 리나 되는 먼 거리인데, 그 먼 길을 아침에 떠나 하루에 닿았다 하니, 강의 흐름의 빠름과 배가 얼마나 빨리 떠내려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에 강기슭의 원숭이 울음이 자꾸 뒤로 뒤로만 밀린다 했다. 아침노을, 빠른 강 흐름과 똑같이 빠른 배, 산으로 첩첩이 쌓인 강 언덕 등 敍景(서경) 중심의 작품이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言絶句(7언절구). 압운은 , , 자로 평성 ()’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平平仄仄仄平平, 平仄平平仄仄平,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으로 이사부동이륙대와 반법, 점법 등이 모두 규칙에 합치되는 7의 모범되는 작품이다.

 

이백(李白)(701 ~ 762)

중국 당()의 시인.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靑蓮). ()나라 쓰촨 성[四川省] 사람. 어려서부터 시서(時書)에 통하여 민산(岷山)에 숨어 종횡책사(縱横策士)의 술()을 즐겼으며, 후일 조래산(徂徠山)에 살며, 술을 즐기어 6(六逸)의 한 사람이 되었다. 742년에 강남(江南) 회계(會稽)에 갔다가 친구의 천거로 한림(翰林)학사가 되었으나 방종(放縦)하여 진관(進官)이 되지 못하고 다시 각지에 순유(巡遊)하였다. 안사(安史)의 난에 양주(楊州) 절도대사의 막하에 있다가 모반(謀反)에 연좌되어 야랑(夜郎)지방으로 귀양갔다가 후일 사면되었다. 대종(代宗) 때의 좌습유(左拾遺)의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고, 62세로 선주(宣州)에서 사망했다. 시인이 배출된 현종(玄宗) 시대에 있어서 두보(杜甫)와 더불어 시선의 일컬음을 받았으며 중국 역대를 통하여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그의 특색은 주관적인 자유 분방으로, 한번 붓을 들면 곧 시가 되었다고 한다. 사상에 있어서는 유교적 색채가 엿보였다. 그의 생활 태도를 반영한 대표작으로는 촉도난(蜀道難)이 있다. 이태백 시집30권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